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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김영규
Kim Younggyu

PUBLIC ART NEW HERO 2023 미술왕의 사회

● 오정은 미술비평가 ● 이미지 작가 제공

'유머랜드주식회사' 전시 전경 2021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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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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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범

최근 우리 사회는 전청조 사건이 몰고 온 풍파로 경종의 울림을 들었다. 혹자는 집권당의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 연예인 마약 사건과 함께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보지만, 배후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 촌극에 얽힌 병폐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부와 사회적 지위, 성별을 오가며 희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전청조는 막장 드라마 속 플롯도 별거 아니었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주었으니 말이다.

인터넷 밈으로 번져나간 전 씨의 각종 행각 중에는 그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던 강연 영상도 있는데, 고액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자기 업적을 먼저 내세워 청중의 신뢰를 쌓는 모습이다. 조 단위 자산가로 위장했던 전 씨의 손에서 선물로 전달됐다는 사치품과 이에 조달됐을 억 단위 피해액의 호사가 매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이쯤에서 미술계는 작가 김영규를 떠올려볼 만하다. 2015년부터 영상 <미술왕 인강시리즈>를 개인 SNS와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잘 팔리는 작업’은 무엇인지를 설파하고, 『『연봉 1억 미술작가 되는 법』(2021)이란 책을 내놓으며 그런 이력으로 미술관 전시도 해온 김영규의 또 다른 이름은 ‘미술왕’이다. 미술왕은 작가 김영규와 동명의 주체이자 허구적 페르소나(persona)로서 자기개발계의 명사를 연기한다.

미술왕은 스스로 매체가 되고 주제가 된다. 작가의 삶에 관계하는 미술사회의 카르텔과 행동 양식이 팩션(faction)으로 진술되고 노하우로 강의된다. 미술왕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작금의 미술계 환상과 낭만에 올라타 거기 선봉이 되고 그 부끄러운 민낯을 몸소 방증한다.



<20XX 재난지원금 게임> 
2022 혼합재료 50×50cm



서바이벌 사회

예술가가 자기 일상의 상황 고백과 현장 르포를 통해 실태 양상을 고발하고 제도비평에 관여하는 작업은 2010년대 들어 새롭게 불거졌다. 이런 사회적 미술의 계보에서 보다 앞섰던 1980년대 민중미술은 노동자나 농민의 삶을 대변하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지식인의 비밀스러운 영역에 걸쳐 놓아 사실상 ‘예술노동’의 화두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었다. 반면 2010년대 청년작가들은 자기 주변의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작업의 언어로 사용하면서, 소시민의 예술가 상을 부각했다. 이들은 스스로 당대 미술의 새로운 주제가 됐다.

주거 공간과 인접한 곳에 열악하나마 전시장을 만들고, 자급자족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Artist Run Space)를 운영하며 신생공간을 생성하고, SNS를 주된 경로 삼아 확장해갔다. 그렇게 이전 세대의 주류인 대안공간을 포함한 기성 미술제도와는 대척점에 선 것이다. 이 대립적 관계를 조장한 것은 ‘삼포세대’라는 당시 신조어가 표상하듯, 청년에게 암담하게 닥쳐온 불황이었다. 경기 부양의 난항 속에서 세대론과 예술인 복지, 창작 대가기준 등의 다각적 이슈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음을 우리는 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2022 혼합재료



김영규의 미술왕 작업은 그런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 그는 2015년 대구예술발전소가 주최한 <창작경연-작가대전>에 참가했는데, 이는 모 케이블 TV 채널에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경연 프로그램 ‘아트스타코리아’(2014)의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이었다. 미술관 학예사,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 심사위원이 청년작가 지원자를 평가·선발하는 구도의 이 서바이벌 경쟁에서 김영규는 최종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미술, 생태, 권력’이 미션 주제로 주어졌던 워크숍에서 특히 인상적인 작업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미술왕의 시초다.

미술왕은 ‘우리 모두 부자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본주의의 속물적 근성과 과욕, 야망을 자극했다. 미술작가를 아트페어 작가와 비엔날레 작가로 양분해 전자는 시장에서 작품 판매를 해야 하고, 후자는 기업 후원을 받거나 대학 교수가 되어야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직언했다. 학벌과 인맥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성공하려면 상위 1%를 목표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런 미술왕의 강연 영상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입소문이 났다.

미술왕이 그렇게 스노비즘(snobbism)을 연기하는 사이, 김영규는 미술왕 작업으로 어느덧 알 만한 이력을 한 줄씩 추가했다. 미술왕의 논조대로 말하자면, 점차 주요 미술관의 초대를 받으며 대도시로의 진출 가능성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큰물에서 놀아라’라고 조언하던 미술왕이 칭찬할 것이다. 다만 작품 판매는 부진하다. 아니, 거의 전무하다. 미술왕이 기가 차 할 것이다. 적어도 서른다섯 살 전에는 성과를 봐야 한다고 했는데.



<연봉1억 미술작가 되는 법 - 연습문제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112.1cm



미술하는 사회

‘우리 모두 부자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논리적 오류를 포괄한다. 미술왕의 캐릭터를 몸소 공유하는 김영규 또한 그 오류, 아니 씁쓸한 사회적 실체와 매일 대면하고 있다. 작가가 그것을 폭로하는 무게를 이미 지고 있는 만큼, 나는 이 시점에서 김영규를 소환해 그의 생존 강도를 진단하려 한다. 호기와 블랙 유머로 에워싼 미술왕의 껍질을 벗겨 마주한 본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속되기 위해 위태로워야 할 것이다. 날 선 비판은 언젠가 스스로를 겨냥할 준비도 돼 있어야 하고, 미술의 분주한 욕망을 끝없이 따라잡아 그 욕망으로 자기 날 끝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약 10년의 짧은 생을 끝으로 실상 전멸하다시피 사라진 신생공간이 이를 증언한다. 제도권에 포섭됐든 소형 갤러리로 대체됐든 그것은 원래의 아성을 잃었고, 부업하는 예술가의 작업 형태는 한 철 유행 양상으로 보이다가 그쳤다. ‘삼포’ 운운하던 청년은 플렉스 하는 MZ와 ‘맑눈광’에 자리를 내주며 관심에서 밀려났다.

상위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존버’하라며 세속적 노력을 인정하고 치하하던 미술왕보다는 사기꾼의 한탕주의가 더 솔깃해진 것은 아닌지, 사회는 어지럽다. 좋은 곳에서 전시하고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며 억대 연봉을 달성해 미술왕의 표준 모델에 부합한 어느 젊은 작가는 마약 문제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래도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작품 거래는 왕성하다. 근래 들어 미술시장이 이처럼 서바이벌 경쟁의 평가 주도권을 잡았던 적도 없다.

여기서 김영규는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을까? 그가 만들 행적이 자본에 좌초됐던 미술계를 일으킬 무엇이 될 거라 희망한다면 사치일까. 그래도 나는 미술에 대한 여전한 애정과 함께 미술왕의 다음 강연을 기다려 보련다. PA



김영규 작가



작가 김영규는 대구 계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회화 작업에 매진하던 그는 다수의 프로젝트와 활동을 거치며 여러 매체로의 확장을 연구하고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광주미르센터, 경북대학교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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