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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0, Sep 2021

대런 베이더
Darren Bader

사사로운 존재들의 참을 수 없는 무게

탄탄한 돌바닥 위 철조 건축물 사이에서 건장한 달마티안 한 마리가 볼일을 보고 있다. 이미 퉁퉁한 응가를 한 덩이 쌌는데 여운이 남았는지, 어정쩡한 자세로 온 힘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어마어마한 거미 위에 누군가 올라타 있다. 우리가 아는 그 ‘스파이더맨’이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마망(Maman)]에 버금가는 거미 목덜미에, 스파이더맨은 그저 평화롭게 앉아 있다. 이는 미국 조각가 대런 베이더(Darren Bader)가 이탈리아 로마 MACRO에서 선보인 11개의 증강현실(AR) 조각 중 몇 개에 대한 묘사다. 모바일 장치용 AR 전시 [Bootlicker Suite]를 통해 베이더는 그간 자신이 발견한 유머뿐 아니라 머릿속에 저장해 둔 우연과 시 그리고 수사법을 가상 조각으로 구현하곤 우리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Andrew Kreps Gallery 제공

eBay sculpture, Dimensions variable © the artist; Société, Berlin;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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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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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란 수식은 그를 표현하기에 너무 모자라다. 오브제와 비디오에서부터 증강현실을 넘나들고 시와 미사여구만으로도 개념을 구현하는 그에겐 도대체 어떤 설명이어야 충분할까. 베이더는 한 가지 특정한 재료나 기법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며 설치와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시각 문법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그는 지표면에 여실 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본모습, 그 존재의 실체와 진리를 가늠케 하는 것이다. 최근 미술계엔 두려움과 폭력, 그리고 종교적, 정치적, 성적, 사회적 금기들을 범세계적 시각 언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분명하지만 베이더는 다르다. 그는 그것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전복해 정교한 유머의 패로 만들어 선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잔혹하리만치 진실된 거울이거나 블랙유머로서의 작품을 완성하기보다 베이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즐기고 생각하고 흥미롭게 느끼는 무대로 만들어 제공한다. 


몇 주 전 종료된 <Bootlicker Suite>는 일반 대중들이 전시 포스터의 호스팅 QR코드를 통해 각자의 도시에서 베이더의 조각들을 마음껏 활성화할 수 있게 한다. 앞서 말한 거미와 스파이더맨은 물론 볼일 보는 달마티안, 대여섯 개의 눈을 가진 춤추는 남자, 콘크리트 조형물을 물어 나르는 곤충까지, 그 본의를 알 수 없고 혹은 알 필요도 없는 가상의 조각들을 누구나 마음껏 끌어올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을 한껏 활용해 베이더는 이달 자신의 기사를 싣는 「퍼블릭아트」에 “한국, 제주도에 놓인 내 작품”이란 스페셜 노트를 달아 이미지를 보내기도 했다.    




kangaroo and/with lobster, Dimensions variable 

©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지난 4월 12일 로마에서 시작해 토리노의 Galleria Franco Noero, 밀라노의 MEGA, 베니스의 Bruno, 나폴리의 Morra Greco Foundation 등 이탈리아 반도 위아래로 확장된 전시는 팬데믹 시대 조각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하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발랄한 웹 드라마 같은 작품은 그러나 결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베이더가 2019년 베니스에서 유명 예술가 스콧 멘더스(Scott Mendes)와 함께 아이디어를 낸 후 장장 3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됐기 때문이다.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베이더는 모바일 앱을 통해 구현 가능한 증강현실 작품을 제작해 아르세날레(Arsenale)와 센트럴 파빌리온(Central Pavilion)에서 선보였다. 


미적, 역사적, 감각적 정보가 이미 압도적으로 포화된 베니스에 그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인 레이어를 추가한 것이다. 예술품의 존재론적 지위에서 인터넷의 문화적 영향에 이르기까지, 레디메이드의 역사에서 개념 예술에서 언어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소비자 자본주의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상적인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베이더가 시대를 인지하고 형식을 꾀한 작품은 전 세계 미술인들에게 중요한 인상을 남겼다. 신예에서 거장에 이르기까지 세기의 현대미술작가들이 모인 예술 무대에서도 단연 눈에 띈 것이다.




<Scott Mendes’s VENICE!> Installation view of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58th Venice Biennale, May 11 - November 24, 

2019 Dimensions variable




한편 베이더는 지난해 뉴욕 휘트니 뮤지엄에서 정통 조각을 가장한 <Fruits, Vegetables; Fruit and Vegetable Salad>를 선보였다. 40개의 나무 받침대 위에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금귤, 아보카도, 아티초크, 알로에 잎, 파인애플 등 다양한 식용 정물이 올려진 작품은 가변 설치되었다. 이것들은 얼핏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포도나 세잔(Cézanne)의 사과처럼 응당 같은 자리에 놓인 견고한 사물처럼 보이지만 베이더는 또 허를 찌르는 시나리오를 삽입했다. 이틀에 한 번씩, 이 채소들이 상해지기 전, 근처 레스토랑 ‘Untitled’의 팀이 조각품을 아주 이상하게 잘라 샐러드를 만들게 한 것이다. 베이더는 휘트니 8층에 그저 단조로운 조각을 보여주듯 꾸미고는 예술품, 조각품이 가벼운 음식 재료가 돼 소멸되는 과정을 설계했다. 20세기 중반, 현대미술에서 농산물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소재가 되었고 1962년 플럭서스(Fluxus) 아티스트 알리슨 노웰스(Alison Knowles)는 퍼포먼스를 위한 간단한 악보 ‘샐러드 만들기(Make a Salad)’를 쓴 바 있지만 베이더는 보다 동시대적이며 진취적으로 그것들을 활용했다.  




<FedEx envelope and/or twenty-two/22 and/or 22

and/with FedEx envelope> (detail) Dimensions variable 

© the artist and Galleria Franco Noero, Turin 

Photo: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2012년 뉴욕 MoMA PS1, 2013년 로스앤젤레스 Blum & Poe, 2014년 뉴욕 Andrew Kreps Gallery를 비롯 근래 마련한 런던 Sadie Coles이나 이탈리아 각 도시의 갤러리에서도 베이더는 무수히 많은 서로 무관한 기성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그중 일부는 바닥과 벽에 배치된 예술 작품이거나 예술 작품의 복제품을 자처했으며, 어떤 텍스트나 노래 혹은 비디오의 불가사의하지만 식별 가능한 루프 샘플들을 작가는 작품으로 치환했다. 숫자에서 콘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개념주의를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위트를 발휘하는 베이더에게 그래서 평단은 ‘마스터 셀렉터이자 편곡가’란 꾸밈말을 붙여주기도 한다. 그는 2005년 『James Earl Scones』란 책을 펴냈는데, NASA와 톰 크루즈(Tom Cruise) 등 다양한 주제를 섭렵한 코믹하고 4차원적인 서신들을 묶은 것이었다. 대상이 지닌 의미를 해체해 마치 횡설수설하듯 전달하는 베이더의 스토리는 보는 이에게 즐거움과 호감을 배가시킨다. 




왼쪽 <Mendes Mundi: HCS>

 3D animation file; mobile app, Dimensions variable 

© the artist; Sadie Coles HQ, London;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Galleria Franco Noero, 

Turin; Blum & Poe, Los Angeles, Tokyo, New York

오른쪽 <Mendes Mundi: Dispensary> 3D animation file; 

mobile app, Dimensions variable © the artist; Sadie Coles 

HQ, London;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Galleria 

Franco Noero, Turin; Blum & Poe, Los Angeles, Tokyo, New York




그의 작업은 정확히 초현실주의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초현실주의 전술인 병치에 크게 의존한다. 이 기사 맨 앞 페이지에 놓인 사진에, 베이더는 뻣뻣하게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은 캥거루와 랍스터를 짝지어 놓았는데, 이 또한 언밸런스 병치의 예이다. 도대체 베이더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Blum & Poe에서의 솔로 쇼는 효과적인 힌트를 제시한다. ‘Heaven and Earth’라는 제목의 게임은 전적으로 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다수는 갤러리 웹 사이트에 JPEG 또는 텍스트로만 존재하는데 모든 제목에는 거의 대부분 ‘and/with’ 또는 ‘with/and’ 접속사가 포함됐다. 그는 연결되고 연장되고 함께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폭력과 부조리에 급진적으로 저항하는 시각예술계 액티비스트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 베이더는 은유를 선택했다.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비판하는 등 주관적 관념을 표출하기보다 그는 객관적인 관념, 오히려 귀엽고 매력적인 요소를 작품에 표출한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가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은 본능을 포착해낸다. 그의 작품의 영역 안에 들어온 관람객들은 그 아기자기한 것들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PA




Portrait of Darren Bader © the artist




작가 대런 베이더는 1978년생으로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New York University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단어 작업에서부터 ‘불가능한’ 조각, 쓰레기 조각을 비롯 공동 설치 등 광범위한 그룹으로 나뉘는 작품들을 완성한다. 복잡해 보이는 이질적 대상들의 상호 연결성을 탐구하거나 터무니없는 연상으로 놀라운 상상력을 자아내는 그에게 지금 전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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