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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0, Jul 2022

지네브 세디라
Zineb Sedira

두려움도 성역도 없이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 누구를 위해 기록하는가(Who is writing (his)tory and for whom)?”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59th Venice Biennale)’ 미술전에서 프랑스 국가관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현대미술에서 흔히 거론되는 ‘평범한’ 질문이 힘을 얻는 이유는 화자(話者)에서 비롯한다. 지네브 세디라(Zineb Sedira), 그는 프랑스관 최초의 알제리계 작가이며, 사상 4번째 여성 작가다. 사회와 독립된 개인의 서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작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숨겨지고 삭제된 기억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 이한빛 콘텐츠큐레이터 ● 이미지 작가, kamel mennour 제공

View of the exhibition 'Beneath the Surface' kamel mennour(47 rue Saint-André-des-Arts), Paris 6, 2011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London © Zineb Sedira / DACS, London Zineb Sed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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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콘텐츠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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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디라는 1963년 프랑스 파리 북서부의 젠빌리에(Gennevilliers)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이다. 1986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이후 런던과 파리 알제리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알제리 출신 부모 덕택에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성장했고, 개인적 기억이면서 동시에 집단으로 공유하는 기억과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중심으로 작업 세계를 발전시켰다. 자연스럽게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복잡다단한 정치 사회적 관계가 작업에 투영됐다.



<Dead End> 2010 Installation 100 light boxes, 
electric cables Various dimensions (A0, A1, A2 and A3) 
View of the exhibition <Told/Untold/Retold> Mathaf,
 Arab Museum of Modern Art, Doha, 2010 
Commissioned by and part of the collection 
of Mathaf - Arab Museum of Modern Art, Doha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 Zineb Sedira / DACS, London Photo: William Martin



세디라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한다. 초기 작업에선 가부장제가 작가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였는데, 아랍문화권의 여성성에 집중했다. 자신의 어머니부터 본인을 지나 딸로 이어지는 3대 동안 아랍의 여성성이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관심사였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 어떤 권력 구조가 우리를 우리로 정의하는가?” 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질문을 사적으로 풀어낸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가 연상된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상 <모국어(Mother Tongue)>(2002)는 아랍어밖에 할 줄 모르는 엄마와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딸,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자신까지 3대 모녀의 대화를 담았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치는 않아 침묵이 곧잘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을 포착한다. 말과 텍스트는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적인 도구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은 분명히 있다.



<Dreams Have No Titles> 
© Zineb Sedira and Thierry Bal



작가의 관심은 곧 개인적 경험을 뛰어넘어 사회로 확장한다. 계기는 2002년 알제리 방문. 알제리 정부의 초청으로 부모의 고국을 처음으로 찾은 세디라는 개인과 주변인에 집중하던 기존 시각을 좀 더 확장한다. 바다와 항구, 화물선을 담아낸 <사피르(Saphir)>(2006)에서 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바다 풍경은 사람과 물건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표류함을 상징한다. 알제리의 지중해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피로 물든 역사가 숨어있다. 바다만 건너면 바로 스페인, 프랑스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위치는 부와 번영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서구 열강의 욕망에 휘둘리는 비극적 역사를 가져왔다. 세디라는 이후 알제리 현대미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아리아(Artist Residency In Algiers, ARIA) 창립멤버로도 활동을 시작한다.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를 일반적인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 대입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아는 알제리 출신의 문화예술인만 보더라도 그렇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철학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가수 앙리코 마샤스(Enrico Macias),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알제리 태생이다. 이들 중 부모가 모두 알제리 현지인인 경우는 없지만,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가 아닌 프랑스 본토로 취급했던 만큼 그냥 ‘프랑스인’으로 활동했다. 실제로 식민통치의 막바지였던 1950년대 알제리에 거주한 유럽계 이주민들의 수는 알제리 인구 1,000만 명 중 100만 명이 넘었다.



<The Battle of Algiers> © Zineb Sedira



그렇다고 알제리가 차별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원래 알제리에 거주하던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은 경제적 불평등은 물론 교육의 기회도 박탈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군에 참전했던 알제리인들이 귀환해 민족해방전선(NFL)을 결성하고 1954년부터 8년간 프랑스와 알제리 독립전쟁이 이어진다. 1962년, 샤를르 드골(Charles De Gaulle)이 1958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독립 논의가 본격화된 후, 4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다. 전쟁 동안 사망한 알제리인은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알제리 독립 60주년인 올해, 세디라가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선정된 것은 여러모로 뜻깊다. 프랑스관의 주제는 ‘꿈에는 이름이 없다(Dreams have no Titles)’다. 영화, 조각, 사진, 음악, 콜라주로 구성된 몰입형 전시로 꾸려졌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영화관을 드나들며 영화를 접했던 작가는 자전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소설, 다큐멘터리를 끌어들이며 알제리 독립전쟁과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알제리 독립 이슈는 프랑스에서는 상당히 민감한 주제다. 알제리와 프랑스의 전투가 ‘독립전쟁’으로 인정된 것은 독립 후 37년이 지난 1999년에 이르러서다. 특히 올해는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였다.



<Laughter in Hell> 2018 (detail)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View of the exhibition
<Laughter in Hell> kamel mennour
(6 rue du Pont de Lodi), Paris 6, 2018-2019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 Zineb Sedira / DACS, Londo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전시의 중심은 영화다. 스스로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아티스트 디렉터”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제 영화 제작 허브’로 활약한 알제리 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방대한 리서치 작업 끝에 사라진 줄 알았던 영화들이 발견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함께했던 협업 제작체제도 확인한다. 알제리 영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1966)다. 독립전쟁이라는 사건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급진적이고 선동적인 정치 영화로 꼽힌다. 질로 폰테코르보(Gillo Pontecorvo)가 감독으로, 196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수상한 작품은 내용의 급진성 때문에 프랑스에선 1971년에야 개봉됐다. 세디라는 『아트뉴스페이퍼(The Art Newspaper)』와의 인터뷰에서 “런던에서 유학하면서 탈식민주의(포스트 콜로니얼리즘)를 공부하던 중 <알제리 전투>를 우연히 보게 됐다”며 “내 안에 내재된 아프리카성이나 알제리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For a Brief Moment the World Was on Fire...
and We Have Come Back> 2019 8 photomontages on
diasec, various objects, books, DVD and vinyl records
Variable dimensions Views of the exhibition
<Zineb Sedira> IVAM - Institut Valencià
d’Art Modern, Valence,Espagne / Valencia, Spain,
2019-2020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 Zineb Sedira / DACS, London Photo: DR



독립과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를 둔 알제리에게 영화는 ‘혁명과 민주주의를 위한 무기’였다. 알제리의 혁명지도자 중 한 명인 사디 야세프(Saadi Yacef)는 영화 제작사 카스바 필름(Casbah Film)을 창설하고 알제리 독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탈리아 반제국주의 운동가인 엔니오 로렌치니(Ennio Lorenzini)가 감독을 맡아 1964년 촬영이 시작됐다. 초창기 제목은 ‘알제리 사람들, 무화과 나무 줄기(Les Algériens, Tronc de figuier)’였으나, 후에 ‘자유로운 손(Les Mains libres)’으로 바뀌었다. 1965년 4월 알제리 아프리카 영화관에서 초연됐고, 다음 달 ‘칸느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 초청됐으며, 이듬해 이탈리아와 알제리에서 여러 차례 상영됐으나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세디라는 이렇게 ‘사라져버린’ 영화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침내 로마 AAMOD(Archivio Audivisivo del Movimento Opera e Democracico)에서 35mm 복사본을 발견한다.



<Way of Life> 2019 Diorama of the artist
living room with 40min 21sec video
Variable dimensions Views of the exhibition
<L’espace d'un instant> Jeu de Paume, Paris,
2019-2020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 Zineb Sedira / DACS, Londo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당시 알제리 정부가 이른바 ‘프로파간다 영화’만 지원했던 것은 아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식 서부영화) 제작도 활발했다. 엔조 페리(Enzo Peri)의 <더 피스톨(The Pistol)>,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vras)의 <제트(Z)>, 에또레 스콜라(Ettore Scola)의 <르 발(Le Bal)>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들 영화를 통해 “탈식민지 시대 프랑스-이탈리아-알제리 간의 전후 협력을 통해 ‘3국 간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제3세계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프랑스, 이탈리아 감독들이 지지하고 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념 갈등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 식민지화에 대항하는 ‘연대’는 분명 존재했다. 세디라는 “공동제작이 당시 연대의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접근이며, 내가 재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라진 역사를 다시 발견하는 것은 ‘과거 회복’에만 그치지 않는다.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인식하지 못했던 권력 구조가 드러난다. 작가의 손에 재탄생한 사라진 과거는 현재의 좌표를 재설정하기도 한다. 한때는 현재였으나 이제는 과거가 된 시간이 다시 현재가 되면서, 새로운 맥락 속에서 힘을 얻는다. 과거는 시간이 흘러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Mother, Daughter and I> 2003 Triptych 
I. C-print mounted on aluminum Portraits:
 120×210cm each Hands (in oval format):  
26×90cm each Commissioned by the Contemporary 
Art museum Saint-Louis, Missouri Collections: Deutsche Bank 
Collection;Art in Embassies - U.S. Department of State 
Courtesy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London © Zineb Sedira / DACS, London



“제 작업엔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콘텐츠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들을 분리할 수 없지요.” 작가는 ‘정치 작가’는 아니지만 정치성이 살아있음을 인정한다. 3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아픈 과거는 희미해졌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가 시작됐을 뿐이다. 세디라의 시선엔 두려움도 성역도 없다.PA



Portrait of Zineb Sedira
 © Zineb Sedira and Thierry Bal



작가 지네브 세디라는 196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 School of Art)과 슬레이드 미술대학교(Slade School of Art),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수학한 그는 지리학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개최했고 국내에선 2014년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상실과 사랑의 노래>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참여한 세디라는 탈식민 시대 알제리에서 제작된 영화의 클립과 장면을 리메이크한 25분 분량의 <Dreams Have No Titles>를 선보였고, 프랑스관은 주목할 만한 작품과 전시 구성을 선보인 국가관에 주어지는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세디라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으며 알제리와 파리, 런던을 오가며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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