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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4, Sep 2023

서성협
Seo Sunghyeop

PUBLIC ART NEW HERO 2023
잡종예찬

● 배혜정 문화살롱 5120 디렉터 ·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 이미지 작가 제공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 전시 전경 2021 TINC 서울 사진: 정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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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정 문화살롱 5120 디렉터 ·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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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성협은 전시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나무로 만든 병풍 형태, 서양의 고건축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의 기둥에 전통 국악기인 소리북이나 서양 현악기의 현 부분 등을 조합해 스스로 소리를 내도록 만든 기계들로 구성되었고 국악 연주자들이 함께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가 뒤따랐다.


위상감각을 통한 세계 이해

작가가 전시에 붙인 제목 중 ‘위상’이라는 단어를 먼저 살펴보자. 보다 정확하게 ‘위상학(topology)’이라 불러야 할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위치를 뜻하는 토포스(topos)와 학문을 뜻하는 로고스(logos)로 구성된다. 정의는 “공간 속에서 점, 선, 면의 형상이나 위치 관계를 나타내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점, 선, 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뿌리는 기하학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하학이 도형의 길이, 넓이, 각도 등 ‘크기’를 다루는 데 반해 위상학은 점, 선, 면 등의 인접, 연결, 포함 등으로 표현되는 ‘지리적’ 관계를 다룬다는 데서 구분된다.

즉 위상학은 대상을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단어에 서성협은 ‘감각’이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감각은 인간이 신체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된다. 우리는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손끝으로 더듬어 외부의 사물을 감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 정보는 우리의 인식을 구성한다. 따라서 위상감각은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고 관계적으로 인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병풍시나위> 2021 
합판에 먹, 적동, 황동 파이프, 스피커, 
콘트라베이스 현, 모터, 아두이노
 190×180×12cm 소리: 황민왕, 퍼포먼스:박다울



이해의 범주를 가로지르기

이 감각과 인식의 문제는 프로그래밍에 의해 소리를 내는 기계와 국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퍼포먼스로 구체화되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현을 동양의 병풍에 결합한 <소리병풍>들은 얼핏 거문고를 세워놓은 것 같기도 했고 소리북과 병풍의 결합은 낯선 나라의 전통악기처럼 생기기도 했다.

또한 이 기계들은 가야금, 거문고, 소리북 등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소리를 냈다. 외형의 측면에서 이 기계들은 병풍이라는 동양의 형식과 서양의 현악기를 결합한 것이었고 연주자들 또한 국악 연주자였다는 점에서 동양과 서양이라는, 우리의 근대를 구성해온 커다란 이분법 하나를 횡단한다. 동양과 서양, 이성과 감성, 인간과 비인간과 같이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에 따르면) 근대에 발명된 인식의 이분법은 한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구분을 넘어 위계를 만들고 그렇게 타자에 대한 폭력이 되어 왔다.

퍼포먼스의 측면에서, 연주자들은 퍼포먼스 당일에야 자신들이 프로그래밍된 소리 나는 기계들과 즉흥연주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즉석에서 협연을 펼쳤다. 그때 인간 연주자들은 이 기계가 내는 소리에 조응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관계 맺기의 새로운 사건을 만들었다. 또한 이 전시는 장르적으로도 경계를 가로지른다.

‘전시’라는 형식 안에서 벌어지는 연주자들의 ‘공연’인데다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과의 약속되지 않은 연주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소리 나는 기계들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된 경계의 전복은 소리 퍼포먼스를 통해 이전에 우리가 가진 규정들로는 정의하기 힘든 청각적 자극을 제공하며 전시장에 공명했다. 그런 점에서 서성협은 장르, 세계, 인식이라는 인간과 예술을 둘러싼 전반의 범주를 넘나들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계와 인간 연주자들이 수행한 퍼포먼스가 경계를 가로지를 때 인식의 수준이 아니라 감각의 수준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작업의 초반에 서성협은 이 소리 나는 기계들을 연주자가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도된 소리 즉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소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소리의 위상학 자체였던 것 같다.

그는 어떠한 음악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하지 않았다. 음악은 하나의 약속이고 그래서 인간적이고 인식적이다. 오랜 음악의 형식들, 음율, 박자, 화성 등은 그러한 인간의 규칙을 반영한다. 그러나 서성협의 기계들과 그 기계들의 소리에 호응하는 연주자들의 소리, 특히 황민왕의 구음 소리의 경우에, 기계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동등하게 비인간적이며 인지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이다. 동등하게 소리를 만들어 내는 주체로서 기계와 인간의 소리는 일체의 위계를 거부한다. 음과 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소리들이 감각의 수준에서 새로운 위상과 관계망을 창출하는 것이다.



<소리 토템 #02> 2022 합판에 먹, 
콘트라베이스 테일피스, 현 240×60×40cm



도래할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

서성협은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이너로서의 훈련이 그가 사물을 다루는 다른 방법론 내지 인식의 마술적 효과를 가능하게 한 듯하다. 디자인과 미술은 미술이라고 통칭하는 일반적인 분류가 무색하리만치 상반된 영역이다. 무엇보다 그 둘은 용도가 다르다. 미술의 결과물이 온전한 감상의 대상이 되는 반면 디자인의 결과물은 쓰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용도가 다르다는 것은 창작자의 근본적인 목표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이 세상에 발언한다면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충된 충동은 두 가지 행위 모두 창조의 영역이며 결국 재료이자 매개인 매체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서성협은 매체가 되는 사물을 탐구하고 그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데 탁월해 보인다. 그가 만드는 사물, 그 사물이 만들어 내는 효과는 사물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사물이 맺는 관계들로 세계를 은유한다.

지금까지가 작업이 인식의 횡단을 위한 매체 실험이었다면 서성협의 근작에는 서사가 추가되었다. 곧 개인전을 통해 선보일 새로운 사물들은 본래의 쓰임에서 떨어져 나와 이야기를 담는다. <Monument>(2022)는 방파제를 구성하는 테트라포드에 도리아식 주두를 얹고 폴란드어로 글을 새겼다(서성협은 예술가이자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는 폴란드인 아내와 가정을 꾸렸다). 테트라포드는 하나로는 기능을 못하고 무리로서만 파도를 막아내는 본래의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위계적 구조보다 수평의 관계적 구조를 보여주는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상감각> 2020 합판에 먹, 모터, 
나무 구슬, 혼합재료 240×300×300cm 
엔지니어링 디자인: 아르시오



그리고 폴란드어로 쓰여 폴란드어로 들려질 이야기들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이 그렇듯 인간적인 언어이기보다 은유이자 감각적 효과로서 관람객을 비인지적으로 설득할 것이다. 특히 작가의 고향이 제주도라는 점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로서의 테트라포드를 새로운 관계 맺기의 장으로 만들어낸 그의 사물에 대한 이해와 공명한다. 오늘날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사유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화해, 나아가 동등한 지평에서 모든 사물을 대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과 비인간의 삶이 보다 밀착되어 있었을 섬에서의 삶과 더 닿아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기하학이 대상의 크기를 규정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위상학은 물리적 외형을 넘어서는 관계 속에서 다름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 미덕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성협이 감각하고자 하는 위상, 감각하기를 권하는 위상은 경계가 제한이 되고 구분이 폭력을 자아내는 세계에서 다름을 인정 한다. 배타적인 순수를 넘어 우리 모두가 혼종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도래할 잠재성을 탐색하는 것, 새로운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할 다종의 세계가 잡종을 예찬하는 서성협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세계는 아닐까?PA



서성협
Seo Sunghyeop



작가 서성협은 개인전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TINC, 2021), <위상감각>(얼터사이드, 2020)을 개최했고, 그룹전 <ECHOLESS>(별관, 2022), <미술관의 입구 : 생태통로>(경기도미술관, 2022) 등에 참여한 바 있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를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를 지내고 있다. 9월 5일부터 21일까지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 <잡종예찬>을, 오는 11월 공간 형에서 또 다른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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