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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1, Oct 2021

파올라 피비
Paola Pivi

불가능한 기적의 수수께끼

새하얀 북극에서 뛰노는 얼룩말, 작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하는 당나귀,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하늘을 나는 84마리의 금붕어, 도심 속에서 요가를 연습하고 공중곡예를 선보이는 북극곰 무리. 언뜻 익숙하고 친숙한 주체들에 마음을 빼앗기려는 순간, 이들이 응당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어딘가 어색하고 낯선 공간에서 다분히 생경한 액션을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을 ‘불가능한 기적’이라 일컫는 파올라 피비(Paola Pivi)는 비현실적 요소들을 예술을 완성하는 재료로 십분 활용하며 실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일상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이렇게 현실의 프리즘에 투사된 아이러니의 빛은 인식적 한계를 초월하고 이내 우리를 숨겨진 이면의 수수께끼 세상으로 이끈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작가, Perrotin 제공

View of the exhibition 'I Did It Again - deFine Art Program' at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 Savannah, USA 2018 © 2018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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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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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밀라노 공과대학(Politecnico di Milano)에서 화학을 공부하던 피비는 23-24살 무렵 에곤 실레(Egon Schiele), 만화가 안드레아 파치엔차(Andrea Pazienza)의 그림을 접하곤 예술에 매료됐다. 공학 공부를 중단하고 브레라 예술대학(Brera Academy)에 입학한 그는 작업 초기부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작품들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령 도로를 달려야 하는 대형 트럭을 옆으로 눕혀놓는다거나, 하늘에 있어야 할 헬리콥터를 땅에 뒤집어 놓는 것이 그 예다. 낯익은 물체를 예상치 않은 장소에 비정상적으로 배치하면서 1997년 학생 신분으로 참여했던 전시부터 이목을 끈 피비는 2년 뒤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아르세날레(Arsenale)에 전복돼 추락한 모양새의 피아트 G-91 전투기 설치작 <무제 (비행기)(Untitled (airplane))>(1999)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거머쥐기에 이른다. 거침없고 대담한 작가의 이런 과감성은 어떻게 예술가를 꿈꾸게 되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그저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단숨에 답한 자신의 말을 스스로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Two more> 2019 Urethane foam, plastic, feathers 

Red bear: 53.3×35.6×68.6cm Yellow bear: 

53.3×36.8×77.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Photo: Guillaume Ziccarelli




이렇게 미술에 공학이 녹아든 작품은 작가의 장기이자 특기라 할 수 있는데, 2012년 반향을 일으킨 <내가 굴러가는 방식(How I Roll)>도 그중 하나다. 작품은 한 유명한 일화에서 출발한다. 현대미술계의 세 명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가 1912년 ‘파리 에어쇼(Paris Air Show)’를 방문했고, 프로펠러를 관찰하던 브랑쿠시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조각이라 부르는 거야!”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 뒤, 피비는 산업 디자인에 대한 이 모더니즘적 로맨스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뉴욕 센트럴파크 도리스 C.프리드먼 플라자(Doris C. Freedman Plaza)에 설치된 6인승 비행기 파이퍼 세네카(Piper Seneca)는 퍼블릭 아트 펀드(Public Art Fund)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가 특별 개조한 것으로, 날개 끝이 높이 고정된 채 분당 한 바퀴, 오직 360도로만 회전한다. 공항 활주로가 아닌 뉴욕시 광장을 배경으로 공중에 떠 있지만 날지 못하는 비행기. 익숙한 물체가 낯선 환경에 놓인 모습은 또다시 시각적 충격과 색다른 감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꿈처럼, 유쾌하고 용감한 작가의 상상력은 보는 이들에게 환상을 선사하고 그 잔상은 마음에 남아 유영한다. 피비는 말한다. “환상은 꿈의 기본이고, 그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다. 우리는 환상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개발과 성장을 이끄는 힘이다.”




View of High Line Art 2013 Curated by 

Cecilia Alemani Courtesy of the artist, High Line Art 

and Perrotin Photo: Austin Kennedy




한편 피비의 작품엔 동물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선택된 캐스트는 단연 곰이다. 2013년 뉴욕 페로탕 갤러리에서 연 미국 첫 개인전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고, 그래서 어쩌라고?(Ok, you are better than me, so what?)>에서 작가는 실제 크기의 북극곰 8마리로 전시장을 채웠다. 마치 인형 탈 안에 사람이 들어간 듯 거대한 크기의 작품은 우레탄 폼과 플라스틱 그리고 형형색색의 깃털로 제작됐다. 플라밍고 핑크, 코발트블루, 형광 연두, 핫핑크, 오렌지 등 저마다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곰들은 첫눈에 귀여운 외모와는 반대로 ‘이건 공평하지 않아(It’s not fair)’, ‘안전을 위해 나는 때때로 서 있어야만 해(Sometimes I have to stand for my safety)’, ‘사냥꾼이 온다(Here it comes the hunter)’ 등의 제목으로 자신들이 처한 어둡고 지난한 현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후 2019년 같은 곳에서의 전시 <우리는 베이비 갱(We are the baby gang)>에선 70마리의 아기 북극곰들이 환상과 현실 사이 공간을 메웠다. 놀고, 싸우고, 포즈를 취하고, 낮잠을 자고, 뉴욕 꼭대기 층을 탐험하는 베이비 베어들 역시 ‘나는 내 으르렁거림을 발전시켜야 해(I need to improve my roar)’, ‘엄마 오신다(Here comes my mom)’,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I cannot wait to grow up)’ 등의 작품명을 갖고 있다. 무리의 일부인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의식을 부여받은 이들은 아기 곰 역시 인간 아이와 마찬가지로 보호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인간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동시에 상호연결된 모든 생명체가 함께 보호되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보편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윤리적, 생태학적 문제를 품고 의인화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지켜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View of the exhibition <Installazione per il cortile>

at Palazzo Strozzi Florence, Italy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Photo: Martino Margheri




2006년부터 알래스카에서 생활하고 있는 작가에게 알래스카는 곰들의 땅이자 그들이 곧 그 땅의 지주이며, 인간은 잠시 놀러 온 손님 혹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떠나야 하는 세입자와 같다. 이러한 인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동물과 강한 유대관계를 맺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동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은 피비의 작품의 주된 모티프 중 하나일 수밖에 없고, 기후 위기 앞에 사라져가는 북극곰을 대신해 그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끼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작가가 메시지를 작업에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도로 경계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인생과 삶을 탐구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이기에 작품 안에 상징적 중요성을 구축하는 행위가 온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것일 뿐, 모든 것은 작품을 보고 인식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How I Roll> 2012 

A Public Art Fund Project at Doris C. Freedman Plaza,

 Central Park, New York, USA Courtesy 

of Public Art Fund, Massimo De Carlo, Milan/




불가능을 가능으로, 허구를 현실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피비에게 예술가의 역할에 관해 직접 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예술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탐험하고, 찾아 나서며 결국에 더 많은 예술을 창조하는 인간의 사고와 인식을 바꾸고 정교화하는 과정이다. 압축된 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공유하는 이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인간의 사고와 추론, 이해의 과정을 발전시키고 선택과 결정, 비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더욱 똑똑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좋은 방법을 찾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One cup of cappuccino then I go> 

2007 Photographic print, frame Photography by 

Hugo Glendinning 165.5×218.5×6cm View of the exhibition

 <It just keeps getting better> at Kunsthalle Basel,

 Switzerland 2007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놀라움을 자아내는 피비의 작품은 단순한 제스처의 차원이 아닌, 화려하고 야심찬 연기들로 늘 예상치 못한 시각적 결과를 초래한다. 그의 작업엔 수많은 동작과 움직임이 내포되어 있고 그렇게 활성화된 동적 자유는 화이트 큐브 속 전형적인 예술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으로 작품을 인식하게 만든다. 『헨젤과 그레텔』 속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린 것처럼, 피비는 우리에게 하나씩 힌트를 던져주며 길을 안내한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침식시키며 필연적으로 전복된 안무와 연결되는 그의 작품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어쩌면 작가는 종국에 도래하는 그곳이 정말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 맞는지 다시 한번 묻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PA




Portrait of Paola Pivi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Photo: Guillaume Ziccarelli




작가 파올라 피비는 197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 수상한 후 2003년에 다시 초청됐으며, 2004년 ‘마니페스타 5(Manifesta 5)’, 2008년 ‘베를린 비엔날레(Berlin Biennale)’, 2014년 ‘마니페스타 10(Manifesta 10)’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이탈리아 로마 현대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있다. 현재 피비는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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