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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8, Jul 2021

에드 앳킨스
Ed Atkins

We are the future

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엔 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 속 또 다른 자아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존재 ‘æ(아이)’가 있다. 그들은 ‘FLAT(플랫)’이란 세계에 살며 경우에 따라 자신의 인간과 활발하게 교류하기도 한다. 여기에 인간과 ‘æ’를 서포트해주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가상 세계 속 신비로운 ‘nævis(나비스)’가 존재하는가 하면 ‘æ’와 인간의 싱크를 방해하는 빌런 ‘Black Mamba(블랙 맘바)’가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듣고 만약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도대체 무슨 소리?’라고 짜증을 내고 있다면? 당신은 에드 앳킨스의 비디오를 볼 자격이 없다. 스톡 푸티지와 모션 캡처, 드라마틱한 사운드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에스파’보다 더 풍요롭고 복잡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Gladstone Gallery 제공

'Safe Conduct' 2016 Installation view ground floor, Kunsthaus Bregenz 2019 © the artist, Kunsthaus Bregenz,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Gallery, London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Photo: Markus Tr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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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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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거듭하는 현대미술, 때로 도를 넘었다고 힐난받기도 하는 그룹의 중심에 에드 앳킨스가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역사성, 우울과 어리석음을 더 불안정한 영역으로 지나치게 실감나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생성과 소멸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탐구하는 작가는 이 개념이 결코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서로 상생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죽음과 삶,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는 것임을 작품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아바타를 이용한 3D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는 3D 이미지를 스펙터클하게 프로젝팅하는 작업들과 달리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원시적이고 원초적 감정을 시적으로 다루며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희미해져버린 사랑에 대해 앳킨스는 고립된 가상의 공간에서 울부짖으며 눈물로 호소하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2017년 만들어진 <Good Man>에는 수도자처럼 머리에 천을 쓴 남자가 울며 침을 흘리고 있다. 눈에서 흐르는 것이 신체에서 샘솟은 물인지 혹은 촛농인지 아니면 뜨겁게 녹아 얼굴에 들러붙은 금속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의 모습은 분명 비참하고 처연하다. 16분짜리 이 비디오는 <Old Food>란 제목의 전시에 포함돼 베니스와 뒤셀도르프 등에서 선보였다. 단지 하나의 비디오를 넘어 집적된 설치들과 구성된 작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울의 세계로 연출됐다. 『‘e-flux’는 앳킨스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Old Food의 세계는 언제나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상태로 존재하며, 인간의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마찬가지로 Old Food는 결코 부패하거나 썩지 않는다. 회복은 커녕 잃어버린 것이 이해될 가능성도 없는 우울의 세계로 계속될 뿐이다.”*




<Old Food> 2017-2019 Video loops with sounds, 

racks of costume from Teatro Regio Torino, 

Texts by Contemporary Art Writing Daily 

©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Andrea Avezzù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의 <Old Food>전은 <Good Man> 외에 입체작품 <The Masses No. 1 and 2>로 구성됐는데, 이는 높은 랙에 가지런히 걸쳐진 196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의 농부의 옷, 손으로 그린 실크 기모노, 오페라 <베르디>의 주인공 돈 카를로를 연기한 배우를 돋보이게 했던 머슬 슈트 등은 각자가 지닌 실제 기능과 동떨어진 기이한 뉘앙스를 자아내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2017년 9월부터 다섯 달에 걸쳐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 Gropius Bau)에서 선보인 <Old Food>은 어떠했나. 벽의 뻥 뚫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부터 소년이 내던져지며 시작되는 전시 트레일러는 대단히 화제였고 지금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스트리밍되고 있다. 


영상 속 소년은 마치 17세기 스페인 기사 같은 복장을 한 채 화면 끝 쪽 피아노로 서서히 이동한다. 그리고 그 이동은 자의가 아닌, 강력한 조종에 의한 것처럼 보인다. 앳킨스의 다른 비디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트레일러 주인공 또한 초라하고 외로우며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피아노에 걸터앉은 소년이 연주를 시작하려는 찰나 끝나는 영상은 디지털을 사용하는 앳킨스의 독특한 태도를 대변한다. 그는 절박한 현실주의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완전한 인공물로 비디오를 완성한다. 그럼으로써 실재를 실제와 분리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물질과 개념 모두가 부패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앳킨스의 작품을 보자면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벨기에 국가관 작가였던 베를린더 더 브라위케러(Berlinde de Bruyckere)의 작품이 떠오른다. 




<up/down, in/out> 2017 HD video 

with stereo sound 16min seamless loop © the artist,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Gallery, 

London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여러 작품을 통해 얼굴과 팔이 제거된 채 변형된 인간의 형태들, 눈과 생식기가 제거된 채 정지되어있는 묘한 말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는 심적 물리적 고통과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라위케러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처럼, 신체가 기이하게 일그러진 채 대들보나 좌대에 힘없이 늘어져 있는 형상을 완성한다. 작가가 담담하게 재현하는 이미지들에는 시적인 아름다움과 절대적인 폭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적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이 공존한다. 단순한 육체의 변형을 넘어 인류를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몸짓언어로서 발전하고 있는 모호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앳킨스와 브라위케러는 일정 부분 공통점을 지닌다. 우리는 앳킨스가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과연 그가 죽음과 고통, 삶, 희망 중 무엇에 중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지만 지옥도 같은 현실에서 약간의 낭만을 가미해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가 만든 화면 속 거대한 아기, 어리석은 소년, 카메라를 응시하며 우는 남자는 쉬이 이해되지 않지만 들여다볼수록 어쩐지 공감하게 된다. 




<Bloom 9> 2018 

Gouache, acrylic, ink and tipp-ex on board 

54.3×76.3×3.5cm © the artist,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Andrea Avezzù




한편 앞서 설명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가는 아르센날레에는 <Old Food>를 입체로 설치하고, 자르디니 중앙 파빌리온에는 평면작 <Bloom>을 여러 개 내걸었다. 사람, 대체로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손에 누워있거나 발등과 발목에 특이한 자세로 걸쳐진 타란툴라는 놀랍게도 인간의 얼굴을 지녔는데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그림의 얼굴은 모두 앳킨스의 것이었다. 북슬북슬 털이 많고 복부가 두둑한 것이 타란툴라의 상징이지만 의뭉스럽고 모호한 표정의 앳킨스의 얼굴이 워낙 크게 자리 잡은 덕분에 작품 속 타란툴라는 우리가 아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나저나 이탈리아에서는 1370년부터 타란툴라와 비슷하게 몸에 털이 나있는 유럽늑대거미에 물리면 걸린다고 여겨지는 병을 ‘타란티즘’이라 하고 병에 걸린 사람을 ‘타란타티’라고 불렀단다. 물린 곳이 통증과 함께 붓고 심장이 울렁거리며 심하면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고 토하다가 우울증처럼 되어 죽는다 여겼는데, 이 병을 고치기 위한 약이 없기 때문에 오직 타란텔라라는 춤을 추면서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고 믿었다니 앳킨스도 이 요상한 스토리를 그림에 담은 것일까.




<Good Smoke> 2017 HD video with 

4.1 surround sound 16min loop © the artist,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Cabinet Gallery, 

London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단지 화두를 던지고,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맡기는 미술이 있다. 비약하자면, 현대미술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거칠게 마모된 대형 철 구슬, 그 구슬의 역사와 흠집의 인과관계를 덧붙이면 어떠한 맥락을 제시하는 작품이 되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만 감상하면 묵직한 철 조형에 그치듯 말이다. 작품에 내러티브를 넣고 복선을 깔거나 기막힌 은유를 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태동과 함께 시작됐으나, 미술의 다채로움은 그 끝을 모른 채 파생되고 있다. 여기, 늘 파격을 선사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앳킨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유효한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물론 부와 권력, 쾌락 등의 상징을 바탕으로 죽음과 소멸, 고통을 이야기하되 바니타스 회화의 절대적 대립을 벗어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그는, 보는 이와 작품 사이의 필연적 오해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PA




Ed Atkins

<Happy Birthday!!!> 2014 Still from HD Video with 

surround sound © the artist, Gladstone Gallery, 

New York, Cabinet, London, Isabella Bortolozzi,

 Berlin & dépendance, Bruxelles




에드 앳킨스는 옥스포드 외곽의 작은 마을 Stonesfield에서 자랐다. 공립학교 미술선생님인 어머니와 그래픽 아티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늘 예술과 가까이 있었던 그는 Central Saint Martins에서 공부한 후 The Slade School of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Serpentine Memory Marathon에서 프로젝션, 디지털 변경 음성 및 크로마키 마스크를 사용하여 비디오의 영화 기법을 시뮬레이션하는 공연 작품 <DEPRESSION>을 초연하며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Tate Britain, Stedelijk Museum Amsterdam, Chisenhale Gallery, MoMA PS1, Serpentine Gallery, Palais de Tokyo, Kunsthalle Zürich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각주]

* “Berliner Festspiele - Ed Atkins: Old Food.” e-flux, Published September 28, 2017, Accessed June 17, 2021 

www.e-flux.com/announcements/150609/ed-atkinsold-food/#:~:text=The%20world%20of%20Old%20Food,being%20understood%2C%20let%20alone%20retr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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