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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0, Jul 2022

이슬기
Lee Seulgi

이슬기의 비공식 경제

●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 이미지 작가 제공

'동동다리고리' 2020 <올해의 작가상 2020>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 Adagp Paris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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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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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프랑스

1992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슬기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2000년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를 졸업한다. 이듬해인 2001년 4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후원으로 프랑스 코르시카섬에서 퍼포먼스를 수행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천으로 감는, 이슬람의 여성 복장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 복장인 부르카를 입는다는 사실에 착안한 퍼포먼스다. “여성은 눈까지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종교적 근거가 없기에, 무슬림 국가에서도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보편적으로 여성이 착용한다. 이슬기는 다양한 패턴과 형형색색의 천으로 눈과 얼굴 전체마저 가린 채 코르시카 구석구석을 걸어다닌다. 길에서 누구인지를 물어볼 때마다 작가는 자신이 아프가니스탄 여인이라 말한다. 같은 해 9월 뉴욕에서 9·11 테러를 시작으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담대한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2001년 1년간, 이슬기는 파트너인 시몽 부드뱅(Simon Boudvin)과 함께 파리 뤼 드레쉬키에에서 파리 프로젝트 룸(Paris Project Room)을 운영했다. 마르셀 월리스(Marcel Wallace)라는 가상의 (중년) 남성 디렉터를 설정해 두었고, 젊은 작가들 협업 공간이자 실험적 전시 공간으로 매주 새로운 전시가 열렸다. 금요일 저녁이면 17×4㎡의 협소한 내부 전시 공간보다는 젊은 예술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외부 길가가 더 붐볐다. 그 시작부터 이슬기는 파리 미술계의 이방인이라기보다 예술대학을 졸업한 직후 전시 기회가 많지 않았던 젊은 예술인들을 소개하는 액티비스트로 활동했다.



<느린 물> 전시 전경 2021 
인천아트플랫폼 © Adagp Paris 사진: 홍철기



비공식 경제 그리고 파업

2004년 쌈지 스페이스에서 있었던 개인전 <무형경제_Informal Economy - 이슬기 개인전>에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가 담긴다.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경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여기에서 사람의 비공식 경제 활동은 회계장부 밖에서 활동하며, 이는 국민총생산 GNP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비공식 경제 활동이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는 노동일 것이다. 가사 노동의 금전적 보상액을 누구에게나 동일한 금액으로 책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정과 일터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전시에서 이슬기는 스스로를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생계와 작업 창작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는다. 금전적 보상이라는 공식 경제 활동과 예술 제작이라는 비공식 경제 활동 사이에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며 작품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빨간고양이의 미술관 점령 프로젝트> 2005 
Production Musée d’Art Moderne de Saint-Étienne, 
FR © Adagp Paris



작가는 이 전시의 시점을 환경주의가 이미 신화가 된 미래로 설정하고, 2200년의 관점에서 2004년을 회상하는 작업을 소개한다. <자연 비 음료수>(2003)는 쌈지스페이스 7층 건물 옥상에 고인 빗물을 필터에 걸러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받아 마실 수 있게 만든 설치 작업이고, <어떤 파업>(2003)은 노인정이나 주부 모임에서 만난 중년/노년 여성과 함께 프랑스어로 파업을 뜻하는 ‘grève’라는 문구를 천에 수 놓은 깃발 작업이다. 비공식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대로 제작했고, 작가는 무급 가사 노동에 반대하는 파업 시위가 있을 때마다 이 깃발을 대여할 계획임을 밝힌다.

이슬기는 <종이컵(Gobelet)>(2007)에서 패스트푸드용 플라스틱 쟁반에 모터가 붙은 빨대 장치가 꽂힌 일회용 종이컵을 제시했다. 이 컵은 전시장 가운데서 빨대를 통해 투명한 음료를 끝없이 뱉어내는 분수가 된다. 그는 한번 사용하고 버려질 운명인 종이컵이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거부하고 ‘파업 중’이라고 말한다.



<IDO> 2009 ‘보르도 비엔날레
(Bordeaux Biennale)’ © Adagp Paris



공예 장인과의 협업

작가는 프랑스 남부 론강을 흐르는 보르도에서 친한 예술가 동료와의 협업으로 <IDO>(2009)를 제작했다. 보르도시의 시내버스를 임시 공동체가 형성되는 달리는 기념물로 보고, 시내버스 한 대의 앞부분에 길고 어두운 털을 한 올씩 만들어 머리 탈로 씌웠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 탈이 바람에 휘날린다. 버스 앞머리를 본 사람이 깜짝 놀라 스쳐 지나간 버스의 뒷모습을 뒤돌아보면, 지극히 일반적인 버스의 뒤를 보게 된다. 이를 경험한 시민은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의아해한다. <IDO>를 지인과 함께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과정은 이후 공예 장인들의 노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2014년부터 그는 30년 경력의 통영 누비 장인과의 협업하는 ‘이불프로젝트: U’를 시작한다. 이불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공동체 의식이 담긴 속담을 품게 하여 그 이불을 덮고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는, 이불 관점에서 본 주술적 조각이 된다. 이불 땀을 한 줄 한 줄 누비는 장인들의 반복적인 행위를 염원과 연동하며, 작업은 그 섬세하고 기교한 부분에 대한 번역이 된다. 예를 들어 <수박겉핥기>는 초록 타원형과 붉은 사각형이 명료한 대비를 이루며 분리된다.



<U 프로젝트: 가위에 눌리다> 2015 
Courtesy artist and Jousse Entreprise 
© Adagp Paris 사진: Aurélien Mole



2015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개인전에서는 처음으로 11개의 이불 프로젝트와 신작 <분화석!(COPROLITHE!)>을 소개했다. 미술관이 위치한 파주의 강가에서 퍼온 5t 가량의 진흙으로 사람 남짓한 크기의 공룡 분뇨를 형상화한 분화석, 즉 똥 화석 5점을 제작했다. 분화석은 이미 오래 전 멸종한 한 동물의 생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의 의미와 땅의 역사를 담은 진지한 개체지만, 결국은 똥이라는 현재적 해학성을 갖는다. ‘유머는 저항의 수단’이라 작가는 잘라 말한다. 전시 기간 동안 <분화석!>은 미술관에서 서서히 부식했고, 전시가 끝난 후 파주 강가로 다시 이동해 자연으로 복귀했다.

이후 작가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바구니 장인, 멕시코 산타마리아 익스카틀란의 바구니 장인, 북모로코의 토기 장인과 협업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모로코를 1년에 10번 방문했다고. 현장을 가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는 모로코 무샤라비아에서 작가는 햇빛을 거르고 바람이 잘 나게 하는 문살을 발견한다. 이는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서 소개한 한국의 전통 문살 작업으로 이어진다.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전시 <느린 물>에서 문살은 설치 작업의 형태로 확장돼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나무 ‘연못’이 되어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다.



<코르시카섬의 한 아프가니스탄여인>
 2001 퍼포먼스



여인의 성감대를 노래하다

프랑스 브르타뉴 북쪽 해안지역인 펭베낭(Penvénan)에서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남성 성기의 모양을 닮은 <여인의 섬(L’île aux femmes)>이다. 영국과 가까운 이 지역에는 1950년대 프랑스어와 많이 다른 방언으로 여인들이 부르던 외설스러운 노래가 있다. 작가는 1950년대 피에르 슈브리에(Pierre Chevrier)가 수집한 리네트 장드롱(Linette Gendron)의 <프와투 노래(Chansons en Poitou)>를 듣고, 가사를 바탕으로 방언을 섞어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 <여인의 섬> 영상에는 두 명의 젊은 여성 안로흐 뱅상(Anne Laure Vincent), 클레망스 미모(Clémence Mimault)가 ‘여인의 섬’ 곳곳을 누비며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다. ‘여름밤 여인의 섬 / 내 바구니 만지지 마’ 등의 가사가 등장하는데, 지역 방언으로 바구니는 여자 음부를 뜻한다. 작업은 ‘노래한다’라는 행위가 인간의 본질적 특성임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여인의 섬> 2019 비디오
(사운드) 13분 30초



주체적으로 즐거워서 하는 이슬기의 예술 실천은 비공식 경제 활동이 된다. 이는 공식 경제 활동 보다, 인간에게는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행위일 것이다. 이슬기는 유사한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을 지구 곳곳에서 발견하고 이들과 연대하며 함께 나아간다.PA



이슬기 작가



작가 이슬기는 1972년생으로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교환학생 프로그램 이수 후 프랑스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를 졸업했다. 기하학적 패턴과 선명한 색을 사용해 재치 있는 시선으로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그는 1992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2001년 직접 대안공간 파리 프로젝트룸(Paris Project Room)을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국내외 유수 기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슬기의 작품은 파리 프락(FRAC IDF(Fonds Régional d’Art Contemporain île-de-france Le Plateau)),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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