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186, Mar 2022

에이샤-리사 아틸라
Eija-Liisa Ahtila

백색왜성의 노래

벽면 한쪽을 가득 메운 6개의 스크린. 그 안에 수평으로 눕혀진 거대한 가문비나무가 넘실대며 일렁인다. 실제 크기와 같은 11m의 나무 형상은 벽을 타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뒤척이는 그 움직임은 은총과 비밀을 머금은 듯 고요하고 청명하다. 에이샤-리사 아틸라(Eija-Liisa Ahtila)의 [수평(Horizontal-Vaakasuora)](2011)은 가문비나무의 영화적 ‘초상화(portrait)’다.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단어 ‘portrait’를 택해 작품을 설명하는데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의 ‘인간의 얼굴이나 모습’이 아닌, 그 어원인 라틴어 ‘protrahere’가 본래 함유한 뜻 ‘발견하다’, ‘끌어내다’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인간의 보편적 공간을 넘어선 나무의 크기만큼이나 그 존재의 본질 역시 인간사고에서 벗어남을 보여주며 작가는 평행하는 시공간 속 동시적 대상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작가, Crystal Eye 제공

'Where is Where?' 2008 6 channel projected installation, 8 channel sound 53min 43sec Courtesy of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London © Crystal Eye Photo: Pirje Mykkänen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김미혜 기자

Tags

핀란드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 헤멘린나에서 태어난 아틸라는 이야기꾼이었던 조부의 열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통상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들어내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던 대부분의 작가들 어린 시절 회상과는 달리, 아틸라는 학창 시절 논술 수업을 가장 좋아했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이후 스토리텔링 기법을 공부하며 필름 매체에 매료된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미국 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런던 칼리지 오브 프린팅(London College of Printing)에서 수학하며 본격적인 시각예술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는 훗날 그가 비디오 아트 선구자가 되는 발판이 된다.

스크립트를 직접 쓰고, 모든 신이 포함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사건의 흐름이 스크린에 표현되는 시각적 방식을 조정하며 아틸라는 작품이 공개되는 공간의 동선과 컨디션까지 작업의 과정으로 여긴다. 그의 초기작은 근작과는 다소 대조적으로 인간의 삶과 관계에 근본하는 감정과 욕구들, 가령 사랑, 성욕, 질투, 분노, 고립, 소외, 외로움, 화해 등을 다룬 휴먼 드라마(human drama)였으나, 필름의 매체적 특성과 설치 미술의 물리적 특성을 결합한 표현방식은 이때부터 두드러졌다. 3채널 비디오 설치작 <더 하우스(The House)>(2002)가 대표적이다. 시놉시스는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하는 한 여성이 점차 그 목소리에 인식을 장악당하며 그를 둘러싼 시공간마저 붕괴되어 가는 내용으로, 정신 질환을 앓았거나 혹은 앓고 있는 여성들의 글과 인터뷰에 바탕을 둔다.



<Studies on the Ecology of Drama> 2014 
4 channel projected installation 25min 40sec  
Courtesy of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London © Crystal Eye Photo: Malla Hukkanen



작가는 하나의 서사를 세 개의 스크린에 나뉘어 펼쳐 보이는데, 각각의 시퀀스는 동일한 풍경을 각기 다른 각도나 원근법으로 촬영한 것이다. 세 개의 연결된 구조에 펼쳐지는 빛과 이미지의 총체는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한편 디제틱 사운드(digetic sound)와 주인공의 내레이션 음성으로 구성된 단일 사운드 트랙은 세 개의 시퀀스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영화적 요소와 독특한 설치 구조의 결합은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샹탈 애커만(Chantal Akerman) 등 20세기 중반 거장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고, 작업이 상영되는 14분 동안 전시장은 스크린의 연장선상에서 끝없이 재구성된다. “어떤 장소도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No place is just one anymore)”라는 작품 속 주인공의 말처럼, 아틸라는 인과논리와 지각 구조를 교란시키며 소재를 재조립하고 공간적 서사를 구성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이후 그의 관점은 식민주의와 종교, 포스트 휴머니즘 등 문화적, 실존적 주제로 확장된다. 1950년대 말 알제리에서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상작업 <어디가 어디인가(Where Is Where)>(2008)를 살펴보자. 1830년대부터 프랑스 식민하에 있었던 알제리는 지역별로 프랑스군에 대한 항전을 이어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간다. 두 나라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프랑스군이 시위대 5,000여 명을 향해 발포하는 참극이 발생하고, 이때 10대 소년 사르 알 부지드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프랑스의 야만적인 행동과 독립을 향한 오랜 투쟁에 말미암아 폭발적 저항운동이 발발하고, 그 결과 두 명의 알제리 소년이 같은 나이의 프랑스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모티브로 한 <어디가 어디인가>는 1950년대 알제리와 오늘날의 유럽, 두 아랍 소년 아델, 이스마엘과 40대 유럽 여성 시인 등 두 개의 다른 시간과 장소, 인물을 설정한다.



<The House> 2002 3 channel projected 
installation 14min Courtesy of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London
 © Crystal Eye Photo: Malla Hukkanen



두 시공간과 인물은 관람자를 둘러싼 네 개의 스크린을 유영하며 상이한 정치 체제와 문화, 종교를 탐구한다. 아틸라는 관람자가 서 있는 공간까지를 스토리라인에 포함하는 영리함을 드러내며 과거의 사건을 동시대 상황과 역설해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 현재의 틀에서 이를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이 사건을 해석하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 말이다. 작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8년 파리 주 드 폼(Jeu de Paume)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품이 처음 공개됐는데, 당시 프랑스 극우정당의 당원 일부가 미술관 앞에서 아틸라의 작품을 보러 가지 말라는 전단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8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은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알제리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는 사실을 공식인정하며 사죄했다.



<Potentially for Love> 2018
Moving image sculpture in 3 silent parts:
#1 - Angular video sculpture of twenty-two DIP LED modules 
(4K/HD; 7min 54sec loop; sculpture size 614×384×15cm)     
#2 - Two research tables with attached ‘monitor mirrors’
 (4K/HD; 2min 8sec and 3min 6sec loops; size 100×72×54cm)
#3 - Vertical single channel projection 
(4K/HD; 2min 35sec loop; projection size approx 400×225cm) 
Courtesy of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London © Crystal Eye Photo: Malla Hukkanen



한편 최근 아틸라는 생물정치학(biopolitics)과 생체예술(bioart)을 기반으로 예술과 과학, 철학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대안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앞서 살펴본 <수평>을 비롯해 <성수태 고지(The Annunciation)>(2010), <드라마의 생태에 관한 연구(Studies on the Ecology of Drama)>(2014), <사랑의 잠재력(Potentiality for Love)>(2018) 등에서 그는 서로 다른 생명체의 공존을 인정하고 이를 무빙이미지와 기술적 표현장치를 통해 가시화한다. 역사적으로 생태계의 서사와 관계를 탐구하고 상호 의존성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그의 작업은 종국에 인간이 어떻게 인류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그 노력에 있어 이야기가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구 온난화와 생태적 위기를 반추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예술의 양상은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그럼에도 아틸라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무빙이미지의 매커니즘을 이용해 생물 사이의 위계 구조를 해체하고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인정케 만들어야 할 책임을 느낀다.



<Horizontal> 2011 6 channel projected installation 
6min Courtesy of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Paris, London © Crystal Eye Photo: Crystal Eye



그는 끝없이 스스로 묻는다. “이 행성에서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How would it be possible to understand a different kind of existence on this planet?)”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항성 대부분은 궤도가 불안정해지고 파괴되면서 그 잔해가 백색왜성에 붙잡혀 흡수된다. 가지고 있던 연료를 모두 태우면서 중력 수축으로 물질을 방출하고 청백색의 작은 별이 되는 것이다. 먼 미래의 지구 역시 아마 이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 팀 커닝엄(Tim Cunningham) 천문 연구팀에 의해 발표됐다.* 언젠가 다가올 운명 앞에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백색왜성의 노래는 오늘도 나지막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인간으로서, 지구상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이 행성에서 당신의 위치와 역할을 재고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PA



Eija-Liisa Ahtila



작가 에이샤-리사 아틸라는 헬싱키에 거주하며 시각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름과 설치 등을 통해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을 실험하는 그의 작품은 베를린, 선댄스, 베니스, 런던, 로테르담, 오버하우젠 등 주요 영화제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등에서 상영됐다.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1999년과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02년과 2018년 ‘시드니 비엔날레(Sydney Biennial)’, 2002년 ‘도쿠멘타 11(Documenta 11)’, 2008년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 Paulo)’ 등에 참여했다.


[각주]
* “Final moments of planetary remnants seen for first time”, warwick.ac.uk/newsandevents/pressreleases/final_moments_of, 2022년 2월 23일 접속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