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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5, Feb 2022

이상용
Lee Sangyong

한 비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유장한 서사의 강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운명(Fate)' 2019 혼합재료 93×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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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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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상용은 천진한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놀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저명한 문화사가인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가 모든 문화에는 ‘놀이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갈파한 것처럼, 인간의 문화적 행위는 원초적으로 놀이와 연관이 있으며, 근원적으로 이 놀이성을 추구한다. 단지 우리가 알아보기 힘든 것은 예술작품에서 이 놀이의 요소가 변형되거나 심하게 굴절돼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작품세계의 맹아가 되는 이상용의 유년시절에 대해 누나는 그가 어렸을 적부터 틈만 나면 만들고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작가 이상용의 의식은 그림에 몰두하던 어린 시절의 단계에 머문 상태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에 의심이 가는 독자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보면 의문이 풀린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작업량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운명(Fate)> 2016 혼합재료 155×110cm




오십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이상용은 오로지 작업에만 집중한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상대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최선의 인생을 살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상용처럼 자기애가 강하고 작업에 몰입하는 형의 작가는 결혼이 자칫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은 어쩌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 수도 있다. 이상용의 작업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그의 판단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엄청난 작품들은 단순히 양적 측면에서만 봐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입한 결과이니 말이다. 게다가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모두 다 대충 한 것이 없고 밀도가 아주 높은 손작업들이다. 캔버스 전체에 새카맣게 쓴 깨알 같은 글자와 숫자들은 물론이고, 나무로 만든 인체 조각 역시 손으로 깎고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이 모두는 아주 강도 높은 몰입과 집중의 결과물로, 마치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처럼 긴 개인적 서사로 돼 있다. 이상용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세헤라자데 왕비처럼 매일 밤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운명에 처한 작가인지도 모른다. 만일 잠시라도 이야기가 끊긴다면 무서운 형벌에 처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작가인 그에게 내려진 천형인지 모른다. 그런 운명을 타고난 그가 어떻게 결혼을 하여 아까운 시간을 나눌 수 있겠는가.


<운명(Fate)> 2019 혼합재료 24×59cm




Ⅱ. 이상용은 유년기의 추억과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본 물상이나 직접 몸으로 부딪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문자와 언어는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은 아니지만 수백 권에 달하는 시작(詩作) 노트를 가지고 있다. 왜 쓰는가? 그것은 단지 배설인가? 하소연인가? 아니면 독백인가?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쓰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의 기질과 사고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데몬의 명령’이라고 했다. 그는 저주받은 천형 병자처럼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이 일을 그러나 아이처럼 즐긴다. 만일 이 일이 즐겁지 않다면 저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작업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번뜩이는 영감을 가지고 창의력에 가득 찬 작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그는 작업노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나아갈 길은 세상에 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고물상에 산처럼 쌓여있는 고물처럼 쌓아두는 것이라네/쓸모없이 버려진 것들을 다듬고 다듬어 광택을 내고 아름다운 색으로 마술을 부려/아름다움으로 우리곁에 영원히 다시 놓이게 하는 것이라네”(<탄생>(1994))


말하자면 ‘쓰레기의 미학’인 셈이다.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이 일은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환희에 가득 찬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예술 창조의 시간은 때로 고뇌에 가득 찰 때도 있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맞은 기쁨에 탄성을 지르는 환희의 순간이기도 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이상용의 삶은 그런 면에서 전업 작가의 표본을 보여준다.    




<Intuitum 2170>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45×30cm




Ⅲ. 작품을 위해 이상용이 기울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닷가, 들판, 숲속을 거닐며 돌, 나무, 풀 등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차로 작업실까지 가져온다. 골동품을 수집하는 일은 오래 전 미국 유학시절이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일과다. 그에게는 밥 먹는 일과 작업이 따로 구분되지 않으며, 생활 전체가 작업과 연관이 있다. 그는 그 어떤 취미도 없이 오로지 작업과 관련된 일만 생각한다. 캔버스에 특정한 기호와 숫자를 가득 채운 회화작품부터 벼루를 이용한 부조작업, 철사를 이용한 인체작업, 철과 나무를 사용한 상여작품, 마분지나 골판지를 이용한 인체들, 제웅을 연상시키는 작품 등 만물상을 연상시키는 이상용의 작업실은 작가의 꿈과 서사가 깃든 예술작품의 보고다. 이상용은 자신이 살면서 본 동서양의 작가들이나 명화들을 기꺼이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여 인연을 맺는다. 그에게 그보다 더 절실하고 달콤한 결혼은 없을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혼자서 자신의 분신과 나누는 대화가 아니겠는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몽상에 빠지면 끝없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상용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지금처럼 사랑을 삶의 뒷전에다 놓는다면/마치 내 마음을 어두운 그림자에 놓고/삶을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내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해가 지면/흔적없이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삶이어라”




<운명(Fate)>(부분) 2019

혼합재료 105.5×243cm




1995년에 쓴 이 오래된 시의 구절은 당시 그가 그린 그림들에서 맡을 수 있는 허무와 우울의 감정들을 반영한다. 물론 그의 오랜 작업과정에서 사랑과 환희와 같은 반대급부의 정서를 맡을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발언의 핵심은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의 힘이다. 그러나 사랑이나 환희와 같은 밝고 희망에 찬 긍정적 가치는 마치 어둠 속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듯 깊은 수면 아래 잠겨 있기 때문에 관람객이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이 모순율이 바로 이상용의 작업을 지배하는 미적 원리다.


이상용의 기나긴 개인적 서사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상여가 설치작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도록 하자. 왜 하필 상여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이란 주제에 천착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가 검정색 화면 위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같은 인물들의 초상을 그려놓고 운명을 암시하는 예리한 선을 긋는 행위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삶과 죽음은 고대로부터 전승돼온 예술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이 묵직한 주제가 발랄하며 유연하기 이를 데 없는 이상용의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 내용이 마치 유유히 흐르는 긴 강처럼 유장하다. 그의 작업은 멈추지 않는 강과도 같다. 아마도 그 이야기를 다 듣자면 긴 시간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PA




사진: 이정우




작가 이상용은 1970년 공주에서 출생해, 현재 한국과 미국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단원미술관, 관훈갤러리, 갤러리비케이 등 국내는 물론 뉴욕에 위치한 워터폴 갤러리(Waterfall Gallery)와 킵스갤러리(Kips Gallery)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뉴욕과 마이애미, 영국 런던, 독일 함부르크, 캐나다 토론토, 홍콩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코오롱그룹과 펜실베니아 대학병원(Hospita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헤인즈 갤러리(Haines Gallery), 오펜하임 아키텍처(Oppenheim Architecture)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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