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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1, Aug 2022

허수영
Heo Suyoung

PUBLIC ART NEW HER
2022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In-Dividual Paintings-허수영의 작업에 대한 노트

“항상 역사화하라!(Always historicize!)”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1981)에서 천명한 이래, 항상 가장 납작한 방식으로 오독되는 이 유명한 공리를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수정해 공유하곤 한다. “항상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독해들에서 출발하라!” 아무리 변주하고 변신한다 해도, 자신의 작업과 독해가 그렇게 ‘그럴듯해 보이’거나 들리는 견해들로 귀결되거나 빨려들면 끝이기 때문이다.
● 곽영빈 미술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허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2016-2017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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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빈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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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 검색 결과들이 알려주듯, 허수영의 작업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와 독해는 대개 ‘시간’, ‘중첩’이란 단어들 주변에서 병목현상을 보인다. 「시간이 덧입혀진 풍경」, 「시간의 층위를 담은 낯선 지형도- 채록의 풍경, 중첩과 연계의 풍경」, 「시간을 담은 회화」 등. 이들은 <수족관과 물고기> 같은 초기 대표작처럼 2,000-3,000마리의 물고기를 ‘중첩의 방식으로’ 그린 그림을 환기하면서, 자신의 작업 키워드를 “다수성, 중첩, 노동”으로 명시적으로 요약했던 작가 자신의 자의식적 발언들로 고스란히 수렴된다.1)

“그리다 보면… 더 이상 언어화되지 않는 지점에 보다 그림다운 그림이 있기를 기대”한 작가의 염원과 달리,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 대부분은 허수영 자신의 말대로 “이미지의 중첩, 붓질의 중첩, 물감의 중첩으로 다수성이 가득한 화면”으로 보일 뿐이다.2)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물감으로 되풀이될 가치가 없다”는 T. J. 클라크(Clark)의 언명대로, 이러한 자명성 속에서 작업과 비평 양자는 사이좋게 ‘공도동망(共倒同亡)’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독해들 대부분은 허수영의 작업이 작동하는 구체적 방식이나 이와 연동된 역사적 지평을 면밀히 기술하지 않는데, 본격적인 글을 기약하면서, 이 글에서는 ‘다수성’과 ‘시간’의 문제에만 집중해보려 한다.

그가 대상을 수상한 2012년 ‘광주신세계미술제’의 전시 제목 ‘3852 pages, 5725 images’는, 주지하듯 작품 제작에 사용된 책의 페이지 수와 그렇게 ‘수집’된 이미지의 수를 전경화한다. 책장을 넘길 때 나타나고 사라지는 개별 이미지들의 구획과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에서, 그는 이 모든 이미지를 한데 모아 뭉뚱 ‘그리고’, 하나의 캔버스에 뭉뚱그려 ‘버린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내가 ‘분산과 수집의 변증법’이라 규정한 바 있는3) 이러한 양식 자체는, 그에게만 고유한 게 아니다.



<Space03> 
2022 한지에 유채 162×227cm



독일의 작곡가이자 개념예술가인 요하네스 크라이들러(Johannes Kreidler)는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2008)에서 무려 7만 200개에 달하는 사운드 소스를 단 33초 길이에 욱여넣은 뒤, <압축사운드아트(Compression Sound Art)>(2009)에서는 비틀스(The Beatles)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전곡을 각각 1초에, 13만 개의 노래를 4초 길이로 들려줬고, 비슷한 시기 구동희의 <천연기념물>(2010)은 천연기념물 안내 웹페이지에서 다운받은 각양각색의 천연기념물 이미지를 하나의 캔버스에 중첩시켰으며, 소설가 김태용은 “나의 글이란 없어/ 오로지 읽은 글의 재배치만 있을 뿐/ 그렇다면 이 글은 다른 글을 위한 또 다른/ 재배치가 될 거야”라고 ‘삭제표시(under erasure)’를 통해 스스로를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한 언어의 ‘수집가(chiffonier)’로 인식했다.4)

이러한 경향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시계(The Clock)>에서 일종의 정점에 올랐는데, 작가인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는 1,200여 개의 영화에서 시계가 나오는 1만 2,000개에 달하는 클립을 추출해 24시간 분량으로 재배치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따로 또 같이,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나눌(dividual) 수 없는(in-) 것으로서의 ‘개체(성)(individual(ity))’의 문제를 제기한다. 1초 길이로 응축된 베토벤과 비틀스의 음악은 그 어떤 ‘베토벤’이나 ‘비틀스’의 곡과도 유사하지 않고, <시계>에서 인용된 영화의 원전을 찾는 건 ‘범주착오’에 가깝다. 4초 길이로 축약된 13만 개의 사운드 소스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고려할 때, 허수영의 그림이 초기의 ‘공간적 나열’에서 ‘시간적 중첩’으로 이행했다거나 ‘다수성’을 다룬다는 그럴듯한 독해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양산동과 산양리, 강진 등에서 보낸 레지던시 체류의 산물인 ‘1년’이나 ‘숲’ 연작들처럼, 2010년대 초중반에 걸쳐 있는 작업은 자연을 그린 전통적인 ‘정물’ 그림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에너지는 ‘형상(figure)’과 ‘배경(ground)’, ‘단수(singular)’와 ‘복수(plural)’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이 위태로워지는 임계점에 육박할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Forest3> 
2015 캔버스에 유채 259×182cm



하나와 여럿으로 나뉘지 않는 ‘다양체(multi-pli-cité)’로서의 주름(le pli/fold)과 같은 이러한 구분 불가능성은,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물고기와 ‘테디베어,’ 다양한 동물과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 <원피스>의 피겨 초상이 ‘지옥철’과 ‘콩나물시루’처럼 과밀화된 캔버스 안에서 가까스로 유지해온 ‘개체성’들은 물론, 성경의 묵시록이나 기후위기를 환기시키는 메뚜기 떼, 혹은 배설물들에 의해 뒤덮이는 인간의 얼굴과 아파트 이미지를 경유해 말 그대로 무한한 우주 공간의 이미지로 용해되는 최근작들 속에서 따로 또 같이 작동한다. 

물론 이 짧은 글은 그간의 독해들이 허술하게 건너뛴, 기초적인 ‘정지작업’의 일부일 뿐이다. 허수영의 작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PA



허수영 작가 



작가 허수영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The smaller majority>를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그의 작품은 8월 20일까지 열리는 <살갗들>과 9월 2일부터 10월 3일까지 펼쳐지는 ‘2022 여수국제미술제- 푸른구슬의 여정’,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개최되는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다.

[각주]
1) 「회화의 새로운 얼굴 12」, 『하퍼스 바자』 2015년 10월호, p. 115
2) 폴 세잔(Paul Cezanne)이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를 환기하면서 그의 작업을 같은 풍경을 지난하게 탐구한 모더니즘의 지평에 귀속시키려 들거나, 동시대의 다른 모든 작가를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 또는 ‘물질’과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면서 허수영 작업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시도들 역시 이러한 지평을 벗어나진 못한다.
3) 곽영빈, 「수집가 혹은 세상의 큐레이터로서의 작가: 구동희론」, 『2015 SeMA-하나 평론상/2015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5, p. 50
4) 김태용, 「가공과 타공」,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문지문화원사이, 2013,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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