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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7, Feb 2023

오세열
Oh Seyeol

작가의 혼, 진정성의 예술

● 장진택 독립기획자 ● 이미지 작가, 아트조선스페이스 제공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72.7×60.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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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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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의 삶에서 지금의 가치와 의미를 갖게 되었나. 예술은 누군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지지하는 미적 정동(affect)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예술은 지금까지도 쉬이 규명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 것이며, 그렇기에 예술은 제 존재를 여전히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는 것일 테다. 예술이 재현의 범주를 이탈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예술이 재현의 범주에 있었을 땐, 예술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향해 서 있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이상의 세계를 자연의 그것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을 최대한으로 닮기 위한 자기 수행의 한 방법으로 이 예술을 선택해야 했다.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30.3×97cm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자 인간이 도달해야 할 저곳으로서 견고하게 자신의 위상을 점유하고자 했다. 따라서 한때, 예술에서 인간은 위계 안의 행위자로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실천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객체적 대상이었던 인간을 주체로 두면서 저와 같았던 예술의 형상은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 자체로 예술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거나 빈약해 뵈기도 했겠다. 그처럼 당대의 시공에서는 그 기준을 결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인과 관계에 의해 도출된 결과물이나 파생의 갈래 따위에 둘 여유는 많지 않았을 거다. 이토록 근저를 그득히 메운 파편화된 사유들을 뒤로하고 마음을 드높이 해서야만 닿을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던 적이 있었다.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90.9×72.7cm



예술이 그만큼 추앙했던 자연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관계를 품어냈던 시대도 언젠가는 큰 격차의 변화를 겪어내야만 했다. 이 같은 시대의 변화는 기존에 형성됐던 의미와 가치, 질서와 기준, 갈래와 범주가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함을 뜻하기도 했다. 그 재정립의 방식은 각각의 영역에서 모두 다르게 실현될 터인데, 그중에도 예술의 영역에서는 드디어 대상과 행위의 주객이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그 변화는 아무래도 자연을 통제하는 인간의 기술과 역량이 이전에 비해 점차 향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일련의 단계를 틀어 우리는 역사라고 명명한다. 다른 한편 이 역사는 크게 제 흐름으로 그 관계의 주체와 대상에 영향을 끼치거나, 반대로 그 주체나 대상들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같이 양방향의 상호 작용에 따라 특정 시대를 풍미하거나 관통하는 본질이라는 공통의 성질도 실상 언제나 바뀌어 왔고 그리고 이 변화의 모양새 역시 단순하거나 획일할 수 없었다.



좌.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16.8×91cm
우.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16.8×91cm




이상의 경로를 거쳐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예술의 영역에서 결과적으로 서로의 중심을 바꾸어냈던 것이다. 미술사는 이러한 변화의 기점을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미술사라는 한정을 초월하여 좀 더 너른 관점에서 이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자연을 재현하는 층위로부터 마침내 벗어나 - 그것이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축소된 모양일지언정 - 어떻게든 인간이라는 필터를 거쳐서만 감각 가능한 특수한 지점에서 세상을 이루는 정수를 추출코자 한다는 점이 점차 이들의 한 속성으로 굳어졌음을 알 수도 있다. 작가 오세열이 작업에 담고자 하는 예술의 ‘혼’이라는, 소위 비물질적이고 초자연적이나 분명 우리의 내면에 실존하고 있는 이 특별한 심상도 그 정수나 본질을 향한 인간 보편의 특징과 유비적으로 그 궤를 함께하는 듯 뵌다.    

오세열의 작업은 단일한 이미지나 그 맥락으로서의 서사화 그리고 그로부터 창출할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의 권위도 과감히 내려놓는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기어코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그려질 수 없는 것이며, 더불어 그는 예술의 정수와 본질을 오롯이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예술은 수행의 바깥에서 그 존재 목적을 찾으려 했던 원시적 형태의 미술과도 또한 구별된다. 철저하게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유의 한복판에서 작가의 예술은 일어선다. 일반적인 미술에서의 연작들은 특정한 시각 문법을 반복적으로 표상함으로써 그 작품의 저작을 과시하지만, 그와 달리 작가의 작품은 그 범주를 쉬이 헤아리기 어렵게 한다. 이는 작품이 특정한 주제로 귀결하는 작가의 의지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작가의 마음속에 비치는 정념을 매개하는 의무를 그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좌.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2×130.3cm
우.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90.9×72.7cm




오세열은 작품을 생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나 비일상적인 계기로만 작품이 창조될 수 있음을 밝히는 자기 증표의 한 양태로 정의한다. 그 정의의 양식은 미술이라는 부문의 체제를 유지케 하는 태도를 원론적으로 가름함으로 각기 다른 유형의 예술들을 분화한다. 삶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인생의 목적이 그 주체의 실존을 위한 것과는 무관하게 된 누군가를 깨우치듯, 오세열은 그가 행하는 예술의 목적이 현실의 수많은 바람들과 뒤얽히며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원래의 목표와 다른 방향에 놓이게 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예술을 행하는 데 있어 재귀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본래 내재해왔던 연유들을 계속해서 환기한다.

그 맺음과 도달의 과정은 오세열의 작업에서 몇몇의 시각적인 알레고리(allegory)들로 현현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현하는 알레고리가 앞서 언급한 상투적 표현의 기법, 다시 말해 반복적 표상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기보다 한 단계 상위의 층계를 전유하는 식으로 작업의 개념을 정립한다. 구체적으로는 의도적인 그림체, 특정한 성격을 관통하는 소재의 유입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채와 도상의 표현에 있어 분명 그만의 특색을 뚜렷이 보인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마치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이가 그린 듯한 이른바 낙서화 혹은 동화체 풍의 화면은 회화도 삽화도, 그렇다고 구상도 추상도 아닌 어느 빈 경계의 터에서 제 감상을 조직한다.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2×130.3cm



배경은 겹겹이 쌓아 올려진 단조로운 색조를 띠기도 하며, 때로는 매끈하게 때로는 거칠게 표면을 되새기기도 한다. 표면은 작가의 평면을 구성하는 배경으로서 펼쳐지는 와중에 작가는 이것을 긁거나 그 위에 칠을 더해 다시금 흐려냄으로써 어떠한 고정된 시공에도 이를 얽매이지 않도록 한다. 마련된 이 바탕을 두고 그는 평면의 틀 안팎에서 기초적인 미술 재료 외에 일상의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용품들은 화면 자체에 그려지거나, 파편화된 상(像)으로 화면에 실제 대상물이 접착되기(collage)도 하고, 화면의 바깥에서 그를 고정하는 틀을 구성키도 하면서 작품을 이루는 데 일조한다.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72.2×60.6cm



그가 사용하는 물품들은 전부 그 쓰임을 다했거나 정형적으로 미술의 재료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그 선택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작가의 작업에 짙게 물든 일상성은 작가의 작업을 삶과 예술 사이를 교차하는 어떤 경지로 승화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오세열의 작업에 방점을 도맡는 것은 바로 도상이다. 그의 작업을 완결하는 도상의 한 축은 화면을 수놓는 숫자라는 기호이며, 다른 한 축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현신하는 인물들이다. 이 도상들이 기호라고 여겨지는 건 그것이 오랜 기간에 걸친 미적 자기 수행의 결과로 작가가 포착하게 된 고유한 계기를 암시하는 단초임에 기인한다.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2×130.3cm



구상 이미지의 추상적 표현으로 쓰는 한편의 우화, 일상과 미술이 교차하며 열린 혼성의 장, 그 다단하고도 복잡한 현전의 가운데서 오세열은 그의 그림을, 그의 작업을 자신의 혼을 가감 없이 담아낼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균형 잡힌 하나의 그릇으로 빚어내기를 바라 마지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작품은 분명 그의 심상을 비추어내는 것에서 특유의 내력으로 그것을 창작하는 이와 감상하는 이들의 감각을 통하게 한다. 고로 그는 작업을 통해 주체가 신념을, 객체가 현상을, 대상이 의미와 가치를 충분하게 성취토록 하는데, 이로부터 나는 그가 보통의 미술이 아닌 일편의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음을 비로소 깨닫게도 됐다.PA



오세열



작가 오세열은 1945년 서울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30대에 조선화랑, 진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39살이 되던 해인 1984년, 유럽 대표 아트페어 ‘피악(FIAC)’에서 남관, 박서보, 김기린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국내외 유수 기관 전시에 참여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프레데릭 R. 와이즈만 예술재단(Frederick R. Weisman Art Foundation) 등에 소장돼있다. 작가의 작업 중 유일하게 제목이 있는 <다락방>(1975)은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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