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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5, Oct 2023

김희수
Heesoo Agnes Kim

PUBLIC ART NEW HERO 2023
녹색 광선을 찾아서

●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 ● 이미지 작가 제공

[빛소리춤: 해넘이] 2023 비디오 설치, 사운드 3분 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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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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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를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자 저주다. 종교의 빈자리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무목적성과 씨름하는 것은 현대 예술의 특징이었지만, 동시대 미술이 무의미와 좀 더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게 되면서 그런 허공 속의 허우적거림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상연되거나 조심스럽게 숨겨졌다. 전 지구적 체제가 기후 위기와 거주 가능성의 악화라는 의도치 않은 목적지로 끌려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자기만의 빛을 찾아 방황하는 예술가는 어딘가 딴 세상에 속하는 낭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미지의 존재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자기를 재발견하는 생태적 계몽은 텅 빈 곳에서 부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실존적 탐색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이상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현듯 낯선 행성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느끼는 이들은 상이한 두 개의 차원에 동시에 붙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현대적인 인식의 틀이 무력해지는 지점에서 집을 떠났다가 새롭게 되돌아오는 오래된 방랑의 여정을 재개한다.

김희수는 2017년부터 녹색 광선을 추적하는 여행을 단속적으로 이어 왔다. 그것은 일몰과 일출의 짧은 순간에 햇빛이 대기에 산란, 흡수되면서 발생하는 미약한 초록색 섬광이다. 매 순간 지구 어디선가 발생하지만 관측 조건이 아주 잘 맞아야만 눈앞에 나타나는 이 보기 드문 광채는,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 『녹색 광선(Le Rayon Vert)』과 이를 각색한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영화를 통해 신비한 반짝임을 뒤쫓는 감성적이고 이성적인 모험의 알레고리로 널리 통용되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녹색 광선을 포착하기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녹색 광선> 전시 전경 
2022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하지만 그 경험을 기록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작업으로 완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앞에 언급한 소설과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아직 본 적 없는 녹색 광선에 매혹됨으로써 더 넓은 세계와 조우하고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기 위한 시간을 번다. 김희수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녹색 광선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맥거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 빛을 추구했고 실제로 그에 도달했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바퀴 돌아 녹색 광선과 마주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지점으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반복을 추동한 일차적인 원동력은 녹색 광선을 목격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그것이 남긴 모호한 질문들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발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으며, 실제로 김희수의 최근 비디오 설치 작업은 주로 후자에서 비롯되었다. <블루 아워(Blue Hour)>(2022)와 <인섬니스(INSOMNIS Travailler à l’heure bleue)>(2022)는 인공조명의 간섭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녹색 광선을 기다리던 불면의 밤과 그 끝에 맞이한 새벽을 각기 다른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어둠은 멀고 가까운 것의 구별을 무효화하면서 신체 내부의 감각과 다른 동물들의 기척을 뒤섞어 놓는다. 밤의 심연 속에서 시공간의 틀이 무너지며 출현하는 낯선 존재의 감각, 빛이 새어들면서 공기를 고요하게 물들이는 새벽의 선명한 푸른색을 작가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작업으로 재연한다.

비언어적 소통에 대한 열망 그리고 존재의 비분절적 상태를 향한 그리움은 김희수의 작업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다. 실상 녹색 광선은 태양과 지구 그리고 관측자 사이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나와 내가 아닌 것이 우연히 정렬되는 찰나의 기적을 표시한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기나긴 방랑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빛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 색채를 기계적으로 복제하거나 심지어 그 정렬의 순간을 시계태엽 장치처럼 재구성한다고 해도 작가의 체험을 관람객에게 직접 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내가 있던 자리에 당신을 불러올 수 있을까.



<SSS Explorer> 2023 
3채널 비디오, 사운드 11분



김희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험해 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접근은 빛과 소리, 촉감이 분화되기 이전의 현상학적 장을 전시장에 구현하는 것이지만, 순수하고 거의 성스러운 색채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적어도 현 단계의 관심사는 아닌 듯하다. 작가는 단지 자기가 본 것을 가져와서 어떤 기억의 극장을 조성하는데, 여기에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섣불리 구별하지 않으려는 겸손한 순례자의 태도가 있다.

<녹색 광선을 찾아서(Searching for the Green Ray)>(2019)는 빛을 붙잡기 위해 어둠 속으로 뛰어든 그간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재편집한 2채널 비디오다. 한쪽 스크린에는 해가 뜨고 지는 주기적 시간 속에서 시시각각 색조가 변화하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타임랩스 모드로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는 그사이에 작가가 만났던 다양한 땅의 주민들이 나열된다. 똑같이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시간은 태양과 함께 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녹색 광선의 탐구는 작가를 일상에서 끌어냈으나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새로운 일상이 구축된 듯하다.

관람객은 부재하는 작가와 함께 그 시간을 회고하는 외부적 위치에 선다. 이 영상에서 어째선지 기억에 남는 것은 말뚝에 매인 채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당나귀의 모습이다. 당나귀는 왜 가만히 있지 않고 부질없이 돌고 있을까. 또는 거꾸로, 그 회전 운동은 당나귀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 고대인들은 회전 운동을 소용돌이 모양의 미궁으로 만들어 그 속에 무서운 괴물과 신비한 진리를 숨겼다.

입구와 출구가 동일하지만 들어온 자와 다른 자를 내보내는 변신의 장소이자 의례의 절차로, 미궁은 김희수의 궤적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그것은 길을 잃고 헤매기 위한 공간으로서 오로지 그런 방식으로만 찾을 수 있는 길을 예비한다.PA



김희수 



작가 김희수는 뉴질랜드 화이트클리프(Whitecliffe)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Blue Hour>(테미예술창작스튜디오, 2022), <녹색 광선>(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2022), <시간의 조각들>(홍티아트센터, 2021)이 있고, 2019년 ‘제13회 아르테 라구나 프라이즈(13th Arte Laguna Prize)’에서 비디오 아트 & 쇼트 필름(Video Art and Short Films)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오는 10월 4일부터 시민청 소리갤러리에서 개인전 <빛소리춤>을 개최할 예정이며, 10월 30일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체인지업 사업 일환 온라인 전시 <SSS Explorer>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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