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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노현탁
Roh Hyuntark

PUBLIC ART NEW HERO 2023 붙잡힘의 발견, 발견의 붙잡음: 노현탁의 만유인력

● 안재우 독립큐레이터 · 문화평론가 ● 이미지 작가 제공

'치타' 2022 캔버스에 유채 130.3×193.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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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우 독립큐레이터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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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뉴턴의 이론만 가르쳤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는 지금의 내 삶은 국내에서만 활동했을 때와는 여러 가지로 다르다.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서 작가, 미술 그리고 미술사 등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방식, 동서양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특징들이 각 지역의 예술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이에 예술과 사회의 관계가 유라시아의 좌우에서 어떤 차이들을 보이는지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미래의 이상적인 예술과 사회를 위해 요구되는 기획적, 비평적 실천들에 대한 고민은 지금의 삶을 통해 더욱 유의미한 성숙을 거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 지역의 사람들이 지닌 초-지역적인 공통점들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나가는 여정 또한 진행되고 있다. 쉬운 예로 ‘꼬르륵’이 있다: 한국 출신의 중년 학예연구사든, 노년의 독일 작가든, 또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청년 관람객이든, 점심시간이 되면 핸드폰을 꺼내 미술관 근처에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가를 검색하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이 세 사람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며 영혼의 허기를 채운다는 것 또한 물론 그럴 것이다.

이 시대의 보편적 영혼의 허기 그리고 정오쯤 붐비기 시작하는 삼청동의 음식점들. 노현탁의 예술은 내게 그 둘을 떠올리게 하고, 그의 작업을 접해 본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에게도 그러지 않을까. 우선 보편적 영혼의 허기. 식사를 배부르게 마친 뒤에도 디저트가 당길 때 흔히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라는 표현을 사용하듯이, 미술에서도 ‘형식 배 따로, 내용 배 따로’가 있다. 즉 작품의 형식적 미학과 내용적 미학은, 비록 형식도 내용의 일부이며 내용은 작가의 형식적 선택에 깊은 관여를 하기에 완전히 배타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완전히 동일한 것 또한 아닐 것이다.

따라서 둘 중 하나가 미흡할 때 ‘기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이지만 내용이 다소 식상하다’ 또는 ‘주제가 좋은 건 알겠으나 작가의 기술적 역량이 그걸 뒷받침하지 못한다’ 등의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노현탁의 작업을 보면, 우선 내용에 대한 이해가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의 탁월한 브러쉬워크, 색의 구상 그리고 재현 대상들의 기하학적 형태와 상대적 배치의 역학에 의해 감상자는 직관적인 감흥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만찬>
 2020 캔버스에 유채 130×194cm



그렇다면 내용적으로는 어떨까. 노현탁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OO은(는) ‘불안’이라고 작가 본인이 작업 노트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혔는데, 혹자는 ‘불안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심리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업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현탁의 불안은 그보다 더 다층적인 통찰을 통해 감지된다.

즉 ‘인간이기에 생물학적으로 느끼는 불안, 가령 정전 사고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인지적 불안’과 같은 게 아니라 개인에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된 상황 때문에 발생한 인위적 불안, 예를 들어 착하게 살았으나 착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안겨진 불안, 성공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으나 사회가 지닌 구조적 부조리에 의해 자신의 노력은 언제나 부족할 것임을 깨달을 때 마주하는 불안 그리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의 불안 등이 노현탁의 작업을 응시하며 우리가 보편적으로 재확인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노현탁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OO은(는) ‘불안’”에서 “OO”에 들어갈 말은 단순히 ‘정서’가 아니라 ‘폭력’이다: 이는 그저 우리가 인간이라는 생물이기에 불가피하게 느끼는 정서가 아니라 어떤 부당한 권력 관계에 배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투척되는 고통인 것이며, 이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동시대의 동서양 관람객에게 노현탁의 작업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보면, ‘아, 이 작품들을 유럽에서도 전시하고 싶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의 동시대적인 구조화된 불안에 대한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적 공론화 작업을 전시장의 울타리를 넘어서 생성하고, 동시에 작가의 기술적 위대함이 공론장의 대중에게 영감, 위로 그리고 이 작업을 내용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작가의 깨달음을 비추는 광경을 기획하고 싶다’라는 과제가 어렵지 않게 구상될 수 있는 것이다.



<화목동> 2022 캔버스에 유채 130.4×97.2cm



한편 또 하나의 깨달음은 전시장 근처의 점심시간 음식점 풍경과 관련 있다. 누구든 한동안 한식을 먹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면 최고로 맛있는 한국 요리를 즐기고 싶을 것이고, 원래 아는 곳 또는 지인이나 온라인 인플루언서 등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곳을 자연스레 찾을 것이다.

40대 중반인 나 역시 예외가 아닌데, 다만 이제는 삶을 어느 정도 겪고 나니 잘 지은 쌀밥 한 알갱이 그리고 잘 담근 김치 한 조각에도 엄청난 사연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위대한 음식은 재능있는 요리사의 각고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에 음식의 위대한 맛만 즐기는 게 아니라 그걸 가능하게 한 위인의 정신과 수고에 대한 상상의 맛 또한 의식적으로 즐기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것이 내가 노현탁의 작업실에서 목격한 것이다:

우리의 부당한 불안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마치 언론인이나 사회과학자와 같이 연구를 시행해 노트를 빼곡히 채우고(노트와 에스키스들의 묶음들마저 전시하고 싶은 심정이다), 동시에 미술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비가시적인 자아의 속성을 가시화하는 후기 인상주의의, 초현실적인 재현을 통해 현실의 불합리성을 더욱 첨예하게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의 그리고 관람객의 정신을 붙잡고 어루만지기 위한 시도로서의 표현주의의 형식적 도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승화시켜 작업의 형태적 완성도를 키워 나가는 탁마의 흔적들을 말이다.

좋은 학교는 뉴턴의 이론을 잘 가르칠 것이고, 위대한 학교는 뉴턴의 위대한 철학을, 즉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남들이 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때 그 인과관계를 고민하고 그 결과 기어이 과학사의 가장 위대한 이론 가운데 하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정신을 가르칠 것이다. 사회적 불안은 우리가 부당한 권력 관계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창작하여 관람객의 시선과 공감을 붙잡는 노현탁의 만유인력: 작업실 방문을 마친 뒤 나는 딱 두 문장으로 된 일기를 썼는데, 그 첫 문장은 이 글의 첫 문장이고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 노현탁



의 숭고한 정신까지 가르쳐준 건 유사한 정신을 지닌 예술가였다. PA


작가 노현탁은 목원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야간사냥>(송원아트 센터, 2022), <말려진 상상>(플레이스막, 2017)이 있으며,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2), <비둘기그라피: 낭만적 상징에서 바이오포비아까지>(SeMA 창고, 2020), <대나무숲의 아메바들>(아마도예술공간, 2019) 등의 그룹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2024년 미국 보스턴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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