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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1, Apr 2024

최지원_멈춰버린 순간

2024.3.1 - 2024.4.28 박서보재단 ARTBASE 26S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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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연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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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마음을 아시오?


순간은 작은 영원이 될 수 있다. 정지란 도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하던 무엇을 멎게 혹은 그치게 하면 찰나일지라도 분명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여기 정지의 쓸모를 상기시키는 회화가 있다. 최지원은 한없이 매끄럽고 화려한 도자 인형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해 생과 사, 반영과 반사, 강인함과 연약함과 같은 양가적 개념들을 자유로이 오간다.


나는 그의 작업을 영화와 기꺼이 유비하고 싶다. 영화 한 편을 이루는 장면들은 감독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아 탄생된다. 최지원의 회화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각 대상은 배우이자 소품이 된다. 시선, 자세, 빛이 스미는 정도, 그림자의 크기, 서 있는 위치 등 모두 작가가 선택한 결과물로써 연출되고 편집되어 제자리를 지킨다. 의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원래 의지가 없던 것임에도 사물인 그들이 때론 긴장하며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어떠한 서사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서로 다른 광원에 의해 속없이 윤기가 흐르는 그곳을 최지원이 자신의 숨결과 손길로 그들과 함께 지키고 있어서다.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운 화면에서 허락된 유일한 틈입이다.


침묵이 대사와 음악의 부재를 채운다. 균형을 추구해 조형한 빛과 색이 미장센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가 아님에도 영화로운 순간이다. 작가는 삶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물이 결국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을 흉내 낸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숨이 없는 무감한 대상들을 지금 여기가 맨 앞*인 듯 단호히 배치한다.


박서보재단의 소장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크고 작은 여섯 점의 회화로 구성되었다. 줄곧 다뤄 온 ‘도자 인형’ 시리즈 두 점과 더불어 연극 무대에서 볼 법한 빨간 커튼 앞에 작은 목재 소품들이 놓인 풍경 그리고 나무 액자 속 채집된 나비와 난초를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원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되 각 색의 좁은 범위에 속하는 채도와 명도로 변주해 조합하며 캔버스를 메우는 최지원의 화폭 위 보법이 펼쳐진다.




<토끼띠의 방>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Courtesy of Jiwon Choi and ThisWeekendRoom



직관과 경험을 거쳐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면 다른 회화의 유형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나 정물화의 인상이 가장 강한 탓일까. 푸른 <토끼띠의 방>(2023)은 물론 붉은 <멈춰버린 순간>(2023)마저 차갑다. 혹 사람일 수도 있을까 싶은 무표정한 인형과 애석하게도 생동하려는 한가운데 멈춰진 동물 공예품, 공간의 온도와 채광을 좌우하는 블라인드 그리고 그 전부를 고스란히 또는 왜곡해 비추는 거울. 이토록 정적인 화면은 포토샵으로 베이스를 만들고 수집한 이미지를 배치하면서 신(scene)을 제작한 다음 페인팅을 통해 하나하나 옮겨져 완성된다. 상대적으로 배경을 단순하게 표현해 촉각적으로 또렷한 대상이 더욱 양감 있게 다가온다.


움트는 풍경에는 설렘이 실리기 마련이다. 날개를 솟구치며 날아오르는 새,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고래들,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말의 시작하려는 몸짓을 가둔 <Ready, Set, Go!>에도 적용될까. 최지원은 순간의 박제, 다시 말해 정지야말로 삶과 죽음을 가로질 수 있는 미감임을 상기시키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유보한다. 원근을 무시한 채 공존하는 또 다른 오브제인 쓰러진 고목과 건물, 동물을 모방에 근간을 둔 부장품일 수도 있는 조각품이라는 인공의 영역으로 데려와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에 담는다.


실재했던 나비와 난초의 순간을 포착한 ‘in the Frame’ 시리즈에서도 멈춤은 유효하다. 작업실 창틀에서 목도했던 곤충 사체와 교내 자연사박물관에서 마주했던 곤충 박제 표본을 작업 요소로 등장시켰다. 그렇게 생전에는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운 생명들이 죽어 껍데기만 남은 후에야 비로소 정면하게 된다는 현실에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붓으로 손수 표구한 행위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박제는 소멸이 죽음의 연장선에 있음과 별개로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인류에 등장했다. 부장품 역시 애도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최지원은 ‘생과 사’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차원을 회화라는 2차원의 틀에 가둔다. 부드럽고 견고해 완전한 듯 선명하게 보이는 작가의 화폭에서 불안하고 불편한 정서를 느끼는 이유도 그의 그림이 이 불완전한 기로에 서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작보다 화색이 도는 근작의 얼굴들과 숨 쉬지 않지만 여전히 하나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사물과 껍데기에 투영된 작가의 마음을 본다. 나는 작은 영원이 탄생하는 이곳, 최지원의 회화 앞에서 자꾸 멈춘다. 그의 정물화(still life)에서 ‘still’이란 ‘여전히’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어져서다.  

[각주]
* 시인 이문재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제목이다.


* <Ready, Set, Go!> 2024 캔버스에 유채 112.1×145.5cm Courtesy of Jiwon Choi and ThisWeekend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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