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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4, Jan 2022

광대하고 느리게: 권혜원, 박은태, 조은지

2021.11.11 - 2022.2.27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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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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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광대하게


<광대하고 느리게>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경기문화재단 정기 공모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에 선정된 작가 중 ‘10년 이상 예술 활동 경력을 가진 중견작가’를 대상으로 한 신규 프로젝트인 ‘2021 경기작가집중조명 초청 공모’에 최종 선발된 권혜원, 박은태, 조은지, 3인의 신작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작가 한 명 한 명의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획함과 동시에 작가 인터뷰와 전시도록 등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각 전시공간을 연결시킴으로써 전시 전체가 주제적인 면에서나 공간적인 면에서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은지의 <文漁의 무늬는 文이다>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흰 벽과 지난 전시에 쓰였던 나무 구조물을 감싼 하얀 천위에 작가가 먹물로 써내려간 문장들은 벽을 타고 부유하며 1998년에서 2038년까지의 시간대를 넘나들고, 문어의 촉수를 매개로 ‘나’라는 단일 화자로부터 계속해서 탈주한다. 천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바닥까지 쓰여져 있는 크고 작은 문자들을 눈으로 열심히 쫓다 보면 ‘철푸덕’ ‘철썩’ ‘쓱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전시 개막일에 있었던 퍼포먼스 ‘점액질 대화’ 기록 영상에서 작가는 검은색 옷을 입고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전시실 곳곳에 축축한 진흙덩이를 흩뿌린다. 또한 기울기가 가파른 곡선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오르기 위해 내달렸다가 이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미끄러지길 반복하는데, 이 모든 흔적들은 전시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권혜원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 2021

4K 3채널 비디오, 4채널 오디오 설치




서로 다른 시간대가 공존하고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시도는 권혜원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3채널 비디오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덕수궁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한’ 향나무와 소나무 등의 화자를 통해 인간 중심의 분류 체계와 시간 감각을 뛰어넘어 역사화 되지 않은 시간의 공백들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의 압도적인 크기로 상영되고 있는 싱글채널 비디오 <급진적 식물학>은 인간이 식물을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카메라나 현미경과 같은 장치를 사용할 때, 보는 자(나)와 피사체(식물)의 자리를 전복한다. ‘식물을 선명하게 보기 위한’ 기계사용 매뉴얼처럼 흘러가던 영상은 ‘나 자신과 식물이 동시에 보이는’ 많은 연습 끝에 ‘식물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손끝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더니’, 결국 내가 식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자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렌즈 너머의 거대한 눈동자는 식물과 나의 첫 번째 눈맞춤이라 할 수 있겠다.




박은태 <황금모듈>(부분)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324cm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노동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줄곳 ‘일하는 사람’을 그려온 박은태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의 기하학적인 철골 구조를 배경으로 건설 노동자를 그린 전작 <천근의 삶> 연작과 함께 신작 <부품의 대가> 연작을 선보였다. PCB기판을 연상케 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회로 위로 여러명의 노동자들이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일하고 있다. 중간 중간 검은 구멍이 뚫린 전자기판 위에 마치 작은 부품과도 같이 표현된 사람들을 통해 신자본주의시대 점점 더 비가시화되고 소외되고 있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2m가 넘는 캔버스를 마주한 관람객은 얼굴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직군의 인물에 자기 자신을 대입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SF 소설가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광대하고 느리게(Vast and Slow)’라는 전시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전시는 큰 틀에서 타인을 포함한 이종(異種)과 공존하는 환대의 장으로 기능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삶의 주변부까지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세계까지 인식을 확장시키는 작가들의 발자취를 찬찬히 따라가 보길 권한다.  



* 조은지 <文漁의 무늬는 文이다> 2021 설치 및 낭독 퍼포먼스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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