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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4, Jan 2022

이지연: Stain-Rainbow Forest

2021.12.8 - 2021.12.12 더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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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고동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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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의 ‘나노패턴복제미술’

예술가의 과학 정보 사용법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예술과 과학의 분야가 과학적 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 기술과 연관된 모든 연구가 객관적인 정보나 지식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예술에서의 과학적인 방법론이나 지식은 다른 시각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곤 한다. 인간의 이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인간의 인지 능력은 믿을만한 것인가? 이지연의 최근 설치작업도 ‘나노패턴복제기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술과 특정 문양을 사용하고는 있으나 예술가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이 어떻게 과학자와 달리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복제기술이 전달하는 혜택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인지 능력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선 작가는 ‘아티언스(artience) 대전 레지던시’ (2020-2021)에 참여하면서 한국기계연구원의 나노공정장비 연구실과 협업했다. 그리고 두 가지 측면에서 ‘나노패턴복제기술’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작가는 롤러를 밀어서 반도체 웨이퍼 원판에 특수 경화제를 얹고 4,000여 장의 복제 필름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판화’적인 기술을 활용한다. 실제로 이번 설치작업을 위해 나노패턴복제기술을 본 따서 원형의 필름에 하나씩 롤러로 밀어내듯이 문양을 삽입해 넣었다.


두 번째로 원형의 판에 새겨진 특정한 기본 패턴(문양)은 연구소의 연구 성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빛이 특정 생명체의 내부로 투영되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패턴을 작업에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원시 생명체의 기본 구조를 3D 프린팅으로 만들고 알고리즘의 힘을 얻어서 추출된 기본 구조를 문양처럼 원판 위에 찍어내었다. 빛이 물체나 생물과 만날 때 일궈내는 미시적인 현상의 변화에 관심을 지닌 작가에 의하여 나노패턴이 새롭게 예술적인 소재로 변형되고 있는 셈이다.




<얼룩 무지개 숲 #2> 2020-2021

컬러 3D프린트, 탄소봉, 실리콘 링, 구조색 필름,

모터 90×90×90cm 나노패턴복제기술 자문:

한국기계연구원 최대근 전산 설계: 이진환 3D프린트 지원:

스트라타시스 코리아




여기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술가가 과학적인 지식과 복제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목적은 분명 과학자의 태도와는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연구소에서 원형 판화 기술을 사용할 때 어떠한 이물질도 허용되지 않는다. 패턴을 완벽하게 원형에 옮기는 일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최대한 빛을 효율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구조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작가의 관심은 특정한 패턴을 재생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니 연구소의 과학자들에게 특정 ‘패턴’은 고정된 결과물로 접근한다. 이에 반하여 예술가에게 패턴의 효용성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술가는 과학적인 기재를 사용해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패턴 패턴이 지닌 인문학적인 의미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빛이 사물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패턴이 보편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가? 가장 일상적인 현상 뒤에 어떠한 규칙이 숨겨져 있는가?


오히려 이지연의 오염된 원형판의 표면은 외부 대기 변화를 훨씬 다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형형색색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빛이 천장에 달린 설치물에 어떻게 반사될지, 빛의 퍼포먼스가 외부의 대기 변화를 어떻게 반영해낼지,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차단된 연구소의 환경과 전시장의 환경이 달라서 생겨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변수들을 작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예술가가 과학적 정보나 성과를 예술계 내부에서 활용하게 될 때 또 다른 질문이 발생하게 된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 이외에 과연 과학적 정보들이 얼마나 예술가의 본래 미학적인 의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가 질문이 발생한다. 작가는 빛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나 현상 속 숨겨진 자연의 패턴을 관람객에게 드러내 보여주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비평적 기준은 과학적인 효용성이나 전문성이 아닌 예술가가 과학으로부터 얻어낸 영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비평가로서 흥미롭지만 고민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가가 과학적인 정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적용하게 될 때 보다 철학적이고 깊은 의미에서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충분히 예술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예술은 과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이지연의 설치작업은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성찰하게 만든다.



*<얼룩 무지개 숲 #1> 2020-2021 스테인리스 미러, 구조색필름, 실리콘 링, 기타 220×320cm 공간변형설치 나노패턴복제기술 자문: 한국기계연구원 최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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