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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8, May 2022

안창홍-유령패션

2022.2.23 - 2022.5.29 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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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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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령


안창홍의 회화는 몸이 내뿜는 정치적 뉘앙스를 파고든다. 특히 그의 회화 속 눈 이미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에 대한 윤리적 서사와 관계한다. 흐리멍덩하고 초점 잃은 눈에서 전복을 향한 한껏 치켜뜬 눈, 질끈 감아버렸거나 흰자위 없이 검은 눈, 심지어 벌레에 파 먹혀 구멍 난 눈에 이르기까지 범상치 않은 눈의 표정들은 뒤틀린 현실 속에서 결핍의 디스토피아를 소환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회화는 직접적이고 거침없으며 날이 서 있지만 왠지 우울하다. 포즈도 마찬가지다. 그는 도발적인 모습의 누드나 단체 사진 속 능동적이고 경직된 자세의 인물들을 통해 권력과 관습의 실체를 꿰뚫어본다. 게다가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가면, 해골, 똥 같은 특정 사물들은 생명은 곧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 불안정하고 불완전함에 대한 인간적 천착을 상징한다.

특히 사진이나 그래픽, 영화 같은 매체를 차용하여 다소 낯설고 불편하며 그로테스크하게 전환된 회화 이미지는 편하고 자족함으로 찌든 사유에 균열을 내며 우리가 곤하고 지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그는 이렇게 피지배자의 저항과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아픔과 비약적 경제 성장에 따른 사회적 폐단을 드러내왔다. 또한 개인들의 상처를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민으로 풀어 거의 50년 동안 그들 편에 선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귀국전: 안창홍-유령패션>에서는 안창홍 작업의 특이한 변화가 몇 가지 발견된다. 첫째, 몸의 표현형식이 변하였다. 이는 ‘살’에 대해 보완적 기능을 하는 것이자, 살보다 더 현대인들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는 ‘패션’의 속성을 통해 생명의 서사를 이어간다. 패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모델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이러한 빠른 소급의 배경에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부 격차의 심화가 불러온 명품소비량의 급격한 증가와 백화점의 경쟁적 오픈런(open run: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매장이 오픈하길 기다려 바로 달려간다는 의미)이라는 뉴노멀을 당면하게 된 지금, 자본 권력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의심과 저항적 시선으로 명품에 이 모든 혐의를 묻게 된 듯하다.

현대인의 정체성을 위임받은, 정확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들을 좌지우지하는 패션 이미지는 런웨이의 모델 포즈를 주인공으로 옷들은 허망하게 밀랍이 녹아내리듯이 흘러내리거나 피가 줄줄 흐르는 것으로 표현되어 의도적 상징 사물과 함께 어두운 페인팅으로 전환된다. 마치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피리부는 소년(Le Fifre)>(1866)같이 배경과 그림자가 단순화, 최소화되어 원근법적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고 피사체가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동시에 우울하고 드래스틱(drastic)함은 청력을 잃어 어둡고 일그러진 형상에 사로잡혀 인간의 광기를 표현했던 스페인의 낭만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를 떠올리게 한다. 모델의 포즈와 패션의 디테일한 묘사까지 드라마틱(dramatic)함이 더해져 안창홍의 회화는 더욱더 낭만주의적으로 보인다.



<유령패션19> 2021 
코튼페이퍼에 오일파스텔 162×113cm



둘째, 매체가 달라졌다. 이전 작업의 플랫폼인 사진 이미지가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었다. 집 어딘가 깊이 처박혀 있던 오래된 사진이 아닌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스타일 넘치고 현란한 패션 광고 이미지에서 작가는 ‘살’을 삭제한다. 사진 위에 회화적 터치를 가미하거나 사진의 기록적 의미를 회화로 재현해내는 방법에서, 편집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의 디지털 펜으로 살을 삭제하고 명품만 남은 몸뚱이를 회화로 다시 그려낸다. 그리고 투명 여러 매체를 섭취하며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아 왔던 작가에게 이런 정도의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실천적 측면에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아이패드 드로잉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안창홍에게 새로운 미디어가 제공하고 있는 지우기(delete) 기능은 단순히 도전에 대한 결과라기보다 가면 쓴 몸에서 벗어나 효과적으로 ‘유령’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회화적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렇다면 유령 이미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살과 유령을 대비시키니, 유령이란 곧 살이 없는 또는 형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가면 쓴 얼굴이 권력의 억압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가면 뒤로 숨으며, 총기(聰氣)를 파 먹힌 피지배자의 익명성, 그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유령은 혼령이라고 정의되는 것으로 죽음 이후의 사후적 비인격체로서 물리적 존재는 사라져버린 상태의 것이다. 그리고 패션-명품에 모든 인간성과 정체성을 내어주고 인간은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 매몰된 상황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령은 자본으로 대체되어 그레이드(grade)가 매겨진 익명의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니 이러한 등치 이면에는 자본이 권력이 되고 인간이 사물의 위치로 대치되는 우울감과 상실감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의 사물화에 대한 회의감과 시니컬함은 최근 비현실적인 우크라이나 사태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면서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그의 낭만주의적 회화는 지금 이 시기에 더욱 드래스틱(drastic)하게 보인다. 반면 유령은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제3의 존재로 언제든 가변적이고 디지털로 전환 가능한 현대인의 과잉이자 잉여인 존재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유령은 추억의 영화 <꼬마 유령 캐스퍼>같이 친근하고 귀여운 애니메이션 이미지에서, 학교마다 전해지는 괴담 속 여자 귀신 같은 으스스한 존재이기도 하다. 디지털 유령은 자유자재로 옷이나 배경을 바꾸고, 인간 존재에 균열을 낸다. 디지털 이미지는 이제 우리 삶을 대변하는 사물(thing)이 되었다. 인간의 자율성마저 인공지능이 탑재된 차에 위임했으니, 이제 어떤 사물 존재로 살 것인가는 선택에 달려있다 하겠다. 어쩌면 안창홍의 삭제된 살인 디지털 유령의 존재도 되돌리기(undo)로 회복되어 회귀하는 실재일지 모른다.    



3층 전시 전경



이 전시는 지난해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키토의 과야사민미술관과 인류의 예배당에서 개최된 안창홍 초대전에 의해 가능해졌다. 사비나미술관 보도자료에 따르면 “과야사민미술관은 에콰도르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며, 인류의 예배당에서의 전시는 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작품이 전시된 이후 최초로 타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안창홍의 날카로운 우울함이 거장의 뒤를 이어 에콰도르에서 전시하게 된 배경이자 문화적으로 공명할 수 있을 만한 정서로 작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작가는 조각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전에선 선보이지 않았지만 과야사민미술관에서 전시됐던 ‘눈 먼 자들(Cequera)’ 시리즈는 동일한 180cm 휴먼스케일의 두상에 영화 <매트릭스> 속 인간처럼 바코드와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변형·표현해, 인간마저 상품처럼 코드로 대체된 상황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한국에서만 선보이고 있는 ‘얼굴들(Rostros)’ 시리즈와 드로잉은 가면에서 진화된 안창홍의 시그니처와 같다. 최근 조소/조각적인 작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그는 작은 가면부터 규모 있는 ‘마스크’ 시리즈 작업까지 왕성한 양을 자랑하며 작업 중이다. 과정도 특별한데, 작가는 땅을 판 후 시멘트를 부어 굳힌 후, 땅과 작품을 분리해내는 방식으로 울퉁불퉁 가면의 표면 질감과 형태를 잡아나간다. 이는 조각 작업을 역으로 하여 비조각적인 형식을 실험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된 그의 작업은 특히 조각 형식적 쾌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형식적 도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안창홍이 항변하는 자들은 유령과도 같은 그 누구도 아닌 피지배자들이다. 우울하고, 삶에 찌들어 패배 의식으로 집단최면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까지 저항의 몸짓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제스처의 디테일이 안창홍의 서사를 만들어왔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47년을 하나의 시선과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활발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안창홍이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앞으로의 또 다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는다.  


* 2층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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