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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3, Aug 2023

포ː룸 - 또 다른 시간을 위한 會 & 인간적인 것의 미로

2023.7.1 - 2023.8.3 수림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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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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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것을 소환하는
동시대 미술의 엔트로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팽창 시대. 나는 지금 여기의 현전을 흐트러뜨리는 미술의 실천 양식 하나를 본다. 비유컨대, 무질서 같아 보이지만 일련의 에너지 평형 방향으로 움직이는 엔트로피(entropy)다. 그것은 스마트폰 라이브 영상에 미디어 고고학이나 원주민 예술이 혼합된 매체 역학을 보여준다. 회화와 조각이 이어온 오랜 전통을 재료 삼아,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상황 얼개를 엮기도 한다. 이로써 동시대 미술의 ‘시간’은 다원의 문명 에너지를 서로 반향하고 회생하여 오래된 새것이 된다.

수림문화재단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일환으로 두 개의 전시 <포ː룸 - 또 다른 시간을 위한 會>, <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재단 지원을 받은 작가 중 재창작 공모를 통해 선정된 요한한과 김효진 각각의 개인전이다. 그동안 요한한은 직접 무두질을 해서 만든 북 등 타악기를 통해 전시장 내 특유의 울림을 내왔다. 안무가의 움직임이 내는 파동이 이에 합쳐져 육화된 생명 피질을 공유하는 진폭이 되어왔다. 요한한의 작업에서 손은 동물의 가죽을 만지고 두드리는 것이자, 비언어적인 추상의 몸짓으로 원초적 세계의 의식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이어 그것은 스마트폰을 움켜쥐고 매끈한 액정 화면을 터치하며 디지털을 경유한 리좀(rhizome) 연결망을 가리켰다.

기획자 홍희진과 함께 한 이번 전시에서 요한한은 자기 작업에 편재된 아나크로닉(anachroniques)의 개념을 명시했다. 다층의 시간, 혼종의 역사, 과도기적 불안과 이주의 서사가 살의 관념을 공유하는 조형에 호환되어 드러나 있다. 전작에서도 감지됐던 제의적 기호의 작동은 거북 등껍질을 바닥에 둥글게 나열한 <Oracle bones>에서 두드러지는데, 이 딱딱한 갑골의 표피는 <라운드테이블>을 실제 기어 다니는 달팽이의 겉과 속살에 기묘하게 부딪히고 대응한다. 토템 성격의 악기 혹은 회화적 장치가 된 과육의 마른 씨앗과 동물의 건조된 가죽, 흐르다 굳은 염료 자국은 죽음과 삶 경계에서 약동하는 시간의 현상학적 지층을 상기하며 그를 다시 여러 겹으로 늘어놓는다.



<인간적인 것의 미로> 전시 전경



인간 몸의 동작으로서 동시간적 행위였던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서 생략한 대신, 실시간 오픈채팅을 녹화한 영상을 상영했다. 디지털 기호로 분한 오늘날의 소통 양상과 그가 내는 익명 및 속도감의 타임라인이 앞서 벌어진 시간층에 개입되고 곱해져 어지러이 얽힌다. 작가 나이와 같은 제작연도를 쓴 조각 <무제>는 그 재료인 출처불명 암석의 나이로 이들 동시대 미술 매체의 연보를 보다 행성 차원으로 것으로 확장해 놓았다. 이 같은 복잡한 충돌 속에서 주체가 무상함의 반대로 지각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도 어렴풋한 이 자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남겨둔다.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시간의 표층 사이를 틈입해 공명하는 다층의 에너지, 그리고 이를 공감하는 일종의 감각소체.

기획자 홍예지와 협업한 김효진은 장지에 그린 다수의 채색화와 이를 병풍이나 요새처럼 세운 가변 설치로 파노라마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 대한 기존 관심에서 확장된 주제가 지질시대의 풍경 아니면 먼 우주의 행성 지표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나열해 보인다. 일방향의 흐름 없이, 저를 통과한 존재에게 고유의 자취 및 생몰의 드라마를 갖게 한다는 ‘구멍’도 그려져 있다. <안개구멍>, <흠의 틈>, <특이점>처럼 특정 표층을 유동의 형질이자, 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블랙홀에 빗댄 것으로 부각한다. 이 환상문학적 배경에 등장하는 것은 고생물을 닮은 식물이며 동물, 기류와 토질이 변이하는 장소, 과거이자 미래라 할 시간 영역 등이다. 태고의 흐린 기억, 혹은 모호한 가상의 것이지만 세필로 충실을 다한 사실적 묘사와 일관된 캐릭터 서사의 연작으로 작가주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세 개로 분할된 공간을 각각의 상징 메시지가 있는 차별화된 방으로 설정하고, 시점 및 동선에 변화를 주어 회화 전시로서는 드물게 관람객 몸과 체화된 경험을 유도한 것도 특징이다. 김효진은 인류세가 희구하는 원초적인 자연을 복원하려는 듯하다. 실증과 상상, 회화와 회화가 아닌 매체를 혼합하고 기성이 써온 인간주의 관점을 흐려 다원의 생명체를 소환하는 방법으로.

이에 비롯된 종의 다양성은 극중 일련의 생태계를 이루고, 특이점이 온 지금을 반추한다. 작가에게 지금 작업의 시작 계기를 물으니,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집에 있는 오래된 행운목을 이야기했다. 우주의 빅뱅과 문명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잇는 처음에 소박하게도, 한 그루 나무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생의 지평을 이미 일찍 가늠하고 있던 듯한 그것. 재앙과 멸종의 위기, 피부 감각의 상실과 그리움을 느끼는 우리가 모태의 사명을 떠올려 수호하는 대상이 아닐까. 지금 미술의 에너지는 그런 실천을 소환하고 있다.  


* <포ː룸 - 또 다른 시간을 위한 會>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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