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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1, Aug 2022

황영자_돈키호테

2022.7.12 - 2022.8.13 U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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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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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의 여행


Ⅰ. 황영자. 1941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여든하나. 그런데도 겉으로 봐서는 20대 뺨치게 젊다. 특히 의상과 액세서리가 그렇다. 미러 선글라스에 은발, 가슴의 보디 페인팅으로 봐선 영락없는 젊은이다. 늘 새로움으로 무장한 황영자 앞에서는 당할 자가 없다. 그는 늘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며 그림의 소재를 자전적 삶과 사회현상, 삶과 죽음 등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서 끄집어낸다. 자전적 이야긴가 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삶의 모습이 그림에 나타나고, 인생의 생로병사가 상징적 기법을 통해 화면에 중첩돼 나타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작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는 동년배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긴 호흡으로 보면 한국 여성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렇듯 황영자 예술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시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통칭 4·19세대다. 8·15 광복 이전에 출생하여 초등학교 시절에 6·25 전쟁을 겪었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 정부의 12년에 걸친 장기 집권에 저항하여 전국적으로 궐기한 4·19혁명을 주도한 세대다. 일단 이 세대의 여성들을 살펴보면 가부장적인 유교적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시 a말해서 성적 차별이 일상화된 문화구조 속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낸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결혼제도를 비롯해 취업, 육아, 가사노동 등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종의 사회제도와 관습에 의한 차별에 장기간 노출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가슴 깊은 곳에는 억압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으로서의 심리적 반동이 잠재해있다.


따라서 황영자 그림의 올바른 독해는 이러한 심리적 반동과 저항이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것인지, 아니면 소극적인 형태의 것인지 하는 정도에 대한 판별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황영자는 밖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와는 달리 비록 구상적 형태를 취하지만 상징과 비유, 알레고리와 같은 기법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내면의 심층에 존재하는 감추어진 서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영자의 그림 속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거쳐 외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ntitled>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7×90cm



2016년에 그린 대작 <하늘 길>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편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대담하게 머리가 잘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풍성하게 부푼 푸른 옷을 걸친 주인공은 두 손으로 잘린 머리를 받치고 있다. 붉은 피가 떨어지는 은발의 두상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정열과 청춘을 의미하는 이 장미는 고답적인 세상의 잣대로부터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인생을 구가하다 작가적 삶을 마치고 싶다는 결의의 상징처럼 보인다.

Ⅱ. 황영자는 그림의 전개를 대상의 외면적 형태에 의존하는 구상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황영자의 작품은 쉽게 읽히리라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사실 좀 난해하며, 정서적으로 불편한 그림에 속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화면 전체에 감돌고 있으며 ‘한(恨)’과 같은 끈끈한 정서가 작품의 밑바닥에 깊숙이 깔려 있다. 따라서 황영자의 작품을 제대로 독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한 이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짧은 지면에서 작가의 지난한 삶의 굴곡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단지 황영자의 작품에서 맡아지는 불안과 불편한 감정, 정서들의 진원지가 다름 아닌 그의 삶이라는 점만은 강조하고 싶다.

아울러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황영자 특유의 기질과 감수성이다. 이는 특히 80을 넘긴 작가의 생리적 조건을 고려할 때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내면의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황영자는 ‘스타일리쉬’한 자신의 미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길 즐긴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취향이 그대로 작품 속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작가 황영자는 자신에 솔직한 편이며 예술이 곧 삶이라는 등식을 인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삶 따로 예술 따로가 아니라,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인 예생일치(藝生一致)의 정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UM갤러리 초대전에 맞춰서 나온 팸플릿에는 각양각색의 인형들로 가득 찬 방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실려있다. 도대체 이 인형들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순간, 나의 시선은 그 앞 장에 적힌 다음과 같은 문장에 머문다. “작품에는 하나의 문이 있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렇다. 황영자에게 있어서 그림은 다름 아닌 ‘다른 세계로의 여행’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타인과 동반하는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자아’라고 하는 분신과 동행하는 고통의 여행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세상에 넘쳐나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고도의 상징과 비유, 알레고리를 통해 전달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상존하는 고단한 여행인 것이다.



<untitled>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7×90cm 망포동




황영자는 사회적 금기, 분노, 불안, 죽음, 우울 등 밝고 긍정적이기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사회적 억압의 기제들을 주제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오랜 기간 몰입해왔다. 황영자의 작품을 볼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작품들은 통상 이야기하는 쾌적하고 즐거운 감정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보는 자들을 당혹게 하고 때로는 화들짝 놀라게 하는 어떤 요인이 황영자의 그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적인 측면에서 어떤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이른바 ‘사회적 거울’로서의 그림이 바로 황영자의 그림이다.  <마음 문>은 바로 그런 그림이다. 노란 블라우스에 붉은 치마를 입은 노랑머리의 여인이 마스크를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풀어 헤친 블라우스 속에는 이제 막 수술을 마친 듯 붉은 피가 심장에서 흐르고 있다.

“눈뜨고도 길 잃은 나의 영혼/육체는 성장했어도 마음속 깊이/내장된 고통은 수시로 불쑥불쑥 솟구친다./욱하는 감정이 나를 망가트리지 않도록/분노가 내게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쯤은/열어두어야지.”(작가노트)

이렇듯 온통 분노의 서사, 죽음의 서사, 소통 원망(願望)의 서사로 점철된 황영자의 작품들은 모두 고독한 내면의 탐사를 극대화한 결과다. 황영자는 아주 오랜 세월을 작업실 구석으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고독의 절대 공간인 그곳에서 황영자는 삶의 피륙을 뒤적이며 하나하나 추억을 낚아 올렸다. 그 추억들은, 슬픈 기억이든 기쁜 기억이든 간에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 갖가지 형상들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황영자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판타지의 진원지는 바로 그의 뇌리에 잠재해있는 추억들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책에서 읽은 것 등 직간접적인 세상의 경험들이 그렇게 해서 상상의 마차를 타고 캔버스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황영자의 판타지들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공감의 영역을 넓히는 순기능을 한다. 그의 작품이 가져다주는 반성적 계기란 바로 그런 부분을 지칭하는 것일 게다. 황영자의 그림은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감의 영역을 넓혀줌으로써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문제일 것이다. 그 몫이 온전히 작가에게 돌아가는데 미적 보편성을 화두로 삼기에는 갈 길이 바쁘지 않겠는가. 눈을 들어 잠시 먼 곳을 바라본다.  


* <untitled>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62cm 동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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