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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5, Feb 2022

사랑은 타이밍이다

2021.12.24 - 2022.2.14 엘리펀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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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리타) 시각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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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은 영원히 산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레옹 블루아(Leon Bloy)의 단편 「롱쥐모의 포로들(Les captifs de Longjumeau)」은 한 부부의 자살이라는 슬픈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롱쥐모라는 마을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고 매분 매초 서로를 황홀해하며 지냈다. 문제는 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치게 부주의해졌다는 것이다. 롱쥐모 밖으로 떠날라치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실수 탓에,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사교생활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몇 번이나 롱쥐모를 떠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악마의 입김”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비극적 우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죽음에 이른다.

아마도 사랑하는 두 연인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이보다 더 지독한 이야기를 찾기란 어려울 것 같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기력 속에서 그들의 시간은 거의 정지된다. 폐쇄적인 그들의 세계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고 죽으면서 연인들은 세계의 일순을 경험한다. 이처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마치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행성에 떨어지는 것과도 같아서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랑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부터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달력을 보고 나이를 세면서 하나의 타임라인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롱쥐모의 포로들’이 되거나.

상대성이론과 같은 물리학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격렬한 환희와 진통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무한히 연장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두 사람의 봉인된 시간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속의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타임라인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셈이다. 권혜원과 최하늘의 2인전 <사랑은 타이밍이다>는 이런 관점에서 두 개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무한하고 추상적인 것을 유한하고 물질적인 매체와 형식으로 다룰 때의 한계가 표시하는 가능성에 관심을 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타이밍이다>에서 보여준 두 작가의 작업은 다소 상보적으로 느껴진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권혜원은 세계를 감각하는 단위로서 시간 개념이라는 ‘보편’을, 최하늘은 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사건의 ‘구체’를 각각 담당한다. 전자가 반복 재생하는 가능 세계들과 후자의 사랑하는 연인 조각들은 아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립되어 존재하고 있다. 자폐적인 두 세계는 전시장이라는 시공간에 놓임으로써 암시적으로 연결된다.



최하늘 <내우주> 2021 금속 
140×30×7cm 사진: 조성현



권혜원의 영상 <동그랗고 끈적끈적한>(2021)은 전시장의 전면 패널에 설치되었다. 영상은 자신의 삶인 9분 35초를 끝도 시작도 없이 반복하며 언젠가의 존재했던 현재의 풍경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마치 자기가 보여주는 것들이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만약 관람객이 슬픔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이는 한때 우리가 존재했던 세계를 자동 촬영하고 있을 뿐인 영원이자 일순의 눈, 바로 카메라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동그랗고 끈적끈적한>이 풍기는 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는, 앨런 라이트먼(Alan Lightman)의 소설 『아인슈타인의 꿈(Einstein’s Dreams)』(1992)을 차용한 영상 속의 텍스트와도 긴밀히 연관된다. 영상은 총 다섯 개의 시간 개념을 소개한다. 그 중 “중심에서 시간이 멈추는 이 세계에서”라는 제목 아래 묘사되는 풍경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곳으로 온다/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가만히 멈추어 있다.” 연인들은 사랑하는 채로 정지하기 위해 세계의 중심으로 온다.

최하늘의 조각 <내우주>, <너거울>, <우리노력> (2021)은 이렇게 ‘중심이 멈춘 세계‘에서 사랑하는 두 연인이 존재하는 방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의 형상은 흡수와 반사에 있다”는 작가의 말은 곧 <내우주>와 <너거울>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표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략 사람 크기로 휘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금속 조각은, 튀어나온 부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을 노출하면서 꼭 맞물려 포개진 모습을 연상케 한다. <너거울>의 후면에는 누군가의 손바닥이 남긴 지문의 흔적이 마치 키스 마크처럼 남겨져 있다. 촉각적인 것의 에로틱함은 <우리노력>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치과에서 본을 뜰 때 사용되는 재료인 핑크색 알지네이트 덩어리가 얇고 매끈한 좌대 위에 놓인 작업인 <우리노력>은 물을 뿌려주지 않으면 굳어버리는 재료의 성질을 이용해 ‘사랑한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상투적인 문구를 물질적인 차원으로 번역한다. 서로를 만지고 주무르고 굳지 않게 돌보는 것은 무섭도록 중독적인 애무이자 폭력이다. 사랑하는 동안 연인들은 서로를 변형시키며 영원히 다시 살 것이다. 그러니 왜 깨어나야 하는가? 최소한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두 조각이 ‘롱쥐모’ 바깥을 꿈꿀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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