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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7, Feb 2023

정철규_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2023.1.12 - 2023.2.11 갤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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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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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아니 바로 지금



언제부터였는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건지. 실체를 알 수도, 구체적으로 형언할 수도 없는 오직 한 사람을 향한 불가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휘몰아치는 감정 앞에 우리는 사랑의 이름을 불러온다. 그것만큼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말도 없다지만 결국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대상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그저 스스로를 점점 더 깊숙이 사랑 안에 함몰시킬 뿐이다.

작가 정철규의 개인전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는 바로 이 사랑을 주제로 한다. 2010년 첫 개인전 때부터 사랑을 주제로 다뤄온 그는 인류애나 가족애와 같은 포괄적인 개념이 아닌, 특정 타자를 갈구하고 애달프게 그리워하는 마음의 표상을 그린다. ‘사랑에는 어떤 불가능함과 불완전함이 존재한다’고 믿는 작가는 (첫) 사랑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소외의 감정을 회화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후 입체와 설치로 확장해나갔다. 하나의 화면에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기보다 다양한 매체에 주제를 분절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 화분, 원단과 같은 유형의 물질뿐 아니라 시나 소설 속 텍스트와 같은 무형의 물질에도 사랑은 녹아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그는 주제를 파편적으로 담은 작품을 나열하고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며 타자를 사랑할 때 겪는 감정과 상황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전시 전경



전시장에는 두 개의 오브제가 짝을 이루는 총 4개의 작품이 설치돼있다. 먼저 <닮아가는 벽>(2022)은 사랑하는 대상의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어느새 그 말투나 행동을 모르게 흉내 내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회화 작업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천위에 그려진 풍경, 즉 흉내 낸 풍경이 계절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마주 보고 있어도 상대를 흉내 내는 것에 그칠 뿐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어느새 또 다시 멀리, 다른 지점에 가 있는 대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패턴의 원단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너의 등을 긁는다>(2022)는 모습은 다르지만 상대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하나가 되는 형상이고, 수직과 수평으로 서 있는 두 개의 막대기가 하나의 공을 붙잡고 있는 <꽉 잡은 손>(2022)은 공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절실한 마음과 언제라도 쉽게 공이 떨어질 수 있는 불안한 기류를 동시에 감지케 하며 그 끝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관람객의 몫으로 유보한다.

끝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2022)에선 커팅 매트를 말하는 사람으로, 프레임을 듣지 않는 사람으로 상정한다. 커팅 매트는 자신을 지탱해줄 프레임이 필요하지만 프레임은 선뜻 자기 몸을 내어주지 않고 커팅 매트 역시 프레임에 씌워진다고 해도 종국에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냉정한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처럼 사물들이 짝을 이루면서도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가 각자 어떤 상황에 놓인 채 나름의 모습으로 존재할 뿐, 완벽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현재의 사랑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사랑의 실패 요인임을 깨닫게 만든다.



<말하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2022  
수트 패브릭에 손으로 꿰맨 실 드로잉과 
나무 프레임에 아크릴릭 
99×69.5cm(패브릭) 90×60cm(프레임)



전시명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나중에(Later)’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8) 속 엘리오의 첫사랑 올리버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사랑을 자각하기 전 불쾌감과 무례함을 안겨준 그 말은 정작 기약 없는 이별 앞에 발화되지 않으며 엘리오로 하여금 사랑의 끝을 예감케 한다. 올리버는 결국 침묵으로 헤어짐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어쩌면 올리버는 나중이 아닌 지금의 영원성 안에 자신의 사랑을 가두기를 택한 것일지 모른다. 어떤 사랑은 헤어짐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으로 귀결되므로. 아무도 모르지만 너와 나는 아는 사랑을 아로새기며, 떠남으로써 결국 마음속에 영원히 너만을 담겠다고 선언하는 일. 정철규가 말하는 사랑은 그렇게 오직 단 한 사람을 향해 항구히 달려가고 있다.  


* <너의 등을 긁는다> (부분) 2022 수트 패브릭에 손으로 꿰맨 실 드로잉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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