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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9, Jun 2022

이민선, 이신애 롱디의 맛

2022.5.7 - 2022.5.22 중간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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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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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낸 편지


이민선과 이신애, 두 명의 작가는 서로를 알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같은 나라에 산 적이 없으며 교환일기의 형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했다. 지면 위에서 각자의 고유한 필체로 만나며, 떨어진 신체의 감각을 상쇄할 교류의 중간지점을 마련한 것이다. 명백하게 확보된 물리적인 거리, 같은 땅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감각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열망처럼 서로를 질문하게끔 한다. 그렇게 두 작가는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서술하면서 전시의 형식으로 모두에게 편지를 부친다.

편지는 오직 사후적으로만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것은 미래에 읽히기로 약속된 지금의 매개체로서 항상 지연된 과거로 남아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항시 자기 자신을 미래로 연기해야 하며, 지금의 발신자는 편지가 읽힐 시점에 위치해 과거를 서술해야 한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에 따르면, 편지는 언제나 지연되거나 잘못 도달할 가능성을 품는다.* 그는 ‘우편-공간’이라는 단어로 배송되지 않은 우편물들이 축적되는 곳을 상상한다. 더욱이 그것은 배달 도중 누군가 읽을 수도 있으며, 잃어버릴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왜 발신자와 수신자의 시차를 무릅쓰고서 편지를 쓰는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경로를 마다하고 어째서 굳이, 손으로 글을 쓰고 지금을 미래로 유예하는가?



이신애 
<Mom, I'm sending some photos cause you asked me> 
2019 싱글채널 비디오 1분 43초 이미지 제공: 중간지점
사진: 고정균 -[엽서→영상]으로 매체 변환



문자와 언어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질서화하며, 의미를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많은 것들이 상징의 질서 안에서 설명되고 이해의 영역으로 소환된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 원인과 결과의 값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실패를 전제하면서 소유와 지배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표기한다. 하지만 우편의 과정은 이메일의 읽음 표기, SNS의 사라진 ‘1’처럼 수신확인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불안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을 가리킨다. 오직 답신을 통해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통해서만 우리는 편지가 정확하게 도착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연되고 잘못 배달될 수 있는 언어들의 공간. 그것이 벌이는 시차와 간격은 매끄럽게 세공된 의미의 세계를 해체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는 2명의 작가가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보다 서로의 작업을 재료 삼아 각자 새로운 전시를 꾸렸으며, 작품은 주고받은 사진과 엽서 등을 바탕으로 영상의 문법을 빌렸다. 이민선과 이신애는 전시 구역을 분리해 도면을 제공했다. 이는 서로가 머물던 공간이 달랐던 것처럼 전시 역시 각자의 자리를 나누는 방식을 취하며 통일을 추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민선은 이신애의 작업으로 <공기, 시간, 마음>을, 이신애는 이민선의 작업으로 <너가~ 내가 되어볼게, 하나 둘 셋 얍! ★>을 기획했다. 한 영역에서 경계를 구분하는 전시의 형식은 작품을 배치한 모양에서도 드러난다. 모니터 앞의 모니터, 블라인드로 가린 모니터, 누워있는 모니터, 공간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한 천막 속 모니터. 영상 이미지는 여러 겹으로 분할된다. 전시장 창문 앞에 설치된 영상은 푸른 하늘과 초원의 전형적인 풍경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그 위로 설치된 블라인드로 인해 이미지는 은밀해진다. 이는 우리가 ‘일반’이라고 믿는 장면들, 나와 너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는 보편의 언어들에 빗금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민선 <NOBODY KNOWS> 2014 
싱글채널 비디오 2분 39초 이미지 제공: 
중간지점 사진: 고정균 -이신애가 
이민선의 영상을 모니터랑 이어폰으로 설치했다규



편지는 나와 너를 연결하는 장소가 되지만 그곳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벌이는 거리는 출발과 도착의 경로에서 정해진 노선을 교란시킬 위험을 부담한다. 말하자면, 편지의 형식이 가리키는 ‘우편-공간’은 시작점과 도착점 가운데에 놓인 도달 실패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이민선과 이신애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듯한 지금의 환경, 입력과 출력 사이에 강박적으로 삭제되는 중간지점을 짚어낸다. 이들은 무수한 과정이 삭제된 것처럼 보이는 멸균된 풍경을 가시화하며, 오늘 도착해야 할 어제의 편지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각주]
* Geoffrey Bennington, “An enterprise that is doomed to failure,” Love in the Post, Eds. Joanna Callaghan and Martin Mcquillan, London: Rowman and Littlefield, 2014, p. 132  민승기, “재로 남아 저항하는 편지들 - 데리다의 『우편엽서』”, 한국 비교문학회, 비교문학 74권0호, p. 73 재인용



* <너가~ 내가 되어볼게, 하나 둘 셋 얍! ★> 전시 전경 2022 중간지점 이미지 제공: 중간지점 사진: 고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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