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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6, Mar 2022

대지의 시간

2021.11.25 - 2022.3.2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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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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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생태적 태도를 실천하기


코로나 19 발발 이후 가장 시사적인 쟁점 중 하나는 생태와 환경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인류세’가 유행 담론으로 회자되긴 했지만, 디지털이나 자동화 같은 기술중심적 쟁점이 미래 담론으로 더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2020년 이후 국공립미술관에서 앞다퉈 열린 생태 주제의 전시들은 이 문제가 일상 속으로 훨씬 깊이 파고들었음을 암시한다.* <대지의 시간>은 코로나 이후 생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기획전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기획전들이 꽤 많았던 만큼 관련 전시들과의 비교가 <대지의 시간>의 차별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시가 표방하는 주제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공생과 연결, 탈인간중심주의, 공진화 등은 페미니즘이나 신유물론 등 생태 관련 주요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개념으로, <이토록 아름다운>이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등 동일 주제의 다른 기획전들과 원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차별성은 이론적 설정이 아닌 개념의 적용 범위와 작업 선정에 있다. 예를 들어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나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의 경우 주제의 적용과 대상 선정에 있어 비엔날레형 전시에 가깝다. 고사목이나 멸종 위기의 산양 박제, 건설 산업의 생애 주기, 플라스틱 폐기물 등 미술 범주를 벗어나는 대상들이 작품보다 더 많은 비중을 점유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미술 전시라기보다 기후를 주제로 한 건축전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주제의 적용은 자연 생태계부터 인공적인 건축물, 물질 문명의 체제 일반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역시 개념 적용이 넓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가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은 자원 집약적 스펙터클형 전시를 지원하는 동시대 미술관 제도에 개념적 방점이 있다. 하지만 작업 선정에 있어 환경보호 관련 공익광고 아카이브, 전통적 화조화, 야외 대지미술, 문명비판 상황주의, 감각을 대상으로 한 개념미술 등 적용 대상의 범위가 넓기에 연구형 전시라기보다 넓고 얕게 개념을 적용하는 비엔날레형 전시의 포맷을 띤다. 반면 <대지의 시간>은 철저히 미술의 관점에서 생태 개념을 소화한다. 야심차고 화려하게 판을 벌이기보다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선에서 미술 작픔 및 전시에서 생태적 태도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넓고 얕게’보다 ‘좁고 깊게’ 주제를 탐색한다.

미술로 생태적 태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적용된다. 하나는 전시 구성 즉 디스플레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 선정이다. <대지의 시간>은 모든 구성 요소가 상호 연결되어 있는 공생의 개념을 공간 조성에 반영했다. 한번 쓰고 고스란히 산업 폐기물로 남는 가벽 대신 공기를 주입한 세 가지 크기의 공을 통해 동선 및 공간을 분리하고 전시 후에 공기를 빼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산업 폐기물의 최소화는 기존의 생태 주제 전시에서도 강조된 부분이다. 1회의 전시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한국인의 1인 연간 배출량을 훌쩍 초과할 만큼 전시 제작 자체가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상황에서, 생태를 주제로 한 전시가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은 자체 모순이다.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과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모두 페인트나 시트지, 인쇄물을 최소화하거나 폐기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이면지나 모듈형 벽체를 활용하는 등 친환경적 태도를 강조했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대지의 시간>은 이런 문제의식과 실천을 공유하되 기능적 측면에 미학적 응용을 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벽과 달리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하지 못하는 공은 물리적으로 연결과 단절의 중간 상태를 창출한다. 반투명 재질은 관람객과 작품을 표면에 반사시켜 공간-관람객-작품을 한층 더 유기적으로 얽히게 만든다. 메타퍼니처로서의 공은 공간 구획이라는 기능적 목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이라는 윤리적 실천과 함께 유동성과 상호관계성이라는 전시 주제를 물리적으로 시각화한다. 이는 공간을 미학적·구조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실험이다.

디스플레이와 함께 눈에 띄는 점은 작품 선정이다. 출품작들은 매체도 다양하고 주제에 접근하는 해석 방식도 제각각이라 표면적으로 공통점이 없다. 외견상 수렴하는 경향성이 없으므로 탈인간중심주의 같은 큰 개념 외에 주제 면에서는 특별히 이론을 정교히 적용하는 측면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방점을 둔 것은 이론의 적용보다 태도다. 본 전시 참여 작가 중 외국 작가를 제외한 국내 작가 7인은 모두 해당 주제로 본격적인 신작을 제작했고, 외국 작가의 경우 운송비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구작을 제출했다. 모든 출품작은 생태 개념을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제작 방식이나 삶의 태도, 시각화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일례로 장 뤽 밀렌(Jean-Luc Mylayne)은 작업과 삶이 완벽히 일치하는 작가로, 그가 찍은 새 사진은 대상이 아닌 동등한 자연의 구성원으로 새와 나눈 순간을 공유한다.

거대한 흙덩어리를 통해 자연의 물질성과 원초적 몸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김주리의 <모습>(2021)은 제작 과정과 설치 기간 내내 호흡하며 증발하는 젖은 흙의 물성 때문에 프로세스 아트로서 작업 내부에 자연의 시간을 체현한다. 정규동의 <인과율>(2021)은 작업의 구조에서 상호작용성을 내포한다. <인과율>의 구조는 자체로는 불안정한 부재들 간의 내부 응력이 상호 의존하면서 일시적 평형상태에 이를 때 형성된다. 서동주의 <비전>(2021)은 형식과 내용의 조응을 통해 관점의 전도를 실험한다. 원형 구조물은 안구 구조에 대한 은유다. 내부에는 인간과는 다른 시각들이 투사된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눈동자에 해당하는 LED 영상은 비인간(딥러닝 프로그램)이 비인간(동물의 눈)을 대상으로 한 기계 창작이고, 망막에 해당하는 프로젝션 영상 역시 인간의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단면들이 카메라라는 기계 시각을 통해 보여진다. 기타 다른 작업들 또한 주어진 주제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성실하게 탐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의 의의는 화려한 담론도, 비엔날레형 스펙터클도 아닌, 생태 개념을 미술로서 밀도 있게 접목시키는 데 있다. 자율성은 존중하되 개념과 작업의 직조가 어느 이상 깊이를 지니도록 신중히 작업을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조율한 기획의 방향은 전통적이지만 다른 한편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에너지를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린 결과다.  

한편 중앙홀의 아카이브 전시는 본 전시에 비해 산만한 감이 크다.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을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요하고 중요하나, 물리적 시간에 비해 대상을 너무 넓게 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 자료의 희소성을 고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제시된 자료는 지나치게 빈약하고 성글다. 아카이브와 함께 제시된 작업도 시기별 주요 사조를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들이 있어 초점을 흐트러트린다. 차라리 작업을 제외하거나 이 섹션의 출품작을 본 전시와 통합시키고 아카이브를 별도로 분리하는 것이 더 정리되고 밀도가 있지 않았을까도 싶다.

예를 들어 과천의 재개발 과정을 고지도의 형식으로 기록한 정재철의 <관악청계분수령도>(2017)가 한국식 성장 지상주의의 허망함을 ‘대공원(大空圓)’으로 은유해 과천의 주요 시설물에 투사하는 장민승의 <대공원>(2021)과 연계되었다면 상호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아카이브만 보더라도 전체를 아우르기보다 시원이 되는 초기 경향에 에너지를 집중시켰으면 좋았으리라 본다. 전국광의 <수평선>(1975)을 재연한 퍼포먼스는 충분히 의미가 있기에, 이와 연계해 야투와 <겨울·대성리>전, 바깥미술회 등 1970-1980년대 생태미술의 정리로 국한시켰다면 밀도가 상승했을 것이다.

김구림, 이승택 등 1970년대 실험미술과의 관계, 자연미술과 현장미술의 용어 논쟁, 서구 대지미술과의 차이, 1980년대 다른 탈모던 소그룹과의 관계 등 연구거리가 산적하지 않은가. 시간 부족과 일차자료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라 짐작이 되지만 맥락 없이 제시된 포스터와 도록이 꿰어지지 않은 구슬처럼 느껴지는 아쉬움은 별수 없다. 그럼에도 <대지의 시간>이 어느 이상의 노력과 성실함이 간취되는 내실 있는 전시라는 점은 분명하다. 수사로만 동원된 담론이나 의미 없는 장르 융합에 대한 피로도가 극심한 상황에서, 표방한 개념을 충분히 체화해서 미술로서 유의미한 완성도를 도출해낸 것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하는 성취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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