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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1, Apr 2024

디어 바바뇨냐: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

2023.12.22 - 2024.6.16 국립아시아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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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수 홍익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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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의 시뮬레이션:
놀이공원과 미술관 방식의 하이브리드  


미디어아트는 정보 전달을 위한 기계와 전자 기술을 기반으로 하므로 그 역사의 시작부터 예술가들은 전자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과 새로운 시각 환경을 구성하고자 했다. 특히 초기 비디오 예술가들은 사이버네틱스와 정보이론 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비디오라는 매체를 인간과 기술이 협력하고 통합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다. 스탠 밴더비크(Stan VanDerBeek)는 <무비-드롬(Movie-Drome)>(1964-1965)에서 돔 형의 공간 내부에 비디오 이미지를 투사해 전자 기술로 연결된 세계가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고 우리는 그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몰입을 경험하게 됨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전자 초고속도로: 미국대륙(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1995)에서 네온사인 선으로 구획된 미국 각 주의 영역을 점멸하는 비디오 화면으로 채워 초고속 정보통신망으로 연결된 세계의 상을 제시한다. 이 두 예술가의 작품은 인간의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의 발명이 확장·연결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인간의 전 지구적인 세상에 대한 확장과 연결의 욕망은 대항해 시대, 증기기관과 전신전화의 시대, 전자기술과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다. <디어 바바뇨냐: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는 초기 비디오아트에서 보였던 연결과 소통의 열망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밖으로의 탐험과 확장, 그 과정에서의 만남과 교류 등을 주제로 거대한 항해 시뮬레이션 공간을 제공한다.


대항해의 여정에 기착하게 되는 이국적인 항구들에 대한 경험은 상호작용적인 인터미디어 설치작품에서 후각과 시각, 신체적인 개입 등을 통해 이뤄진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형상화한 전시공간에 들어선 관람객은 뱃머리부터 시작해 선미까지 섬들을 선회하는 배의 항로처럼 S자로 이어진 관람 안내 화살표를 따라 움직인다. 그 과정에 오마 스페이스의 <황금빛 여정>(2023), 송창애의 <Water Odyssey: 물길>(2023), 박근호(참새)의 <무역감정> (2023)을 차례대로 만난다.



송창애 <WATER ODYSSEY: 물길> 2023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맵핑, 사운드, 아카이빙, 
핸드 트래킹, 절차적 이미지 생성 ø560×1,000cm



각 작품은 세 곳의 기항지라 할 수 있다. 전시기획자는 세 작품을 순서대로 동남아 항로에 위치한 세 도시와 연결한다. 인도 서남부 켈랄라주에 위치한 코치는 후추의 원산지이자 향신료 교역지였고, 말레이시아 서남주의 말라카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최단 항로에 위치하여 혼합문화의 배양지였다. 중국 남동부의 취안저우는 서구 대항해시대 이전에 동아시아의 서쪽으로의 항해원정과 동서교류를 대표하는 무역항으로 선택됐다. 이들 항구도시에 대응해 각 작품은 관람객이 몸을 사용해 상호작용하도록 한다. 각각 향신료의 냄새, 달 위에 몸짓으로 그리는 생명체, 선택한 무역품 상자를 놓으면 켜지는 거대한 빛기둥으로 항로의 세 도시를 관람객에게 소개한다.


세 작품과 더불어 각 작품 구역 도입부에 도시의 역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화면과 문화적 유산을 소재로 한 간단한 상호작용적 게임이 설치됐다. 이 설치물들은 대중을 위해 전시의 내용과 목적을 분명하게 하려 고심한 기획자의 배려일까? 이국적인 각 기항지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관람객에게 작품에 관한 인지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고 경험에 대한 해석의 방향을 제시한 듯 보인다. 다만 문제는 이 가이드가 예술가들에 의해 제안된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주해로서 부가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전시의 성격을 놀이공원과 미술 전시의 하이브리드로 규정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와 설치의 결합이 종종 가져올 수 있는 예상된 결과를 잘 보여주며, 동시에 대규모 미디어아트의 창작과 전시와 관련된 주요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 문제는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업과 경험 공간으로의 미술 전시장의 전환이다.


미디어아트는 장치의 운용과 커스터마이징 측면에서 기술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초기 비디오아트에서부터 능숙하게 미디어를 사용하기 위한 예술가와 전문기술자 간의 협업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번 전시 역시 각 작품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전시의 기획과 설치 과정에서 전문기술인력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특히 전시 작품과 함께 부여된 다큐멘터리와 상호작용 게임, 전시공간을 대양을 항해하는 배로 바꾸기 위한 구조물과 바다를 보여주는 거대한 스크린 등은 전문 협력업체가 제안하고 설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술전문가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창작자의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즉 전시에 참여하는 기획자, 예술가, 기술협력업체 중 누가 전시를 주도하는가에 따라 전시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지배하는 것은 항해를 시뮬레이션하는 환경 설치다. 그리고 그 안에 각 기항지에서의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과 각 항구도시의 역사적 기억을 보여주는 이미지 아카이브의 배치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유희적 경험과 예술적 해석 모두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다.



박근호(참새) <무역감정> 2023 
크리스털 비즈, 철 프레임, 모터, LED
 ø600×240cm



경험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관은 오락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관광 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과제를 지고 가능한 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여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기획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진다. 기획자는 여러 주체들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적절히 분배하고 그 경중을 잘 조정해 전시를 의도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창작자인 예술가를 전시에 어떻게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어떤 작품을 의뢰할 것인가, 전문기술자와 협력업체에 어떤 과제를 부여해 어느 정도로 전시의 예술적, 경험적 측면에 개입하도록 할 것인가, 관람객에게 어떻게 하면 오락적 경험을 뛰어넘는 예술적, 미적인 경험과 해석에 이르도록 할 것인가와 같은 과제들이 기획자 앞에 놓여 있다.


<디어 바바뇨냐>전은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의 전시다. 그의 의도를 전문기술자와 예술가가 완성하고 있다. 전시설명 자료에서 융복합예술 전시가 아닌 “융복합콘텐츠 전시”라 명명하는 것을 보면, 기획자가 전시 주체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두고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이 용어는 오락적 경험이 클 수밖에 없는 전시임을 드러내고 있다. 관람객은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능동적인 참여자이기도 하면서 놀이기구에 몸을 맡기고 있는 수동적인 참여자이기도 하다.


미디어아트 전시가 포함하는 상호작용적 작품과 몰입적인 환경은 기획자와 관람객이 처한 딜레마를 심화시킨다. 이와 관련해 가능한 해법은 백남준의 생각으로부터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은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1969/1972)를 개발하며 쓴 글에서 세 가지로 분류된 예술 주체들이 미디어아트를 통해 융합될 수 있음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창작자(능동적 송신자), 관람객(수동적 수신자), 비평가(심판 또는 매개자)로 구분된 기존의 예술 관여 주체들이 각각의 역할이 모호해지면서 융합될 수 있다.*



송창애 <WATER ODYSSEY: 물길> 2023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맵핑, 사운드, 아카이빙, 
핸드 트래킹, 절차적 이미지 생성 ø560×1,000cm



여기서 비평가의 위치에 전시기획자가 들어갈 수 있고, 창작자에 전문기술자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에서 백남준이 말하는 세 역할의 융합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플럭서스 예술가로서 그는 예술과 삶 사이의 구분선을 배타적으로 긋지는 않는다. 백남준이 기대한 예술 주체의 융합은 비디오 신시사이저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장치가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고, 오늘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는 그런 조건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을 무감각하게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오락 경험에 예술적 해석이 덧붙여질 때 예술적 주체로의 전환이 일어나는데, 이는 전시가 제공하는 특별한 계기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시는 예술 주체 누구에 의해서라도 제안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이끄는 역할은 매개자인 기획자가 수행해야 할 일이다.  


[각주]
* Nam June Paik, “Video Synthesizer Plus,” Radical Software 2 (1970), p. 25



* 오마 스페이스 <황금빛 여정> 2023 향신료, 재, 삼베 원단, 영상, 음악 ø240×1,0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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