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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5, Oct 2023

김범_바위가 되는 법

2023.7.27 - 2023.12.3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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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현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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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만이 새롭게 보는 것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 중에 김범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김범의 작품을 본 적 없는 이는 꽤 많을 것이다. 김범의 영향을 빼놓고는 지금의 한국미술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임에도, 그의 작품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1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리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1990년대 초의 작품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30년에 가까운 작품을 아우르면서 다각도에서 김범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김범은 1990년대 작가라는 인상이 강하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국미술이 급변하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고, 이전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술을 전개한 작가로 깊이 각인되어 있기에 그 시대와 그를 떼어내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특히 김범의 작품은 ‘포스트 개념미술’이라고 불리며 새로운 감수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임신한 망치>(1995), <기도하는 통닭>(1994) 등 간결하고 단순한 구조로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를 전달하는 그의 작품들은 ‘개념적’인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전의 미술에는 결여된 미학적 완결성을 갖추면서도, 당시의 감각적 미술과는 다르게 언어와 개념에 기반한 작품이라고 여겨진 것이다. 그의 작품의 많은 부분이 그 이전과 그 당시의 다른 미술과 비교하여 설명되고 특징 지어졌다. 그렇다면 2023년, 우리는 김범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미술 내적으로는 매체와 주제가 훨씬 더 다양해진 시대며, 미술 외적으로는 새로운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김범의 소박하고 간결한 작품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 2009
청사진 98×68cm  © 김범 매일홀딩스 소장



‘물질적’이고 ‘개념적’인 미술

리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20여 년에 걸친 작품을 펼쳐놓지만, 다른 대규모 회고전이 그러하듯이 키워드로 섹션을 구분하지도, 연대순으로 작품을 배열하지도 않는다. 김범의 작품에 관해 이미 알려진 어떤 주제들을 엮어서 그의 작품을 어떻게 보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김범의 작품은 광범위하고 다양하지만 어떤 범주로 묶어내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주제나 키워드로 작품을 묶는 대신에 작품 자체의 본성을 따라가듯이 작품을 흩어놓기를 택한다. 캔버스를 활용한 회화 작업, 사물처럼 제작한 조각 작업, 레디메이드 사물을 사용한 설치 작업 등이 적절한 리듬으로 번갈아 등장하며 김범의 작품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각각의 작품의 개별적 성격에 훨씬 집중하게 함으로써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점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개별 작품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의 활용과 배치는 김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소박하고 간결한 미적 표현을 더욱 부각한다. 캔버스에 일일이 수를 놓아 만든 작품(<벽돌 벽 #1>(1994))이나 지점토에 볼펜으로 무늬를 그려 만든 백자(<백자청화스피노사우르스문호>(2004))는 완벽한 기술이나 마감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손으로 만들어졌음을 드러낸다. 사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표현한 <무제(제조 #1 내부/외부)>(2002)는 종이로 만든 사자의 윤곽 뒤에 나무 각목과 튜브, 분무기, 깡통, 비닐봉투 등을 얼기설기 엮어서 사자의 신체 ‘내부’를 표현한다. 서툰 솜씨로 가까스로 세워놓은 것 같은 형태의 사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20여 년째 서 있다.


이처럼 김범의 단순하고 서툴러 보이는 표현은 품이 덜 들었거나 대충 한 것 같다는 인상을 주지만, 오히려 그러한 표현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상기하게 한다. 낱장의 종이에 연필로 그려 벽에 붙인 드로잉은 긴 시간 동안 그 연약한 상태 그대로 유지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더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점부터 결코 대체되지 않는 레디메이드 사물들은 그가 개념미술 작가라는 점을 의아하게 만든다. 물질이 아닌 개념이 중요한 ‘개념미술’이라면 그 사물들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을 텐데, 작가는 특정한 형태의 사물을 집요하게 고집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전시는 김범의 작품을 ‘개념미술’이라고 범주화하면서 간과된 점을 들춰낸다. 의도된 어설픔과 소박한 재료가 실은 김범의 작품 세계에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요소임이 매우 중요하게 떠오른다. 그의 작품이 물질을 배제하는 것으로서 ‘개념미술’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어떤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감각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아주 간단한 구조를 단순하게 표현함으로써 작품이 담고자 하는 복잡한 개념과의 낙차를 발생시키고 기대와 표현이 어긋나게 하면서 유머러스한 통찰의 순간을 만든다. 그러므로 단순히 ‘개념미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적, 물질적 측면이 작업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즉 그러한 의도된 어설픈 표현이야말로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유를 내재한 ‘개념적’ 미술을 완성시키는 물질인 것이다.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2010 일상적인 사물, 목재 의자, 목재 탁자 
형광등을 켠 칠판, TV 모니터에 싱글채널 비디오 
21분 8초 가변 크기 이미지 제공: 리움미술관
 © 김범 사진: 이의록, 최요한 개인 소장



이미지의 시대에 이미지를 인식하기

김범의 여러 작품을 아우르는 문제 중 하나는 이미지와 인식의 관계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설명되듯이 김범은 이미지와 인식의 문제를 다양한 층위에서 제시해 왔다. 개가 뚫고 나온 흔적만 남은 벽(<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으로 보이지 않는 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상징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만화적으로 그린 얇고 평평한 종이를 붙인 벽으로부터 이미지라는 가상의 세계를 뚫고 현실로 뛰쳐나온, 진짜 살아있는 개를 상상하게 한다. 혹은 자동차 열쇠의 단면으로 전체 열쇠를 떠올리게 하거나(<자동차 열쇠 #3>(2001)), 발자국만으로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서 있는 사람 #2>(1995)) 등 부분적인 이미지로 전체 대상을 인식하게 하기도 한다.


또는 하늘을 그리는 대신 ‘하늘’을 텍스트로 적어서 표현하거나(<풍경 #1>(1995)), 낯선 사람을 의사에게 데려가는 상황을 적은 드로잉(<착한 사마리아 사람 연습>(1995))은 텍스트만으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적으로 심상을 제시한다. 한편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2002) 같은 작품은 대상의 이미지와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의 관념 사이의 틈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이미지와 인식의 문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김범의 작품에 등장한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미술사의 맥락에서, 당대 미디어 환경의 맥락에서, 미술과 문학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제기해 왔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가 일반화된 시대에 또 다른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이 된 시대에, 이미지와 인식의 다양한 관계를 다루는 김범의 작품은 오늘날의 이미지를 독해하는 우리의 태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볼거리> 2010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분 7초 이미지 제공: 리움미술관 
© 김범 사진: 이의록, 최요한



한편 일상의 사물을 교실에 앉혀놓고 가르치는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2010), 텔레비전 뉴스를 편집하여 권태로운 일상을 이야기하는 <무제(뉴스)>(2002) 같은 작품은 여전히 권위와 통제가 작동하는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서도 여러 생각할 지점을 제공한다.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2009), <전도(顚倒) 학교 설계안>(2009) 같은 작품들은 사회의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구조를 비유하는데, 이런 작품들 또한 오늘날의 시점에서 새롭게 독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 김범의 작품이 시대에 따라 세부를 변주하며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가 지닌 보편적 지점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유를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구조로 표현함에 따라 김범의 작품은 오히려 계속해서 새롭게 읽히고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그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답을 내는 순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어떤 틀이나 관점을 강요하지 않으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의미를 일으킨다. <바위가 되는 법>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의미를 찾아보기를 기대하는 전시다. 김범의 작품이 본래 그러하듯이, 어떤 방향이나 관점으로 김범을 가두기를 거부하고, 지금 자신의 눈으로 김범을 마주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내기를 바라는 전시다. 그러므로 이렇게 긴 리뷰가 무색하게, 각자가 각자의 눈으로 의미를 찾기를 기다리는 전시다.

어떤 작품은 시차를 두고 볼 때 진정으로 그 의미가 드러난다. ‘1990년대 작가’로 한정하기에 그의 작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새롭게 현재화될 수 있는 의미가 무한하다. 김범의 작품이 막 세상에 나왔을 때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의미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리움미술관 © 김범 사진: 이의록,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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