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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0, Mar 2024

개방형 수장고: 다시, 원더룸의 문을 열다

Open Storage in the Museum

● 기획 편집부 ● 진행 김미혜 수석기자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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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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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수장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기관의 정체성이자 숨겨진 보물(Hidden Treasure)로 건물 가장 깊숙한 곳, 보존을 최우선 가치로 수장돼오던 소장품이 개방형 수장고(Open Storage), 보이는 수장고(Visible Storage)의 형태로 대중을 가까이서 맞이하고 있는 것. 이러한 수장형 전시 시스템은 1970년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소속 인류학 박물관(Museum of Anthropology)이 처음 시도한 이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엔 굳건한 기치가 있다. 소장품의 진정한 주인은 ‘대중’이며 이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뮤지엄 전시는 유럽 귀족들이 자신이 수집한 진귀하고 희귀한 물건을 자택에서 선보였던 것에서 출발한다. 특히 16-17세기 다른 대륙을 탐험하면서 수집의 영역은 보다 확대되었고, 작은 조각상부터 자연사 표본, 예술작품, 심지어 종교적 유물까지 방과 살롱에 내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집가들의 내밀하고도 사적인 시각이 투영된 공간은 확장을 거듭하며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즉 원더룸(Wonder Rooms), 분더캄머(Wunderkammer)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한편 수집품이 늘어나자 백과사전 형태로 무질서하게 배열돼있던 컬렉션을 크기, 재료, 유사성 등을 기준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는데, 이것이 오늘날 수장고와 연결된다. 이후 18세기 뮤지엄의 공공화,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 증가로 기관은 소장품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수장고에 작품을 보관하고 이를 나누어 공개하는 방식을 보편화해나갔다. 그렇다면 뮤지엄이 그간 유지했던 형태를 벗어나 다시금 원더룸의 문을 개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는 앞서 언급한 뮤지엄 공공화와 그로 말미암은 존재의 의미, 정의의 변화에 대한 고찰의 결과다.

오늘날의 뮤지엄은 공공재로서 인류의 유산을 수집·조사·연구하는 것을 넘어 이를 활용·접근하는 것에 집중하는데, 이는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ICOM)가 지난 2022년 15년 만에 새롭게 승인한 뮤지엄에 대한 정의에서도 확인된다. “뮤지엄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 전시해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A museum is a not-for-profit, permanent institution in the service of society that researches, collects, conserves, interprets and exhibits tangible and intangible heritage. Open to the public, accessible and inclusive, museums foster diversity and sustainability. They operate and communicate ethically, professionally and with the participation of communities, offering varied experiences for education, enjoyment, reflection and knowledge sharing).”



Maurizio Cattelan <Het mannetje>
 in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Photo: Aad Hoogendoorn



개방형 수장고, 눈으로 관람하는 이 호기심의 캐비닛은 컬렉션을 가시화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관·보존·활용하는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뮤지엄의 관점이 더 이상 소장품이 아닌 관람자 중심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수집·보존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공유할 것인지가 중요한 개념으로 확립된 것이다. 그럼 대중이 수장품의 진정한 주인임을 상기시키는 이 개방형 수장고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대표적으로 지난 2021년 11월 개관한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 수장고(Depot Boijmans Van Beuningen, 이하 Depot)가 있다. 세계 최초로 소장품에 대중이 완전히 접근 가능토록 설계된 Depot는 수장고 뮤지엄 그 자체다. 통상 컬렉션의 10% 정도를 전시하고 나머지를 보관하는 기관들과 달리 Depot 건물의 99%를 관람객에게 공개해 약 15만 점의 소장품은 물론 작품의 보존 및 복원, 포장, 운송 등의 과정 전반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총 1,664개의 글래스 패널로 제작된 투명한 건물 파사드로 들어가면 재료, 크기, 규모에 따라 분류된 소장품이 아트리움에 펼쳐져 있다.



Kunst in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Photo: Ossip van Duivenbode



특수 제작된 유리 사이에 끼워진 작품의 앞, 옆, 뒤 모두를 감상할 수 있고, 건물 중앙에 설치된 여러 갈래로 나뉜 계단이 소장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춘다. 초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인상파, 현대미술 등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즐비하며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등의 작업도 볼 수 있다. 모든 층에 수장고에 대한 정보가 담긴 터치스크린이 비치돼있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작품에 대한 정보도 확인 가능하다. 예술적 사조나 시대적 배경이 아닌 온도와 습도 등 기후 요건에 따라 작품을 보관한다는 점 역시 특징적이다.

미술관 측은 이야기한다. “Depot는 엔진룸과 같다. 작품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문서화하고, 복원하고, 연구하는 모든 과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은 미술사적 관점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해석의 장소이자 대중에게 가치 있는 작품을 관리하는 곳이다. 그리고 Depot는 이것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설계부터 개관까지 화제를 모은 Depot는 건축적 랜드마크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고 뮤지엄 수장고 유형론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Photo: Ossip van Duivenbode



그런가 하면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V&A)은 오는 2025년 봄, 스트랫포드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Queen Elizabeth Olympic Park)에 V&A 이스트 뮤지엄(V&A East Museum)과 개방형 수장고 스토어하우스(Storehouse)를 개관한다. 당초 2023년 오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여파 그리고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대규모 컬렉션 및 아카이브 인수로 연기됐다. 스토어하우스 설계는 미국 뉴욕 하이라인(The High Line),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확장, 더브로드(The Broad) 등을 담당했던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Diller Scofidio + Renfro)가 맡는다.



Materials from Vivien Leigh’s Archive,
prepared ready to move to V&A East
 Storehouse Courtesy of V&A © Jamie Stoker



작품 25만 점, 책 35만 권, 아카이브 1,000점을 아우르는 스토어하우스는 1만 6,000㎡ 규모로 시간을 가로지르는 독창적인 여행을 경험케 할 예정. 고대 이집트 직물화 같이 오래된 유물부터 17세기 도예가 루시 리에(Lucie Rie)가 만든 정교한 단추 같이 작은 작품,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조각 <Sleeping Nymph>(1821-1824)까지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는 Depot와 마찬가지로 소장품의 보존, 연구, 전시 전 과정을 목도케 한다. 특히 보위의 아카이브를 인수한 V&A는 스토어하우스에 데이비드 보위 센터(The David Bowie Centre for Study of Performing Arts at V&A East Storehouse)를 설립, 아카이브 8만여 점을 활용해 2016년 사망한 보위의 60년 경력을 톺는다.



Photograph of David Bowie Performing
 as The Thin White Duke on the Station
 to Station tour, 1976 © John Robert Rowlands 
and The David Bowie Archive 
Photo: John Robert Rowlands



트리스트람 헌트(Tristram Hunt) V&A 디렉터는 “베를린에서 도쿄, 런던에 이르기까지 음악, 연극, 영화, 패션, 스타일에 걸친 보위의 급진적인 혁신은 여전히 디자인과 시각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보위 센터는 5,000년의 예술 디자인 그리고 공연에 걸친 V&A의 컬렉션과 대화를 나누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피력했다. 보위가 손으로 쓴 가사, 편지, 악보, 오리지널 의상, 패션, 사진, 영화, 뮤직비디오와 세트 디자인은 물론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다. V&A는 소장품 전시뿐 아니라 팝업 디스플레이, 워크샵,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스토어하우스에서 선보일 전망이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국내 첫 개방 수장고로 미술관과 정부·미술은행 소장품을 바탕으로 형성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있고, 대전시립미술관은 2022년 열린수장고를 오픈했다. 그중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 및 활용하기 위한 개방형 수장고로, 지난 2021년 경기도 파주시에 문을 열었다.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에서 민속유물 8만 6,270건과 아카이브 자료 81만 4,581건을 옮겨왔고 맷돌, 항아리와 같은 유형의 민속유물과 사진, 음원, 영상 등 무형의 자료를 모은 국내 최대 민속자료센터로 운영 중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영상실
인터랙티브 이미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7개의 열린 수장고와 3개의 보이는 수장고, 6개의 비개방 수장고로 구성돼있다. 먼저 로비에 조성된 타워 형태의 열린 수장고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소장품에 대한 시각적 공유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유리로 된 건물 앞면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한 보존환경을 고려해 조도와 온습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토기와 석재 등의 유물을 배치했다. 전시기법을 적극 도입한 수장형 전시 공간 16수장고의 경우 대표적인 목재 유물인 소반, 떡살, 반닫이를 특화해 보관하고 있다.

이어 외부 유리창을 통해 상시 관람이 가능한 보이는 수장고는 보다 많은 소장품을 격납할 수 있도록 수장률을 고려했다. 3수장고에는 금속 재질의 1만 5,942건 4만 8,064점이, 8수장고에는 나무와 초제 재질의 1만 1,373건 1만 3,339점이 격납돼있다. 또한 새로 들어오는 소장품의 실측 및 등록 업무를 진행하는 7수장고는 소장품 크기를 실측하고 번호를 기재하는 등의 소장품 등록 작업과 수장고 격납을 위해 유물을 포장하는 작업 등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개방 수장고: 전뢰진 조각·드로잉> 
전시 전경 2023-2024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이외 온습도 변화에 따른 재질별 유물 상태와 보존처리 전후 상태 비교를 통한 온습도가 유물에 미치는 영향, 손상된 유물 보존처리와 보존환경 관리 등을 간접 체험하는 열린보존과학실이 있고, 박물관 수장고와 보존환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된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 국립민속박물관 등록 소장품(10만 8,743건, 16만 9,167점)을 능동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미디어 공간 영상실도 있다. 이처럼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유무형의 민속자료를 아우르는 종합 자료센터로서의 역할 강화를 위시하며 관람자 스스로 개인의 필요나 목적에 따라 자료의 주체적인 이용자가 되기를 유도한다.

끝으로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소장품과 미술품 복원과정까지 100% 공개하는 국내 첫 열린 미술관형 수장고다. 서울 서초구 옛 정보사 부지에 대지면적 5,800㎡, 연면적 1만 9,500㎡, 조성비(공공기여비) 1,260억을 투입해 오는 2028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 중이며, 공모와 심사를 통해 헤르조그 앤 드뫼롱(Herzog & de Meuron)의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뫼롱(Pierre de Meuron)이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뫼롱은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 중국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National Stadium)을 비롯 우리나라 송은 등을 설계한 경력이 있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중앙 아트리움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외관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최종 선정된 이들의 작품은 지하 2-지상 7층 규모로 서리풀 언덕, 서초대로와 조화를 이루고 대지에서 채굴한 암석을 이용한 각기 다른 모양의 4개의 큰 매스 위에 건물을 올린 구조다. 1층 매스 사이 공간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 4개 정원으로 조성해 접근성을 높이고 건축물의 매력을 더한다. 내부도 독특하다. 중심부를 고깔 형태로 개방해 1층에서도 각층 전시품 일부를 볼 수 있고, 계단형 강당은 서리풀 언덕 쪽으로 무대를 설치해 자연 속 공연장을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Vitrines in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Photo: Aad Hoogendoorn



심사위원들은 선정 이유에 대해 “대지와 주변상황을 잘 포착하고 이를 단순하고 우아한 기하학적 형태로 풀어냈다”며 “특히 1층에서 상부로 이동하면서 보존조건에 따라 정교하게 분류한 수장품을 방문자가 로비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발견해가는 방식이 기존 박물관, 미술관과 차별되는 독창적인 개방형 수장고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기부채납 건축물의 첫 설계 공모사례가 될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가 민간과 공공의 상생을 이끌고 혁신과 독창성이 실현되는 문화 아이콘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처럼 개방형 수장고는 전형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본질적이고 개괄적인 존재의 의의를 끊임없이 재정의하려는 뮤지엄의 노력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대중에 소장품 접근권을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보다 큰 도약을 이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소장품 관리와 방문객 접근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소장품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해석적이고 내재적인 질문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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