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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

나주의 매력 넘실대는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흐름, 열 개의 탄성 10.20-11.30 나주 지역 내 공공장소 10곳

● 기획 · 진행 편집부 ● 글 성수영 『한국경제신문』기자

김병호 '3명의 신' 2021 골드 스테인리스, 스테인리스에 우레탄 도색, 인공연못, 먹물 500×500×2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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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한국경제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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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곰탕, 홍어만큼 맛있다!

‘나주’ 하면 당장 떠오르는 건 배, 곰탕, 홍어 등 특산물 몇 개. 지난 몇 년 새 근처에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여럿 들어왔고 KTX도 정차하게 된 곳. 하지만 전라남도 5개 도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은, 평범한 지방 도시. 외부인이 보는 나주의 이미지는 이 정도다.



민성홍 <Drift_비정형> 2022-2023 
천에 피그먼트, 레이스, 금속링 가변설치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나주의 과거가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전라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 고려 현종 때(1018년)부터 나주는 호남 지방을 대표하는 최고의 도시 중 하나였다. 전라도라는 이름부터가 전주와 나주에서 한 글자씩 떼서 붙인 것이다. 이 같은 ‘호남 맹주 도시’로서의 위상이 불과 100년 전 광주와 목포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무려 900여 년간 유지됐다. 도시 곳곳에 있는 문화재들은 이처럼 오랜 ‘풍요의 역사’를 증명한다.

나주시 원도심 일대의 문화재 등 공공장소 열 곳에서 열리는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은 이 같은 나주의 매력적인 역사와 문화재를 설치미술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지역미술제다. 올해 처음으로 열렸지만, ‘지역미술제의 정석’으로 불러도 될 만큼 짜임새가 탄탄하고 볼거리가 풍부하다.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의 매력과 볼거리를 정리했다.



이이남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혼합재료, 비디오, 컬러, 사운드 9분 13초
가변 크기



나주에서만 즐기는 ‘지역밀착형 설치미술’

전국에 지역미술제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사실상 난립 수준이다. 하지만 이 중 갈만한 곳은 거의 없다. 주제와 담론만 거창할 뿐,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을 뻔한 큐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곳이 대부분이어서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부족 문제나 정치조직으로 변질된 지역 미술 단체의 “우리 작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김이 작용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더 큰 문제는 작품이나 전시가 지역과 별반 관련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전시와 작품 수준이 서울보다 못한 데다 그 지역만의 특별한 매력도 없는데 구경하려면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대부분의 지역미술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나오며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볼 필요 없었다”고 말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강용면 <온고지신> 2022 
철, 에폭시 가변설치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는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지역밀착’을 추구했다. 백종옥 감독은 “지역의 역사 및 문화재와 함께 예술을 살펴볼 수 있도록 관람객들을 유도한다”며 “역사적 장소마다 미술 작품을 설치해 각 장소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고 지금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구성했다”고 강조한다.

올해 행사의 제목부터가 영산강과 지역 열 개 장소를 의미하는 ‘흐름, 열개의 탄성’이다. 전시는 역사·문화적인 스토리를 지닌 나주의 공공장소 열 곳에서 열린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넘어 1970년대까지 현대를 아우르는 유구한 역사를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장소로 선정했으며 각각의 역사적 장소에는 맥락이 통하는 작품을 설치했다. 백 감독은 “개성 있는 작품들이 장소와 함께 공명하며 탄성을 울리게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김경민 <만남> 2021 청동에 아크릴릭, 
스테인리스 스틸 155×160x100cm



주요 작품은 반경 3km 남짓 되는 원도심 지역에 배치돼 있다. 작가 15명의 작품 16점이 나왔다. 이들 중 대부분(11명)이 한국 작가고 베트남 작가가 2명, 일본과 독일 작가가 각각 1명씩 있다. 전동인력거를 타고 둘러보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걸어도 좋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도 거리가 짧고 언덕이 거의 없어 걷기 어렵지 않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나주버스터미널과 동점문 근처에 있는 2,700평 규모의 통조림 공장터, 구(舊) 화남산업 공장이다. 장소에 얽힌 이야기부터 특별하다. 일본인 다케나카 신타로(竹中新太郞)가 설립한 이 공장은 과거 한반도 통조림 산업의 중심지였다. 주요 생산 품목은 쇠고기 통조림. 하루 300마리에 달하는 늙은 소가 여기서 도축된 후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전선의 병사들에게 보급됐다. 아무리 공장이라도 너무 많이 죽였다 싶었는지, 일본인 사업가는 가축(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공장 앞에 ‘축혼비(畜魂碑)’를 세웠다. 지금도 그 비석이 공장 안에 남아 있다.



이상용 <운명> (부분)
 2017 철, 돌 가변설치



곰탕이 나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도 이 영향이 컸다. 공장 측은 통조림 생산을 하고 나온 소의 부속을 조선인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겼다. 조선인들은 이를 최대한 맛있게 먹기 위해 오랫동안 끓여 먹었다. 해방 후 한국인 사업가에게 불하된 이곳은 황도 등 과일과 김치 통조림 등을 함께 생산하며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일을 했다. 그러다 공장이 이전했고, 지금까지 폐건물로 남아 있다.

나주시는 근대유산 산업시설인 이곳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이번 미술제에서도 작가 3명의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베트남 작가 하이 뚜(Hai Tu)가 그린 벽화. 눈물을 흘리는 듯한 소의 도상과 소나무, 달, 구름 등 도가적인 소재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인간들의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소들을 애도하는 그림이다.



김계현 <사람들> 2023 ABS 플라스틱 
300×120×50cm; <앵무새 케이지> 2023
 ABS 플라스틱 300×420×120cm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민성홍의 <Drift_비정형>(2022-2023)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을 주제로 설치작품을 만드는 중견작가다. 전시 장소부터가 일종의 버려진 곳인 만큼, 이번 출품작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작가는 “버려진 산수화들의 이미지를 천에 인쇄하고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다”며 “산수화 속에 묘사된 이상향을 통해 무수히 많은 소들이 죽어간 폐허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꿈꾼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피력한다.

옆 건물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 <책 읽어주는 소녀>(2022)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봄 직한 책 읽는 소녀 조각 뒤로 대형 영상이 상영되는 형태의 작품이다. 영상은 산수화에서 차용한 듯한 풍경을 비롯해 이상향과 전쟁의 이미지가 함께 뒤섞여 다소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전투 식량을 만드는 공간이었던 공장터에서 평화를 염원하고, 이 공간을 문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조은필 <브링 더 스페이스-영산강>
 2023 FRP, 스테인리스 스틸 가변설치



역사와 함께 느끼는 예술의 향기


보다 보면 전시 장소에 얽힌 역사가 궁금해지는 작품이 많다. 금성관에 있는 <온고지신>(2022)부터가 그렇다. 금성관은 조선 시대 나주목의 손님이 묵는 곳으로, 오늘날로 치면 영빈관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그러다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건물 일부를 개조해서 군청 청사로 사용됐다가 1963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와 복원을 거쳤다. 오늘날 이곳은 나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곰탕 거리 맞은편에 위치한 ‘포토 스팟’이다.

강용면의 <온고지신>은 금성관 마당에 있다. 철로 만든 바구니로 밥그릇을, 노랗고 파란 공으로 밥알과 밥 덩이들을 표현했다. 백 감독은 “손님들에게 밥을 드린다는 의미”라고 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객사였던 영빈관의 역사에 맞춰, 나주와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에 온 귀한 손님들을 환영하고 잘 대접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배치한 작품인 셈이다.



이레네 안톤(Irene Anton)
 <Intervention invading network - net no. 67>
 2023 스타킹, 스티로폼공 가변 크기



구 나주역사 앞에 설치된 김병호의 <3명의 신>(2021)도 인상적이다. 구 나주역은 1929년 나주학생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댕기머리 사건’이 일어난 곳. 댕기머리 사건이란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면서 희롱하자 나주 학생이 주먹을 날리면서 학생 독립운동이 시작된 일을 말한다. 나주역사 앞에는 먹물이 채워진 인공연못 위로 3개의 도상이 배치돼있다. 작가는 “독립을 비롯해 자신이 ‘신’처럼 추구하는 가치를 갖고 있는 세 명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각자의 지향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주정미소 역시 댕기머리 사건과 관련된 장소다. 나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인 박준채의 형이 이곳을 운영했는데,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회의했던 장소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일종의 공장식 대형 카페를 연상케 하는 전시관이 됐다. 이곳에 출품된 4명 작가의 작품 역시 나주정미소의 역사와 관련돼 있다. 재활용 스타킹으로 공간을 채우는 독일의 설치 작가 이레네 안톤(Irene Anton)의 작품은 마치 뇌 신경세포들이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듯 배치돼있다.



남지형 <축적된 꽃잎> 2023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페인트 120×210×100cm



점조직처럼 운영된 학생 독립운동의 양상과 함께 사건의 발단이 된 댕기머리 그 자체가 연상된다. 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 나오코 토사(Naoko Tosa)는 급속 냉동한 꽃이 부서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고속카메라로 포착한 작품을 내놨다. 영상 속 꽃잎은 천천히 흩어지는데, 연약한 이들이 자신을 산화해서 독립운동과 같은 거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을 담았다.

반면 베트남 작가 응우옌 코이(Nguyen Khoi)는 이 장소가 ‘리모델링’된 곳이라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의 설치 작품에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기계인 사이보그 굴삭기 생명체가 움직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원래는 베트남 호찌민시 곳곳에서 사용되는 굴삭기를 모티브로 문화재 파괴와 국토 개발의 양면을 다뤘지만, 일제강점기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나주시가 겪은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면 버려진 일상의 물건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상용은 좀 더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운명>을 내놨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지닌 나주정미소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운명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하이 뚜(Hai Tu) 2023
<Bovine Spirits at Rest> 
벽화 400×700cm



나빌레라문화센터와 박일정의 <만화방창(萬化方暢)>(2022)은 나주의 잠업 중심지로서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나주는 삼한 시대부터 비단으로 유명했고, 일제강점기에서도 잠업의 중심지였다. 나빌레라문화센터 자리에 있었던 잠사공장이 그 핵심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잠사공장이 문을 닫고 도심이 공동화되면서 이곳은 나주 청소년들의 우범지대가 됐다. 학생들이 술·담배를 하다 불이 난 적도 있었다.

문화 예술 공간인 나빌레라문화센터는 2017년 개관했다. 원도심을 새롭게 재생시키려는 나주시의 노력과 의지가 들어간 곳으로, 나주의 전통과 매력을 알리자는 목표 면에서는 이번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의 취지와도 일부 일치한다. 박일정은 이런 염원을 담아 철골 구조 위 도자기를 붙인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은 폐 산업시설이 문화시설로 다시 활짝 피어나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응우옌 코이(Nguyen Khoi) 2019
 <Metronome>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4분 57초



통통 튀는 작품들로 대중성까지

지역미술제는 기본적으로 미술 전시다. 하지만 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매력을 증명해야 하고, 평소 전시를 즐겨 보지 않는 관광객들에게도 지역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김계현의 조형 작품 <앵무새 케이지>와 <사람들>은 이런 효과를 의도해 나주읍성 서쪽 문인 서성문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설치한 알록달록한 앵무새 조형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할 만큼 귀여우면서도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서성문은 1894년 동학군과 나주 수성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 끝없이 같은 말을 되뇌는 앵무새를 통해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희생되고 잊히는 익명의 사람들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나오코 토사(Naoko Tosa) <Moon Flower> 
2014-2016 비디오와 사운드 4K



나주 목사의 살림집이었던 금학헌에 설치된 엄아롱의 <이사 그리고 이사>도 마찬가지다. 금학헌은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자 하는 선비의 지조가 깃든 집’이라는 뜻. 새의 사진 등을 담은 표지판 같은 작품을 통해 이상적인 자연을 동경했던 옛 선비들의 마음과 현실의 환경 문제를 동시에 논했다고 한다.



박일정 <만화방창(萬化方暢)>
 2022 도자, 나무, 철 130×310×250cm



한국에서 가장 작품이 많은 공공미술 작가 중 한 명인 김경민의 작품 두 개도 마찬가지다. 나주 금성관에는 <만남>(2021)이, 나주 향교에는 <I love you>(2020)가 나와 있다. 각각 관람객들을 환영하는 의미, ‘수신제가’에서 강조하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의 중요성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이지만 관람객들과 지역민들을 위한 친숙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PA



엄아롱 <이사 그리고 이사>
2023 스테인리스 스틸, 철, 콘크리트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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