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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5, Oct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청주공예비엔날레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 기획 · 진행 편집부 ● 글 홍지수, 남인숙

유정혜 [숲+연가] 2023 동선,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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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공예평론가, 남인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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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인간성, 즉 사랑과 공존에 대한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어리석은 폭력과 차별, 편견에서 벗어나 서로 조화되는 밝은 이상을 꿈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이다. 올가을, 이러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한 행사가 청주와 대구에서 각각 펼쳐진다. 바로 ‘청주공예비엔날레’와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다.

먼저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를 모토로 자연과 노동, 예술적 생산이 하나로 일치되는 공예의 새로운 창의성과 가치를 조명한다. ‘사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떤 관계항을 만들고, 어디로 향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며 비엔날레는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살핀다.

그런가 하면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다양성(多樣性)과 공존(共存):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비전’을 주제로 삼았다.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해답으로써 예술을 제시하는 이번 행사는 현대 예술의 주제와 양식 전반에서 발견되는 가치, 즉 현대미술에서의 시대정신을 통해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공통의 지혜를 깨닫고 용기를 얻기를 희망한다.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 전경



Cheongju Craft Biennale 2023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 9.1-10.15 문화제조창 및 청주시 일원
okcj.org


바이오필리아(Biophilia)를 위한
공예의 질문과 해법

굵직한 전시, 행사들이 마련된 2023년 9월, 공예전시도 대거 시기를 맞춰 개막했다. 미술 현장뿐 아니라 시중 공예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실감하는 요즘, 때마침 13회째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열렸다. ‘청주공예비엔날레’는 1999년 출범했다. 청주와 비슷한 시기 태동한 공예 행사가 여럿 있었으나, 현재 국내 공예 주제 행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속적인 나아가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행사는 ‘청주공예비엔날레’다.

아트페어가 상업미술을 표방하며 예술품과 작가들의 몸값을 흥정하고 비즈니스의 몸집을 불리는 장이라면, 비엔날레는 언제나 가장 실험적인, 가장 논쟁적인 동시대 미술 표현과 담론을 소집하고 작가들의 도전과 담론의 생산을 독려한다. 그러나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첫 회부터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여타 세계 비엔날레들과는 다른 온도와 성격을 추구해왔다.

2년을 주기로 동시대 유의미한 공예표현, 최신 기술과 정보, 담론을 소개하면서도 매회 ‘공예란 무엇인가?’, ‘왜 공예는 존재해야 하는가?’, ‘공예품은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근원적이고 자성적인 질문을 멈춘 적이 없다. 초기 비엔날레는 전통, 유용, 기술, 재료 등 오랫동안 공예와 연동되어있던 키워드를 주로 소환했다. 공예의 개념, 범주, 역사, 전통/전승과 현대성의 관계 등을 차례로 점검하고 확인하던 시기였다.



토비어스 몰(Tobias Møhl) 
<네스트 보울 컬렉션>
 2012 66×130×22cm



새로운 전기는 2013년 ‘운명적 만남: mother and child’부터다. 초기 원론적, 학술적 관점에서 벗어나 공예를 예술과 기술, 전통 등 묵은 범주로부터 빼내 인문과 사회화의 장으로 확장했다. 공예가 현대 사회 속에서 예술, 디자인과 비교해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공예 실천주의 원년이다. 공예를 사회 개혁, 생명성과 인본주의 회복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도덕주의적 시각은 공예행사 및 전시에서 흔하다.

자주 인용되는 영국 미술공예운동, 일본 민예운동가들의 공예관 역시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회주의와 공리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역대 비엔날레를 회고하면 감독별로 차이와 다름이 있지만, ‘공예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문화적 원형과 찾아야 할 해법이 있다’는 생각은 이쯤 되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행사의 대전제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올해 14회를 맞는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 <사물의 지도>도 공예가 문화적 키워드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윤리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바탕이라는 생각에 동조한다. 강재영 전시 감독은 2021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와 문화역284에서 열린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공예를 통한 생명성의 회복과 실현’을 주제로 이번 전시와 유사한 기획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19년 이후 사람들은 팬데믹을 계기로 익숙한 것과의 단절과 신체와 정서의 고립을 경험했다. 반성과 회복의 시간을 가지면서 집,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리사이클링, 친환경성 등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빔 델보예(Wim Delvoye) <앵무조개(펜타)>
<리모와 클래식 플라이트 멀티 휠>
<무제(자동차 타이어)> 설치 전경



문제해결 측면에서는 과학적 접근이나 디자인이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공예에 주목했다. 이에 부응했던 시의성 전시가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공생의 도구>다. 이번 비엔날레 <사물의 지도>는 팬데믹을 넘어온 지금의 시간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공예의 눈으로 찾고 질문하고, 공예에서 해답을 찾는 시도다. 이 점에서 본전시의 바탕은 감독의 전작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어쩌면 <사물의 지도>는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확장판(extended cut)이자 심도를 높인 감독판(Director’s Cut)으로도 볼 수 있겠다.

본 전시는 유르겐 베이(Jurgen Bey)와 황란의 작품이 있는 로비에서 시작한다. 5개의 소주제로 전시 공간을 나눠 세계 각국 다양한 공예가들의 근작을 조망한다. ‘#1.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에서 감독은 생명애의 가능성을 공예의 자연 친화성과 지역, 전통에서 찾는다. 이후 다양한 재료와 가공, 제작방식을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시대 취향에 따라 바꾸며 진화해온 공예가의 재기와 공력의 진화를 차례대로 보여준다. 물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배를 타고 유람하는 놀이동산 속 세계 여행처럼, 관람객은 공예의 특성, 역사, 자산, 도전, 실천적 미래를 확인하며 기획자가 그려놓은 ‘사물의 지도’를 따라간다.

전시연출은 관람객을 관조가 아닌 전시 공간 및 작품과 일체화된 몰입으로 이끈다. 어둠과 그림자, 스팟조명, 거울, 동굴형 전시 공간 등을 동원한다. 관람객이 감동하고 설득당할 포인트를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매복해놓고 터트린다. 어둠 속을 가르는 가녀린 섬광, 그림자, 환영이 빚어낸 장엄함과 숭고가 본 전시의 시각적 특징이다. 현대미술에서 볼만한 스펙터클한 환영이 가득한 연극적 연출은 기획자가 미술관 환경 속에서 조각에 비해 왜소한 공예작품의 부피와 크기를 보완하고 관람객의 몰입과 공감도를 높이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황란 <비상하는 또다른 순간> 2023
실, 나무 패널에 핀 240×800×10cm



한편으로 최근 모더니즘 이후 화이트박스에서 블랙박스로, 다시 두 공간을 융합한 그레이박스로 이행하는 현대미술의 유행을 공예전시에서도 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블랙박스와 그레이박스는 기술 발전과 매체 확장의 변화 속에서 증가하는 뉴미디어 작품 매체의 특성을 미술관이 어떻게 수용할까 고민하며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팬데믹 이후 강화된 가상, 온라인 경험에 대한 수요, 새로운 관람 방식에 대한 기대가 코엑스 미디어파사드, 제주 빛의 벙커 등의 인기로 입증된 바 있다.

프로젝트 맵핑과 미디어파사드를 통한 스크린 경험과 가상경험이 더 이상 난해하지 않다. 이를 두고 영국 미술사가이자 비평가 클레어 비솝(Claire Bishop)은 “현대미술에서 비접촉, 가상체험이라는 새로운 관람 방식의 등장과 확산은 네트워크 기술과 스마트폰의 등장 덕분이다”라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전시의 경우, 명확히 미디어 예술로 분류할 작품은 없지만 ‘#3.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에서 공예 제작 및 사용에 개입한 새로운 신기술의 접목과 확장성을 가늠할 수 있다. '

이에 새로운 표현을 경험할 공예 관람 방식이 필요하다. ‘#직지-기록문화와 공예’에서 우리는 공예를 오감을 통해 가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청주의 문화자산인 ‘필장-먹장-벼루장-각자장-활자장-배첩장으로 이어지는 직지(直指)의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보며 소리와 향, 촉감으로 공예가가 느꼈을 공감각을 이해한다. 강재영 감독은 2018년 부산을 테마로 융복합전시 <부산 리턴즈>에서 이미 영상, 사진, 미술, 문학, 음악 등을 종합적으로 동원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극적 장면과 공감각적 연출을 기시도한 바 있다.



고혜정 <소원들> 황동, 은도금 40×50×50cm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국제공예부분 대상



감독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공예의 유용 가치와 희망은 본 전시의 끝에 집중되어 있다. 치열한 산업 경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뛰어난 개인의 능력과 활약이 아니라 다수의 공생과 협력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공예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공예품의 아름다움이나 숙련된 손의 신기함 때문만은 아니다. 무절제한 생산과 소비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태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해답은 사라진 협력, 공생의 회복, 나눔의 미덕에 있다.

인간이 초래한 위기에 공예가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은 공예가들이 생각과 능력, 재주가 다른 다자의 협력과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유용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술,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것은 곧 공예가의 태도이자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다. 이것은 전시 중 여러 개의 벤치를 연결해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공예인의 협력에서도, 다수의 노동자가 물건을 만들고 유통하는 기업에도 모두 필요한 생산철학이자 원칙이다. 러쉬(Rush)같은 제조 기업이 공예비엔날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엔날레 본 전시의 ‘생명애를 위한 공예의 유용과 가치’는 공모전이나 특별전도 결이 같다. 재료의 본성은 살리고 단점은 감춰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예가의 제작방식은 공모전의 모든 입선작의 공통점이다. 다만 상은 시기, 공력, 완성도, 조형성을 서로 견주어 미세한 우위로 정한 숫자일 뿐이다. 올해 초대 국가인 스페인의 공예에서도 공모전과 본전시에 준하는 공예의 미와 다채로움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 특유의 기후, 토양, 문화, 삶의 양태에 맞춰 스페인 사람들이 선택하고 발전시켜온 재료의 다름, 응대, 발상, 제작 방법, 형태, 색채와 질감, 기물 종류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신신조스 페이퍼 컬처 <중국식 종이 집>
2023 대나무, 종이, 안료 188×188×73cm



그간 공예비엔날레의 궤적을 살펴보면, 공예의 아름다움을 윤리적, 도덕적 교훈과 기능을 반복하여 미화하고 선도하는 경향이 짙다. 공예를 학술적 가치나 선도적 캠페인보다는 문화 일면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는 청주에서 열리지만 지역에 국한되는 것도, 2년 주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간 다루지 못한 지역성, 장소성, 역사성, 젠더 문제를 비롯해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다루는 시의성 있는 사건과 첨예한 문제들을 공예의 관점으로 다시 보아 보편적 공감대로 이끄는 시도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 장소특정적 설치가 자아내는 시각적 스펙터클 대신 공예가 있어야 할 장소와 공간, 비주얼로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완성도 높은 전시를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라는 방법 모색도 숙제로 남았다. 20년간 한국 공예 혹은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 안에서 ‘공예의 본색’, ‘한국 공예의 세계화’, ‘현대미술, 디자인과의 관계 정립 및 차별화’ 등도 비엔날레 주체가 멈추지 말아야 할 공예의 질문이다. 결국 공예비엔날레가 거쳐온 성취와 좌절의 빈틈이 공예로 가득한 사물의 지도를 종주한 자들이 다시 설 새로운 출발점이다.



룩 슈뢰더(Luuk Schröder) <엑토플라즘> 
2023 네 개의 사진 라이트박스 120×80cm




2023 Dalseong Daegu Contemporary Art Festival
2023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다양성(多樣性)과 공존(共存):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비전>
9.15-10.15 강정보 디아크 광장 및 내부 전시장
dalseongart.com


관계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

1. 낙동강변에서 현대미술제가 열리는 이유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개막했다. 올해 12회를 맞이하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구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주목하고 나아가 대중적 향유를 꾀하며 미술을 확장해 가려는 미술축제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올해 <다양성과 공존: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비전>을 주제로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 김영동이 총감독을 맡았다. 전시는 낙동강변의 디아크(The arc) 실내외를 아우르는데, 강정보 디아크 광장과 디아크 물문화관의 내부 두 영역에서 펼쳐진다. 전체행사는 본전시, 특별전시, 시민참여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본전시 작가가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 이외 시민참여프로그램에 현대미술가협회(<올가을 강정에서 놀자!>), 달성미술가협회(<강정보의 꿈>)가 참여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하려는 미술의 노력을 보여준다. 특별전시는 달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달천예술창작공간의 레지던시 제3기 입주작가 6명이 참여한 것이다. 현대미술제가 이제까지 ‘대구현대미술제’ 태동의 의미를 기리며 의의를 충실히 해석하여 야외광장이나 낙동강변을 중심으로 작품을 설치했다면, 이번에는 평면작품을 포함하여 실내 설치로까지 확장되면서 ‘다양성과 공존’의 의미를 살리는데 기여했다.

용어에서도 나타나듯이 현대미술제(contemporary art festival)는 동시대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감성을 수용하며, 전통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감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려는 개척과 탐색의 ‘실험’ 미술제다. 그러니만큼 젊은 작가들의 노력이 집중되고 현재 진행형의 감각이 마음껏 반영되는 의미심장한 미술축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매년 개최되는 미술축제임에도 달성군 강정에서 현대미술제가 왜 열리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있어, 그 역사성과 의의에 대해서 잠시 확인해보자.

10여 년을 이끌고 온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1975년 ‘대구현대미술제’에 여러 지역의 청년이 참여하면서 5회까지 전개된 한국 최초의 대규모 동시대 미술제다. 청년작가들이 기획팀을 꾸려, 전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교류하며 국제적인 기량을 펼쳤던 한국미술의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당시 청년미술가들의 활동은 앙그리(1963), 한국아방가르드협회(1969), 제4집(1970), 신체제(1970), ST(1971), 에스프리(1972), 35/128(1973) 등의 집단활동을 통해 만개했고, ‘세계무대 속의 한국미술’이라는 국제적인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다.



셀린 스트루거(Céline Struger)
 <크리스탈은 아침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2023 철, 천막, 물, 염료, 식물, 흙 850×480×15cm



참여했던 당시 청년작가들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주요 챕터를 구성하고 있다. 이 무대가 바로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강정(대구 달성군)이었던 것이다. 강정은 해프닝, 이벤트로 불리는 행위예술을 위한 무대였고, 기원으로서의 ‘대구현대미술제’는 청년작가들의 진취성과 실험성이 귀감이 되는 시금석 자체다. 이강소가 옷가지를 벗어두고 모레 둔덕을 쌓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박현기가 횟가루로 포플라나무 그림자를 표시하는 행위 등등 ‘자연 속에서’ 미술을 실험해간 바로 그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기억과 역사성을 오늘의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과 공존>의 김영동 감독은 개막 인사에서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대구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결정적인 세 개의 장면을 소개한다. 첫 번째 장면은 우리나라의 서양화 도입과 전개의 시기이다. 화구를 처음으로 들여온 이상정 장군이나, 일본에서조차 인정받았던 이인성의 수채화, 유럽의 유수한 아카데미 전통에서 수학(修學)한 것 이상으로 굳건하고 뛰어난 이쾌대의 소묘력과 색체 등, 대구는 서양화 도입 및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무대를 펼쳐나간 곳이다.

정규는 “이인성씨는 왜정시의 선전(鮮展)에서 독단적인 위치를 작가실력으로서 개척하였었으며 씨의 수법은 (…) 일종의 독립된 화격을 형성하여 선전(鮮展)에 군림하였었는 것만은 씨와 함께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왜정시의 우리의 미술문화의 일면이기도 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인성이 미술계의 일등 가는 선수로 일생을 마쳤다며 그 실력을 회고한 바 있다. 같은 수창학교 출신으로 뒤늦게 연구된 칠곡 출신 이쾌대 역시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주요 축을 담당한다.

두 번째 장면은 한국동란기다. 피난처였던 대구로 전국의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비참한 현실을 위로하며 당시의 가난과 우울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와 깊은 시대의 고찰 등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세 번째 장면이 바로 운동으로서의 현대미술을 전국적으로 전파시킨 진원지, ‘대구현대미술제’다. ‘대구현대미술제’는 5회에 걸쳐 개최되면서 한 회 근 200명에 달하는 작가의 참여한 적이 있을 만큼 결집력을 보였으며, 이벤트, 해프닝 등의 행위예술과 비디오 실험이 대규모로 실행되었던 축제이다.

대구의 현대미술제는 곧이어 1975년 서울, 1976년 광주, 부산, 1977년 춘천, 청주, 1978년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면서 현대미술의 확산과 미술의 지형 변화에 큰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 장면 모두 한국근현대미술에서 결정적 지위를 갖는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전개한 낙동강변은 사실상 영남권의 유구한 시심(詩心)과 지성(知性)이 면면히 흘러넘치는 인문(人文)의 강이기도 하다. 낙동강변 그리고 금호강이 합류하는 강정의 문화예술적, 역사적 의의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로 부활하여 오늘날 12회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이를 유지해오고 있는 관계자들의 노력과 공로도 기억해야 한다.



다비드 할복(David Hahlbrock) <ushroo e ory>
 2022  나뭇가지, 나무패널, AR 스마트폰 앱 
각 20×200×200cm(×5)



2. 다양성과 공존: 다시 자연 속에서

1975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난 2012년 강정에서 ‘대구현대미술제’가 다시 개최되고, 그로부터 다시 12회를 맞이하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몇 가지 토대를 만들고 있다.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는 전통의 매체에서 벗어나 미술 언어의 가능성을 찾으며, 신체, 몸짓, 영상 등 새로운 매체 실험을 통해 실험적인 미술을 추구하였는데, 올해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에서는 다시 회화를 흡수하여 동시대 동향의 의미를 더하였다.

애초 1970년대 현대미술은 탈평면, 즉 평면으로부터 벗어난 흐름을 쫓⃝아 도시에서 떨어진 외곽의 자연 속으로 이동해서 순도 높은 실험의 의미를 탐색해갔다면, 2023년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동시대 미술로서 회화의 지위를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로 디아크(The arc) 내부에 회화작품을 전시하였다. 또한 7개국 16명의 외국 작가들이 참여함으로써 국제적인 행사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서는 주로 일본 작가들과 교류하였지만 상당한 수준의 국제전시였다.

이를 계승하여 오늘에 맞추어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발돋움해 갈 전망을 준 것이 아닐까 한다. 1975년의 낙동강변 이벤트는 자연을 무대로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미술의 언어를 탐색해갔다면, 오늘의 ‘대구현대미술제’가 펼져진 ‘그 때 그 자연’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문명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알려주는 열린 미술관의 형태로 새로운 기능을 수행한다.

광장에 설치된 박재훈의 작품(광장-<과열된 풍차>, 실내-<포집된 자연>)과 김안나의 미디어 작품(<자연이 되어가다>), 디아크 실내 설치된 김해민의 작품(<2개의 그림자>)과 올리버 그림(Oliver Griem)의 미디어작품 <게임 버전 1.2>)은 오늘날의 영상매체와 매체 언어의 근본 의미를 짚어보는 작품, 다비드 할복(David Hahlbrock)의 증강현실 작품(<ushroo e ory>)은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동시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황병석 <도구 시리즈> 2022-2023 혼합재료
 250×200×200cm / 툴: 60×60×120cm(×4p)



본전시의 경우 국내에서는 김결수, 김봉천, 김상열, 김이박, 김해민, 김형표, 박발륜, 박봉기, 손혜경, 송광익, 신혜정, 이배, 이기철, 이은재, 이태형, 정은기, 정재완, 정지윤, 함혜경, 황병석, 이기성 작가가 참여한다. 해외에서는 질리안 메이어(Jillian Mayer), 김안나, 백영경, 다비드 할복, 돈야 나세리 & 야나 부흐(Donja Nasseri & Jana Buch), 올리버 그림, 카란 슈레스타(Karan Shrestha), 장 미셸 프라델 프레예스(Jean-Michel Pradel-Fraysse),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 한연화, 룩 슈뢰더(Luuk Schröder), 파라틴 오렌리(Fahrettin Orenli), 박재훈, 양송니안(Ang Song Nian), 셀린 스트루거(Céline Struger) 등이 작품을 전시한다. 특별전에는 기조, 배지오, 임지혜, 전수현, 최종열, 최영지가 참여한다.

정은기의 <하늘 놀이>와 디아크 언덕 위에 설치된 백영경의 <빈티지 트럭과 에일리언 바나나>, 송광익의 <침묵의 소리>, 프레예스의 <자화상 4번>, 손혜경의 <교호광명> 등 참여 작품들은 대체로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고 제시하는데, 보다 높고 넓은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사물, 동물, 식물 등을 인간을 구성해주는 주요 축으로 이해하는 우리 시대 주요 이슈를 탐구하고 있다. 직접적인 문명비판보다는 미적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에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 외에도 일방적인 작품관람에서 벗어나 들숨과 날숨처럼 관람객이 작품과 관계를 맺고, 이런 상호작용이 작품의 내용을 이루도록 하는 체험형과 설명형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이 중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여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대나무로 얽기 설기 집을 지은 박봉기의 <호흡>은 한옥처럼 안과 밖이 유연한 건축물이다. 밖에서도 관람하지만 작품의 안으로도 들어가 볼 수 있다.



<다양성과 공존: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비전> 전경



송광익의 <침묵의 소리>는 거대한 건축물로서 그 속에 들어가면 낙동강의 바람 소리가 음악이 되어 돌아온다. 광장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을 파빌리온을 지어 소개하고 있는데, 낙동강변의 사물을 채집하여 채집된 사물에서 다시 전모를 상상하도록 하는 이은재의 <강정-S#150923>, 김이박의 <사물의 정원_달성> 등이 설치되었다. 강정의 꿈으로 향하는 박발륜의 <걷는 사람>, 김형표의 <추억의 문>이 입체 조각으로 광장의 포인트가 되고 있다.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한 한 양소니안은 무궁화 꽃가루 모양으로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 화분과 함께 디아크 언덕에 설치했다. 이외 메이어의 실용 조각(<슬럼피 58>)이 광장에 설치되었고, 슈레스타, 오렌리, 슈뢰더, 클레멘세비츠 등이 인권과 환경, 자본과 폭력의 문제를 탐구하며 시민을 기다리고 있다.

정리하자면 올해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독창성은 동시대 미술에서 회화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미술축제의 국제성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자연의 의미를 성찰하며 관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다양성과 공존’의 미술축제다. 김영동 감독은 “다양성과 공존은 현대예술의 흐름 전반에서 드러나는 가치이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은 예술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양식과 주제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고 지켜나가는 데 대한 지혜와 용기를 줄 것”이라며 세계적 행사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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