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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9, Aug 2021

예술 vs 젠트리피케이션

지도 위에서: ‘삼수이포는 여전히 삼수이포다’에 관한 노트
Art vs GentirificationOn the Map:
A Note on 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인간은 길이 난 곳을 따라 걷는다. 어딘가에 가기 위해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손에 무엇을 쥐고 있냐에 따라 목적지가 결정된다. 예컨대 서울이라는 도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다. 골목골목의 세세한 길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지도, 지하철 노선도, 행정 구역별로 나눠 놓은 지도, 관광 명소나 랜드마크만이 표현된 지도 등 여러 개의 지도는 같은 장소를 가리키면서도 목적에 따라 그 내용과 디테일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도는 단순히 실재하고 있는 장소와 환경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장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응축한 결과물에 가깝다.
● 기획 김미혜 기자 ● 글 김얼터

‘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 Schoeni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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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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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디렉터이자 아트 딜러인 니콜 스초니(Nicole Schoeni)가 이끌고 있는 ‘프로젝트 스초니(Project Schoeni)’의 일환으로 2021년 6월 2일부터 7월 31일까지 공개된 ‘삼수이포는 여전히 삼수이포다(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이하 #SSPisstillSSP)’는 홍콩의 삼수이포(深水埗, Sham Shui Po)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 장소의 박동을 지도로 포착한다. 홍콩의 만화 예술가 리치탁(利志達, Li Chi Tak)이 제작하고 있는 이 지도는 그가 직접 그린 인쇄물 형태와 구글 맵을 활용한 디지털 형태로 배포되고 있다. 인쇄 지도에는 삼수이포를 구획하는 길에 담긴 이야기를 리치탁 특유의 그림체로 담고자 했다면, 디지털 지도에서는 ‘문화적 만남(Cultural Encounters)’, ‘장인들(Artisans)’, ‘지역 회사(Local Enterprises)’, ‘음식의 즐거움(Foodie Delights)’, 총 네 가지 키워드로 삼수이포를 (재)구획했고, 이 키워드들을 겹쳐 다시 하나의 지도로 만들었다. 


지도 위에서 삼수이포라는 장소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이 교차하며 조금씩 변해간다는 측면에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삼수이포의 다이내믹이 (재)구축된다. 네 가지 키워드는 각각 역사적 건물들과 예술 공간, 전통적 장인들과 새로운 세대의 메이커들, 전통 시장과 빈티지숍 그리고 창의적 벤처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도시를 지켜온 음식과 트렌디한 다이닝 등 옛것과 새것을 연결지으며 삼수이포를 바라본다. ‘#SSPisstillSSP’는 지도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존에 삼수이포를 구축하고 있던 것들과 새롭게 유입된 것을 겹쳐 보도록, 즉 지도를 보는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삼수이포를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가로지름은 런던과 홍콩에서 동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스초니의 큰 기조에 부응하기도 한다.




‘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 Alex Wong and Schoeni Projects




삼수이포는 ‘홍콩’ 하면 즉각 떠오르는 침사추이(尖沙咀, Tsim Sha Tsui)나 센트럴(中環, Central)에 비하면 비교적 덜 알려진 지역이지만,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예술가들에게 삼수이포의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는 이들이 주목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이후 2008년 폐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이자 아티스트 레지던시 자키 클럽 아트 센터(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가 또 다른 판자촌이었던 섹깁메이(石睞尾, Shek Kip Mei)역과 삼수이포 사이에 들어서고, 2010년 옛 홍콩헌법재판소 건물에 서배너 예술과 디자인 학교(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문을 닫았다)가 들어서면서 삼수이포는 낙후된 구룡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도시 재생의 핵심 장소가 되었다. 


앞서 소개한 ‘#SSPisstillSSP’ 사례 외에도 도시와 예술, 예술가가 서로 호흡을 주고받는 과정을 미술사에서 발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모여드는 예술가들과 그로 인해 장소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며 이목이 쏠리고 곧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도시 재생 정책이 도입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단어가 거론된 뒤 다시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장소를 옮긴다. 과연 클리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지만, 이 과정에서 장소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재)구축되고 해체되는 일은 여전히 생각해볼만한 주제다. ‘#SSPisstillSSP’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네 가지 키워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미지로 가득한 장소에서 가능한 공동체의 잠재태를 모색하게 한다.




Li Chi Tak work-in-progress 

© the artist and Schoeni Projects




도시, 예술 그리고 공동체가 서로를 양분 삼아 각기 다른 내러티브를 구축해 나아가는 일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사회 참여 예술(socially engaged art)이나 공동체 예술(community art), 아티비즘(artivis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름이 예술과 도시, 공동체의 관계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종류의 실천에 주목하는 프로젝트들이 여럿 있어 왔는데, 특히 홍콩에 관계되었던 실천으로 한정 지어 보자면 2019년 연말에 개최되었던 ‘더 스크랩: 해피 투게더(The Scrap: Happy Together)’는 일종의 ‘레논월’로 기능하며 당시 치열했던 홍콩 민주화 운동에 지지를 보태고자 했다. ‘Against the Dragon Light’는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사회 참여 예술을 리서치하는 프로젝트로 “사회적 참여와 문화적 연대를 자신들의 전략으로 취하는” 예술 실천에 주목한다. 2019년 개최된 스크리닝과 라운드테이블에선 콜렉티브 C&G 아트파트먼트(C&G 藝術單位, C&G Artpartment), 찬 체운(陳梓桓, Chan Tze Woon) 감독을 초청해 2014년 우산혁명(雨傘運動)과 당시의 홍콩을 겹쳐 놓으며 예술과 사회 참여, 정치, 도시의 복잡한 역학을 다루고자 했다. 두 사례 모두 서울 안팎에서 형성된 임의의 공동체가 홍콩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들에 일반적으로 따라붙는 비판은 그런 예술들이 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정치적 소수자들에게 선뜻 다가가 버리고 만다는 순진함 혹은 수혜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거나, 해당 예술 작품 안에 소위 ‘작품’이라고 부를 만한 미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전자를 생각해 보면 사회를 아름답고 공정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태도가 조금은 거북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후자를 조금 더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바에야 ‘진짜’ 정치 운동이나 사회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잠시동안만 제공되는 예술을 통한 사회적 개입이 정말로 효능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나 유효할까.




Thy Lab ‘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 Schoeni Projects




여기서는 일본의 철학자이자 이론가인 아즈마 히로키(東 浩紀, Hiroki Azuma)의 저서 『관광객의 철학』(2017)의 논의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가 기존에 통상 사용하던 의미에서의 ‘진정한 마음의 연대’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공동체라는 개념의 재정립을 요구하며,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대’ 없이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에 따르면 “관광객은 사회 따위는 만들 생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만들고 마는 존재의 범례”로, “정치와 문학 어느 쪽에도 없는 동시에 어느 쪽에도 있는 존재를 지칭한다.”1) 관광객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에서라면 절대 가지 않을 곳들도 관광 중이라면 기꺼이 방문하는데, 이 과정 중 해당 장소에 관한 수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그러나 히로키는 관광객들의 이러한 오해나 그 장소에 피상적인 풍경만을 바라보는 상태에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상태는 “오배, 즉 배달의 실패나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많이 함축한 상태”2)로, 새로운 이해와 소통, 우연에 열려 있는 상태라고 평가한다.


다시 ‘#SSPisstillSSP’로 돌아가 보자. 다음 지도 중 무엇이 ‘맞는’ 지도라 할 수 있을까. 삼수이포를 잘 알고 있는 거주민이라면 그에게 가장 익숙한 지도는 무엇보다 길목의 길목까지 닿을 수 있는 자신의 몸일 것이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삼수이포에 도착한 예술가라면 예술에 관련된 공간을 찾게 될 것이고, SNS에 게재할 사진을 위해 방문한 방문객이라면 포토제닉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게 될 것이다. 삼수이포를 잘 알지 못하는 관광객이라면 거주민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해 보이지 않는 풍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몸과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삼수이포를 가리키고 안내하기 위한 지도에는 무엇이 그려져야 ‘옳다고’, 이 지도가 바로 ‘진짜’ 삼수이포라고 할 수 있을까. 




‘Sham Shui Po is Still Sham Shui Po’ 

Effigies Store © Alex Wong and Schoeni Projects




오히려 한 장소에 오래 머문 사람과 적당히 머문 사람, 갓 도착한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삼수이포의 풍경을 재구축되고 그로부터 오배의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도시는 오배를 기다린다. 삼수이포의 문화와 기억, 역사는 ‘#SSPisstillSSP’가 제공하는 지도 위에서 접고 자르고 이어 붙여지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이 지도 위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따라 걷느냐에 따라 또 다른 오배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SSPisstillSSP’가 지도를 매체로 선택해 (무)의식적으로 포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시, 예술(가), 공동체의 다이내믹이다. 여기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무력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앞서 나열한 명칭을 요구하는 종류의 예술이 아니더라도 예술은 언제나 수많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해체했으며,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를 연결지었고,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일에 기여해 왔다. 이는 ‘참여(participation)’라는 방법으로 관람객이 예술 안에서 직접적으로 실행하는 일이 없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하나의 회화나 하나의 조각, 영화 한 편, 다큐멘터리 한 편, 때로는 아주 세속적인 광고 한 편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작위의 사람들을 그러모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을 우리는 종종 목격해 왔다. 사회 참여 예술이나 공동체 예술, 아티비즘은 더 이상 새로운 용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시기다. 예술은 정치에, 사회에, 우리의 삶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고 그 개입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공동의 고민이 필요하다. PA


[각주]1) 東 浩紀, ゲンロン0 観光客の哲学: 안천 옮김, 『관광객의 철학』, 리시올, 2017, p. 43, p. 632) 위의 책, p. 164



글쓴이 김얼터는 기획전 〈크림(cream)〉(2020, 아카이브 봄)을 만들었다. 미술 전시로 궁극의 거짓말을 생산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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