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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6, Nov 2023

예술과 환경

Art & Environment

● 기획 · 진행 편집부

Installation view of 'Nature's Nation: American Art and Environment' 2019 Peabody Essex Museum © Peabody Essex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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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주 생태미학예술연구소장, 유원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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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뜨겁거나 차갑고, 과하거나 부족하다. 더 이상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다. 그저 여러 사회 문제 중 하나가 아님은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라는 단어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냉소하듯 급박하게 변화하는 자연의 역습은 더 없이 날카롭고 위협적이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탕화로 접어드는 지금, 동시대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번 특집은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세 가지 관점으로 바라본다. 먼저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 예술의 근원적 관계 설정을 위한 교차적 시도가 언제부터,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예술과 생태 관계성의 전반을 살핀다. 이어 생태윤리에 입각한 새로운 미학과 예술의 존재 가능성, 상관관계 등을 톺은 뒤 오늘날의 기술이 환경문제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개입하는지, 또 기술과 환경을 매개하는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본 기획이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보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ugilė Barzdžiukaitė, Vaiva Grainytė 
and Lina Lapelytė <Sun & Sea> 
Opera-performance at Copenhagen Contemporary, 
2021 Photo: Frida Gregersen





SPECIAL FEATURE 1
생태윤리적 미학의 가능성_유현주

SPECIAL FEATURE 2
Tri_A_logue: 기술과 환경, 예술의 삼자 대담_유원준




Special Feature No.1
생태윤리적 미학의 가능성 
●  유현주 생태미학예술연구소장 · 미술평론가 


인류세, 기후변화, 생태윤리

팬데믹, 호주와 캐나다의 산불, 지구촌 곳곳의 유례없는 폭염과 폭우, 기후재난 난민의 증가. 새로운 지질층서의 형성과 급변하는 지각변동이 이루어지는 인류세를 사는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이상 징후를 낳은 원인과 책임을 묻고 지구 전반의 생태 시스템을 재점검할 시기에 들어섰다. 생태학적 시스템이론에서 보자면, 미세한 세포로부터 시작해 인간 그리고 지구 전체는 각각의 시스템이면서 서로 연결된 복잡계이자 생명의 그물이다.

 따라서 이 그물망에 문제가 생겼다면 인간과 자연 및 비인간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진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동시대 예술이 이러한 진단과 치유의 예술적 실천(art practice)에 나서고 있다. 예술은 세계의 지진계라고 했던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말처럼, 동시대 예술은 인류세의 재난과 기후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앨런 손피스트(Alan Sonfist) <Pool of Virgin Earth> 
1975  50ft diameter on chemical dump, 1975,
 Lewiston, New York Courtesy the artist



미국의 예술가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처럼 자신을 생태예술가라고 공언하고 오염된 지역을 복원하는 실천을 수행하며 화석 연료 반대를 주제로 한 행동주의 예술(<Blued Trees Symphony>(2015-2017))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실천들이 비예술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에서, 어떤 생태예술 실천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 구호처럼 보이며 미적 감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예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미술사의 어떤 맥락에 생태예술이 놓일 수 있는가? 생태예술은 생태윤리를 토대로 어떠한 미학적 가능성을 가지는가?



앨런 손피스트(Alan Sonfist) <Time Landscape> 
1965 45×200ft New York City Pre colonial
 Forest before human intervention



지속 가능성과 시스템이론


독일의 미학자 샤샤 카간(Sacha Kagan)에 의하면, 생태미학은 생태윤리적 문제에 기반한 예술원리를 갖는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생태윤리 문제를 제기한 책은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쓴 『침묵의 봄』인데, 생물학자인 카슨은 인간이 비료로 사용하는 제품에 들어 있는 살충제와 독극물이 자연의 생명을 훼손하고 결국 인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1972년 로마클럽이 발표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는 물질의 한계와 ‘지속 가능한’ 경제적 성장이 가능한가에 대해 조명한다.

이 보고서는 생태윤리의 문제가 생태학의 중요한 이슈인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과 관련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1989년 세계환경위원회의 「브룬틀란 보고서(Brundtland Report)」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생태 이슈인 지속 가능성(이후 1992년 리우회담의 초석이 된 이슈)은 물질의 한계와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지만, 좀 더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의식의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담론은 예술의 장에서 시작되었다. 카간은 『예술과 지속 가능성(Art and Sustainability)』이라는 책에서 생태 담론의 지속 가능성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인간중심주의적 기술 합리성 사회가 우리 삶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앨런 손피스트(Alan Sonfist)
 <Mud Flat Gene Bank Mural (Taepyeong Salt Farm)>
 2023 To preserve the water of Korea for future generations 
and observation, Exhibited at Wave Museum, Seoul, Korea



카간은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아르네 네스(Arne Næss)의 심층생태학 혹은 근본생태학(Deep Ecology)을 참조하고, 근본생태학을 물리학 이론에서 발전시킨 자연과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의 시스템이론이나 사회학적 시스템 이론가인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비롯해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son),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의 이론 및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생태철학 등을 주요한 논거로 삼는다.

한마디로 생태미학은 생태철학과 시스템이론 등을 전제하며, 이는 지속 가능성의 예술 담론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식이 된다. 또한 생태예술 실천들이 지향하는 바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며 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삶이라고 한다면, 생태학과 시스템이론에서 언급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대, 자연지배에 대한 반성, 상호의존성과 회복탄력성, 부분과 전체의 연결 개념은 생태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하겠다.



슈퍼플렉스(SUPERFLEX) <Supergas in Africa>
In 1996-97 Superflex collaborated with biogas
engineer Jan Mallan to construct a simple, portable
biogas unit that can produce sufficient gas
for the cooking and lighting needs of an African family. 
The system has been adapted to meet the efficiency and
 style demands of a modern African consumer. Over a 16-year 
timespan (1997-2013), Supergas was developed and tested 
in several locations - including Tanzania, Cambodia, Thailand, 
Zanzibar, and Mexico. Each time, it involved the contribution
and support of a wide range of collaborators - like local
engineers, scientists, anthropologists, technicians, and
designers. Forging a link between climate change and
social issues, Supergas suggests that weather
and economic inequalityare connected,
and that it is necessaryto change
the distribution of power 
Photo: SUPERFLEX


예술의 종말 이후, 생태예술의 창발


시스템이론이 문제 삼는 것은 물질(matter)로서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다. 예컨대 18세기 계몽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 있어서 인간 정신은 전적으로 기계적인 자연 세계와 분리되며, 자연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 개척하고 지배되어야 할 기계 부속품과 같은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시스템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자들에게 세상은 데카르트가 생각하듯 명석판명하고 추상화된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들의 연결망(복잡계)으로서 자연과 문화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그물로 보아야 한다.

시스템 이론가들은 복잡계에서 생명체가 자기조직화 한다고 본다. 그리스어로 아우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는 자신(auto)을 제작(poiesis)한다는 의미로서 생물학에서 먼저 사용한 용어다. 그런데 생물학에서 생명체가 환경에 반응해 자기 몸의 세포(패턴)를 자기조직화 함으로써 새로운 세포를 창발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사회와 문화 시스템에도 적용해 본다면 어떠할까? 즉 예술도 지속 불가능의 환경에 대응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으로 바꾸려는 자기조직화의 운동을 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 
<Blued Tree Symphony> 
2015-2017 Courtesy of Aviva Rahmani



예를 들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20세기 모더니즘의 양식이 약속이나 한 듯이 왜 하필 그 시기에 출현했고 또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양식들이 등장하는가? 이에 대해 새로운 양식과 화파들을 자기생산적 예술시스템 메커니즘으로 분석한 글이 있다. 새롭게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자기조직화 현상을 논의한 제이슨 호엘슈어(Jason Hoelscher)의 논문 「자기조직화의 예술시스템과 미학적 군집: 다성적 순수성과 알고리듬의 창발에 관한 소고 (Autopoietic Art System and Aesthetic Swarms: Notes on Polyphonic Purity and Algorithmic Emergence)」(2013)가 그것이다.

호엘슈어에 따르면, 1950년대 그린버그식 ‘순수예술’ 모더니즘 체계가 성립되었던 시스템에서 1960년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예술체계가 움직여 간 것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브릴로 상자>가 출현하면서 일종의 시스템의 임계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호엘슈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정 가능한 분석적 자율성의 미학에서 결정 불가능한 자기생산적 자율성으로의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이 당시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예술의 종말 이후’의 논의가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즉 기존의 매체예술 개념에 포섭될 수 없는 개념미술, 정보예술과 같은 다성의 목소리들이 알고리듬처럼 군집(Swarms)을 이루면서 비선형적인 역사적, 개념적 틀이 만들어지고 모더니즘 미술과 그 이후를 가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예술들의 미학적 군집 현상으로서 생태예술이 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결정 불가능한 자기생산적 자율성”의 예술들 가운데 하나로서 생태예술이 동시대 예술 복잡계에서 출현하여 하나의 자기조직화 운동을 통해 창발한 것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안드레아 바워스(Andrea Bowers) 
<Step It Up Activist, Sand Key Reef, Key West,
 Florida, Part of North America's Only Remaining
Coral Barrier Reef> 2009 Coloured pencil on paper
56.52×76.2cm Courtesy of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 Andrea Bowers Photo: Thomas Mueller



생태윤리적 미학에 기반한 예술실천들

미술사적으로 생태예술은 어떤 지점에 놓일까? 환경예술이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주로 전통 조각 형식들에 대한 비판에서 성장한 장소특정적 예술, 랜드아트(Land Art),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와 연결된다면, 1990년대 이후 출현한 생태예술은 지구 행성의 자원과 생명 형태(life-form)를 보존하고 치유하거나 생동하게 만드는 예술 장르이자 예술 실천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21세기 생태예술은 사회문화적 생태 담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흡수하면서 정치적인 앙가주망(engagement)의 색채를 짙게 풍기는 경향이 있다. 생태적, 지정학적 이슈들에 대한 학제연구 전문학자 에밀리 E. 스콧(Emily E. Scott)에 따르면 “근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인간이 발생시킨 기후변화, 천연자원 고갈, 다량의 종의 멸종, 유전자 변경 씨앗, 신식민주의적 땅의 약탈을 포함한 실제 세계의 생태적 이슈들에 접근하고 있으며, 동시에 생태적 담론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생태예술의 실천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필자가 보기에 생태예술은 ‘부분과 전체가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인식’에서 인간, 비인간, 자연에 대한 연결의 개념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연결 개념은 개인의 관심을 넘어 이 행성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생태윤리적 함의를 담은 예술실천에 있어서 지속 가능성과 함께 생태미학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표적인 생태예술가들, 예컨대 한스 하케(Hans Haacke), 앨런 손피스트(Alan Sonfist),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헬렌 마이어 해리슨(Helen Mayer Harrison)과 뉴턴 해리슨(Newton Harrison), 미얼 래더만 유켈레스(Mierle Laderman Ukeles), 멜 친(Mel Chin), 패트리샤 요한슨(Patricia Johanson) 등의 작업에서 연결과 공존의 울림이 두드러진다. 이들 중 몇 가지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1960년대 하케는 『시스템 미학』을 쓴 잭 번햄(Jack W. Burnham)의 영향을 받으면서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보여주는 식의 작업, 예컨대 뉴욕시의 어느 땅의 둥근 면에 날아다니는 씨들을 받아 저절로 자라나는 식물 -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부분들 - 을 보여주는 작업 <바우어리 씨앗들(Bowery Seeds>(1970)을 통해 생태미술의 선구적 작업을 시작했다.



한스 하케(Hans Haacke) <Rhine Water Purification Plant> 
1972 Glass and acrylic containers, pump, polluted 
Rhine water, tubing, filters, chemicals and goldfish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점차 그는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환경주의로 진일보한 작업을 해 나갔는데, 전 서독의 크레펠트에 있는 뮤지엄 하우스 랑게(Museum House Lange)에서 바이오 기술 시스템의 모델링으로 <라인강 정화 플랜트(Rhine-Water Purification Plant)>(1972)라는 생태복구의(restorationist) 예술작업을 선보였다. 하케는 아크릴 수조에 금붕어와 함께 채운 오염된 라인강의 물을 정화하기 위해 숯과 모래 필터를 장착한 화학적-치료 플랜트를 전시장에 설치했다.

한편 <그린하우스 브리튼(Greenhouse Britain)>(2006-2009)이라는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을 해온 헬렌과 뉴턴은 지구온난화가 영국의 미래에 장차 미치게 될 기후변화의 영향을 도표로 만들었다. 이들이 설치한 비디오 애니메이션, 다채널 프로젝션, 거대한 크기의 영국 지형학적 지도, 사진 기록, 분석적 텍스트들, 사운드 요소들, 교육 지향적 프레젠테이션 등이 상승하는 해수면, 폭풍 해일, 줄어드는 해변을 보여주는 암울한 미래를 묘사한다.

이들 부부는 학제적 협업에 관심이 많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아트뮤지엄(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의 ‘예술과 기술 프로그램’에 초대되기도 했는데 1970년대의 환경 관련 작품들도 대부분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적 작업들이다. <지구 만들기(Making Earth)>가 지구를 모델로 한 복합물이라면, <서바이벌 작품들(Survival Pieces)>(1971-1973)은 6편으로 이루어진 각각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기-발생적(self-generative) 측면을 다룬 실험이다.

이들의 작업 중 <석호의 순환(The Lagoon Cycle)>(1974-1984)은 석호를 둘러싼 7개의 허구적 내러티브로 구성된 작업으로, 강이나 바다와 달리 아주 연약하지만 적응에 있어서는 최대의 탄성력과 유연성을 가지고 변화에 반응하는 생태시스템인 석호 이야기를 통해 복잡계의 다양한 층위의 연결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은 문제의 석호-생태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있어 인간의 개입보다는 생태 그 자체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고 있다.



돈 데이비스(Don Davis)
<Stanford torus interior view> 
1975 Acrylic on board 43.1×55.9cm Courtesy
of The Museum of Modern Art Collection Don Davis
Commissioned by NASA for Richard D. Johnson
and Charles Holbrow, eds., Space Settlements:
A Design Study (Washington, DC: NASA Scientific and
Technical Information Office, 1977)
Illustration never used



생태예술 실천의 이념적 다양성

이와 같이 생태예술가들의 실천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서 시작해 생태문제의 해결과 복구의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살펴보았을 때, 티제이 데모스(T. J. Demos)가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환경적으로 몰입한 예술은 정치학을 재고하고 생태에 대한 예술의 관계를 정치화하려는 잠재적 가능성을 갖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생태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생태문제의 적극적 해결을 위한 정치적 예술을 펼친다는 점에서, 생명 평등적 세계관을 갖는 근본생태학과도 관련을 갖지만, 또 다른 시각 즉 인간중심주의적인 잘못된 시스템(계급적 위계질서)을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래야 올바른 생태적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머레이 북친(Muray Bookchin)의 사회적 생태론과 생태-코뮌주의의 이론도 관계를 갖는다.

그런가 하면, 자연 지배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동일시하면서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가 이 행성에 가하는 비윤리적 문제를 폭로하는 에코페미니즘의 예술실천도 동시대 미술계에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혹자는 말한다. 생태문제는 바로 우리의 삶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결론적으로 생태예술은 삶과 예술을 구분하지 않는 전략으로서, 즉 삶의 미학으로서 생태윤리적 미학의 가능성을 정당화한다고 하겠다. PA


글쓴이 유현주는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미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3년부터 생태미학예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태를 주제로 한 전시기획과 비평을 해왔다. 2020년 제주에서 세계문화유산축전으로 열린 <불의 기억> 전시감독을 맡았고,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한 <한국생태미술의 흐름과 현재> 연구조사사업의 책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폴 코스(Paul Kos) <The Sound of Ice Melting> 1970  
Two 25-pound blocks of ice, eight standing
boom microphones, amplifier, and speaker
Dimensions variable © Paul Kos Collection
 SFMOMA Accessions
Committee Fund purchase




Special Feature No.2
Tri_A_logue: 기술과 환경, 예술의 삼자 대담
●  유원준 미술비평가 · 미학


1945년,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는 존 도네(John Donne)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핵 실험에 ‘삼위일체(Trinity)’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로부터 인류에게 찾아올 대재앙을 떠올려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작명이 아닐 수 없는데, 원자폭탄이 사용되어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양산한 것을 넘어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인류세’와 같은 개념이 해당 시기를 기점으로 제안되기도 한 것을 보면 이 역사적 실험은 인류의 기술이 어떻게 자연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된다. 이렇듯 전지전능한 삼위일체로서의 신은 오펜하이머에게 와서 인류가 만들어 낸 기술의 이명(異名)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술의 본질에 신격(神格)이 머물러 있음을 예시하는 사례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일찍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불로서 상징되는 기술을 인간에게 전달한 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를 묘사하고 있으며, 기술철학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이 장면으로부터 기술의 본질 즉,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에 대적하기 위한 ‘기본값(default)’으로서의 기술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만물을 창조하는 권능과 그것을 온전히 파괴하는 힘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기술의 양면성과 그것의 본질적 특성을 설명해주며 기술의 신격이 그것이 지닌 창조적인 본능과 파괴적인 힘을 동시에 암시하는 비유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문화기술연구소
 <물은 기억한다(Water Has Memory)> 
이미지 제공: 지스트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최근 파울 크뤼첸(Paul Crutzen)에 의해 대중화된 인류세의 개념은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부터 지구의 환경 체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본격적으로 경고한다. 비록 본래 지질학적 사건을 중심으로 지질학적 연대를 결정하고 있기에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하였지만, 현재의 인류세 개념은 지질학을 넘어 보편적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의 인류는 해수의 이상기온 현상(엘니뇨, 라니냐, 라마마) 및 지구온난화, 특히 2019년에 전 지구를 강타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에게 있어 기술은 더없이 중요한 필수적 대상이지만 인류의 환경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즉, 인류의 기술은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서의 보편적 인식을 얻게 된 셈이다.



켄 골드버그(Ken Goldberg) <Ballet Mori> 
San Francisco Opera, 4 April 2006



그러나 기술을 발전시켜 온 인류에게 있어 이러한 인식과 그것을 상회하는 일반화는 매우 성급한 측면이 있다. 도구적 입장에서 기술에 대한 변호를 시도해 보자면 결국, 기술로 인한 환경파괴의 책임은 그것의 주체였던 인류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대응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같은 독창적 이론가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비인간 주체 또한 행위자로 간주한다. 인간은 사회관계를 안정화하는 데 비인간 사물을 끌어들이는데, 이로부터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 즉 이질적 연결망이 형성된다.

그에게 있어 인간 세계인 사회와 비인간 세계인 자연환경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기술은 비인간 행위자의 상징적 대변자로서 라투르가 주장하는 ‘사물의 의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어 전 지구적 생태위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인 동시에 그러한 오염을 측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도 활용된다.

즉, 기술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가늠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2000년대부터 제기되고 있는 자연, 공간, 인공물, 기술 등 비인간 사물들 또한 사회의 핵심적 구성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되는 ‘물질적 전환’이며 사회과학 전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되는 ‘신유물론’이다.



제니 켄들러(Jenny Kendler)
<Birds Watching I>2018
 Printed reflective film mounted on aluminium
on steel frame 270×1,220×20cm
Courtesy of the artist © Jenny Kendler



1960년대 말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에 의해 제기된 ‘가이아(Gaia)’ 개념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생태학점 관점과는 다르게 가이아 가설은 지구를 일종의 유기체로 간주하며 지구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개념을 포착한다. 그들의 논의를 요약해 보자면 지구상의 (무)생물들은 행성의 자기조절 시스템의 일부로서 지구의 환경적 조건들을 유지해오고 있었는데, 인간의 진화 및 기술이 이러한 조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구 시스템 과학자인 티모시 렌튼(Timothy M. Lenton)과 라투르가 이들의 가이아 이론을 다음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려는 대목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위에 의해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의도적인 자기 규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환경오염의 가해자로부터의 자기 인식의 촉발이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주체적-의식적 선택에 의해 (지구) 환경의 지속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리차드 모스(Richard Mosse)
 <Oil Spill on Kichwa Territory I. Block 192,
Rio Tigre, Loreto> 2023 Digital C print 121.92×162.56cm
 Courtesy of the artist, Jack Shainman Gallery
and carlier gebauer © Richard Mosse, 2023



현재 이와 같은 실천적 행위들은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현실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과 매우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만약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천명한 것처럼 예술의 기능과 역할은 ‘자연의 모방’이었다. 인류는 (자연) 환경에 대항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왔으며 동시에 예술을 통해 그러한 환경을 우리의 원천으로 간주하며 제의적 형식으로 추모해 왔다.

최근 예술은 다양한 기술 매체와 결합해 이전까지의 예술이 제시하기 어려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한편, 기술 자체가 지닌 도구적 한계와 그것의 유사-주체적 활용에 관한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라투르는 자신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네트워크에 주목하며 이러한 네트워크의 형성이 일종의 ‘번역(translation)’ 작업임을 주장했는데 이는 기술-기계와 같은 비인간들의 행위성을 인정하며 인간과의 관계를 대칭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그 특이점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은 이전까지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다시금 매개하는 번역자로서 그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동시에 우리의 환경문제를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전달자의 역할 또한 수행한다.



알테르나(alternaa
(Andra Pop-Jurj & Lena Geerts Danau)) 
<Monsters and Ghosts of the Far North:
Towards an Inclusive Cartography>
 © Andra Pop-Jurj and Lena Geerts Dana



인류세 개념이 주창된 이후, 예술계는 본격적으로 환경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물론 1960년대부터 환경문제를 다룬 예술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발표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을 초래한 코로나19의 창궐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기후위기 상황을 마주하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동시대 예술 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수 미술관의 특별전이 기후위기와 환경을 주제로 개최되고 있으며, 탄소 소비량을 줄이고(테이트 모던(Tate Modern)) 이산화탄소 배출을 방지하는(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등의 실천적인 방식으로 미술기관의 운영 측면에서 해당 주제에 동참하려는 움직임도 등장했다. 환경 및 생태학과 예술의 접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술 기반의 환경적 요건을 데이터로 활용한 예술의 경우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의 전달이 가능했다.



Installation view of Richard Mosse, 
<Dear Earth: Art and Hope in a Time of Crisis>  
June 21-September 3, 2023 Hayward Gallery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Mark Blower



가령 폴 코스(Paul Kos)의 <얼음이 녹는 소리(The Sound of Ice Melting)>(1970)는 두 개의 얼음 덩어리가 실내에서 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운드를 캡처하고 증폭시키는 작업이었는데, 미세한 사운드를 포착하기 위한 특수 마이크가 아닌 무대용 마이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연적 오케스트라를 의도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구온난화로부터 북극 빙하가 소멸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30년경 북극의 해빙이 모두 소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2023년 6월 포스텍 환경공학부 연구진 발표), 햇빛을 반사하는 얼음 대신 검푸른 바다가 태양열을 흡수하게 되어 지구온난화는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Installation view of Himali Singh Soin,
 <Dear Earth: Art and Hope in a Time of Crisis> 
June 21-September 3, 2023 Hayward Gallery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Mark Blower



이러한 환경적 문제들이 지닌 공통의 난점은 그러한 징후들이 인간의 시각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미시적이거나 거시적 차원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앞서 극지방의 빙하 소멸 예측의 경우에도 나사(NASA)의 ‘아이스 브릿지 작전(Operation Ice Bridge)’을 비롯해 전 세계의 다양한 연구진이 수많은 과학-기술적 실험을 수행하며 이를 지연시키거나 예방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가까운 미래에 전개될 현실적 사건이 아닌 매우 추상적 개념으로만 전달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술을 활용한 예술의 경우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하지만 메시지는 매우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성질의 것으로 환경의 문제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다. 2006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an Francisco Opera)에서 상연된 켄 골드버그(Ken Goldberg)의 <발레 모리(Ballet Mori)>는 1906년도에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Installation view of 
<The Coming World: Ecology as the New
Politics 2030–2100> 2019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Photo: Alexey Narodizkiy



로봇 및 자동화 분야의 공학자이자 예술가인 골드버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단지 100년 전의 환경적 재난을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지구의 움직임을 현재화하고 그것을 예술과 결합해 앞으로 다가올 인류의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헤이워드(Hayward) 단층에서 지진계로 측정된 지구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은 데이터로 전송되었고 작곡가 랜달 패커(Randall Packer)는 Max/MSP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를 사운드로 전환시켰으며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주요 무용수인 뮤리엘 마프레(Muriel Maffre)는 사운드에 맞추어 즉흥 춤을 선보였다.



제임스 발록(James Balog) This photo displays 
a melt water river formed by glacier melt in Greenland 
© James Balog



이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언급했던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ness)’의 개념이나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가 강조했던 기술 매체를 통한 의식 밖 영역의 발견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청중들은 그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환경적 요소를 환경 데이터에 기반을 둔 즉흥적인 공연으로 경험하며 자신들의 토대이기도 한 지구 환경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킬 수 있었다.

최근 동시대 예술의 경우, 이와 같은 움직임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전까지의 예술이 환경 데이터를 받아들여 이를 다양한 감각 데이터로 변환하는 작업을 통해 예술적 모습을 선사했다면, 현재의 기술은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을 측정하고 해석하며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Coming World: Ecology as the New Politics 2030–2100> 
2019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oscow 
© Garage Museum of Contemporary Art 
Photo: Alexey Narodizkiy



지난 2021년,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문화기술연구소의 시도는 최근 예술과 기술의 융합적 시도가 어떻게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물은 기억한다(Water Has Memory)>는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의 오염이 인류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실시간 해양오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측으로부터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관람객들은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악화되고 있는 환경(해양) 문제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딥 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해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생성하는 GPT-3라는 오픈 소스 프로그램은 작품의 주요한 이야기를 생성하는데,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현재까지 축적해 온 방대한 환경 데이터를 이용해 미래의 우리 현실을 예측하는 내러티브를 생성하게 된다.



Installation view of Otobong Nkanga, 
<Dear Earth: Art and Hope in a Time of Crisis> 
June 21-September 3, 2023 Hayward Gallery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Mark Blower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근대 이후 현재까지의 기술 기반의 예술적 사례들은 더 이상 제의적 형식 안에서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의 전통적 방식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예술은 환경과 기술이 지닌 이전까지의 대립적 구도를 해체시키며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했던 환경적 문제들에 관해 다시금 기술을 매개하는 방식으로 침투한다.

기술은 더 이상 도구적으로 작동하는 타자의 입장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인류가 마주한 현재의 환경문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진취적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예술은 환경과 기술의 적극적인 매개자이자 인터페이스로서 그들이 공약하는 발전적 미래에 우리를 동참시킨다. PA



아그네스 데니스(Agnes Denes)
 <Isometric Systems in Isotropic Space - Map Projections,
The Snail> 1979 Watercolour, pen, ink,
and silkscreen on paper,
 Mylar 61×76cm © Agnes Denes



Natura Nostra Forest, Southbank Centre,
 in 10 years’ time visualisation  Courtesy of SUGi  



글쓴이 유원준은 미술평론가이자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의 설립자이며 현재 영남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다. 과학-기술 매체와 예술 융합의 다양한 지점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영화와 게임, 만화와 공연 예술 등 전통적인 미술(시각예술)의 범주를 넘어 문화 예술 콘텐츠 전반에 관심이 있다.



Installation view of Agnes Denes, 
<Dear Earth: Art and Hope in a Time of Crisis> 
June 21-September 3, 2023 Hayward Gallery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Mark B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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