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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4, Sep 2023

생성AI 시대의 예술

Art in the Age of Generative AI

● 기획 · 진행 편집부

막심 듀퐁(Maxime Dupont) [Twins]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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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한 전북대학교 부교수,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이임수 홍익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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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barkeit)』(1935)에서 기계를 통한 작업 생산, 그로 인한 원작과 복제품의 구분 불가능한 상황을 ‘아우라(Aura)의 상실’이라 지칭하며 예술 작품의 위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90여 년이 흐른 지금, 인공지능이 탁월한 성과를 내놓는 시대에 도달한 우리는 예술 작품의 개념과 패러다임의 확장을 다시금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먼저 벤야민과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이 불러온 변화를 바탕으로 오늘날 예술적 관행의 정립을 고민하고, 이어 예술 창작에 활용되는 신경망 인공지능 구조와 그것이 생산하는 이미지에 대한 미적 경험과 의미 나아가 예술적 해석의 관계를 탐구한다. 끝으로 디지털 신기술이 조성한 지적·환경적 요인으로 말미암은 동시대 미의식을 살피며 예술적 견지에서 패러다임의 전환과 방향성을 고찰한다.



이리사 노바(Irisa Nova) <Eggsplorers>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SPECIAL FEATURE 1
생성AI 시대의 예술 _유경한

SPECIAL FEATURE 2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의 자본주의 리얼리즘_서동진

SPECIAL FEATURE 3
생성적 인공지능과 미술 : 예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 방향성 고찰_이임수  




제이슨 앨런(Jason Allen)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
 A.I. generated work © Jason Allen




Special Feature No.1
생성AI 시대의 예술
유경한 전북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


질문의 시작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연례 ‘예술경연대회(Art Competi- tion)’에서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이 출품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앨런의 작품은 생성형 인공지능(이하 생성AI) 기반 이미지 제작 소프트웨어인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한 것으로 우승 직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논란이 된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AI 창작물이 인간의 고유한 창의 활동의 결과물일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AI의 도구적 활용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생성AI가 만든 작품이 예술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는 다소 과장된 저널리즘 화법이었던 것 같다. 앨런은 생성AI 미드저니를 활용했다는 점을 명확히 공개했으므로 AI의 도구적 활용 자체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콜로라도주 아트페어 측도 이와 관련해 재심이나 수상 취소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심사위원 2명이 미드저니가 이미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인데, 이는 심사위원조차 생성AI와 인간의 창작활동의 결과물에 대한 뚜렷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반 관람객들이 생성AI 작품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저 기계가 만든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창작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 혹은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논의를 시작해야 할 첫 번째 지점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커스 부커라이트(Markus Butkereit)
 <Autopoiesis - unit unbounded #22> 
2022 Cologne



기술이라는 공존의 주체

예술 분야에서 심도 있게 논해지진 않았지만, 과학 기술이 인간 중심의 생태계에서 하나의 주체로 포섭되는 과정을 다루는 논의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제법 광범하게 다뤄져 왔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미셸 칼롱(Michel Callon), 존 로(John Law) 등의 학자들이 정립해온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oery, ANT)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이론으로서, 인간과 비인간 간에 형성되는 복합 네트워크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들은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actor) 역량을 지닌 기계, 사물 등 비인간이 인간과 동등한 행위역량(agency)을 갖고 있다고 보고, 기계와 인간을 상호 네트워크 속에서 동등한 주체로 취급해볼 것을 제안한다.

가령 총은 그 자체로 고정적 의미와 역할을 갖지 않으며, 권총을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범죄를 막는 도구가 될 수도, 범죄를 일으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의 영역에서 기술은, 이를테면 예술가와 관람객의 네트워크 속 AI 소프트웨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기술이 행위성을 지닌 주체로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과 기계의 단순 이분법을 통해 인간의 고유성과 예술성을 판단하는 것이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어려운 시대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인간이 유일한 행위 주체이자 지각의 주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과 기계가 동등한 주체로서 맺는 상호성에 주목할 때, 즉 세상을 움직이는 엔트로피(entropy)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기계와 사물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인간이 지닌 상상력과 창의력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확대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예술적 행위와 본질에 대한 사유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따라서 생성AI 시대에 우리는 기계가 인간의 예술적 행위를 대체할 것인가, 인간의 고유한 예술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질문하기보다 인공지능이 우리와 공존하게 될 때 예술이 지닌 의미는 어떻게 지각되고, 전환될 것이며, 그러한 지각의 변화는 과연 누구에게 유익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필요하다.



켄 리날도(Ken Rinaldo) <Autopoiesis>
an artificial life robotic sculpture series 
commissioned by the Kiasma;  Installation view of 
<Alien Intelligence> at 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 2000 curated by Erkki Huhtamo © Ken Rinaldo



생성AI 시대의 예술작품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논의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있다. 그리고 벤야민과 대척점에서 또한 항상 언급되는 이론가로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전통 안에 있으면서도 기술을 대면하는 방식, 기술의 영향력에 관해서는 매우 다른 관점을 보인다. 비판이론가들이 주목했던 기술이란 당시를 기준으로 사진과 영화로서, 카메라 옵스큐라(obscura)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의 원리를 계승한 기술-매체의 발전에 주목한다, 사진과 영화 그리고 라디오와 이후의 텔레비전은 모두 대중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테크놀로지로, 기술발전에 기반한 대중문화산업이 예술적 상상력, 예술의 고유한 심미적 가치를 저해하는 독약과 같다고 보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도구적 이성이 효용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효용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예술이 지닌 사용가치는 폐기되고, 결과적으로 교환가치와 전시가치만 남아 예술이 허위의식과 기만의 이데올로기로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이는 효용 없음을 지각함으로써 발현되는 비판의식의 형성을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인간 존재를 일차원적으로 단순화시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의 기능을 실제성(reality)에 대한 심미적 지각과 대상(현실)과 주체(자아)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가정하고, 새로운 기술이 산업화와 결합될 때 예술이 지닌 고유한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기술의 발전은 예술에 언제나 도전적인 과제를 부여해왔지만, 그로 인해 인간의 고유한 예술적 행위 자체가 소멸하진 않았다. 오히려 기술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심미적 행위와 가치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어 예술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변곡점이 되어왔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이미 16세기 르네상스시기 원근법의 정확한 표현을 위한 도구적 원리로 제안되었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유용한 보조적 도구로 이를 활용했다. 카메라가 문제가 된 것은 이동이 간편하고 실제에 대한 복제가 너무도 완벽했고, 또 지나치게 간단해졌기 때문이다.



Installation view of <Refik Anadol: Unsupervise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22-2023
 © 2023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Robert Gerhardt



인간의 예술성에 대한 훼손을 지적하는 예술가들의 반발이 잇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키치의 확산과 아우라의 상실을 개탄하던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카메라의 발명과 기술적 보급의 확산은 예술의 고유성을 훼손하기보다 그것에 대한 사유의 진전과 전환을 촉매했다.  완벽한 모사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예술가들은 표현과 사유, 예술가 자신에 관한 근본적 질문에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이 예술의 본질에 대해 천착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모멘텀이 되었다.

영화의 경우는 더 아이러니하다. 대중적 테크놀로지로 탄생한 영화에 대해 심미적 차원에 주목했던 이는 벤야민이었다. 아도르노가 형식(form)으로서의 예술에 주목해 콘텐츠로서의 예술이 지닌 아우라의 상실을 개탄했던 것과 달리 벤야민은 기술적 원리가 야기하는 지각의 방식 변화에 주목했다. 벤야민은 테크놀로지로서의 영화는 일종의 정신착란과 같은 분열의 반복을 통해 기존의 코드화된 실제성에 대한 탈코드화를 유인하고이는 아우라의 상실을 가져오지만, 역설적으로 아우라의 상실을 통해 예술의 대중적 확산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벤야민의 통찰대로 영화는 상업영역과 예술영역을 교차하며 독특한 장르 예술로서 정착해왔다.

생성AI라는 기술이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기술은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함으로써 무수한 이미지를 조합·변형해 생성한다. 이러한 기술적 진전은 이미 전문가들에게는 예견되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 기술을 대면한 것은 최근 일이다. 그래서 이 기술이, 기술적 원리가 향후 대중의 미학적 인식, 지각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구체적으로 진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과 예술의 관계를 기초로 판단해볼 때, 심미성에 관한 근원적 인식과 지각의 방식에 가져올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생성AI를 활용한 작품 생성의 윤리성이나 미학적 가치를 따져보기에 앞서 다른 종류의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 될 것이다. 생성AI라는 테크놀로지가 예술에 대한 대중적 지각의 방식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무수한 이미지의 조합과 변형이 실제성에 대한 지각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하는가? 그로 인한 예술의 사용가치와 전시가치에는 어떠한 변화가 촉발되는가?



이리사 노바(Irisa Nova) <Bunnies>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누구에게 유익한가

아도르노는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이론가답게 예술의 미학적 인식을 위해 요구되는 예술적 훈련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한다. 반면 벤야민은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야기하는 미학적 인식의 대중화에 주목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것 사이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은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무엇인가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카메라는 셔터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완벽히 모사된 실재를 제공했고, 영화는 사전 지식이 없는 누구라도 암전된 스크린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미학적 경험을 주었다. 최근 널리 사용되는 달리(DALL-E)나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의 생성AI 이미징 소프트웨어는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가들이 생성AI에 격하게 반발하는 하나의 지점은 바로 이러한 기술 활용의 정도, 즉 인간의 노력이 기술적 활용에 얼마나 투입되었는가의 문제다. 사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 문제는 계속 반복되어왔다. 일찍이 사진이 예술이 아니라고 비판한 주된 근거 역시 카메라가 생성한 이미지가 인간의 노력에 비해 기계를 통해 얻는 수월함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예술적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인 까닭은 심미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생성AI를 활용하더라도 프롬프트의 무수한 수정과 반복을 거쳐야 한다.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개입되어야 예술적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생성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생성AI를 조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금방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프롬프트에 명령어 몇 개를 입력한다고 심미적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적 관행의 제도적 허용과 승인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잭슨 내쉬(Jaxon Nash) 
<Most Successful Organism>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현재 디지털로 업로드된 웹상의 모든 이미지는 예술가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학습 알고리즘의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예술가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법적인 문제 외에 윤리적인 이슈가 되기도 한다. 즉, 누군가에게 유익한 일이 다른 이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이익을 둘러싼 갈등으로 드러난다. 단적인 예로,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술가의 미드저니 사용을 상대로 피해보상과 가처분소송을 제기했으며, 비슷한 움직임이 창작자 집단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는 생성AI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가 생성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만 생성AI 기술이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생성AI가 예술과 맺는 폭넓은 관계에 관해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대입해볼 필요는 있다. 벤야민은 제의적 가치가 사라지고 전시 가치만 남은 예술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기술적 복제로 인한 예술적 잠재성에 주목했다. 이는 결국 예술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미술관 바깥에서 제한 없이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생성AI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관람뿐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의 미학적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 예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이는 다시 학습데이터로 활용되는 순환과정을 거친다. 예술가들의 반발은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들은 생성AI의 등장으로 예술가들의 직업적 위기가 도래했다고 보기보다 컴퓨터 전문지식이 없는 예술가들의 직업적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그렇지만, 생성AI 기술은 컴퓨터 엔지니어에게 여전히 다양한 부가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성AI 기술의 발전으로 오히려 전문 교육을 받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확장, 다시 말해 예술 생태계의 영역 자체가 확대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는 결국 생성AI가 누구에게 이득인가의 문제를 넘어 예술 생태계 자체에 유익한가의 문제가 된다.



릴리 첸(Lily Chen) <Whispers of Innocence>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기술은 언제나 예술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은 기존 예술가들에게 언제나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은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모멘텀과 새로운 실험의 계기를 제공해왔다. 생성AI 소프트웨어가 아마추어 창작자들에게 그럴듯한 작품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 예술가들에게는 이를 활용한 예술영역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제도적 변화, 교육체계 및 훈련시스템의 변화를 포함해 전통적인 예술적 관행에 대한 변화를 포함한다.

예전의 화가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그림을 그리는 보조 도구로 활용한 것처럼 그리고 현재의 디지털 예술가들이 포토샵을 이용해 이미지 보정을 하는 것처럼, 디지털 예술가들은 미드저니를 활용해 예술작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사진이 예술 장르로 정착한 것처럼, 독립적인 예술장르로 공인받을지도 모른다.



알리시아 프란코비치(Alicia Frankovich) <Atlas of Anti-Taxonomies> 
2019-2022 16 dye-sublimation prints on PVC backlit polyester:
 6 panels at 180×240cm each, 10 panels at 100×200cm each; steel,
cords, 3 SD videos, colour, vertical Courtesy of Starkwhite
Auckland and 1301SW Melbourne Commissioned by Christchurch Art Gallery 
Te Puna o Waiwhetū, Christchurch, Aotearoa New Zealand 
Exhibition view Gus Fisher Gallery | Te Whare Toi o Gus Fisher 
Photo: Sam Hartnett



이처럼 생성AI가 몰고 온 거대한 변화는 이제 비로소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가들은 직업적 불안과 창작 권리 침해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물론 지극히 정당하며, 앞으로 생성AI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술가의 의지에 반해 기계적 학습에 작품이 활용되는 데 대한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 다만 이를 위해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디지털 이미지 환경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결국 언급한 생성AI 시대의 예술적 관행을 다시 정립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AI를 통한 데이터 학습 방식과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에 대한 예술적 개입이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의문은 상당 부분 기술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된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생성AI 시대의 예술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예술은 언제나 사회 전체에 유익해야 하며, 예술가들의 불안과 분노는 AI를 활용하는 개인이 아니라 예술의 심미적 가치를 도구적 효용성으로 대체하려는 기업과 사회적 관습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PA


글쓴이 유경한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영상학 석사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교양대학 조교수를 거쳐 전북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북대학교 예술융합창작전공 주임교수를 역임했다.




파트리샤 피 파 피보슈(Patrycja Pi Pa Piwosz)
 <Conscious Structures. The Journey of Autopoiesis>
 Poznan, Poland 2021
Plastic bags and recycled fabric, wood, led string,
 active objects, performance art, sound installation, 
video art, online map Photo: Patrycja Pi Pa Piwosz




Special Feature No.2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  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 교수


“못돼 먹은 이미지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일전 출간된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에 작정하고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이하 AI 생성 이미지)를 성토하는 글을 발표했다.1) 제목부터 신랄하다. 제목인즉 “못돼 먹은 이미지(mean images)”다. 이렇게 제목을 옮기는 것이 꼭 옳지는 않을 것이다. 슈타이얼 스스로 ‘mean’이란 낱말의 여러 뜻풀이를 참조하며, 이것이 합성사진(composite) 못잖게 난잡하게 여러 의미를 덧 포개고 있다고 푸념하기 때문이다(mean은 ‘천하거나 지저분하거나 그저 그렇고 그런 취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뜻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기도 하고 ‘수단’을 가리키는 명사이기도 하다). 슈타이얼은 AI 생성 이미지를 통계학적 렌더링의 효과로 간주한다. 이는 AI 생성 이미지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라면 두루 공유하는 입장이다.

AI 생성 이미지를 사변적 시선으로 포용하는 이들의 입장도 물론 있다. 기계적 알고리듬에 의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각예술의 역사는 현대미술의 역사만큼 오랜 일이기도 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AI 생성 이미지를 굳이 오늘날의 별난 문제로 간주하는 것을 유보하자는 태도는 매우 식견 있는 입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박한 미술사적인 지식을 동원하며 인간은 결국 알고리듬적 존재가 아닌가라는 허풍 떠는 말로 AI 생성 이미지를 초역사화하는 것은 AI 생성 이미지를 이미지의 미학으로 환원하는 처사에 불과하다. AI 생성 이미지는 그러한 사이비 역사주의적 태도로 흐려버려선 안 될 정치적, 기술적, 문화적 쟁점들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이얼의 개입은 시의적절하고 또 신랄하다.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The Jewish Type> 
『The Photographic News』 17, Apr, 1885



통계적 렌더링과 이미지

통계적인 렌더링을 통해 이미지를 산출하는 것,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유령처럼 출몰시키는 것은 통계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우생학적 도상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생학의 어두운 꿈은 사회에 ‘부적절한 유형(unfit types)’의 집단(예컨대 유대인, 결핵 환자, 범죄자 등)을 사회에서 제거하고자 불임화, 격리, 살상 등을 서슴지 않으며, 인종적 개량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적절한 유형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변은 우생학적 알고리듬(그는 자신이 발명한 회귀분석의 통계적 방법을 이에 활용했다)을 통한 이미지 합성이었다. 이는 각 유형에 속한 개별적인 인물들을 다중 인화해 얻어지는 상(像)을 ‘유형(type)’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AI 생성 이미지는 그러한 통계적 방법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다. 통계학의 역사적 추이를 간단히 참조하며 슈타이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쫓자면, 20세기에 접어들며 보다 정제된 새로운 통계기법들은 베이지안(Baysean) 접근법으로 수렴되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생성하는 연산 원리의 바탕에는 이것이 놓여있다.



Akin to the Hurricane by Jesús Hilario-Reyes with Exael, 
as part of AUTOPOIESIS: Recognizing Kin Across Antipodal 
Topologies, Allies for the Uncertain Futures part 4; 
Curated by Shaunak Mahbubani with advisors: 
Vidisha-Fadescha, Eli Moon, and Madhumita Nandi; 
hosted by Party Office, Oyoun and Bataclan Festival. 
Supported by Goethe Institut Visual Arts Fund 2022  
Photo: Ceren Saner



이의 핵심적 특성은 “주관적 측정이란 추측을 기반으로 계산을 시작한 다음, 새로운 증거가 수집되면 계속 확률을 갱신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베이지안 세계에서는 이상적인 대상이 없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주체의 경험만 있을 뿐이다. (…) 베이지안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기계학습모델은 초단타 거래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규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2) 슈타이얼이 참조하는 저스틴 조크(Justin Joque)의 말을 빌자면,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구성하는 통계학적 원리는 더 이상 현실 대상을 참조하거나 반영함으로써 생산되는 상사성(相似性, likness)이 아니라 주관적 추정의 확률을 통해 제안되는 유사성(類似性, likeliness)을 쫓는다.

이는 슈타이얼이 지적하듯 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 즉 시장은 이상적인 실체이므로 그것을 교란시키지 않고 이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정보는 통계적으로 처리되고 가공되어야 한다는 추계학(scholastic)적인 믿음이야말로 바로 알고리듬을 작동하는 형이상학임을 알려준다.3) 그리하여 주관적 믿음을 사회적 패턴으로 만들고 그 패턴은 알고리듬을 통해 이미지를 합성해 새로운 이미지를 산출한다. 그리고 슈타이얼은 그러한 이미지에 기재된 데이터 포퓰리즘의 효과를 가리켜 ‘못돼 먹은’ 이미지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바바라 브레이튼펠너(Barbara Breitenfellner)
 <The works still have to be defined in their materiality 
(collage? photography? painting?). Everything is tripled. 
Not yet quite clear how the works are to be transferred from 
the virtual to the real, especially with regard to glitch and authorship. 
– Then a film. A snowy landscape. We walk through the snow
 (-storm). A girl lies down with her braid going into her back 
(it is digitally transformed). Then the back falls apart digitally. 
A liquid (blood) runs from a table and somebody else drinks it. 
It transforms through the body into a (liquid) drug> 2019 
Centre Photographique d’Île-de-France,
 Pontault-Combault Photo: Aurélien Mole



재현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그런데 컴퓨터가 생성하는 이미지들이 지표성을 갖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객체성과 현실성을 갖게 된 데 대한 불안에 전율하는 데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챗GPT 열풍의 쓰나미 속에 덩달아 초미의 관심사가 된 AI 생성 이미지는 여러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되어 왔다. 이미지 자체의 미학적 차원을 둔 논란(지표성이 완전히 박탈된 극단적 시뮬라크르(simulacre)?), AI 생성 이미지의 사회적 생산을 둘러싼 폭로와 비난(기술적 자동성처럼 보이는 외양 뒤에 AI 생성 이미지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 셋(data set)을 만들어 내는 유령노동 혹은 미세노동(mircowork)의 착취), AI 생성 이미지의 기술적 중립성이란 가장 뒤에 숨겨진 인종주의를 둘러싼 시비(AI 생성 이미지는 우생학적 이미지 테크놀로지의 음산한 부활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등.

AI 생성 이미지의 생산과정은 대개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먼저 (주로 글로벌 남반구의 일시고용 노동자들이거나 중심부 국가의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라벨링 노동자들이 초저임금을 받으며 데이터 셋을 제작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시각 이미지 데이터의 색인분류는 라벨링이나 검수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유튜브(YouTube) 같은 플랫폼에는 N잡러를 위한 고소득 직종임을 안내하는 동영상들이 즐비하다. 한편 이러한 데이터 셋은 컴퓨터의 기계학습을 위한 재료가 되고,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컴퓨터가 익힌 확률론적 연산은 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로 전환된다. 그렇게 산출된 이미지는 AI라는 단축되고 신비한 마법을 통해 나의 모니터에 현상하는 것처럼 시늉한다.



바바라 브레이튼펠너(Barbara Breitenfellner) 
<I have an exhibition with a class photo from 
my primary school days. I am in the picture twice. 
Still hanging on the walls are the works from the last exhibition
 (this is part of my concept). Green geometric-abstract prints.
 In the room tables with installations made of different materials. 
At 1/2 past 3 there is 1 reception. Someone tells me it’s important 
to be there to shake Jan Hoet’s hand. I do want to put on 1 
special outfit in the colors of my installation. Therefore one has to 
moisten small bright adhesive pads + apply them to the skin. 
Once well rubbed in, the color of the face changes.>
 2015 Clemens Sels Museum Neuss Photo: Thomas Bruns



다시 말해 핀터레스트(Pinterest)나 텀블러(Tumblr) 같은 이미지 플랫폼에서 긁어모은 이미지들은 지배적인 시각 이데올로기의 분류체계에 따라 색인 분류되고, 그렇게 이미지를 통해 추출된 정보들은 지능(intelligence)이란 이름을 획득하게 될 함수 집합(API)으로 가공·포장된다는 것은 은닉된다. 그 함수들은 이후 우리가 프롬프트에 입력하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보편적 지능을 물질화하는 신비한 블랙박스인 척한다. 그러나 AI 생성 이미지의 알고리듬은 블랙박스라기보다는 슈타이얼이 특유의 어법으로 말하듯 “화이트박스 알고리듬 혹은 사회적 필터”이며, “평균적 이미지의 쓰레기라는 필터를 통해 사회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의 근사치(approximation)”이며 “나의 사진으로부터 현실의 잡음을 제거하고 그 대신 사회적 신호를 추출하는 것”이다.4)

그러나 AI 생성 이미지는 현실에 없는 대상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현실을 제거하고 시뮬라크르로 가득 찬 환영의 세계로 우리를 몰고 간다는 것은 소박한 생각이다. 언젠가 모두 몰두했던 논쟁 가운데 하나가 재현의 정치학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재현이란 이미지나 언어가 현실에 대한 모사나 반영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벗어날 것을 촉구하며 담론이나 재현, 언어적 코드 등에 의해 현실이 생산된다고 역설했다. 조잡한 사회구성주의 같은 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특정한 재현 시스템이나 약호 체계에 의해 사회적으로 생산되었다며 현실이란 부재함을 끝없이 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현의 이론은 현실이 부재하다기보다는 재현의 관습이 매개하는 현실이 저 앞에 놓여 있으며 현실은 수두룩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AI 생성 이미지는 더 이상 재현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흔적일 필요가 없는 이미지임을 자랑스레 확언한다. 그럼 현실이 제거된 이후, 즉 재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이미지에 무엇이 찾아오는가.



우르슬라 베를롯(Uršula Berlot) <Hyperoptics>
 2021 video 4min 22sec sound: Scanner - 
Robin Rimbaud, videostill © Uršula Berlot)



추상, 가치,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은 광막한 데이터 셋이다. 그것은 해묵은 개념을 빌자면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사진과 아카이브의 관계를 두고 앨런 세큘라(Allan Sekula)는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카이브 속에서 의미의 가능성은 현실적인 사용의 우연성들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은 또한 상실 즉 사용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추상하는 것(abstraction)이고 또한 사용의 맥락의 상실이다. 그런 탓에 사진들이 아카이브로터 선별되고 책 속에서 복제될 때, ‘본래’의 사용들과 의미들의 특정성을 피할 수도 있고 또한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

그 결과 새로운 의미가 옛 의미에 이식되고 그와 더불어 아카이브는 일종의 의미의 ‘어음교환소(clearing house)’로 기여한다.”5)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지가 본래의 사용 맥락으로부터 추상되어 각각 하나의 등가물처럼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유랑한다는 관찰에서 무엇인가를 연상할 수 있다. 그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대한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명한 규정일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종류의 사회적 활동은 그것이 행해지는 장소와 시간, 경험으로부터 추상되어 가치라는 형태를 띤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이브는 무엇보다 이미지의 교환의 체제를 형성한다.

모든 종류의 이미지는 소수의 메타태그와 부가된 메타태그를 통해 알고리즘이 추상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이러한 상품-추상과 이미지-추상을 가로지르는 유사성은 이미지가 추상되는 알고리듬의 기본적인 윤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세큘라가 꼭 집어 말하듯, 의미들의 ‘어음교환소’에서의 교환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정산(精算)할 것이다. 그 의미는 자신의 주관적인 예측과 패턴의 원리를 따라 이것이 그것이야 한다는 유사성의 교환가치를 배당할 것이다. AI 생성 이미지는 그것을 더욱 극단화하고 이미지를 오직 교환의 명령에 따라 생성한다.



우르슬라 베를롯(Uršula Berlot) & 순카나 컬지스
(Sunčana Kuljiš) <Bodyfraction> 2020 video 7min 40sec 
sound: Scanner - Robin Rimbaud, videostill
© Uršula Berlot & Sunčana Kuljiš



미드저니(Midjourney), 달리 2(Dall-E 2)와 함께 AI 생성 이미지를 대표하는 플랫폼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공언한다. “스테이블 디퓨전은 어떤 텍스트를 입력해도 포토-리얼리스틱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저력 있는 텍스트-이미지 전환 보급 모델이며, 놀라운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자유를 키워가고, 수초 내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멋진 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북돋는다.” 이 호언장담은 익히 알고 있던 이미지 생성 연산 규칙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이미지 생성 AI의 목표는 포토-리얼리스틱한 이미지다. 이때 우리는 AI 생성 이미지의 리얼리즘이 지표적 리얼리즘을 결여하고 있기에 리얼리즘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힐난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리얼리즘을 결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 스스로에 충실한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마크 피셔(Mark Fisher)가 말했던 신자유주의적 세계 속에서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허무주의, 즉 자본주의가 현실의 전부임을 가리키는 자본주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뜻에서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현실에 부과된 명령이나 규칙이 아니라 그러한 명령이나 규칙이 스스로 작동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현실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다른 생산양식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모든 구체적인 사물들은 가치를 지닌 상품처럼 나에게 나타나고, 나는 모든 종류의 상품이 화폐로 표현된 가치의 비율에 따라 교환된다고 믿으며, 내가 일터에 가서 일하고 받는 임금을 나의 노동의 가치로서 확신한다. 자본주의는 가짜 믿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 즉 대상성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주류 경제학에서 자본주의 내에서의 주관적 위치를 가리키는 유일한 말이 시장에서의 구매자와 판매자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세상이 가치를 지닌 상품을 교환하는 세계로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리얼한 주체 위치도 불가능할 것이다.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생성 이미지



자본주의는 자신의 고유한 대상성(objectivity)을 생산함으로써 자신의 리얼리즘을 위한 조건을 만든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란 자본주의는 자신의 규칙에 따라 현실을 재현하고 상징화하도록 하는 자기예언적 체계를 가리키는 말로 새겨야 옳다. 가령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이미지 생성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의 프롬프트에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incal Turk)를 위해 일하는 인도 살렘 지역의 AI 생성 이미지 데이터 셋 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입력하면 위의 이미지가 등장한다.6)

이 이미지를 두고 리얼리즘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자기반영적인 현실/이미지의 상징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실제 인물과 닮지 않았다는 뜻에서 리얼하지 않다고 말하려면 내 주변의 모든 리얼한 객체들이 얼마나 리얼한 것인지 먼저 물은 뒤여야 한다. AI의 알고리듬은 객체/현실이라는 가상을 반복하고 배가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PA

[각주]
1) Hito Steyerl, “Mean Images,” in New Left Review, Vol. 140/141, 2023
2) Justin Joque, Revolutionary Mathematics: 고유경 옮김, 『혁명을 위한 수학』, 장미와동백, 2022, p. 22
3) Hito Steyerl, 위의 글, p. 89
4) Hito Steyerl, 위의 글, p. 84
5) Allan Sekula, Photography between labor and capital, The Photography Reader, Liz Wells. ed.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3, pp. 444-445
6)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으로 데이터 라벨링을 비롯한 미세노동으로 알려진 숱한 노동을 중개 알선한다. 이를테면 인도의 살렘 같은 곳에서 한밤중에 음성인식 데이터 식별부터 자율주행 자동차를 위한 3D 이미지 식별 같은 일들이 아웃소싱되어 진행된다.



글쓴이 서동진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시각예술을 비롯한 자본주의와 문화의 관계를 탐색하는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타이틀매치>, 부산현대미술관의 <동시대-미술-비즈니스> 전시에 참여하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 <연대의 홀씨> 기획자로 참여하였다.



바바라 브레이튼펠너(Barbara Breitenfellner)
 <I have an exhibition with a class photo from my primary school days.
 I am in the picture twice. Still hanging on the walls are the works from
 the last exhibition (this is part of my concept). Green geometric-abstract prints.
 In the room tables with installations made of different materials. 
At 1/2 past 3 there is 1 reception. Someone tells me it’s important
 to be there to shake Jan Hoet’s hand. I do want to put on 1 
special outfit in the colors of my installation. Therefore one 
has to moisten small bright adhesive pads + apply them to the skin
. Once well rubbed in, the color of the face changes.> 2015 
Clemens Sels Museum Neuss Photo: Thomas Bruns




Special Feature No.3
생성적 인공지능과 미술 :
예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 방향성 고찰
●  이임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조교수


자동적인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생산하려는 열망은 카메라 옵스큐라(obscura)를 활용해 수학적 계산을 생략하고 원근법적 공간 환영을 창출하려던 시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 사진술의 발명으로 자동적인 재현 이미지의 제작과 기계 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등장으로 예술가는 이미지를 정보로 다루면서 이미지의 기계적 변조 및 생성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동적 과정을 통한 이미지 생산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만든 중요한 기술 미디어는 지능형 에이전트로 발달한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다. 미술 매체로서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학습하는 신경망의 재귀적 구조와 과정을 거쳐 창작물을 구성한다.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 광학적 기술 복제 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은 외부 대상의 재현보다는 예술가 자신의 표현과 순수시각적 화면 창출 그리고 예술가의 선택이 작품의 제작을 대신하게 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 미술에서는 예술가가 이미지 생성에 실시간으로 개입함이 없이 기계 스스로가 이미지 생성의 수행자가 됨으로써 예술 매체와 예술가의 관계에서 급진적인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Installation view of <Refik Anadol: Unsupervised>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22-2023  
© 2023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Robert Gerhardt



현재의 생성적 미디어 환경을 형성시키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꼽자면 생성적 인공지능(generative AI) 모델과 딥러닝(deep learning) 시스템일 것이다. 특히 학습 데이터가 태그나 레이블 없이 입력되어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 이뤄지거나, 불완전한 데이터를 복원하며 자기지도 학습(self-supervised learning)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 인공지능의 자기생성적 성격은 더욱 높아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데이터 셋(data set)은 생성적 인공지능 시스템에서 주요한 환경을 구성한다. 이러한 핵심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인공지능 예술에서 중요한 세 가지 쟁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인공지능 시스템의 아키텍처 구성과 데이터 셋의 선택, 둘째, 생성된 최종 결과물이 제시하는 내용의 실체, 셋째, 예술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시스템, 예술가, 관람객) 사이의 관계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쟁점을 따라 인공지능에 의한 예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 방향성을 고찰할 수 있다.

먼저 인공지능 시스템의 아키텍처를 구성하고 데이터 셋을 결정하는 과정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재료와 지지체를 준비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예술 에이전트와의 소통 문제는 예술가의 의도와 즉흥성을 인공지능에 내재화시키는 방법과 관련된다. 생성적 딥러닝 모델은 데이터 셋에는 없으나 그 범주에 속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우르슬라 베를롯(Uršula Berlot)
 <Imaginary Skyrmions> 
2023 kinetic light-video installation,
 sound: Scanner - Robin Rimbaud,
 variable dimensions Photo: Uršula Berlot



이 모델은 데이터 셋에 속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을 결정하는 일반 규칙을 학습해야 한다. 특히 트레이닝 데이터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예술가들의 수준에서 비교적 독자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생성적 인공지능 모델에 의한 이미지 생성 작업에서 미적, 예술적 특성을 획득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 하겠다.

메모 아크텐(Memo Akten)의 경우, 2018년 시작한 ‘깊은 명상(Deep Meditations)’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사진 공유 웹사이트 플릭커(flickr)에서 스크랩한 10만 개 이상의 이미지를 학습시킨 GAN 모델을 사용했다. 데이터 셋은 매우 다채로운 범주로 구성되었으며, 각 범주별로 3,000개의 이미지들을 모아 분류 레이블 없이 네트워크를 훈련시켰다. 아크텐은 레이블이 없는 다양한 데이터 셋을 사용함으로써 네트워크가 어떤 의미론적인 정보 없이 순수하게 미적인 기반으로부터 이미지를 생성하게 했다고 말한다. 생성된 이미지들은 전체적인 구성과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카테고리를 가로질러 변형되었다.1) 그런데 예술가는 종종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특정한 주제 하에 특정 범주의 이미지들을 학습시켜 이미지를 생성하기도 한다.



메모 아크텐(Memo Akten) <Waves 2.0: Terra> 
2023 Single channel 4K 60fps video with stereo audio; 
8min; Technique: Custom software, Artificial Intelligence, 
Machine Learning, Deep Learning, Latent Diffusion Models



이렇듯 생성적 딥러닝 모델에 의해 창작된 예술이 보이는 미적 특징은 데이터 셋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 창작 인공지능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선재하는 데이터에 대한 의존성은 현대미술사에서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가까이는 당대 미술에서 아카이브를 주요하게 다루는 경향과 연결되며, 조금 멀게는 초기 비디오아트에서 추구했던 비디오 이미지의 전자적 조작과 관련된다. 초기 이미지 프로세스 비디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재료가 되는 이미지들을 가공한다는 점에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을 예술 창작 매체로 사유하고, 이것이 야기한 패러다임 전환을 검토하는데 좋은 대조군이 된다.

선재하는 데이터에 대한 의존성과 같은 구조는 더 멀리 재현적 회화의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아카데미 시스템 아래 교육되고 평가되어 온 재현적 회화의 역사는 양식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미묘한 교차에 의해 지속되었다. 회화적 전통과 관례를 준수하며 하나의 공방에서 한 대가의 예술적 성취가 대물림될 때의 도제식 교육과정이 데이터 셋을 통한 생성적 인공지능의 학습과 유사하다.



릴리 첸(Lily Chen) <Beach 02>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그러나 회화와 이미지 프로세스 비디오아트의 최종 결과물의 양상을 결정하는 것은 예술가의 결정과 재료, 도구 및 장치의 조작이다. 반면 생성적 인공지능 미술의 경우, 잠재하는 특정 방향의 결과물을 기대하지만 예술가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얻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예술가는 지시하고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다음으로 생성적 인공지능 예술에서 최종적으로 생성된 결과물의 내용과 관련된 문제는 미술사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예술 수행의 관습과 개별 예술가들의 무의식적인 반복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예술로서의 평가 및 해석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며, 예술가가 실재로서 반복하고 있는 것, 즉 매체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통해 어떤 기억을 새기는 것이다. 생성적 인공지능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일시적 즐거움을 위한 오락에 불과할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마티직(Reiner Maria Matysik)
 <Radiolaria Exercise> Installation vi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Heidenheim,
 Germany 2021 © the artist



아크텐의 생성적 인공지능 작품 신작 <파도 2.0: 테라(Waves 2.0: Terra)>는 바다와 파도에 관한 예술적, 과학적 탐구의 역사로부터 데이터를 가져와 느리게 굽이치는 파도 이미지를 생성한다. 추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형태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파도는 작가가 영감을 받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카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이반 아이바조프스키(Ivan Aivazovsky)가 그린 파도와 유사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대양의 파도가 보여주는 상반된 두 감각들의 긴장을 추구한다. 거대한 힘과 연약함을 동시에 가지며, 고요하지만 사나운, 우아하지만 격렬한 그리고 희망, 자유, 생명과 동시에 공포, 위험, 죽음의 상징인 파도의 이미지.2) 이 파도는 인간 예술가가 아닌 심층 신경망의 상상력이 이야기하는 기억 이미지와 사운드이지만 관람객들에게 미적, 예술적 순간을 제공한다. 이것은 숭고미를 드러내는 낭만주의적 풍경화 전통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막시밀리안 훅스트라(Maximilian Hoekstra)
 <Mirror Face>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예술 매체는 기억, 기록, 소통의 문제와 결부된다. 모더니즘 이후 변화된 매체 패러다임의 핵심은 개별 미술 매체의 물리적 속성이라기보다는 기억을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한 미술의 관습과 물리적 지지체의 복합적인 구성의 문제다. 기존의 예술 행위의 관례가 지지체의 구조, 행위의 물리적 대상과 장에 의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것과는 반대로 예술작업에 활용된 생성적 딥러닝 시스템은 행위의 규칙을 선재적으로 형성한다. 따라서 생성적 인공지능은 예술 매체로서 다른 종류의 기억과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에서 열린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개인전 <비지도 - 기계 환각 - MoMA (Unsupervised - Machine Hallucinations - MoMA)>(2022-2023)에 선보인 작품은 GAN 모델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MoMA의 소장품 데이터로부터 13만 8,151개 이미지를 처리해 실시간으로 계속 생성되는 새로운 이미지를 미술관 로비 벽에 거대한 규모로 투사했다. 소장품 데이터는 미술관 로비의 빛, 움직임, 소리의 변화, 바깥 날씨와 같은 환경적인 요소와 결합해 실시간 생성 이미지로 전환된다.



소피아 페레즈(Sophia Perez) <Dancing Trees> 
Courtesy of Dead End Gallery      



현대미술을 “꿈꾸는” 기계라는 설명 문구처럼 작품은 전후 미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기억을 보여준다.3) 그러나 이 영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거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으로서 현재적 순간의 파지(retention)라고 할 수 있다. 아나돌의 영상은 흐르는 인공 의식을 가시화한다. 아나돌의 작품은 순수하게 현재적인 의식 과정으로서 기억(recollection)을 기술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예술 패러다임의 방향은 예술 수행자들 사이의 경계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다. 이 문제는 예술가, 인공지능 시스템, 관람객 등이 모두 참여자이자 행위자가 될 수 있는 예술 형식, 소위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로서 인공지능 예술로부터 제시된 것이다. 생성적 인공지능 모델은 예술가의 역할을 위임받은 대리자처럼 작동한다. 코딩이라는 언어전환 과정으로 인해 예술가 자신의 즉흥적 결정이 예술가의 대리자인 인공지능 네트워크에 바로 반영되기는 힘들다.



알요사(Aljoscha) <Bioism is an epiphany of new bioethics II>
 2022-2023  Times Art Museum, Chengdu, 
China Courtesy of WAVELENGTH Exhibition 
© the artist



다시 말해, 예술가의 개입 없이 결과물이 자동적으로 생성된다. 또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집단적인 공유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접근해 공유된 알고리즘과 데이터 셋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미지 생성 미디어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생성적 인공지능은 예술가, 인공지능 및 그것이 탑재된 장치,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생산하는 활동 주체, 관람자 등 모두를 잠재적인 예술 수행자로 통합해 그들 사이의 역할 경계를 모호하게 할 수 있다. 그 결과 예술 수행자의 경계는 흐려지고 융합된다.

예술가들은 이런 상황에 어떤 입장일까? 마리오 클링게만(Mario Klinge mann)은 예술가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미지 생성과정의 결정적 단계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임을 밝히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피아노를 예술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라고 그는 말한다.4) 반면 아나돌은 생성적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대중에게 오픈되어있는 사실에 매우 흥미를 느낀다.



메모 아크텐(Memo Akten) 
<Deep Meditations: A brief history of almost everything> 
2018 Installation view: 5 channel ‘Monolith’ version
“Immaterial/Re-material: A Brief History of Computing Art”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Beijing, China 2020



그는 특정한 영역의 기술이 밖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그 생산적인 일탈이 어떤 미래를 만들지 기대한다.5) 두 예술가의 입장은 생성적 인공지능에 의해 바뀌고 있는 예술 수행자의 범위와 역할에 가변적임을 보여준다. 이는 생성적 인공지능 예술에 의해 민주적인 새로운 예술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과연 벤야민이 기술 복제 매체인 사진과 영화의 등장으로 이미지 생산의 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 낙관했던 것처럼 그리고 백남준이 누구나 휴대하며 연주할 수 있는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꿈꿨던 것처럼, 생성적 인공지능이 예술가, 시스템, 관람객 등 분리된 예술의 주체들을 융합할 수 있을까? PA


[각주]
1) Memo Akten, “Deep Meditations: Controlled Navigation of Latent Space,” p. 4, the 32nd Conference on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NIPS 2018), Montréal, Canada, arxiv.org/pdf/2003.00910.pdf
2) memo.tv/works/waves-2-0-terra
3) “Refik Anadol on AI, Algorithms, and the Machine as Witness,” moma.org/magazine/articles/821
4) Onkaos, “Memories of Passersby I,” Mario Klingemann의 비디오 인터뷰, 2018, vimeo.com/298000366
5) “Refik Anadol on AI, Algorithms, and the Machine as Witness,” moma.org/magazine/articles/821



글쓴이 이임수는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 미술사학과에서 1970년대 뉴욕 대안공간과 미술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다양한 측면들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최근 디지털 미디어와 미술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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