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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2, Jul 2023

미술관 보물찾기

Treasure Hunt in Museum

● 기획 · 진행 김미혜 기자

백승우 '세븐데이즈(Sevendays)' 2017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LED 등 12.2×13.7×13.7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B3 원형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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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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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7월이다. 한차례 장마가 지나고 본격 무더위에 접어드는 이달,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국내 미술관 속 우리가 못 보고 스쳐 지났을 보물 같은 작품들을 꾸려 소개한다.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그간 인지하지 못 했던, 미술관 속 작품을 발견한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이번 특집은 14개 기관의 작품 20여 점을 대상으로, 그곳 학예연구사들로부터 보다 내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담는다. 삶은 한없이 어렵고 지난한 것 같다가도, 누군가의 말이나 웃음, 우연히 발견한 행운에 펄펄 솟는 힘을 얻기도 한다. 미술관 속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이 여정이 지금쯤 다소 지쳤을지 모를, 오늘의 당신에게 응원과 휴식이 되길 희망한다.




SPECIAL FEATURE 1
시차를 가르며 _김미혜

SPECIAL FEATURE 2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부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호암미술관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Black Tornado> 2016 알루미늄, 철 340×170×170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지하 1층




Special Feature No.1
시차를 가르며
김미혜 기자


시작은 어느 날 미술관으로의 방문이었다. 미술관 가는 일이 특별하거나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므로 그날도 어김없이 새롭게 열리는 기획전에 집중하며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는데, 미술관에 자리한 야외조각공원과 그곳에 놓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몇 번은 지나쳤을, 심지어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했던 그 날도 거쳤던 곳이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번듯이 놓여 있어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미술관 속 보물을 찾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번 특집엔 총 14개 기관의 20여 작품이 주인공이다. 익히 들어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도 있고 다소 낯설고 생소한 작가의 작품도 있다. 그러나 저마다 소장 시기와 그 이유는 물론 매체와 재료가 달라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먼저 경기도미술관 야외공원에 설치된 홍승혜의 <온 앤 오프>(2010)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술관 풍광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실내 통로 벽을 채운 강익중의 <5만의 창, 미래의 벽>(2008-2018)은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구입대금 전액을 어린이들을 위한 뜻 깊은 프로그램에 써달라는 작가의 기증 의사로 이루어진 프로젝트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그간 작품이 아닌 공간 디자인의 일환으로 여겨지곤 했던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두 작품을 소개하며 부차적인(secondary) 것에 천착해온 작가의 예술적 태도를 고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가 전라도 화순과 고창에 유치된 유네스코 자산 고인돌 무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아시아 첫 영구설치 작품을 비롯 전당 곳곳에 배치된 작품들이 갖는 현장성을 강조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MMCA 과천프로젝트’ 일환 예술버스쉼터를 통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는 미술관의 역할과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대구미술관은 이명미의 <앉으시오>(2015)를 통해 관람객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유쾌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가 하면 대전시립미술관은 열린수장고에 서식 중인 두 마리의 우로보로스, 최우람의 <우로보로스>(2012)와 김윤철의 <크로마>(2019)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기계, 자연, 물질, 질료 등이 얽혀있는 세계를 탐색하고, 리움미술관 강당 라운지에 위치한 장영규의 <추종자>(2022)는 한국적인 정원을 내다보며 판소리가 구전되는 과정을 귀로 따라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가 하면, 백남준아트센터의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1982/1999)는 ‘살아있는’ 것의 의미와 나아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케 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신체를 매개 삼아 작품과 장소의 관계를 확장하는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와 이우환의 대화를, 전남도립미술관은 과거 철도 용지였던 공간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소장하게 된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업과 가장 최근 설치한 서도호의 작업이 품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 제주의 대표 문화공간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야외공원 산책길에 조성된 조각품은 현시대를 반영한 다양한 이슈를 살피는 한편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은 장소와 작품, 사람 간의 균형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이끄는 박기원의 <미로 정원>(2019)을 소개하고, 끝으로 최근 1년 반의 리노베이션을 마친 호암미술관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엄마(Maman)>(1999)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간다. 다양한 기획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고, 하나의 전시가 끝나기 전부터 다음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수천수만 개의 소장품은 항시 세심하게 살펴 보관·관리해야 하고,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구비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듯 보여도, 우리가 놓치고 스쳐 지난, 시간과 공간이 멈춘 그곳에 존재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삶과 예술, 그 사이의 시차를 가르며 시선을 던지는 자만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 이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PA




홍승혜 <온 앤 오프> 2010 
철 파이프에 폴리우레탄 460×345×345cm 
@경기도미술관 야외공원




Special Feature No.2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1.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2. 전화번호: 031-481-70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gmoma.ggcf.kr

경기도미술관 야외공원 한쪽, 각진 철 파이프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채 사방이 뚫린 빨간색 집 하나가 세워져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허공에 선을 쭉쭉 그은 것 같은, 정육면체 형태의 삼각형 지붕을 얹어놓은 이 조형물은 작가 홍승혜의 <온 앤 오프>(2010)다. 2010년 경기도미술관 여름기획전 <유원지에서 생긴 일>에 출품됐다가 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야외공간을 색다른 형태로 틀지어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디지털 픽셀의 기본 단위인 네모난 점이 뻗어 선이 되고, 파이프 선들이 모여 입체감 있는 집 모양을 이루는 한편 정육면체의 몸체는 세로로 반이 나뉘어 위아래가 엇갈려있다. 계단처럼 층을 준 삼각 지붕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모양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지붕 아래 집의 벽체가 되는 직사각형 부분 역시 세로 선으로 나뉘어 문처럼 보인다.

작품 제목 ‘온 앤 오프(On & Off)’는 ‘on & off the grid’, 즉 격자 구조의 안과 밖을 뜻하는 것으로 작가는 평면을 떠나 3차원의 실재 공간 속 그리드 체계를 벗어난 구조물을 제작했다. 이러한 상태는 격자라는 형태가 제공하는 안정감만큼이나 미묘한 해방감을 선사하고, 관람객은 평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체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하학적 구조물을 바라보며 정적이면서 동시에 동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강익중 <5만의 창, 미래의 벽> 
2008-2018 10×72m @경기도미술관 실내 회랑



한편 실내에는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회랑에 미술관 1/2층 통로벽을 가득 채우는 가로 72m, 세로 10m의 대형 작업 강익중의 <5만의 창, 미래의 벽> (2008-2018)이 있다. 지난 2008년 작가와 미술관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장하게 된 작업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모자이크 풍경화 같지만, 실상은 풍경화의 산과 물, 섬 등이 배경에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아이들의 꿈이 담긴 나무 조각 그림을 얹어 제작한 것이다.

작업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을 포함해 최남단 마라도에서 최북단 대성동까지 도서산간지역 전국 5만여 명의 어린이들과 베트남 어린이, 태국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이 담긴 그림과 오브제를 모았고, 이를 벽화로 제작하는 과정에 자원봉사자와 외국인 근로자, 고등학생, 대학생, JSA 군부대원, 장애인, 노인회, 보호감찰자 등 여러 사회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어린이 그림을 통한 치유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 화합의 의의도 발견할 수 있다.

강익중은 당시 이 작품을 “모두에게 바치는, 모두를 위한 그림”이라면서 “아이들의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창이며, 그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작가인 내가 할 일이다. 전 세계 아이들의 그림으로 임진강에 다리를 놓고, 전 세계인들은 우리가 하나 됨을 보고, 증거하고, 남북은 축제를 열고, 임진강에 다리가 놓이는 날까지 계속 그림을 모으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술관과 작가의 협업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로 완성된 <5만의 창, 미래의 벽>은 이처럼 공공미술이 미술관 소장품이 되고 그 지속 가능성과 의미를 이어가는 활동을 보여주는 결과물로써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전경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 이혜원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2. 전화번호: 062-613-71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artmuse.gwangju.go.kr

광주시립미술관은 1992년 개관 후, 2007년 현재 위치한 중외공원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하며 중외공원 곳곳에는 다양한 조각과 벤치의 용도로 제작된 작품들이 설치됐다. 공원 내부에 놓인 것들은 어느 정도 관람객들에게 작품으로서 익숙해진 모양새다. 하지만 미술관에는 여전히 관람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품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광주시립미술관 입구 유리벽에 부착된 텍스트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이 작품은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작품이다. 그는 1964년생으로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를 졸업한 초기 YBAs 대표작가 중 한 명이자 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출판, 전시기획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술관 입구에 있는 작품은 2021년 <리암 길릭 The Work Life Effect>전 때 설치한 <개체 관계 맵핑>(2021)으로 이질적인 단어와 구조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단어들은 특정한 업무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jargon)와 전혀 관계없는 단어들을 더해 새로운 문구를 만든 것이다. 특히 광주시립미술관 입구 유리창 구조와 결합하여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빛과 공간의 반사 속에서 단어들의 부조화와 혼란은 더욱 강조된다. 이렇듯 새로운 환경에서 같은 언어라도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길릭의 그래픽 작업에 핵심적인 부분이다.



김보현 <물결>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369×640cm 
@광주시립미술관 로비



미술관 로비를 따라 들어오면 있는 북라운지에 또 다른 길릭의 작품 <마음의 키오스크 광주>(2021)가 있다. 키오스크는 한국어로 ‘임시 판매대’를 의미한다. 즉, 이 작품으로 전시장(북라운지) 또한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곳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길릭의 전시가 진행 중일 때도 입구와 북라운지에 붙은 텍스트들이 작품이 아닌, 전시를 위한 공간 디자인의 일환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길릭은 이 작품이 “<리암 길릭 The Work Life Effect>전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차적인(secondary)’ 것들에 대해 늘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전시를 하는 미술관의 메인 공간인 전시실이 아닌 부차적인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고자 했다. 안과 밖의 배경이 겹치고, 미술관 내부에 있는 관람객과 중외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특별한 영역이 필요했다. 그렇게 선정된 북라운지와 미술관 입구는 전시장이 아닌 관람객을 전시의 일부로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고, 현대미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리암 길릭(Liam Gillick) <마음의 키오스크 광주> 
2021 매트 블랙 비닐 335×870cm
 @광주시립미술관 입구



한편 미술관에 들어와 정면을 바라보면 6m가 넘는 또 다른 대형 작품이 관람객을 반긴다. 로비를 걸어 들어오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김보현의 <물결>(1995)이다. 작품을 처음 본 관람객들은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작품의 규모에 자연스레 호기심을 갖는다. 반면 2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어 작품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는 관람객도 많다. 김보현이 1996년 미술관에 기증한 이 작품은 이후 2010년 지금 위치한 미술관 벽면에 설치됐다. 김보현은 1917년 경상남도 출생으로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귀국하면서 조선대학교 미술학부 초대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미국으로 떠나 1955년 일리노이 주립대학 교환교수로 2년여 시간을 보낸 후 뉴욕에 정착했다. 1950-1960년대 김보현의 격정적인 화면 표현은 고국에서 경험한 고통을 정화하는 과정이었다. 일상적인 대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극사실적인 필치로 화면에 옮긴 1970-1980년대 작품은 자신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 대형화면을 통해 거침없이 펼쳐지는 화려한 색채의 향연은 그가 경험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물결>은 1980년 후반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그가 주로 그려왔던 인물, 정물 그리고 풍경의 소재들이 서로 혼재해 있으며, 시적인 환상의 세계, 기억의 단편들이 커다란 화면에 겹쳐져 표현되었다.  

 * 길릭의 작품은 <리암 길릭 The Work Life Effect>를 위해 설치된 작품으로 2023년 8월 말 철거될 예정이다.



광주시립미술관 전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sia Culture Center

● 이성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무관

1.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2. 전화번호: 1899-5566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4. 홈페이지: acc.go.kr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을 둘러보다 보면 눈에 띄는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전시실에 전시된 것이 아닌, ACC 공간 내외부와 지나가는 길에 다양한 미술품들이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이 전시장을 직접 찾지 않아도 일상 중에 멋진 작품들을 마주치게 된다. 먼저 ACC 복합전시관광장 내(장동로터리 방향)에 설치된 <ACC Magic Mountain>(2017)은 세계적인 조각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영구 설치 작품으로 자연과 인공의 차이 그리고 유사함을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드러낸다.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ACC Magic Mountain> 
2017 화강암 800×280×280c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관광장 내
(장동로터리 방향)



작가는 화순과 고창의 유네스코 등재 자산인 고인돌 무덤과 광주 무등산의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상했다. 관람객은 무등산의 풍경을 담아내는 색상으로 채색된 대형 화강암이 사뿐히 쌓여있는 형상을 마주하며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2022년 방탄소년단(BTS)의 김남준(RM)이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미국 네바다 사막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됐었는데 이후 많은 관람객이 ACC에 설치된 론디노네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문정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문화창조원 로비에 설치된 마탈리 크라셋(Matali Crasset)의 <리플렉시티(Reflexcity)>(2015)는 지하 3층과 2층 로비에 걸쳐 설치된 가구형 설치 작품으로 안테나 형상을 한 5개의 조각품으로 구성된다. 넓은 공간을 장악한 작품은 마치 저편 너머로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모양이며, 각각 다른 크기, 색상, 형태를 가진 작품의 주요 메탈 소재는 자연광, 조명과의 어우러짐을 통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효과를 본다.



마탈리 크라셋(Matali Crasset) 
<리플렉시티 (Reflexcity)> 2015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가죽, 패브릭, LED 가변 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지하 3층, 2층 로비



감상을 위한 예술 작품인 동시에 관람객이 직접 앉거나 누워서 체험할 수 있는 가구로, 관람객은 작품에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워크숍을 개최할 수도 있고 ACC의 대나무 숲 풍경을 마주하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공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리플렉시티>는 인간을 특정 자치의 중심에 둠으로써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문화정보원 내 원형 중정에는 또 다른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세븐데이즈>(2017)는 공간 특성을 극대화한 360˚ 회전형 작업으로, 전 측면에서 관람이 가능한 장소특정적 공공미술 작품이다. 작품에 쓰이는 문구는 광주의 역사성과 문화전당의 장소적 특징을 고려하여, 관람객에게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통한 회복과 치유를 제공하고자 설정되었다. 한 바퀴씩 회전하는 구조로 제작됐으며 문구 또한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의 시간을 각인시키는데, 이는 반복적 일상에 기반한 역사와 기억의 재생산과 맥락을 함께 한다.



이불 <무제> 2015
알루미늄, 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합판, 아크릴 거울,
양면 거울, 유리,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우레탄,
발포 폴리스티렌 위에 스톤 스프레이와 아크릴 물감, 천
600×610c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지하 4층 로비



각 요일은 옛 팝송의 노래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며, 주기적 시간의 반복성은 역사적 시간과 동시대의 시간의 재현을 제시한다. 이 밖에도 이불의 <무제(Untitled)>(2015), 왕두의 <승리!(Victory!)> (2015), 최정화의 <Ancestral Landscapes / Normal Scape / Heavenly Heaven>(2015) 등의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만 보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마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혹시 광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ACC에 들려 감상해보길 바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MMCA Gwacheon

● 이현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2. 전화번호: 02-2188-60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4. 홈페이지: mmca.go.kr/visitingInfo/gwacheonInfo.do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하 과천관)은 지금까지도 1986년 개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어진 미술관들이 새로운 기술과 재료로 구현한 감각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수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4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미술관의 내외부 공간이 시대의 요구와 다각화된 미술관의 역할, 새로운 사용자들을 반영하여 변화할 필요가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2021년을 기점으로 ‘MMCA 과천프로젝트’는 앞서 여러 해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일시적인 야외 파빌리온 건축 및 설치 프로젝트로부터 미술관 방문 경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기 공간 프로젝트로 재편했다. 이를 통해 공간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미술관에 활력을 더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이다.



김사라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2021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정문



미술관 공간 재생의 시작

2021년 ‘MMCA 과천프로젝트’는 과천관 공간 재생의 첫 대상으로 미술관 경계의 바깥,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버스정류장’을 택했다. 과천관은 방문을 위해 조금 긴 여정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술관의 도입부이자 관람객을 맞이하는 얼굴이 되는 버스정류장은 변화가 시급한 곳이었다. 특히 기존에 사용되었던 순환버스 정류장 3곳(대공원역, 미술관 정문, 후문)은 노후화되어 있었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으로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는 복잡한 도심으로부터 자연 속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버스정류장을 전이 공간으로 설정하여 참여 작가 선정을 위한 공모를 진행했다. 최종 후보군 5명(팀)은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 김에김(김종범, 김다움), 이석우(SWNA), 에이코랩(정이삭), 정수진(SIE건축)으로, 그들에게 ‘환대’, ‘여정’, ‘여운’ 3개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미술관은 작업이 예술 작품이자 호기심과 설렘을 담을 수 있는 열린 쉼터가 되기를 기대했다. 또한 ‘자연 속 미술관’으로 향하는 짧지만 즐거운 숲길의 여정과 여운을 누리는 장소적 경험을 제공하려 했다.



김사라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부분) 2021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정문



기능적인 건축과 추상적인 조각 사이에서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의 최종 당선작은 다이아거날 써츠(김사라)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다. 약간은 도발적인 작품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미술관 경계에 놓일 버스정류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어떤 기능을 해야할 지 등 다각적인 고민과 질문을 던진다.

그는 새로운 미술관 외부에 3개의 새로운 설치 작업을 진행하며 예술버스쉼터를 미술관 전시장에 다다르며 일상을 환기하는 공간으로 상상했다. 황량한 도로를 향해 앉아 그냥 버스를 기다리기보다는 서로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각자가 포착한 장면들을 기억하게 하는 이곳은 앉거나 기대어 쉴 수 있는 구조물인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조건의 공간 장치를 통해 사용자들이 서로 다른 움직임과 자세를 취하며 유연하게 공간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기둥과 천장, 열린 벽면과 같이 최소한의 건축 요소로 구성된 이곳은 직선과 곡선, 사각형과 타원 같은 기본 조형들이 마치 추상 조각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김사라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2021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후문



또한 주변 환경을 어렴풋이 비추는 알루미늄,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짙은 먹색의 탄화목, 어둡고 매끄러운 질감의 콘크리트와 같은 일반적으로 공용 공간의 시설물에 쓰이지 않았던 재료들을 가공하여 완전히 다른 미감을 가진 버스정류장을 제시했다. 이 재료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아름다움을 갖기보다 빛, 온도, 바람, 습도, 소리와 같은 주변 환경과 날씨, 현상적인 요소들을 적극 끌어들여 공간의 질감을 다채롭게 빚어낸다.

 *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관하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이르는 길에 경험할 수 있는 3개의 야외 설치 작품이자 미술관 전용 버스정류장이다. 4호선 대공원역에서 미술관 정문을 오가는 셔틀버스나 서울관에서 과천관으로 매주 화요일-금요일 사이 운행하는 아트셔틀을 이용하면 보다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경



대구미술관
Daegu Art Museum

● 이정희 대구미술관 전시팀장

1. 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미술관로 40  
2. 전화번호: 053-803-79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9:00(4-10월) / 10:00-18:00(11-3월)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daeguartmuseum.or.kr

대구미술관 주차장에서 미술관 건물로 올라가는 사면(斜面)에는 이명미의 작업 <앉으시오>(2015)가 설치되어 있다. 이 대형 작품은 2015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 출품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전시 종료 후 작가가 미술관에 기증해 2016년 연말 대구미술관 야외공간에 배치되었다.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명미는 1972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국전을 비롯한 <앙데팡당전>, <서울 현대미술제>, <한국실험작가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일찍이 화단에 등단했다. 1974년 ‘대구 현대미술제’ 창립 멤버이자 최연소 여성 미술가로 참가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낸 그는 오랜 시간 주로 회화 장르에 집중해 작업을 해왔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종종 의자, 화분, 문자 등 회화 작업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조각과 설치작업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그중 하나로 높이가 4.8m에 달해 작가의 입체 작업 중 가장 큰 스케일로 제작되었다.



이명미 <앉으시오> 2015 스테인리스 스틸 
240×250×480cm @대구미술관 야외공간



1970-1980년대 국민학교 교실에서 사용했던 나무 의자를 닮은 좌우 한 쌍의 의자 중 왼쪽 의자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고, 표면에는 작가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 등 밝고 화려한 원색 바탕 위에 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형과 숫자가 도색되어 있다. 오른쪽 의자는 카본 스틸을 재료로 하여 도색하지 않고 철 조각 특유의 육중한 무게감과 질감을 살려 제작되었다.

미술 작품에서 의자 모티브는 여러 가지의 의도로 사용된다. 때로는 의자의 본래 용도인 휴식과 편안함을 상징하는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비어 있는 의자의 경우 부재나 공허, 분리를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그 의자에 앉는 이의 권력이나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명미는 이 거대한 의자 작업을 통해 권력과 명예 등 인간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자리, 욕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높아서 앉을 수 없는 의자에 ‘앉으시오’라고 ‘굳이’ 권유하는 특유의 유머와 장난기를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미술관 야외공간에 놓여 있는 ‘앉으시오’라는 직관적인 제목이 붙은 거대한 의자를 통해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을 느끼기보다는 어렵지 않게 현대미술에 다가가는 유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제나 예술이 무엇인지를 재고케 만드는 이명미의 작업은 예술이 견고하게 세우는 경계에 균열을 내고 무너뜨리며 밖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주류 미술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거대 담론이나 예술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냉소하고 블랙 유머를 내뱉으면서도, 평범하거나 연약한 것에는 한없이 다정한 작가의 작업에는 명랑하고 날카로운 비평적 태도와 함께 소중함이나 다정함, 그리움과 같은 섬세한 감각이 선명하다.  



대구미술관 전경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5 
2. 전화번호: 042-270-7378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9:00(3-10월) / 10:00-18:00(11-2월)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daejeon.go.kr/dma

1993년 개최된 ‘대전세계박람회’를 기점으로 대전은 ‘과학도시’를 선언했다.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 컬렉션의 방향 또한 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특히 2012년 ‘프로젝트 대전’(‘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전신)부터 뉴미디어 작품 수집에 무게를 두어 국내외 주요 작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열린수장고 1실의 작품이 교체되고 2실에서는 한국 미디어아트의 독자성과 실험성의 정체를 묻는 새로운 전시 <개척자들 :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가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미술관 주요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모두 소개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 기사의 제목이 떠올랐다. “비디오 게임 속 램프는 진짜 전기를 소비한다”.* 이렇게 현재 2실은 30평 남짓한 공간에 8점의 작품이지만, 한국 비디오아트 1세대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1실은 고요하다. 신과 우주의 상징이자 삶의 근원인 ‘순환’을 뜻한다는 두 마리의 우로보로스(Ouroboros)가 플러그가 뽑힌 채 자리하고 있는데 상설관으로 운영되는 1실의 특성상 작품을 가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우람 <우로보로스> 2012 메탈릭 재료, 
레진,24k 골드종이, 모터 등 12×Ø130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1실



먼저 첫 번째 우로보로스는 최우람의 <우로보로스>다. 2012년 구입 즉시 신소장품전을 통해 소개된 후 2019년 <원더랜드뮤지엄 :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에 전시, 이후부터 현재까지 잠들어 있다. 어릴 적부터 청계천 공구 상가를 드나들었다던 ‘기계 덕후’ 최우람의 대표작 중 하나로 섬세한 구조와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회전을 무한 반복하는 모습으로 인해 자신의 입과 꼬리가 이어진 우로보로스 특유의 형상은 시작과 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와 동시에 무한하게 이어지는 원형의 움직임에서 생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과 윤회 사상 또한 엿볼 수 있다. 우로보로스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로 우주의 창조자와 우주를 상징하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영원, 무한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인간의 정신세계를 잠식해가는 인간 자신의 피조물들이 스스로 군집하여 번식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이 탄생하려는 종(種)과 작가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의 결과물이라 언급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지전능한 창조자의 입장이 아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관찰하는 탐구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서 살아 움직이는 것, 즉 ‘생명’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기계와 인간이 공생하는 생태계를 상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우로보로스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한국관 출품작으로 잘 알려진 김윤철의 <크로마>다. 2019년 개인전 <글레어 (GLARE)>에 출품되었고, 수집 이후 2020년 <신소장품 2020>에 소개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잠들어 있다. 작품의 타이틀이 지시하듯 구조적 색채와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하학적 몸체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세 개의 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트레포일(trefoil) 구조가 특징이며 표면을 뒤덮은 300개의 셀이 휘는 정도, 관절의 길이와 압력이 달라 각기 다른 독특한 패턴의 이미지가 구현된다.



김윤철 <크로마> 2019 아크릴, 알루미늄, 
고분자 폴리머, LED 200×150×150cm 
이미지 제공: 작가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1실



각각의 셀은 전체 구조가 갖는 인장력과 더불어 작품 전체에 매우 커다란 탄성을 부여한다. 안과 밖이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복잡계 구조는 우로보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복층의 수많은 셀로 뒤덮여 있어 마치 뱀이 자신의 비늘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상징과 기호, 지식과 상상, 물질과 정신의 끊임없는 교차가 예술가의 눈과 신체를 통해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업이다.

미술관의 정체성이며 근간이라는 소장품은 대부분의 삶을 수장고에 갇혀서 보낸다. 그러한 맥락에서 열린수장고는 이들의 비극적 운명에 희망의 계기가 되지만 미디어아트만큼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는 하나의 오브제로 보기조차 어려울 만큼 안쓰러운 모습이니 말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수장고에 내려가 두 마리의 우로보로스를 한참 동안 보았다. 이 정교하고 섬세한 구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나.

빛을 내고 움직이지 않는 이들은 그저 차가운 기계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쩐지 신화 속 생명처럼 느껴져 손을 대보면 온기나 숨이 느껴지려나 싶다. 오히려 인간, 비인간, 기계, 자연, 물질(material), 질료(matter) 등이 서로 얽히고 관계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차분히 보여준다. 이 우로보로스들은 진짜 전기를 소비하는 그날까지 죽어있는 것이 아닌 잠들어 있음에 설렌다.  

* 2019년 온라인 커뮤니티 레데(Reddit)에 게시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에서 작가 김상진이 동명의 작업을 통해 가상 경험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한 바 있다. 가상과 실제 관계의 검토가 원작의 주요 메시지이나 이번 글에서는 ‘전기’라는 단어 자체에서만 영감을 받아 빌려옴을 밝힌다.



대전시립미술관 전경



리움미술관
Leeum Museum of Art

● 이진아 리움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2. 전화번호: 02-2014-69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leeum.org

리움미술관에서는 미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자 전시장뿐만 아니라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다양한 관람객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강당 옆에 위치한 휴게 공간인 강당 라운지도 그중 하나다. 강당 라운지는 아동교육문화센터 지하 2층에 위치해있다. 지하 공간이지만 라운지 옆에 햇살이 들어오는 선큰 가든이 있어 답답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선큰 가든에는 수호의 의미를 가진 전통 돌 조각 벅수와 사시사철 푸른 잎을 보여주는 대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지난해 9월, 이 고즈넉한 정원 앞에 장영규의 사운드 작업 <추종자>(2022)가 설치되었다.

장영규는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5억 회를 넘긴 <범 내려온다>를 부른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이자 음악감독으로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열풍을 일으킨 이날치의 배경에는 1990년대부터 여러 밴드를 결성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운드를 탐구하고 국악과 현대음악의 연결을 시도했던 작가의 내공이 있었다. 백현진과 함께 결성한 어어부 프로젝트는 독자적인 아방가르드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그가 프로듀싱한 비빙 밴드는 불교음악, 가면극 음악, 궁중음악을 소재로 했으며 소리꾼 이희문과 함께 결성한 씽씽은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록, 펑크, 디스코 등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장영규_추종자> 전시 전경 2022 리움미술관
 사진: 김상태 @리움미술관 강당 라운지



<추종자>는 판소리 전수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음원 작업이다. 판소리를 배울 때 제자는 스승의 노랫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며 연습하고, 다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녹음된 음원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은 여러 스승과 제자가 부른 판소리 일부와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인 단가(短歌) 연습 과정을 담은 음원 24개로 구성되어 있다.

음원에는 소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제자들이 등장한다.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등 판소리의 여러 대목을 망라하는 음원을 듣다 보면 사제 간의 대화까지 자연스레 귀에 들어온다. 제자가 선생님께 혼나는 대목에서는 함께 긴장하고 칭찬을 받는 대목에서는 덩달아 뿌듯해지기도 한다. 정말 귀가 밝은 관람객이라면 한 소리꾼의 어린 시절 목소리와 그가 장성한 뒤의 무르익은 소리를 맞춰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추종자>에는 수십 년을 가로질러 녹음된 음원 하나하나마다 판소리라는 예술에 대한 소리꾼들의 깊은 열정,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 정신 그리고 스승의 애정과 제자의 존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장영규_추종자> 전시 전경 2022 리움미술관
 사진: 김상태 @리움미술관 강당 라운지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사운드 작업의 특성상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매개가 되어주면서 휴게 공간이라는 공간의 성격도 고려한 작업의 외피가 필요했다. 가구 디자인으로 협업한 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는 관람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으면서 작품의 특징도 담아낸 테이블과 의자를 디자인했다. 장영규는 아날로그적인 청취 방식을 원했는데, 이에 따라 푸하하하 프렌즈는 음원 수와 동일한 24개의 잭을 설치하고 위쪽에는 헤드폰을 걸 수 있는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관람객은 테이블에 직접 헤드폰 플러그를 꽂아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감상 방식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수되는 판소리 사사 방식과 닮아있다.

또한 긴 벤치 형태의 의자는 좌판을 구성하는 두 개의 철판 사이에 유격이 있어 앉았을 때 마치 스프링처럼 조금씩 진동한다. 이는 소리가 진동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사운드 작품의 청각적 떨림을 몸 전체로 느끼는 신체 감각으로 확대한다. 리움미술관의 숨겨진 공간인 강당 라운지에 설치된 <추종자>는 벅수와 대나무가 심어진 한국적인 정원을 내다보면서 판소리가 구전되는 과정을 귀로 따라가 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미술관이라는 리움의 특성을 반영하며, 미술관 전체에 걸친 전통과 현대의 만남과 끊이지 않는 대화를 구현하는 한 축으로 기능한다.



리움미술관 전경



백남준아트센터
Nam June Paik Art Center
●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2. 전화번호: 031-201-85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njp.ggcf.kr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중 하나는 단연 <TV 물고기> (1975/1997)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미술관에서 드디어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났다는 반가움을 표한다. <TV 물고기>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들어있는 24개의 수조가 나란히 서 있고, 그 뒤편으로 24대의 텔레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들이 계속 상영된다.

비디오 속에서 빨간 옷을 입은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이 춤을 추고 비행기가 하늘에 길게 비행운을 남기고 물고기들이 바닷속을 헤엄친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생생한 진짜 물고기들은 텔레비전의 이미지와 번쩍이는 전자파에 노출된 채 유유히 그 앞으로 헤엄친다. 이 작업에는 유난히 관람객들의 질문이 많다. 주로 물고기가 살아가는 환경에 관한 것이다. 물고기들은 물론 텔레비전 앞 수조 속에서 알도 낳고 새끼를 키우며 잘 살아간다. 그 중에는 무려 2008년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때부터 키우고 있는 귀한 식인 물고기 피라냐도 있다.



백남준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 1982/1999 
흑백 필코 TV 모니터 1대, 필코 TV 케이스 1개, 어항 1개, 
폐쇄회로 카메라 1대, 살아 있는 물고기 가변 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TV 물고기>가 화려한 컬러 영상 앞에 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2023년 상설전 <사과 씨앗 같은 것>에 전시된 백남준의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1982/1999)는 흐릿한 흑백의 영상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관람객들은 이 작품 앞에서 탄성을 지르지는 않는다. 아마 대다수 관람객들은 먼저 귀여운 빈티지 모니터에 눈길을 주었을 것이다.

작품에 사용된 TV 수상기는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겨서 인기가 많은 필코(Philco)사의 텔레비전이다. 1950년대 후반 제작된 프레딕타(Predicta)라는 모델인데, 아래 캐비넷과 수상기가 분리되어 있고 수상기 역시 매우 얇은 고굴절각 화면과 나무 콘솔 위에서 회전 고리로 돌릴 수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제품이 출시된 당시 미래의 텔레비전 디자인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백남준 역시 이 모델을 그의 TV 로봇 작품들의 머리로 사용했다.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에서 나란히 놓인 두 대의 필코 텔레비전 중 왼쪽 한 대에는 실제 물고기가 들어 있고 오른쪽에는 물고기의 영상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왼쪽의 텔레비전 케이스 안에는 작은 어항이 들어가 있고 그 속의 물고기를 폐쇄회로 카메라로 촬영해 바로 옆의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도록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중에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 텔레비전이 ‘진공관 텔레비전’이라는 점이다. 무려 70년 전에 만들어진 진공관 텔레비전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영상을 라이브로 전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영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과 씨앗 같은 것> 
전시 전경 2023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흑백 영상은 신비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운 뿌연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70년이 넘는 기계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하고 만다. 이 작품을 얼마나 오래 볼 수 있을까.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2020년 전시 <TV 웨이브>에 나온 이후 3년 만에 다시 전시되는 것이며 작품 보존 때문에 한 전시에서 3개월 이상 전시도 불가하다.

구형 진공관 텔레비전의 속을 비워 낸 수상기 안에 살아 있는 물고기와 실시간으로 매개되는 흑백 화면의 영상 속 물고기는 브라운관을 대신하는 어항과 어항처럼 보이는 브라운관이라는 효과적인 대비를 이룬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파이프를 그린 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듯이 백남준은 진짜 사물과 그 사물을 재현하는 비디오의 모순적인 관계를 질문한다. 나아가 영어의 ‘live’는 ‘생방송의’라는 뜻 외에도 ‘살아 있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제목은 ‘실제 물고기/살아 있는 물고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 백남준은 녹화되고 또 실시간으로 재현되는 이미지가 과연 ‘살아 있는’ 것인지 반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인스타그램의 현재를 계속 밀어올린다. 이 세상에서 정말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것의 관계는 무엇일까. 솔직하게 당신이 더 선호하는 경험은 무엇인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이미지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경험이 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겪는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Busan Museum of Art
● 박선주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APEC로 58 
2. 전화번호: 0507-1404-2602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4. 홈페이지: art.busan.go.kr

여기 어느 두 작가의 대화가 있다.
작가 A: 제 작업에서 신체를 재현하지는 않지만, 몸이 제 작업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당신과 깊은 친밀함을 느낍니다.
작가 B: 우리의 신체는 우리가 탄 우주선입니다. 세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모든 인상이 통과하고, 생명력에 대한 모든 표현이 소통되는 매개물 혹은 용기인 것이죠.
작가 A: 존재의 현전을 통해 우리는 내재적인 것을 감지할 수 있고, 물질 안에 있음으로써 공간을 감지할 수 있으며, 끊임없는 움직임 안에 존재함으로써 움직이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대화의 주인공은 A.이우환과 B.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로, 2019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Ⅰ- 안토니 곰리: 느낌으로>에서 편지 형식으로 주고받은 문답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그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흥미롭게도 미술관의 야외조각공원에는 두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ANOTHER TIME XIII> 2010 무쇠주물 
191×55×35cm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



2024년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 본관 그리고 별관인 이우환 공간 사이에 위치한 야외조각공원은 녹지가 부족한 해운대 도심 속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대형 조각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주변 조경수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쉬이 눈에 띄지 않았던 곰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출신으로 1994년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한 곰리는 1980년대 초부터 자신의 몸을 실물로 떠내는 조각 작업을 선보이면서 서구 전통의 시각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재현의 방식에서 벗어난 인체 조각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는 온몸을 랩으로 감싸고, 석고를 발라 캐스팅하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명상 수련’과 연관 지어 언급하기도 했듯이, 고도의 집중에 다다른 순간의 호흡이 고스란히 조각의 표면에 새겨져 있다.

‘Another Time’은 1995년부터 시작되어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지에 설치된 연작으로, 산과 바다, 도심, 제작기 다른 장소에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다.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에 수집되어, 2017년 조각공원 정비 이후 설치된 <Another Time XIII>(2010)은 이 연작의 열세 번째 작품으로, 얕게 솟은 잔디 언덕 위에서 사계절의 햇살과 비바람을 견뎌왔다. 자연에 몸을 내맡긴 작품 앞에 다가서면 분주한 도시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작가의 호흡과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우환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 2016
 스테인리스 스틸 판, 자연석 607×190×3(×2), 
170×138×153, 150×120×110cm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



한편 이우환은 1960년대 후반부터 모노하(もの派, 物派)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철판, 돌, 유리 등을 소재로 사물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는 설치 연작 ‘관계항’을 선보여왔다. 곰리의 조각상 뒤쪽에 위치한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2016)은 그중 한 점으로, 2016년 이우환 공간 1주년을 맞아 작가가 제작,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부산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그 의도를 밝힌 바와 같이, 이 작품은 ‘관계항’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관람객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꾀했다는 점에서 이전 연작들과 차별화된다. 작품은 높이 2.3m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이 비스듬히 호를 그리며 마주 보고, 그 양쪽 사이에 놓인 자연석 2개로 구성되어 있다.

광택이 없는 외부 표면과 달리 스틸 판의 안쪽 면은 매끄럽게 연마되어 거울 같은 효과를 내는데, 관람객은 작품의 안과 밖을 이동하며, 그리고 작품에 다가선 거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각기 다른 반영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자연물과 인공 재료, 그 사이를 오가는 관람객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감이 작품이 속한 장소를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셈이다. 야외조각공원에 설치된 이 두 점은 신체를 매개 삼아 작품과 장소의 관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을 드러낸다. ‘만남’의 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번 여름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을 방문해보자.



부산시립미술관 전경



전남도립미술관
Jeonnam Museum of Art
● 김소라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1.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660  
2. 전화번호: 061-760-329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artmuseum.jeonnam.go.kr

전남도립미술관은 전라남도 광양읍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으로 논밭이 펼쳐지고 오일장이 열리는 시골 마을, 바로 그 ‘읍’이 맞다. 한적한 도로변에 갑자기 등장하는 커다란 유리 외관의 건물이다. 주변 풍경에 비하여 사뭇 생경한 건물 모습이다 보니 근방을 지나가는 이들이 “대체 저건 뭐야?”라고 한 번쯤 묻는다. 도로에서 자동차의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건물을 쳐다볼 법한 바로 그 코너에, 무심한 듯 분주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미디어 작품 <Walking in London>(2019)이다. ‘자, 이곳은 미술관이랍니다. 너무 낯설어하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구구절절한 말 대신, 전남도립미술관은 세련된 조형물을 세워 관람객을 초대한다.

사실 미술관이 위치한 이곳은 버스 터미널의 맞은편이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곳이었다. 지금은 외곽으로 이전한 광양역이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부터 2011년까지 40여 년간 사람과 화물을 날랐던 철도 용지 위에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기에, 이런 공간의 역사성을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낼 수 있을지에 관해 전남도립미술관은 개관 때부터 고심했다. 여러 작품을 검토한 결과, 기차역의 플랫폼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오피의 작품을 야외에 세우게 되었다. 오피의 작품 중에서도 드물게 4면이 모두 스크린으로 둘러진 작품이다.


서도호 <Stove, Apartment A, 348 
West 22nd Street, New York, NY, 10011, USA>
 2013 폴리에스테르 천, 스테인리스 철사, 
유리 진열장, LED 조명 188.3×91.8×88.9cm  
이미지 제공: 리만머핀 서울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지하 1층 복도



여기에는 우리 미술관도 기차역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예술 플랫폼이 되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다. 이렇게 막상 작품을 세워놓으니, 적적할 수 있는 시골 마을에 주는 활기가 크다. 미술관 안에서야 바쁘게 전시가 이루어지고 여러 행사가 열리지만, 이것을 건물 외부에까지 보여주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하지만 오피의 작품이 저토록 쉬지도 않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 이곳에 오면 재미있는 일이 끊임없이 생겨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미디어 작품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계 점검으로 작품이 잠드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면 주변 역시 침울한 고요로 빠져드는 것 같아 새삼 예술이 주는 삶의 활력과 소중함도 확인하게 된다.

그 밖에도 전남도립미술관 안팎에는 여러 미술품이 놓여 있다. 전남 담양 출신인 이이남의 미디어 패널 <다시 태어나는 빛>(2022), 여수와 각별한 인연을 지닌 류인의 <지각의 주>(1988) 등 지역 연고 작가의 작품은 물론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과 같은 국제적 명성 작가들의 대표 작품이 대수롭지 않게 설치되어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설치된 작품은 서도호의 <Stove, Apartment A, 348 West 22nd Street, New York, NY, 10011, USA>(2013)다. 미술관의 넓디넓은 지하 1층 복도에 놓인 작품은 크레이트에서 꺼내어 놓은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고 있다.



줄리안 오피(Julian Opie) <Walking in London>
 2019 LED 스크린 4면, 연속 컴퓨터 애니메이션 
207.8×139.9×98.9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입구



네모난 모양으로 자칫 ‘드럼 세탁기’인 줄 알았다는 잠깐의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이건 뭘로 만들었냐, 어쩜 이리 만들 수 있냐, 작품 제목이 주소냐, 여기에 작가님이 살았냐는 질문부터 광양읍에서 서도호 작품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미술 애호가의 감탄까지,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졌다. 얼마 전 미술관을 방문한 ‘17세기 궁정 가구’ 전공의 프랑스 모빌리에 나시오날(Musée du Mobilier National)의 호송관은 내내 현대미술에는 무심한 듯 굴다가도 이 작품 앞에서는 유독 눈을 반짝이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곤 “요즘 애들은 판판한 인덕션만 알지 저렇게 꼬불꼬불한 코일 스토브는 모를 것”이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야외나 로비, 복도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철저하게 보안·유지되는 전시장 안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보다 작품 관리자의 입장에서 훨씬 번거로운 일이다. 대신 즉각적인 관람객의 호응을 볼 수 있고, 예술작품을 쉽고 친근하게 접하게끔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전남도립미술관은 곳곳에 소장품은 물론 기획 전시의 연계 작품을 꺼내어 놓아, 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이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자 힘쓰고 있다.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Bird n°2>
2018 폴리에스터 레진, 폴리스틸렌, 스테인리스 스틸
166×233×81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시민광장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현대미술관
Jeju Museum of Art
Jeju Museum of Contemporary Art
● 이미경 제주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제주도립미술관 
1.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894-78  
2. 전화번호: 064-710-430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9:00-20:00(7-9월) / 9:00-18:00(10-6월)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jeju.go.kr/jmoa

제주현대미술관 
1.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14길 35 
2. 전화번호: 064-710-7801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9:00-19:00(7-9월)/9:00-18:00(10-6월)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jeju.go.kr/jejumuseum/index.htm

제주시 1100로의 제주도립미술관과 저지리의 제주현대미술관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제주도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이 두 미술관에는 나지막한 제주 지형과 조화를 이룬 야외공원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한두 걸음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방문객들을 이곳으로 이끌곤 한다.

먼저 제주도립미술관 야외공간은 중앙의 건축물과 반사연못을 중심으로 한 앞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사연못이 건축물을 감싸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미술관 앞 풍경도 아름답지만, 건물 뒤의 공연장과 그 주변으로도 넓은 산책길이 이어져 돌아볼 만하다. 뒤쪽의 산책길까지 걷고 나오는 길에 조각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강시권의 <해빙시대-1999 타임캡슐>(1999)다. 반토막난 타임캡슐 속에 한 인물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웅크리고 앉아있다. 작품이 제작된 1999년은 IMF의 여파로 기업의 구조조정과 강제된 실업이 한국 사회 전반을 휘청이게 한 시기였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자존감과 존엄도 함께 잃었다.



강시권 <해빙시대-1999 타임캡슐>
 1999 195×120×98cm @제주도립미술관 야외공원



작가는 물질만능과 자본주의적 삶에서 인간이 도구화되고 소외되어 가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현실을 대면할 자신이 없는 듯, 고개를 무릎에 파묻은 인물의 모습은 좌절과 공포, 무력감이 가득했던 그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인물의 머리에 새겨진 바코드는 상품화된 인간가치를, 파손된 타임캡슐에 맥락 없이 나열된 각종 기호들은 세기말 혼돈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199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에 선정되었고, 20년이 지난 2019년에 제주도립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은 제주현대미술관 야외공원 숲에서 계속된다. 제주현대미술관 진입로에서부터 야외조각공원까지 이어지는 넓은 산책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코 아트샵 옆길 곶자왈에 설치된 이승수의 <어디로 가야 하는가>(2020)다. 12점의 군상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제주도의 모순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장기 프로젝트 ‘아트저지’를 통해 2020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폐기물과 시멘트의 조합인 6점과 제주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6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부는 ‘2019부산바다미술제’에서 선보인 바 있다. 바다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봤던 이들은 숲에서 보게 되는 이 군상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실제로 숲에서의 이 작품은 긴 시간을 두고 조형물의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의 복원력과 치유력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이승수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20 혼합재료 가변설치 @제주현대미술관 야외공원



설치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곶자왈 숲이 미술관 소유의 부지가 아니었기에 관련 부서와 협의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5년간의 사용이 허가된 후에야 비로소 전시가 가능했다. 처음 작품이 설치되었을 때, 주변에 사는 주민으로부터 무섭다는 반응이 나왔다.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사람의 형상에 놀라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자연 그 자체를 보고 싶은 누군가는 숲 속에 갑자기 들어온 이 조형물에 대해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공간을 따라 걸으며 세심하게 12점의 군상을 들여다본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 작품은 미술관 전시운영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초기 미술관이 임시 휴관했던 시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고, 지금도 전시 콘텐츠를 야외로 확장시켜 주는 흥미로운 관람 지점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숲 속의 이질적인 존재로, 입을 다문 채 고독하게 서 있는 군상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게 되어 어쩐지 편치 않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이 조형물에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잘 살펴야 알아챌 수 있는 정도지만 푸른 이끼가 돋아나고 식물 넝쿨이 올라온다. 반면에 숲의 잡풀은 조금만 놔둬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라나 금세 군상을 가려버리곤 한다.

조형물이 얼마만큼의, 어떠한 형태로 본래의 자연과 동화를 이루어 나갈지 그 답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금 인간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현시대의 주요 이슈인 자연과의 공존, 지금 우리 하루하루의 삶과 깊이 관계되어 있기에 제주현대미술관에 오면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하길 바란다.



제주현대미술관 전경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Cheongju Museum of Art Ochang Gallery

● 김세은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오창공원로 102 
2. 전화번호: 043-201-2650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4. 홈페이지: cmoa.cheongju.go.kr/ochang/index.do

청주시립미술관 분관인 오창전시관은 청주의 북쪽, 오창과학산업단지 내에 위치한다. 상업지구와 주택단지 사이에 오창호수공원과 오창호수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2층에 오창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개발된 지 이제 20년 남짓 된 신도시인 이곳에서 미술관과 도서관은 유일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많은 이용객을 자랑하는, 이곳 주민의 즐길 거리이자 휴식처로 자리매김해왔다.

2층 실내 전시실 입구 옆으로 나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넓은 야외공간이 나오고 건물 1층 바깥으로 연결되는 계단과 뒷산의 산책로로 연결되는 옥외전시장이 있다. 옥외전시장에서는 오창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데, 건물 바깥에서 보면 2층의 베란다처럼 보이지만 2층에서 보면 지상과 연결된 필로티 구조로 실내와 실외를 완충시켜주는 공간이다. 천장과 바닥, 기둥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3면 바깥의 풍경을 고스란히 안으면서도(借景), 뜨거운 햇볕을 차단하는(遮陽) 기능을 하여 인근을 산책하는 사람이나 도서관, 미술관 이용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이에 청주시립미술관은 지난 2019년 실내 전시장에서 기획전 <래디컬 아트(Radical Art)>를 진행했다. 옥외전시장과 도서관 1층 로비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아트 인 라이프(Art in Life)’를 구상했고 단순히 감상을 위한 공공미술이 아닌, 미적이면서도 동시에 관람객이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람객 친화형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작가 박기원, 박정기, 안시형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박기원 <미로 정원> 2019 더글라스 소나무 
가변설치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옥외전시장



그중 박기원의 <미로 정원>(2019)이 옥외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다. 박기원은 1989년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9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작품 <공(公)을 위한>으로 대상을 수상한다. 이후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장소 특정적인 설치작업을 주제로 하여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언제나 ‘장소(설치되는 공간과 주변 환경)’에서 출발하는 그의 작품은 주로 공간과 어우러져 공간과 작품의 중립을 지향한다. 작품을 위해 공간을 연출하거나, 공간보다 뛰어난 작품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환경이나 풍경은 그대로 있고 그 위에 어떠한 자극도 없이, 방금 지나친 행인이 기억할 수 없는 모습과 같은 최소한의 ‘움직임’을 추구한다. 이러한 특징은 오창전시관에 전시된 <미로 정원>에서도 잘 나타난다.

길이 5m, 높이 45cm의 목재 25개가 옥외전시장에 20×15m 규모로 배치되어 있는데, 작가는 다소 황량했던 공간에 따뜻함을 불어 넣기 위해 자연적인 재료인 목재를 사용하였으며, 미로 형식의 구성을 통해 장소 전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 관람객들은 벤치로 보이는 이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며, 또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기도 한다. 작품과 사람 그리고 장소가 어우러져 진정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관람객 혹은 도서관 이용객들은 이것이 작품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무엇하나 두드러지지 않고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안쪽에서 바깥 풍경을 내다볼 때도 시야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품임을 보여주는 캡션 또한 기둥 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하지만 작품임을 인지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할 때 편안하고 쉬고 싶은 곳,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작품의 의도는 성립된다. 이처럼 박기원의 <미로 정원>은 장소와 작품, 사람 간의 균형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그들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전경



호암미술관
Hoam Museum of Art


1.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2. 전화번호: 031-320-1801 
3.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4. 홈페이지: leeumhoam.org/hoam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은 1997년 개원한 전통정원 희원(熙園)과 조화를 이뤄 전시뿐 아니라 전통조경의 멋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통정원 조형미의 근원인 차경(借景)의 원리를 바탕으로 옛 지형을 복원해 만들어진 희원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정자와 물, 석물과 꽃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정원과 건물이 숨겨지고 드러나는 유연함과 담 안팎이 뿜어내는 포근한 정서를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담장 너머 호수 감호에 프랑스 태생의 미국작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말년 역작 <엄마(Maman)>(1999)가 자리하고 있다. 호수 주변에 설치돼 묘한 공포감과 더불어 숭고함과 압도적인 조형미를 뽐내는 높이 9m, 지름 10m의 이 거대한 거미 조각은 당초 리움미술관에 있었으나 2021년부터 호암미술관으로 이동해 선보여지고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엄마(Maman)>
 1999 청동, 스테인리스 스틸, 대리석
 927.1×891.5×1023.6cm @호암미술관 희원 호숫가



<엄마>는 지난 2000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개관 당시 강철 버전의 커미션 작업으로 첫 공개된 이래 청동 버전으로 총 6개의 에디션이 만들어졌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일본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 캐나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Canada) 등에 소장돼 있으며, 그중 네 번째로 주조된 작품이 호암미술관에 있다.

<엄마>는 원제인 프랑스어 마망(Maman)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일찍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향수가 담겨있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경영하는 태피스트리(tapestry) 수리공방에서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화려한 장식용 융단 태피스트리를 다뤘던 그의 어머니는 늘 실과 바늘로 무언가를 꿰매고, 고치고, 엮어 냈다고 한다.

그리고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 그것을 엮고, 또 뜯어진 부분을 이어 고치는 모습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한 작품 가운데 서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거미가 배에 대리석 알을 품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곧 태어날 새끼들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단단하게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강인한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는 강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를 대변한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엄마(Maman)> 1999 청동, 스테인리스 스틸,
 대리석 927.1×891.5×1023.6cm 
@호암미술관 희원 호숫가



한편 작품 전체를 감싸는 오묘한 색상도 눈길을 끄는 요소 중 하나다. 청동은 원래 주조된 다음 밝은 금빛 색을 띄지만 그 위에 금속 표면에 생기는 부식층인 파티나(patina), 즉 은수저나 놋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생기는 거무스름한 층을 의도적으로 약품을 써서 입히면 검은색, 녹색, 갈색, 금색, 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부르주아는 작품이 검푸른색으로 보여지길 원했기 때문에 황화암모늄을 사용해 파티나를 입히는 것을 주조소에 주문했다.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색과 광택, 또 질감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존연구실은 꾸준한 관리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10m에 달하는 작품 높이로 인해 보존처리 작업은 비계 구조물을 쌓아 올린 뒤 진행되며 약 2주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온전히 자연과 어우러진 형태의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호암미술관이 유일하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수용해 인간의 모순과 한계, 내면의 고통을 형상화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미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부르주아의 작업이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호암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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