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Issue 194, Nov 2022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

● 기획 · 진행 편집부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곽영빈 미술평론가,이지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김미혜 기자,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

Tags

예술을 통해 전 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꾀했던 작가. 백남준은 미디어아트 개척자로서 기술을 이용한 실험적 작업으로 오늘날에도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꼽힌다. 올해는 그의 탄생 90주년이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듯 <다다익선>이 보존·복원 3개년 사업을 완료하고 지난 9월 15일 점등 및 재가동됐다. 백남준의 작업 중 최대 규모로 꼽히는 1,003대의 텔레비전 탑 <다다익선>에 대한 관심은 1988년 제작 당시에도, 여러 차례에 걸친 보존·복원 과정 중에도 그리고 재가동을 완료한 지금도 불같이 뜨겁다. 이 모든 여정을 지켜본 우리는 <다다익선>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특집을 선보인다.

먼저 동시대적 성찰을 바탕으로 <다다익선>의 의미를 상기하고 시대와의 관계성을 탐구한다. 이어 작업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한 아카이브 전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의 유의미한 사료들을 되짚으며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작가로부터 <다다익선> 수리 관련 전권을 위임받은 테크니션과의 인터뷰를 통해 복원 과정이 담긴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끝으로 전 세계 미디어아트 기관의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다다익선>의 보존·복원, 재가동의 의의를 살핀다. 2022년, 백남준 그리고 <다다익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여전히 곁에 살아있는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보존·복원 완료 <다다익선>

 2022 © 2022 우종덕





SPECIAL FEATURE No.1
시차적 당대성: 램(Random Access Memory)으로서의
예술작품_곽영빈

SPECIAL FEATURE No.2
아카이브: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_이지희

SPECIAL FEATURE No.3
보존·복원 과정에 관한 고찰:
백남준의 손, 이정성 테크니션 인터뷰_김미혜

SPECIAL FEATURE No.4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과 백남준의 <다다익선>_서진석



<다다익선> 제막식 기념 포스터 

198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Special Feature No.1

시차적 당대성:

램(Random Access Memory)으로서의 예술작품
곽영빈 미술평론가



고(故) 백남준 선생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15일, <다다익선>이 재가동됐다. 2018년 2월, 한때 ‘브라운관’이라 불리던 CRT 모니터의 노후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 등을 이유로 가동이 전격 중단된 지 4년 만의 일이다. 이듬해인 2019년, 나는 한 학술지에 ‘<다다익선>의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다다익선>의 보존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백남준의 작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독해를 요청한다는, 당시로서는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했다.1)


“당시로서는 도발적인”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은, 각각 영어와 한국어로 세공해 국내외 학회에서 발표했던 그 글의 서로 다른 버전들이 실지로 크고 작은 논쟁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고장 났다면 수리나 복원, 또는 폐기라는 옵션들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면 될 일 아닌가? 전적으로 기술적이고 예외적인 문제를 굳이 독해의 차원으로, 그것도 백남준 작업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는가? 얼핏 그럴듯한 반론들이 일관되게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해당 논문의 눈 밝은 독자들에게 맡긴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다다익선 아치(Arch)> 1987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3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전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사이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 역설을 매개로 설명한 시간-기반 미디어(time-based media)라는 용어나 ‘퍼포먼스/연주’로서의 보존(conservation/preservation)에 대한 이해도 백남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시나브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확대와 공유에는 미디어 고고학(Media Archeology)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적 접근뿐 아니라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라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및 개념들을 둘러싼 지난한 논쟁을 재소환하는 논의들이 따로 또 같이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다다익선>의 재가동과 더불어 개막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자체가 매우 유의미한 사례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전시가 <다다익선>의 제작에서 재가동까지의 40여 년 세월을 아카이브에 기반해 재활성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인데, 4부로 구성된 전시의 내용뿐 아니라 ‘즐거운 협연’이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 표현은 전 지구적 생방송이라는 미디어 이벤트로 큰 화제를 모았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신구세대 앙팡 테리블들의 즐거운 협연(A Merry Mix of the Old Enfants Terribles and the New)”이라 기술했던 백남준 자신의 것이지만, 본 전시는 이를 “동료 음악가, 무용가, 건축가, 엔지니어, 테크니션 등 수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그의 창작 태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적절히 확장한다.2) 이는 “미디어아트 작품들의 보존과 복원이라는 이슈를 큐레이터와 보존전문가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퍼포먼스, 즉 시간-기반 미디어의 연주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려 했던 필자는 물론, 백남준 자신의 예술적 입장과도 공명하는 것이다.




<다다익선(오리엔탈 페인팅 II)> 1987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3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를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랜덤 액세스 인포메이션(Random Access Information)」이란 글이다. 1980년 3월 25일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백남준이 행한 강연의 원고이자, 같은 해 9월 저명한 미술 잡지인 『아트포럼(Artforum)』에 실린 이 글의 함의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이 글의 제목은 주지하듯 컴퓨터의 주기억 장치인 ‘램(RAM)’을, 좀 더 명확히 말하면 ‘랜덤’이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데이터가 저장된 위치에 상관없이 일정한 시간 내에 내용을 읽거나 쓸 수 있는 기억 장치를 가리킨다.


PC, 즉 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75년 알테어(Altair) 8800이지만, 우리가 아는 IBM의 PC가 출시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한 게 1981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선구적인 글이다. 그는 전자 메모리의 도래로 망각이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너무 많은 정보가 저장 가능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녹화/기록(recording)”이 아니라 “검색/회수(retrieval)”의 차원에서 제기된다. 후자는 한국어본에서 “접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이 단어를 ‘임의접속정보’라고 번역된 제목의 ‘Access’와 단순히 동일시하기 쉽게 만든다. 하지만 백남준이 ‘retrieval’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사하는 것은, 해당 정보와 예술작품을 나중에, 즉 다른 ‘시간’의 축에서 ‘다시(re-)’ ‘찾을(trieve-trouver)’ 때의 문제다. 이는 백남준이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끝맺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1988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7분 

Electronic Arts Intermix(EAI) 소장




“보다 고차원의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설치 형태를 취할 것이고, 일정한 종류의 예술작품을 “전달(convey)”하기 위한 일종의 기보법(notation)이 개발될 것이다. 지휘자인 유진 오르먼디(Eugene Ormandy)는 악보(score)에 기반해 베토벤의 제3번 교향곡을 “해석”한다. 21세기의 젊은 큐레이터는 표기들(notations)과 사진들에 기반해 피터 캠퍼스(Peter Campus)의 비디오 설치 작업을 “해석”할 것이다.”3)


한국어본에서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21세기 젊은 음악가는”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백남준은 마치 이번 전시를 예측하기라도 했다는 듯 “21세기의 젊은 큐레이터”를 명확하게 호명한다. 위에서 환기한 논문에서도 이미 지적했지만, 백남준은 이 글에서 역시 “비디오가 모방하는 것은 시간이라는 구성 요소와 노화의 과정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기보법’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작가뿐 아니라 비디오와 기계를 포함한 매체 예술작품 역시 “나이가 들기(age)” 때문이고, <다다익선>이 웅변하듯 언제 그리고 어디선가,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임의의(random)’ 시간과 장소에서 반드시 고장이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다익선> 안전진단 모니터 점검 

2020 25인치 모니터 열화상도 측정




그가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이라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연주자 겸 작곡가를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조플린이 “처음부터, 즉 작곡 과정에서부터 복제(multiplication)에 어울리는 음악적 스타일을 창안”했기 때문인데, 이를 그는 자신의 그림이 컬러 슬라이드(color slide)에서 어떻게 보일지 고려하면서 그리는 화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 비유한다. 이는 예술가가 자신이 죽고 난 이후의 미래까지도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요청이라기보다, 자신의 의도와 통제력이 말 그대로 형해화된 이후의 시점에서 작가의 작업이 ‘임의로 접속’할 수 있는 ‘정보’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선명한 자의식에 가깝다.


1970년대 초반에 글에 그가 “영원에 대한 숭배, 긴-경박함(long-levity),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은 파라오의 피라미드 시대부터 폴라로이드와 포타팩(portapak)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주된 기능이었다”라고 쓰면서 “그것은 우리 모두가 부서지기 쉬운 필사(必死)의 존재이기 때문이다(because we are all fragile and mortal)”라고 덧붙인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4) 이들은 내가 이미 환기했듯이 “영원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인류를 넘어선 우주 자체의 절멸을 뜻하는 엔트로피(entropy)를 단번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플린과 컬러 슬라이드 속에서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보일지 알지 못하는 화가란, <다다익선>의 CRT 모니터가 21세기에 LED로 교체되어 재가동될 것을 알 수 없었던 백남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기술이라고 읽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 

1988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7분

 Electronic Arts Intermix(EAI) 소장




이는 자신의 주저인 『예술의 언어들(Languages of Art)』에서 미국의 철학자인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진품성(authenticity)의 문제를 다루면서 제시했던 유명한 구분, 즉 “자필적인 것(autographic)”과 “대필적인 것(allographic)” 사이의 구분을 소환한다. 그림처럼 위조(forgery)가 가능한 “자필적” 예술과 달리, 음악이나 연극처럼 “대필적”인 예술은 위조가 불가능한데, 이 둘은 악보, 또는 기보(법)의 유무에 근거해 구분되는 것이다. 즉 <다다익선>처럼 작가의 사후에 연주되는 작업들은 해석과 퍼포먼스의 차원에서 이견과 논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위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시간-기반 미디어 개념을 한국에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체의 물질성이 제기하는 문제들까지 해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데이터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남은 LP 레코드와 VHS 테이프 박스들과 오디오 카세트테이프 더미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라는 매체 철학자 존 피터스(John Peters)의 질문5)이나, “쓸모없음(obsolescence)”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현저한 현상”이 되었다는 디지털 미디어 연구학의 진단을 떠올려보라.6) 이는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를 스치듯 환기하면서, “매체를 재창안”한다는 미명을 앞세워 쓸모없음을 물신화하는 수많은 전시들을 통해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목도해온 당대적 현상이기도 하다. “미디어 고고학이 그새 새로운 정설(new orthodoxy)이 되었다”고 단언했던 미디어 고고학자 토마스 엘세써(Thomas Elsaesser)의 우려는 이런 맥락에서 곱씹을 필요가 있다.7)




<다다익선 No. 4> 1989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1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더욱더 <다다익선>이 갖는 “범례적 징후(exemplary symptom)”의 위상은 두드러진다. 무엇으로? 이미 한 번 고장 난 작업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고장 나고 나이 들 그 자신과 전 세계의 다른 많은 뉴/포스트/디지털 등의 미디어아트 작품들과 더불어 우리를 ‘사유’케 하는” 작업으로서.8) PA




<다다익선(오리엔탈 페인팅 I)> 1987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3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각주]
1)  곽영빈, 「<다다익선>의 오래된 미래: 쓸모없는 뉴미디어의 ‘시차적 당대성’」, 『현대미술사연구』 제46집, 2019년 12월, pp. 111-142
2) 이지희,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시 도록 서문, 국립현대미술관, 2022, pp. 17-18
3)  “Higher video art will take the form of video installations, and a kind of notation form will develop to “convey” certain kinds of artwork: the conductor Eugene Ormandy “interprets” Beethoven’s Third Symphony from the score. A young video curator in the 21st century will “interpret” a video installation by Peter Campus from notations and photographs.” Nam June Paik, ‘Random Access Memory,’ Artforum International, Sep. 1980, artforum.com/print/198007/random-access-information-37725: 백남준, 「임의접속정보」,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2판, 에디트 데커, 이르멘린 리비어 엮음, 임왕준 외 옮김, 백남준 아트센터, 2018, p. 209, 번역 수정  / 이 글을 포함한 이 책의 번역은 불어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어, 또는 독어에서 불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크고 작은 오역들이 매우 중요한 지점들에서 발견되므로 주의해 읽을 필요가 있다.
4) “long-levity”란 단어는 백남준이 만든 조어로, ‘장수(長壽)’를 뜻하는 ‘longevity’의 오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을 하이픈으로 연결시킴으로써 그는 ‘경박함을 길게 늘린 것’이라는 식의 독해를 가능하게 만든다.  Nam June Paik: Video‘n’Videology 1959-1973, 1974, n.p
5)  John Durham Peters, “Obsolescence in the Digital Era,” Cosmologics Magazine, Jan. 18. 2016, cosmologicsmagazine.com/john-durham-peters-obsolescence-in-the-digital-era
6)  Babette B. Tischleder & Sarah Wasserman, “Introduction,” in Cultures of Obsolescence: History, Materiality, and the Digital Ag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5, p. 11
7)  Thomas Elsaesser, “Media Archaeology as the Poetics of Obsolescence,” in Alberto Beltrame, Giuseppe Fidotta, Andrea Mariani (eds.), At the Borders of (Film) History. Archaeology, Temporality, Theories, Forum: Udine, 2015, pp. 104-105
8)  곽영빈, 위의 글, p. 133




<다다익선 II(N.J.P II)> 1987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8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글쓴이 곽영빈은 미술평론가이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객원교수로,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한국 비애극의 기원」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제1회 SeMA-하나 비평상’을 수상했고, 2016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전’ 심사 등을 맡았다. 논문으로 「애도의 우울증적 반복강박과 흩어진 사지의 므네모시네: 5·18, 사면, 그리고 아비 바르부르크」, 「<다다익선>의 오래된 미래: 쓸모없는 뉴미디어의 ‘시차적 당대성’」, 등이, 저서로는 『미술관은 무엇을 연결하는가』(공저, 2022), 『한류-테크놀로지-문화』(공저, 2022), 『초연결시대 인간-미디어-문화』(공저, 2021), 『블레이드러너 깊이 읽기』 (공저, 2021), 『이미지의 막다른 길』(공저, 2017) 등이 있다.




백남준이 건축가 김원에게 보낸 <다다익선> 

스케치 이미지 제공: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Special Feature No. 2

아카이브: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이지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휘이 휘이/ 댕/ 어헝/
추르르르/ 휘이 휘이 – 이히히히/ 부우
떳다- 물에 가 풍… 풍… 풍…
(반복)
부우부우(부우)/
휘이 휘이/ 댕/ 으르르르르 어헝(어헝)/
추르르르(추르르르)/ 이히히 이히히



심청이가 곧 죽을 목숨으로 인당수에 빠지기 전, 절체절명의 순간에 파도 소리는 높아지고 심청이의 속은 타들어가는데, 선원들은 그저 자신들의 안녕을 빌 뿐. 그런데 <심청가>의 한 대목이 이렇게도 모던하고 흥이 날 일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렬한 전자피아노 소리, 쿵! 쿵! 지난봄 음악감독 장영규와 만나 백남준이 직접 연주한 전자피아노 소리를 함께 들으며, 이 음원 아카이브를 해석한 새로운 작품 제작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가 새로 작업한 이 곡을 보내온 것이다. “백남준에게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스튜디오는 마치 죽음의 공간 같았을 거예요. 그래도 끊임없이 드로잉을 했고, 살고 싶어 했죠. 그때 백남준의 심정과 연주를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청이의 마음과 옥에 갇힌 춘향이의 절박함과 엮어 봤어요.” 장영규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휘이 댕 으르르르르 어헝>을 이렇게 설명한다.


1932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홍콩, 독일, 미국에서 활동했던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 갇혀 휠체어 생활을 했다. 아픈 가족을 타인에게 보이기 꺼려지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부인 구보타 시게코(Shigeko Kubota)는 외부인의 방문에 더 엄격했다. 그랬던 그가 먼저 청해서 병문안 좀 와달라고 부탁했던 사람. 예술가들의 인물사진으로 명성을 쌓은 사진작가 이은주다. 이은주는 백남준의 1990년대 한국 활동부터 2006년 장례식까지 그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일상 그리고 주검까지를 카메라에 담았고, 수백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장영규가 처음 들었던 백남준의 연주도 이은주가 뉴욕 스튜디오에 가서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백남준의 음악을 작은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해 온 것이다. 1999년 어느 날 백남준이 연주한 곡은 새롭게 해석되어 이렇게 2022년 전시장에 놓인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은 백남준의 대규모 비디오 설치 작품 <다다익선>의 재가동을 기념하는 아카이브 기획전이다. 그러나 작가의 명성, 국립현대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그와 관련된 기록은 그저 문서 첩 서너 권, 사진 몇 십 장, 인쇄물 몇 건이 전부다. 아카이브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고, 어떤 중요한 사건도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몇 장의 기록으로 수렴돼 작은 중성상자에 담긴다. 아카이브 전시는 납작해진 사건들을 포착해 분절하고 확대해 커다란 공간을 메우는 일이다. 마치 역설처럼 데크레셴도 된 과거의 시간들을 소환해 크레셴도로 증폭한다.




이은주 <백남준 초상> 1992 

인화지에 크로모제닉 프린트 작가 소장




텅 빈 램프 코어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에 처음 문을 열었고,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사했다가, 1986년 처음으로 과천에 현재의 미술관 건물을 건립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정부가 프랑스의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에서 착안해 예술의 전당, 독립기념관 같은 대규모 문화예술기관 건립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신축한 것이다. 그러나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로톤다(rotonda)를 통해 전시실과 연결되는 건축 구조가 구겐하임(Guggenheim)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왔고, 당시 미술관 운영 주체인 문화공보부에서는 이런 시각을 일소하려면 램프 코어에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리고 세계적 명성이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에 1986년 10월 백남준은 정부의 요청으로 막 완공된 국립현대미술관을 세 차례 방문해 작품 설치에 대해 논의했고, 곧바로 신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건물에 대규모 작품을 설치할 것이라고 발표한다.1)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국가로 보이고 싶은 독재정권의 열망, 다른 건물과 비슷하다는 말을 지워내고 싶은 절박함, 고국에 대규모 작품을 설치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 속에서 ‘다다익선’ 프로젝트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전시장은 시게코의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1984)부터 시작한다. 백남준이 3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백남준이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과 팬들의 환호에 답한 뒤, 선친의 묘소를 찾아가 국화 한 다발을 바치고 절을 올리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이 영상은 <바이 바이 키플링(Bye Bye Kipling)>(1986), <다다익선>,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1988)처럼 고국 방문 이후 활발해지는 백남준의 한국에서의 작품 활동을 예견하는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영상 앞 좌대에는 몇 장의 문서와 사진들이 놓여있다. <다다익선>이 없던 시절 텅 빈 램프코어를 촬영한 사진에서 출발해, 작품 설치를 위한 문서와 도면이 완성되고 누군가 안전한 공사를 위해 막걸리를 부으며 기공식을 올리던 모습부터 ‘내가 양심적으로 박리로 일하는 만큼 좋은 기술자를 써서 일하고,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라’는 문구가 담긴 백남준의 제작노트까지. 그리고 완공된 지 불과 3시간 만에 <다다익선>을 전 세계 11개국에 위성으로 연결해 보여준 <세계와 손잡고> 영상과 영상스크립트, <다다익선>의 공식 제막식 과정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아카이브들을 마주한 벽에는 12대의 모니터를 설치해 좌대 안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아카이브와 <다다익선>의 설치・운영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전시했다. <다다익선> 설립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었던 유준상, <다다익선> 골조를 설계한 건축가 김원,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예산을 받고 짧은 시간 안에 <다다익선> 설치를 총괄한 남중희, <세계와 손잡고>에서 한국 측 생방송을 담당한 KBS PD 박윤행의 인터뷰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백남준의 또 다른 위성 작품인 <위성쇼, 지구촌 1988>2), <다다익선>을 위한 백남준의 퍼포먼스 영상을 함께 상영한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N.J.P Ⅰ,Ⅱ,Ⅲ

<다다익선>은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대의 CRT 모니터로 구성된 높이 18.5m, 중량 16t에 달하는 비디오 설치작품으로 백남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규모로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익숙하다. 처음 전시를 기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영상작품으로서의 <다다익선>이었다. 백남준은 여러 점의 영상들을 한국으로 보내며, 이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해 작품을 구성하고 또 계속해서 새로운 영상들을 보내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현재 4채널로 구성된 <다다익선>을 위한 영상 17점이 소장되어 있고, 그 가운데 8점이 작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전시장에서는 영상 전부를 처음으로 모두 상영하고, 각각의 영상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와 특징들을 정리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그리고 이 영상을 제작한 폴 개린(Paul Garrin)의 인터뷰를 설치했는데, 그는 우리가 한국의 남대문과 프랑스의 개선문, 샬롯 무어만(Madeline Charlotte Moorman)의 첼로 연주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영상이 나오다 곧 사라지고 자동차 경주 장면으로 이어지는 이 난해한 영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설명한다.


“자연을 보면 강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를 부르고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끼게 되잖아요? 자연 속의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감각을 통해 느끼는 거죠. 백남준 비디오의 본성은 시각·청각적인 센세이션이고 그 콘텐츠는 의식의 흐름이에요. 마치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할 때처럼 어떤 주제가 있지만, 백남준 작품을 보는 것이 TV를 보는 것과 같을까요? 아니죠. 이건 텔레비전이 아니니까요. 이건 비디오 예술이에요.”3) 또 개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남준 관련 아카이브를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공개했는데, 과연 자신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려는 손님들에게 백남준이 날이 선 목소리로 “I hate that song”이라고 외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미지 <바이 바이 얼리버드> 2022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세아제강 후원




고장난 TV

1988년 완공된 <다다익선>은 2018년까지 30년을 미술관 운영 시간에 맞춰 하루 8시간씩 작동했다. 그러나 잦은 고장과 전기안전 문제로 2018년 가동을 중단한 후 최근 4년에 걸친 복원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을 일주일에 며칠, 하루 2시간 동안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작품을 복원하고, 모니터를 평면으로 교체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미술계 안팎에서 응원과 질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수리’가 작품의 원본성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심리가 내재해있는데, 그렇다면 다시 반문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원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영상 소프트웨어인가, CRT 모니터의 물성인가. 브라운관 모니터를 평면으로 교체하면 깨지는 것은 작품의 어떤 특성일까. 사실 이런 고민은 작품 설치 전인 1987년, 백남준도 참석한 기술검토 회의에서부터 이미 논의되던 것이다.


이 영역은 내구연한이 10년인 기계를 34년 동안 상설작품으로 운영해오는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떠한 고민을 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공문서들과 무수한 자문회의록, 학술대회, 보존 처리 과정에 관한 시청각 기록들로 구성했다. 또 1988년 <다다익선> 운영 요원으로 채용되어 30여 년 넘게 작품을 관리한 안종현, <다다익선>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백남준의 현역 테크니션으로 활동하는 이정성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설치와 운영과정에 관한 고민을 관람객들과 나눌 수 있도록 구성했다. “비디오테이프가 끝나면 일일이 꺼내서 다시 돌려줘야 하잖아요. 또 4채널이 서로 다른 시간에 끝나니까,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아기 돌보듯이 <다다익선>을 틀었어요”라고, <다다익선> 안의 2평 남짓한 모니터 조종실에서 근무했던 안종현은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움직이는 아카이브

마지막 영역은 백남준과 <다다익선> 아카이브에 기반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이은주는 주로 뉴욕에서 촬영한 백남준의 미공개 사진들 가운데 <영상편집실>(1997), <남겨진 자리>(1999), 백남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드로잉 하는 백남준>(2000)을 비롯해 백남준의 비공식적 마지막 작품인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2011)를 포함한 사진 8점을 전시했다. 백남준이 휠체어에 앉아 도르래의 손잡이를 돌리면 천장에서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장난감 기차가 움직이고, 그 안에는 백남준 자신을 의미하는 귀여운 스누피 인형이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다.


이미지는 백남준의 생애 마지막 10년을 주제로 한 영상 <바이 바이 얼리버드>를 선보인다. ‘백남준은 죽어서, 혹은 죽지 않고 우주의 인공위성이 되어 지구를 향해 미세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라는 가정에서 작품은 시작한다. 지구에서 그 신호를 감지한 3명의 인물은 한 줄기 빛을 따라가다 한 동굴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어디선가 어둠의 사자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그들을 다른 길로 인도해간다.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이날치의 멤버로 이나래, 신유진, 권송희, 안이호, 이철희, 박준철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는 저승사자는 장영규다. 이 작품에서 장영규는 이미지와 협업해 영상의 사운드를 모두 감독했는데, 전시장에 설치된 6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장영규의 <휘이 댕 으르르르 어헝>을 위해 설치된 헤드폰은 <바이 바이 얼리버드>와 독립적으로 공존하는데, 스피커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영상을 보다가 전시장 천장에서 빛처럼 내려오는 헤드폰을 쓰면 갑자기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영상 말미에 잠깐 나오는 이날치의 신곡을 들으려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즐거운 협연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설명하며 작품이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 함께하는 최초가 될 것이며, 신구세대 앙팡테러블들의 즐거운 협연이 될 것”이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4) 그는 작품이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같은 심각한 예술과 더불어 대중예술의 요소로 구성될 거라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즐거운 협연’은 예술가, 건축가, 테크니션 등 많은 협력자들과 작품을 제작했던 그의 창작 태도를 압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에 전시된 아카이브들은 <다다익선>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했는지를 증거한다. 이제 관람객들이 다시 생명을 얻은 작품을 통해 <다다익선>과 즐겁게 협연할 수 있기를! PA

[각주]
1) “미국에서 성공한 휘트니 미술관 소장의 <비라미드>와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퐁피두 센터 소장의 <삼색기>의 두 작품 요소를 모두 가지게 될 것”, 『서울신문』, 1986년 10월 23일
2)  <위성쇼, 지구촌 1988>은 1988년 1월 1일 KBS를 통해 서울과 뉴욕을 위성으로 연결해 생방송한 프로그램으로 여기서 백남준은 올림픽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규모 비디오 작품을 설치할 계획임을 직접 밝히고 있다.
3) 폴 개린(Paul Garrin) 인터뷰 중, 2022년 6월 23일, 뉴욕, 구보다 시게코 비디오 아트 파운데이션(Shigeko Kubota Video Art Foundation). 개린은 휘트니 미술관 앞에서 열렸던 <로봇 K-456> 퍼포먼스부터 16년 동안 백남준의 테크니션으로 협업했으며, <다다익선>을 위한 영상 소프트웨어를 제작·편집했다.
4) TV Salutes the spirit of 1984, N.Y DAILY NEWS, 1993.12.31



글쓴이 이지희는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박사(수료) 과정을 밟았다.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키비스트로 일하며 아카이브 구축과 시스템설계, 아카이브 기반 출판과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최근 전시 <다다익선:즐거운 협연>을 기획했으며, 미술 아카이브의 구축과 활용 기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시험 운전 중인 <다다익선>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Special Feature No. 3

보존·복원 과정에 관한 고찰:

백남준의 손, 이정성 테크니션 인터뷰
● 김미혜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인 2003년 2월 6일, 백남준은 메모 한 장을 남겼다. “이정성 씨에게 <다다익선> 애프터 서비스에 관한 전권을 일임한다.” 1988년부터 백남준의 전속 테크니션으로 전 세계를 함께 다닌 이정성은 백남준 작품 관련 TV 시스템 구축과 재현을 위한 다양한 기술적 작업을 수행해왔다. 백남준이 생전 가장 우위에 둔 테크니션. 그에게 <다다익선> 보존·복원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청했다.



Q: 올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듯 <다다익선>이 보존·복원 3개년 사업을 완료하고 9월 15일 점등 및 재가동됐다. 작가로부터 수리 전권을 위임받아 직접 진행했으니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A: 이번 복원은 탄생 90주년뿐 아니라 보존·복원 결과적 측면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이전에 망가진 부분을 단발성, 일회성으로 고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에 <다다익선>의 수리 차트를 체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파 병원에 가면 전에 어떤 병을 앓았는지, 주치의가 언제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듯,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과 함께 <다다익선>만의 전문 차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데이터가 없으면 작품을 관리하는 사람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책임감을 갖기 어렵다. 또 자신감이 없어 외부에서 고장 유무나 원인을 물었을 때 당황하고 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해 질서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이번 복원사업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백 선생님 작품은 텔레비전 한 대가 아닌, 여러 대로 이루어진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작가가 처음 작품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그 원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원리를 알아야 고장 원인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실습을 진행했다. 요즘은 아무리 알려주려고 해도 듣는 사람이 의지가 없으면 소귀에 경 읽기인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의 열정과 열의가 남달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큰집처럼 백 선생님 작품을 제대로 관리해야 지방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질문해도 그에 대해 답을 하고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가 확립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진짜 미디어 작품을 제대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다다익선>을 통해 맺어진 두 분의 인연이 궁금하다. 당시 작은 전자 회사에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작품 의뢰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 모니터 1,003대, 그 수에서부터 압도되었을 듯하다.


A: 1986년 지금 코엑스 자리에서 ‘서울국제무역박람회(Seoul Inter-national Trade Fair)’가 열렸는데, 삼성과 금성(현 LG전자)이 소위 기술력 대결을 펼치는 자리였다. 그때 삼성의 텔레비전 500여 대로 만든 대규모 비디오월을 내가 만들었다. 이후 <다다익선> 기술자를 찾던 백남준 선생이 연이 깊던 삼성에 문의했고 삼성 측에서 나를 추천해 만나게 됐다.


어느 날 백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선 “텔레비전 1,003대로 탑을 세우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 다른 사람 같으면 기함할 노릇이었겠지만 나는 이미 절반을 성공한 경험이 있어 망설임 없이 “네, 할 수 있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백 선생님이 능청스럽게 “그래 그럼 잘해줘. 나는 미국으로 갈 거야”하곤 출국하셨다. <다다익선>이 완성되는 동안 내 옆에 계시거나 잔소리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서 전화로 “잘 돼가냐” 물을 뿐이었다. 1,000대가 넘는 대작 그리고 이걸 생방송에서 공개하기로 한 상황에서 무척 신경 쓰이고 겁도 날 법한데, 참 대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다익선>이 처음 공개됐을 때 백 선생님 스스로도 놀랐다고 하더라. 내가 해준다고 큰소리쳤지만 한 1/3 정도만 켜져도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1,003대가 완벽하게 작동했으니 말이다. 미국 방송국 엔지니어들도 난리가 나고 반응이 뜨거워 한 번 더 상영했다.




<다다익선 이야기> 전시 전경 201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하는 등 약 30년간 수리를 반복하다 2018년 2월 전면 보존·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다다익선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해 국내외 자문을 거쳐 드디어 재가동됐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권인철 학예연구사의 말처럼 CRT의 수명이 최장 10년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수리·교체한 모니터도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A: 마지막 자문회의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루에 두 시간을 넘기지 말고, 일주일에 네 번만 상영하자. 전기를 순차적으로 공급해 작품이 작동하는 것도 있지만 온도도 중요하다. 온도 체크 시스템상 하루에 딱 두 시간 상영이 적정 수준이었다. 이를 넘게 되면 피크치로 올라가게 된다. 모든 일에 100%를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정확하게 공지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다다익선>을 보러 오는 관람객 한 명, 한 명이 중요하고 이들이 실망해서 돌아가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기계가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다시 고장이 나 꺼진 모니터가 있더라도 ‘나이 많은 어르신이 또 아픈가 보네’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다다익선>을 즐기는 것, 백 선생님이 가장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일 것이다.



Q: <다다익선> 재가동은 국내 미디어아트 역사에 중요한 사건인 만큼 원본성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2003년 리모델링 때 검은색 모니터가 은색으로 바뀌었고, 이번엔 상단부 6인치, 10인치 모니터가 LCD로 교체됐는데 작품의 원본성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A: 앞서 말했듯 사람이 늙으면 여기저기 병이 나듯 기계도 마찬가지다. 100년을 사는 사람도 고장이 나는데 기계가 무슨 수로 고장이 안 나겠는가. 아프면 병원 가서 약 처방 받고 주사 맞듯 기계도 고장 나면 고치면 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미디어 작품 수리에만 유독 알레르기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더러 있다는 점이다.


복원의 영역에서 ‘원형 절대 유지’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미술관, 박물관에 복원사가 왜 존재하겠는가. 회화든, 조각이든, 미디어든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유지하길 요구하는 것은 맹점이 있다. 미디어 작품은 구성 요소가 많아 다른 매체들보다 유독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작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다다익선>에 나오는 영상들도 내가 보기엔 달라진 게 있나 싶은데 백 선생님은 그걸 보고 또 보고, 장면마다 다시 편집하고 몇 날 며칠 날밤을 새우곤 했다. 작가의 정수가 모니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혼은 소프트웨어 디스크에 심어져 있다. 소프트웨어를 구현하는 장치가 모니터니까 필요한 것일 뿐, 모니터는 그냥 모니터다. 모니터의 형태가 곡선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오해를 쌓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다다익선>에 “왜 곡선 모니터를 사용했냐” 묻는다면 “당시에 그거밖에 없어서”다. <메가트론> 작업을 만들 때 내가 “선생님, 요새는 평면 브라운관이 나오는데 그걸로 할까요?” 묻자 백 선생님은 단번에 “당연히 그걸로 해야지. 얼마나 좋아”라고 했다. 그리고 2001년 7월 <나의 파우스트>(1989-1991) 개·보수 때 백 선생님이 남긴 메모를 보면, ‘1990년도에 많이 쓴 일제 QUASAR TV가 노화됐으므로 이번 그것을 개량하기를 원합니다. QUASAR 8 INCH 대신에 삼성, LG, 동양 TV의 13inch를 알맹이만 이용하면 원상보다 훨씬 개량된다고 봅니다. 이것은 원작자의 의사이니 컬렉터 여러분의 물심양면 협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지금 우리 세대에서 적용하는 방법이 후대엔 최선이 아닐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발전된 기술이 나오면 사회적 합의 하에 그걸 적용하면 된다. 기술은 쉼 없이 빠르게 변하고 생전 작가 역시 신기술로 대체하는 것에 개방적이었는데, 이에 관해 우리가 갑론을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Q: 어느덧 작가 백남준의 작고 16주기다. 백남준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A: 백 선생님과 원 없이 같이 일하고 해외도 정말 많이 다녔다. 1년에 7-8개월을 해외에 살았던 적도 있다. 선생님이 원하셨던 게 딱 두 가지였는데,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수상과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전시였다. 그토록 바라셨던 것들을 이룬 영광스러운 자리에 내가 함께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미국에 거주하시니 작품 의뢰를 항상 전화나 팩스, 아니면 만나도 아무 종이나 냅킨, 담배종이, 레코드 속지에 쓱쓱 그려 보여주곤 하셨다. 제대로 된 설계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 마치 암호처럼 약식으로 적어놓고 우리 둘만 알아봤다. 그때 자세한 설계도보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작가가 어떤 방향으로 구현하고 싶어 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점은 물어보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작가하고 엔지니어하고 마음이 통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구나, 선생님과 작업하며 그렇게 느꼈다.1988년 처음 같이 일했으니 올해로 34년이다. 내 평생의 반은 전자기술을 배우고, 나머지 반은 백 선생님과 일하는 데 써먹었으니 뭐 제대로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것 같다.PA



<다다익선> 모니터 전개도 1989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안종현 작성)





Special Feature No. 4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과

백남준의 <다다익선>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



필자는 과거 2006년부터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라는 국제행사를 약 5회 진행했었다. 이 포럼은 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센터(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이하 ZKM), 미국 시카고 비디오 데이터뱅크(Video Data Bank), 인도네시아 OK 비디오 페스티벌(OK Video Festival), 네덜란드 몬테비디오(Montevideo), 일본 인터커뮤니케이션 센터(InterCommunication Center, 이하 ICC), 영국 팩트(FACT), 우리나라 대안공간 루프 등 유수의 미디어아트 전문기관들이 모여 미디어아트 작업의 복원과 보존, 디지털 매체로의 변환, 이를 위한 국제적 기술 표준화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는 또한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디어아트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포럼이기도 했다.

이 포럼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 미디어아트 기관들이 저마다의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보존·복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에 관해 대략 3가지 방법적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독일의 ZKM 방식이다. 그들은 미디어 작품 보존·복원에 있어, 시각적 원본성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수명이 다해가는 미디어 작품의 브라운관 TV를 대체할 수백, 수천 대의 TV를 수장고에 보관하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대체 TV들을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 신형 프로그램으로 호환될 수 있는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까지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복원·제작한다. 모니터나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조차도 그 원본성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ZKM Cube at night ©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Photo: Uli Deck



둘째는 일본의 ICC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에 있어, 창작자의 동의하에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을 변형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그들은 아예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장할 때 구입 계약서와 보존·복원 설명서, 이 두 가지 서류를 작가와 함께 작성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진화하는 신매체들을 소장 미디어 작품에 적용시키고, 재제작 할 수 있는 권한을 작가로부터 미술관이 위임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브라운관 TV는 LED 모니터 - OLED 모니터로 바꿀 수 있고, 도스(DOS)는 윈도우(Window)로 변환할 수 있다. 미디어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보다는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국의 FACT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에 있어,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교체하지 않고 그 외의 것은 모두 교체하는 방식이다. 즉 TV나 비디오 플레이어 등 외부로 보이는 하드웨어는 될수록 원본을 유지하고, 노출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은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본성이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이면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놓아두고 내부의 브라운관을 평면 모니터로 교체해 대중들이 작품의 원본성을 의심치 않게 한다.




<다다익선 I(N.J.P I)> 1987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6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에 있어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4가지 중요한 원칙이다. 원본성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얼만큼 충실하냐이고, 경제성은 보존·복원하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에 관한 문제다. 안정성은 복원에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가 얼마큼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유지되는가를 말한다. 예를 들면 브라운관 TV보다는 LED 모니터가, 하드 드라이브보다는 메모리 드라이브가 발열이나 충격에 더 안정적이다. 또한 지속성은 미디어 매체의 사용 변환 주기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VHS 시스템은 약 40년 사용됐고, DVD 시스템은 약 20년 그리고 이제는 디빅스(Dvix)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블루레이(Blu-ray)는 잠깐 사용되었다가 풀HD에 밀려 국제 표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왕이면 기술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또한 국제적으로 오랫동안 범용화될 수 있는 표준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작품 보존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가속화된 디지털미디어 기기의 변환 주기로 인해 하나의 국제기술표준이 탄생한 후 사용주기가 5년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의견도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에서 제기되고 있다.)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왼쪽부터 남중희, 백남준, 김원) 
1986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알다시피 얼마 전 대대적인 복원을 통해 <다다익선>의 TV들은 다시 살아났다. 특히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전 세계 미술관들은 브라운관 TV의 보존·복원 문제에 있어서 현재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브라운관 TV를 사용했던 아날로그 미디어 작품들의 복원 선택지는 네 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원본성에 가장 충실하고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포기하는 것이다. 즉 똑같은 브라운관 TV 모니터를 다시 사들여 전면 보수·복원하는 방법이다. 아직은 브라운관 모니터를 구할 수 있다. 여분의 백업 모니터도 구입해 놓으면 지속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은 길게 봐야 20년을 넘질 못한다. 또한 경제적 비용은 다른 해법들 보다 가장 많이들 것이며 안정성도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둘째는 원본성은 다소 포기하더라도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즉 LED 모니터로의 전면 교체 방법이다. 원본성은 훼손되지만 유지 소비전력도 매우 낮고 상대적 모니터의 수명도 길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혼합방법으로 브라운관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의 튜브 브라운관만 LE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법이다. 둘째 해법보다는 경제적 비용은 다소 상승하지만 원본성은 그나마 비슷해 보일 것이다.

넷째는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다 충족해줄 수 있는 신 기술 매체가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OLED TV가 상용화된다면 브라운관 앞에 필름 TV를 접착해 작품 보수를 간단하게 할 수가 있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는 더 간편한 스프레이 TV가 출시될 수도 있다. 기술의 발달은 가속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술 매체의 변환 시에 원본의 왜곡이나 경제적 비용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10년 전 VHS 영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데 10만 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1만 원이고 화질은 더 좋아졌다.)



<다다익선> (부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사진: 남궁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보존·복원에는 이중 첫째와 셋째 방법을 혼합해 사용했다. 즉 큰 사이즈의 TV는 오리지널 브라운관 TV로 복원했고 구하기 어려운 작은 사이즈의 모니터는 LED 모니터로 복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계는 아직도 <다다익선>의 복원 문제에 대해 약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첫째는 원본성에 충실하기 위해 대부분의 모니터를 중고 브라운관 TV로 유지하며 LED 모니터는 소량 사용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왜 <다다익선>의 모든 TV를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LED 모니터로 전면 교체하지 않았냐는 관점이다. 여기서 두 번째 관점을 선호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살아생전의 백남준 의견을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개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외부의 매체는 바뀌어도 상관없다”라고 작가가 말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신 기술 매체로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Laboratory for antiquated video systems 
©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Photo: Andreas Friedrich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미디어 작품의 복원에 대한 형상의 변형 혹은 유지의 권한은 창작자에게만 있는 것일까? 향유자에게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예술작품이 탄생했을 때 그것의 미학적, 사회적 가치 합의는 분명 향유자의 몫도 있다. 귀족 부인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Gioconda)>를 약 500년 동안 세계의 보물로 추앙하며 유지했던 것도 향유자들이다. 창작자인 다빈치는 그저 귀족 부인의 초상을 그렸을 뿐인데 이렇게 역사적인 보물이 되리라곤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kong)’에서 백남준의 <TV 부다>를 보았다. 아트페어 첫날에는 분명 부처상과 함께 마주하고 있는 사각의 빈티지 TV를 보았지만 바로 다음 날, 그 TV는 매우 얇은 LED 모니터로 교체되어있었다. 아마도 브라운관 TV가 고장이 났었나 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다다익선>의 원본성에 충실하기 위해 모니터 대부분을 중고 브라운관 TV로 유지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관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나는 향유자이자 소장가로서 LED 모니터의 <TV 부다>보다 빈티지 TV의 <TV 부다>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식 전경 20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필자는 앞서 이야기한 독일 ZKM의 고집적인 원본 고수의 작품 보전 정책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답변했다. “미디어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각 시대에 사용되었던 기술 매체와 시스템도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부다.” 심지어 ZKM은 미디어 작품을 설치할 때, 타 미술관처럼 미디어 기기들을 박스 안에 가리거나 각종 케이블을 졸대를 사용해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노출한다. 그것들조차 작품의 일부라는 것이다. 나는 ZKM의 답변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수명이 있는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 문제는 결코 소수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선 해결할 수 없다. 신기술은 상용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범용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기관과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연구·합의해야 한다. 또한 미술계만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과제도 결코 아니다.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 잠시 중단됐던 이유는 디지털 기술 매체를 선도하는 것이 미술계가 아니라 디지털 산업계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는 울산시립미술관에서 ‘퓨처뮤지엄 포럼’이 다시금 열린다.



<다다익선> 정밀진단 오실로스코프 
2019 CRT 디스플레이 파형측정 실시



전 세계 약 15개 미디어아트센터가 모여 미디어 작품의 보존, 복원 국제기술표준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도 동참한다. 또한 미술, 기업, 과학, 사회학 등 다학제 간 논의기구로도 발전시킬 계획이다. 역사가 짧은 전자기술 매체예술도 이미 미술사의 중요한 축이다. 우리는 역사를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PA



<다다익선> 
10인치 모니터 해상도 비교 2020



※ 이 글의 일부는 『서울아트가이드』에 게재됐던 필자의 원고를 발췌하였다.


글쓴이 서진석은 현재 울산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재임 중이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역임했다. 1999년 한국미술계 최초의 대안공간인 루프를 설립하고 국내 젊은 작가들을 발굴·지원해왔다. 다양한 국제 활동을 통해 형성한 아시아 미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10년에는 <A3 아시아현대미술상>, 2011년부터 <아시아창작공간 네트워크>, 2014년부터 〈무브 온 아시아> 등을 기획해 작가들을 발굴하고, 아시아 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티라나 비엔날레(Tirana Biennial)’(2001),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2010) 등 다수의 국제 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했고 전 세계 여러 미술 기관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미술 글로벌화에 주력하고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