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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념조형물의 역사와 특성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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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진행 편집부 ● 글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김세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1968 서울 광화문 이미지 제공: ben bryant/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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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서 약자로, 추앙에서 추모로:
시대를 반영하는 기념조형물의 변모


지난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이 일어났다. 이 같은 기념조형물 철거 논란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념조형물이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되는 기념조형물이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본다.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영웅들부터 최근 등장한 사회적 약자들까지 그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1968 서울 광화문 
이미지 제공: ben bryant/Shutterstock.com



기념조형물이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


지난 2023년 8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항일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 이전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국방부는 3·1절을 맞이해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입구에 그 흉상들을 설치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국방부가 흉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경우 공산당 입당 전력이 육군사관학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여론은 찬반으로 나뉘어 들끓었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념조형물이 이전·철거되는 일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소련이 몰락한 1991년 소련 건국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동상이 사람들의 환호 속에 해체됐던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과 상관없는 기념조형물의 존재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누군가는 기념조형물을 설치하려 하고, 다른 누군가는 철거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사람들은 기념조형물이 그저 돌이나 쇳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념조형물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형상물이며, 또한 그 형상물이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권력자와 지배층은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대변할 만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동상이나 상징조형물을 대중의 눈에 잘 띄는 공공장소에 설치하곤 했다.

따라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이념을 지닌 권력층이 등장해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 기존의 기념조형물은 퇴출되고 새로운 기념조형물이 들어설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는 결국 기념조형물의 변천과 사회의 변화가 분명한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대한민국 출범 초기인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주요 기념조형물들을 살펴보면서 그 특성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기념조형물의 전반적인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김경승 <맥아더장군 동상>
 1957 인천자유공원 
이미지 제공: trabantos/Shutterstock.com



1. 영웅 기념조형물의 등장(1950년대)

해방 후 남북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는 ‘반공’과 ‘반일’이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승만 정부는 무엇보다 6·25 관련 기념조형물을 통해 국민들의 반공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6·25 관련 기념조형물로는 1957년 9월 15일 인천자유공원에 건립된 <맥아더 장군 동상>을 들 수 있다.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이 동상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한미 연합군이 동시에 태극기를 꽂았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세를 역전시킨 인물이다. 그래서 동상 높이 3m, 기단 높이 3m인 이 기념조형물에는 전쟁 영웅 맥아더의 업적과 더불어 6·25전쟁에서 자유 진영이 승리했음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

반일 의식 역시 기념조형물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1952년 진해에 설치된 최초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조각가 윤효중이 제작한 이 동상은 왜군을 격퇴한 영웅답게 투구, 갑옷, 칼을 갖추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다. 1950년 해군 창설 5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진해통제부사령관이 발의한 이후 해군, 지역 시민 등이 뜻을 모아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 이는 전국 곳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반일 관련 기념조형물로는 1959년 서울 남산 숭의여고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도 있다. 이 동상은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했는데, 이후 그의 친일 행적과 애국지사 동상 제작의 적절성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 밖에 이 시기 기념조형물의 특징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우상화 작업을 들 수 있다. 이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1956년 8월 15일 남산 조선신궁터에 건립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대표적이다. 조각가 윤효중이 기단과 동상을 합해 약 25m 높이로 제작한 이 거대한 동상은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결국 철거되었다. 이처럼 1950년대는 주로 반공, 반일 의식과 관련된 역사적인 위인들과 당대 최고 권력자를 기리는 기념조형물이 설치됐다.



임옥상 미술연구소 <전태일 동상> 
2005 서울 청계천 5-6가 버들다리(평화시장 부근) 
이미지 제공: ARTYOORAN/Shutterstock.com



2. 반공과 민족 영웅들의 전성시대(1960-1970년대)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박정희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자 5·16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기념조형물 건립이 활성화되었다. 이 시기의 기념조형물 조성 방향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민족 영웅’이라고 볼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6·25전쟁 희생자 위령탑 등이 조성되었고, 특히 1968년 말 울진-삼척에 침투한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된 이승복 어린이의 모습은 반공투사를 상징하는 동상으로 제작돼 전국 초등학교에 설치됐다.

박정희 정부는 기념조형물을 통해 민족 주체성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임진왜란, 항일독립운동, 충효사상, 화랑정신, 실학사상 등과 관련된 역사적인 인물들을 민족의 귀감으로 삼아 기념조형물로 제작, 설치했다. 이러한 기념조형물 조성 사업은 1966년 8월 11일에 발족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도맡았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주도한 이 위원회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총 15개의 동상을 건립했다. 이순신, 세종대왕, 사명대사, 이이, 원효대사, 김유신, 을지문덕, 정약용, 신사임당, 유관순, 정몽주, 이황, 강감찬, 김대건, 윤봉길 동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동상과 설치 장소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게다가 강감찬 동상(수원 팔달산)과 윤봉길 동상(대전 충무체육관) 외에는 모두 서울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이는 수도 서울부터 상징물을 활용해 국민 의식과 사회 분위기를 개조해 나가려고 한 박정희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15개 동상 중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첫 번째로 광화문에 설치한 총 17m(동상 6.5m, 기단 10.5m) 높이의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념조형물이 되었다. 동상 자체의 작품성보다도 국민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의 동상이 대한민국 중심부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기금을 헌납하고 조각가 김세중이 제작해 1968년 4월 27일 건립된 이 동상은 부실 제작, 이전, 철거, 상징성, 고증 문제 등으로 숱한 논란을 겪어 왔다.



<대동세상군상>
1997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이미지 제공: 백종옥



김중업 <세계 평화의 문>
 1988 서울 올림픽 공원
 이미지 제공: catcher_3.3/Shutterstock.com



3. 88서울올림픽과 민주화에 따른 변화(1980-1990년대)

신군부의 집권과 민주화 운동이 번져 나간 1980년대 역시 많은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존의 반공, 민족 영웅과는 다른 소재와 형식을 추구한 88서울올림픽 기념조형물이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올림픽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세계 평화의 문>이다. 1986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고 1988년 9월 12일 준공된 <세계 평화의 문>은 높이 약 24m, 지붕 길이 약 62m, 폭 37m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 형태와 현대 건축을 조화시키려고 한 건축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날개형 지붕 아랫면에 단청으로 장식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도 특징적이다. 이는 세계인들에게 우리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기념조형물의 소재가 민족 영웅에서 민족 문화로 확대된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문민정부로 불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1993년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국립묘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1997년 5월 16일에 개원한 국립5·18민주묘지에는 <5·18민중항쟁추모탑>, <무장항쟁군상>, <대동세상군상> 같은 기념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이미 1963년에 4·19혁명 희생자를 위한 묘역과 기념탑이 조성된 적은 있었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처럼 오랜 세월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들이 공식적인 추모의 대상이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최명환, 김주현 <노란 고래의 꿈>
 2018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4.16 세월호 참사 
추모조형물 이미지 제공: 4.16 기억저장소



강문석, 고길천, 이원우, 정용성 <비설>
 2002 제주 4.3 평화공원 이미지 제공: 백종옥



4. 약자들을 기리는 다양한 시도(2000년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자 미술계에서는 공공미술이 이슈로 대두된다. 1995년 이후 건축물미술작품제도로 인해 양산된 질 낮은 조형물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공미술을 실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는 공공미술로서 기념조형물의 변화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기념조형물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예를 들면 2002년 제주 4·3 평화공원에 설치된 <비설(飛雪)>이 있다. 이 작품은 1949년 1월 6일 군인들의 토벌작전으로 총에 맞아 희생된 변병생 모녀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강문석, 고길천, 이원우, 정용성이 공동 제작한 것이다. 아이를 안은 여인상을 나선형 돌담이 감싼 형태를 띠고 있어 기존의 진부한 기념조형물과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는 서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버들다리 위에 설치된 <전태일 동상>이 있다. 2005년 임옥상 미술연구소가 제작한 이 동상은 기단 없이 길바닥에 반신상만 놓여 있는 모습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늘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도록 유도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은 <평화의 소녀상>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함께 제작한 이 기념조형물은 작고 낮은 크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00회째 수요집회가 열린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선보인 후 전국과 해외에 다수 설치되었다. 그 밖에 2018년 안산 단원고에 설치된 최명환, 김주현의 4·16 세월호 참사 추모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도 구태의연한 기념조형물과는 다른 현대적인 조형성을 보여준다.



김서경, 김운성 <평화의 소녀상>
 2011 서울 용두근린공원 이미지 제공: 백종옥



이용덕 <안중근 의사 동상>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 
이미지 제공: ARTYOORAN/Shutterstock.com



기념조형물, 변화하는 상징 투쟁의 매개체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념조형물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필자의 관점에서 지난 70여 년은 기념조형물의 주요 대상이 ‘영웅’에서 ‘약자’로 변해 온 시간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주로 전쟁, 반공, 민족, 독립운동과 관련된 영웅, 위인들을 추앙하고 기념했다면, 1990년대부터는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분신 노동자, 참사 희생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추모와 기억의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기념조형물의 변모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 무엇보다 인권 의식이 꾸준히 성장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념조형물은 다양한 성향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상징 투쟁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념조형물은 변해갈 것이고 변화의 고비마다 쟁점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다. PA


[참고문헌]
- 국가기록원(archives.go.kr)
- UN평화기념관(unpm.or.kr)
- 『국민일보』(m.kmib.co.kr)
-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encykorea.aks.ac.kr)
- 『문화저널21』(m.mhj21.com)
- OPENHOUSE SEOUL 2O19(ohseoul.org/2019)
- 제주 4·3평화재단(jeju43peace.or.kr)
- 조은정, 「애국선열조상위원회의 동상 제작」, 『내일을 여는 역사 40호』(2010.가을)



글쓴이 백종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 UdK)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2023) 예술감독,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2019) 예술감독, ‘광주비엔날레’(2018)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미술생태연구소를 운영하며 전시 기획,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잠에 취한 미술사』,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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