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17, Jun 2016

리우 웨이_파노라마

2016.4.28 – 2016.8.14 플라토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이윤희 미술평론가

Tags

일상을 재구성하여 기념비로 만드는 리우 웨이의 방식



올해 8 폐관을 앞둔 플라토가 마지막으로 기획한 전시는 중국 작가 리우 웨이(Liu Wei) 회고전이다. 리우 웨이는 1972년생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작품의 이력이 시작되는 비교적 젊은 작가이고, 한때 세계 미술시장을 휩쓸었던 소위 중국의 정치적 팝아트의 다음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현재 중국이라는거대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치경제적 입지와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해볼 , 플라토가 마지막 전시로 중국 현대미술의 차세대 작가로 불리는 리우 웨이를 선택한 것은 세계 미술 동향에 대한 현재적 진단과 미래적 전망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동서 냉전 시기 이후 세계 미술시장에 풀린 중국의 미술은 처음에는 놀랍도록 새로운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최초의 신선함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진부함이 남았다. 


여전히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한 사회적 혼란이, 주로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과장된 정신분열적 연기를 하는 전형적 인물들로 표현되었고, 붉은색을 비롯해 과감히 사용되는 원색들이 이러한 주제의 강렬함을 더했다. 지금은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상업갤러리에서 분홍색 번들거리는 피부를 가지고 있거나 인민복을 입은 괴상한 이목구비의 인물상이 그려진  시기의 작품들이 넘쳐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경향이다. 그리고  작품들은, 조금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처음 접하는 작품이어도 , 중국 작가의 것이구나 하고 바로 알아볼  있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작품을 중국 작품이라 알아볼  있단 사실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물론 세계미술계의 영향력 순위에서 수년째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프로젝트성 설치 작품들을 비롯해 팝아트적 사실주의 이외에도 여러 다른 경향의 작가들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작품들에서 중국적 특성이라고밖에 부를  없는 어떤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중국적 특성을이야기하자면   가장 강력한 것은 스케일에 대한 남다른 감각인데, 이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고려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여기서스케일은 단지 작품의 크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와 고금의 문명을 아우르는 시간에 대한 감각, 그러한 요소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강렬함의 정도를 포괄하는 의미이다. 리우 웨이도 이러한 중국 현대미술의 일반적 특성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소재가 건축폐자재이건 종이이건 거대한 기념비적 형상을 구축하고있는 특성, 그리고 과거 역사 속의 산수화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등은 그의 시공간에 대한 감각 스펙트럼의 넓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에도불구하고 작품이 전달하는 정서와 메시지의 차이가 이전 세대와 그를 구분시켜주는 지점으로 보인다. 리우 웨이의 작품은 정치적 비판의 메시지나 현재에 대한 냉소를 뒤로하고, 고요하게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며 회의(懷疑)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색 공기 2016 No.1(Purple Air 2016 No.1)> 

2015-2016  김상태




대개 그의 작품은 내용적 명백함을 멀리한다. 재료의 상징성이라는 측면이 해석의 단초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양가적이거나 미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2014  <! (Look! Book)> 책을 쌓은  커팅해 제작한 거대한 기하학적 조형물이다.  작품에 폐품으로 나온 책들을 대량 구매하여 이를 집적(集積)하는 방식으로 , 육면체뿐 아니라  필연성을   없는 곡면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입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같은 제목의 거대한무덤이나 신전처럼 보이는 건축적 형상도  기본 요소는 역시 책이다. 중국의 위대한 발명품인 종이로 만들어진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상들이 뜻하는 바는,  재료의 강한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읽히지 않는다. 


단지 수없이 많은 책을 쌓아 책의 형태와 내용과는 무관한 형상들을 구축한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재료와 형상이 실제로는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지만, 의미적으로는 서로를 밀어내거나 배신하는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책은  자체로 사고의 집적물이며,  안에 있는 글자들을 읽을 있을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있다. 그러나 리우 웨이의 작품에서 책은 책이라는 상징적 의미, 그러니까 본래 인간의 지식과 관념의 담지체였다는 개념만을 보유한 , 흙이나 물감과 다를  없는 재료로 기능하며 모종의 형태를 구축하고 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이는 형상과  재료가 서로 투쟁하는 양상을보인다는 것이다. 


글자를 알아볼  있는   되는 부분에서 그리고 책의 단면에 찍힌 붉은  도장에서, 이것이 오래되지 않은 폐기 서류이거나 검인(檢印)  교과서류라는것을 짐작해볼  있는데, 이는 현대 중국의 리얼리티를 지시하는 요소이다. 반면 목적을   없는 거대 형상들의 추상성은 구체적인 책의 식별 가능한 리얼리티를 최대한 지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질서정연하면서도 혼란스럽고 규칙적이면서도 산만한  대비적 요소들이 궁극적으로  닿는 지점이 어디인가를사유하는 것이  작품의 내용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2009년에서 2012 사이에 제작된 그의 하찮은 실수 연작 역시 재료와 형상의 대비점이 작품의 주된 내용적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은 북경의 재개발 현장에서 수집한 건축폐자재로 이루어진 조형물이다. 일견 외관은 서양 중세 고딕의 첨탑 등의 종교적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압도적이고 거대한 조형물은 거의 기념비(monument)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기념하는 대상은 명확지 않다. 더욱이 좌우대칭을 견지하고 있어서 첫눈에 매우 엄격한 느낌을 주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보면 주재료인 나무는 페인트가 칠해진 목재는 창틀이나 문의 부분이고, 거친  구조물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건축 자재이며, 나무 자재를 잇는 볼트와 너트는 의도적으로 길게 튀어나와 있어서 미완성의 건물 같은 인상을 준다.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첨탑이나 파사드를 재현한  같은  기념비적 형상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사실 볼트 너트로 얼기설기 조여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축물인 것이다. 




<파노라마(Panorama)> 2016  혼합매체 가변설치

  김상태




이렇게 하찮은 일상적 사물이 미술로 들어와 의미를 형성하는 것은 지난 백년간 현대미술에서 주된 방법  하나였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신문지나 벽지를 화면에 부착하기 시작한 이래, 또한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은 이래, 찌그러뜨린 자동차나 각종 청소 도구들이 등장하거나 사탕을 와르르 쏟아 작품이라 이름 붙여도 우리는 놀랄 하등의 이유가 없게  것이다. 리우 웨이의 재료 선택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지만, 탁한 녹색과 미색으로 칠해진 목재와 거칠게접합시키는  구조물이 일반적인 현대적 일상이 아니라 동시대 중국 북경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시대 상황을 연상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핵심적 의미를구성한다. 녹색과 미색의 목재는 한때 북경의 현대적인 미를 구현했던 건축물의 일부분이었지만 도시의 빠른 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갈아치워야  무엇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건물을 짓는 속도와 지속되는 기간의 주기가 이전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없이 빨라진 북경의 스펙타클은 수많은 쓰레기를 생산했을 것이고, 지나간 것을 되돌아보기에는 다가오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것만도 여력이 모자라는 것이 경제성장기 중국의 현실일것이다. 이것은 중국만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 어쩌면 지금까지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로 지난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 일부를 재료로 구축한 거대 조형물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생성되었다가 허물어지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내적 질서를 가진 시대의 사이클 속에서 빠른 속도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들이 뭉쳐진   없는 가치의 기념물, 그것은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우 웨이는 대개의 다른 동시대 작가들처럼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로, 영상과 사진, 회화 작품도 전시에 출품되었다. 그의 회화는 기하적인 추상작품처럼 보이지만, 어떤 풍경을 재현했다는 점을 제목에 명시하고 있다. <파노라마 No.3(Panorama No.3)>(2015), <동녘 No.9(The East No.9)>(2015-2016), <보라색 공기 2016 No.1(Purple Air 2016 No.1)>(2015-2016) 모두 가로세로 선의 그리드를 기본으로 하여 캔버스에 유채로 채색된작품이다. 리우 웨이의 입체 작품들처럼  작품들도 먼발치에서  때와 가까이 다가가서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말랑말랑한서정성을 자극하는 풍경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숨이  막히는 어지러운 표면으로 보이는  그림들은, 최초에는 컴퓨터로 작업해 만든 화면을 유화로 번안한 것들이다. 


마치 컴퓨터나 TV 오류 화면처럼 보이는  회화 작품들이 굳이 유화라는 (서양)전통의 매체로 재작업된 이유 역시 그의 다른 입체 작품들의 이중적 의미와맥을 같이 한다. 르네상스 인들은 이차원 평면에 삼차원의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투시도법을 사용했고, 그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과학적 틀이라고 생각했다. 원근법은 20세기에 들어와 모던회화의 억압 기재로 뿌리쳐야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까지도 르네상스인의 눈은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지난 백년간 이어졌던 근현대 화가들의 지향점을 간단히 뛰어넘은 시점이 도래한바, 만물을 이진법의 간단한 정보로 환원하여 처리할  있는 디지털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은 전혀 다른 방식의 변화를 겪게  것이다


그림 같은(picturesque) 풍경 과거 동양의 산수화나 서양의 풍경화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실제의 아름다운 광경을 지칭했지만, 이제 인간은 자신의 눈보다 디지털 도구의 정확성을 신뢰하게 되었을  아니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장면까지도 시각적 경험 속에 포함하게 되었다. 리우 웨이의 풍경화들은 이처럼 급속히 상용화된 디지털 방식의 시각적 경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면들을 프린트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인 유화로, 손으로 그려낸다는 것이 껄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구현 대상과 방식의 충돌은 회화 작품에도 보이는 리우 웨이 작품의 일관성이다


리우 웨이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있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회의한다. 그의 작품에서 미묘한 지점의 현실 비판성을 느낄  있을지언정 그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광기, 떠밀려가는 시대의 속도감을 그는 작품에 반영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넓은의미에서 리얼리즘의 맥락 속에 위치하지만, 마치 높이 솟구치는 파도 위에  있는  위에서 고정된 풍경을 바라볼  없듯이,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거나 확정할  없는 불명확한 리얼리티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의 다양한 형식들은 동시대인들의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새로운리얼리즘의 방식으로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