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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_BLOW-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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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 2024.1.28 국제갤러리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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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 업(BLOW-UP)>에 대한 각주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성질을 지닌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보이는 것의 날인』은 이처럼 충격적인 동시에 매혹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만약 시각적인 것이 본질적으로 모두 포르노그래피적인 것이라면 존 버거(John Berger)의 지적처럼 남성 주체의 시선에 의해 대상으로 전락하는 여성 재현만이 포르노그래피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가진 자의 나르시시즘을 위해 못 가진 자들의 현실을 극화하는 빈곤 재현만이 포르노그래피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시각적인 것은 포르노그래피적이고, 포르노그래피적이라는 한에서 어떤 재현은 다른 재현보다 더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지 않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로 하여금 시각적인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해부할 수 있는 적나라한 “육체”로서 욕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처에 널린 생생하고 유혹적인 “육체”의 과포화 상태에서 우리는 시각적인 것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를테면 촉각적인 것, 더욱이 상상적인 것)에 무뎌질 수밖에 없다.


더욱 골치 아픈 사실은 우리가 단지 이런 착취적인 시각적 체계의 희생자가 아니라 그것의 공모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본과 마찬가지로 축적과 소유를 그 원리로 삼는 시각적인 것들에 들러붙은 욕망은 감속하는 법을 모른다. 시각적인 것을 해석할 수 있는 의미의 총량, 거래할 수 있는 정보의 총합으로 강등시키는 우리의 욕망은 시각적인 것의 피부(표면)가 아니라 그것의 내부, 파헤치려 든다면 필시 그것을 파괴하고 말 그것의 치명적인 비밀을 향해 가속한다.

작가 이광호의 이번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영화 <욕망(Blow up)>(1966)은 아마도 제임슨의 문장에 대한 직접적인 예시가 될 것 같다. 영화는 돈벌이를 위해 패션모델들을 촬영하는 냉소적인 사진작가 토마스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커플들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지만 놀랍게도 인화지의 한구석에 떠오른 것은 총구다. 그는 (이광호가 이번 전시에서 차용한 방식이기도 한) ‘부분 확대’를 통해 하나의 사진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쪼개어 방 여기저기에 널어놓는다. 사진을 확대하면 할수록 사건의 총체적인 ‘진실’이 종합되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고 그는 더 많은 단서를 확보하기 위해 편집증적으로 확대 작업에 매달린다.


그러다 자신이 찍은 사진의 진위 여부를 분명히 가리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사건 현장의 시체를 확인하러 간 토마스는 사진기의 셔터 소리 같기도 하고 총기를 장전하는 소리 같기도 한 ‘찰칵’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카메라는 총의 부드러운 승화”라고 지적했듯이, 살인 현장은 곧 자신의 촬영 현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욕망>은 <이창(Rear Window)>(1954)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비밀을 샅샅이 뒤지는 편집증적 시선이 어떻게 타자의 육체를 말 그대로 파괴하는 폭력과 연루되어 있는지를 은밀히 고발한다.



<Untitled 4819-6> 2023 캔버스에 엔코스틱 
90×8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사진: 전병철



<욕망>을 레퍼런스로 삼긴 했지만 이번 이광호의 전시는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대상을 관통하고자 하는 보는 주체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그는 눈이라는 기관을 통해 어떻게 대상을 파헤치는 대신 “애무”하는 하나의 시선 혹은 “사유(광학)”*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애무란 목적도 내용도 없는 만짐이며 사유란 판단도 해석도 아닌 몰두다. 눈으로 애무하고 또한 사유하는 그의 회화는 포르노그래피로 귀결되지 않는 에로티시즘의 가능한 한 형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은 그간 사실주의 화가로서 대상의 본질을 폭로하는 대신 그것의 표면을 충실하게 재현해 온 그의 행보를 묘사하는 또 다른 판본일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의 목표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이라는 이항 대립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공식화하는 것이지만, 에로티시즘에는 목표가 없다. 오직 상징적 의미로도 정보적 단위로도 환원될 수 없는 보는/보여지는 주체/대상 사이의 술래 없는 숨바꼭질, 잡았다 놓치는 시늉(몸짓)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전시 <블로우 업>은 뉴질랜드 남섬 케플러 트랙 근처에 위치한 습지를 찍은 사진을 확대해 60개의 화면으로 분할한 작품들 그리고 같은 사진에서 출발했지만 반드시 앞서의 작품들과 크기나 화면이 일치하지는 않는 5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다. 이 작품들은 한편으로는 2017년도에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습지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캔버스 천과 기법, 붓질을 “연구"한 결과로서 작가의 고유한 감각적 논리를 드러내는 “매너(양식, manner)”를 구현하고 있다. 전자는 “화가로서 아주 미세한 수풀 한 줄기까지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재현의 욕망”과 관계하고, 후자는 집요하게 “수풀 한 줄기”를 보려 한다면 결국 그것이 가진 “의미”를 포기할 수밖에 없기에 결국 “손끝의 감각”에 의지하기를 택하는 화가의 태도와 관계한다.


시각적 재현의 사심과 촉각적 구현의 감각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운동은 단지 화가가 그리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시각적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관습적인 재현의 욕망과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물러나 “언어와 생각이 배제된 상태”에서 시각적 대상을 눈으로 만지듯 그리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작품의 화면을 구성하는 내적 논리로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멀리서 보면 이광호의 습지는 마치 발광하는 듯한 강렬한 시각적 환영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가까이서 보면 흐릿한 경계와 거친 터치로 이루어진 화면의 연약한 살갗이 불쑥 도드라진다. 어느 쪽이 습지의 진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다. 구상 속에 추상이 있고 추상 속에 구상이 있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이중의 움직임 속에서 그의 회화는 대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이라는 비밀을 비밀로서 보존한 채 스스로 수수께끼가 된다. 마치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연인을 그렇게 보듯이 말이다.



<Untitled 4819-62> 2023 캔버스에 유채 
170×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사진: 전병철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연인을 ‘그렇게’ 보고 있는가? 말하자면 화가가 케플러 트랙의 습지를 보듯이 말이다. 김영민은 『사랑, 그 환상의 물매』(2004)에서 오늘날의 “연인들에게 ‘마음’의 형이상학을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서 연애”하라고 권한다. “연한 것을 마땅히 연하게”, “측은지심”으로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최대주의”, 제임슨 식으로 말하자면 마음의 포르노그래피화가 “사랑의 놀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진짜 마음과 가짜 마음을 가리는 의심과 해석의 충동 속에서 피부와 말은 본질을 가리는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것처럼 투박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음 혹은 욕망의 진의를 따지는 일에 비해 눈앞에 노출된 피부의 무늬를 온전히 어루만지는 일은 실로 고단한 인내를 필요로 하지 않던가. 케플러 트랙의 습지 속 이미 주어진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인 ‘나’가 그것을 바라보는 일종의 이상을 화면에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된 사진의 “노이즈”마저 그것을 이루는 아름다움의 일부로서 화면에 온전히 펼쳐 내는 것. 그러기 위해 눈이라는 살을 긴 시간 사물의 표면에 문지르고 어루만지는 그의 작업 과정을 세계에 대한 배려나 사랑으로 번역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세계는 살(피부)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 역시 살(피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세계와 그처럼 살(피부)를 맞댈 수 있는 이, 그리고 그것의 고유한 살성(性)을 마찬가지로 살(피부)인 자신의 눈을 매개로 시각적으로 잠시 현존하게 할 수 있는 이는 우리 중에서도 극히 드물 것이다. 햇수만 따지면 40년간 붓을 잡아 왔지만 본격적으로 “프로 의식”을 갖고 작업한 것은 15년 정도 되었다고 말하는 그런 대가가 쌓아 올린 ‘내공’, 또는 ‘논리적 시각’의 체계 앞에서 고작 몇 년간의 비평 경력(?)으로 짐짓 ‘아는 체’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스러운 일인가 혼자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각주”라는 어정쩡한 제목까지 붙여가며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자 결국에는 한 마디가 남았다. 그날 전시장에서 틀림없이 나는 화가가 본 것, 그가 눈으로 파고든 것 속에 있었다고 말이다.  


*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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