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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가 대세긴 대세인 모양이다.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중국을 테마로 한 대형 전시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가 하면, 중국 작가의 작품이면 무조건 사겠다는 바이어들이 줄을 선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작품가격도 천문학적이다.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와 같은 국제경매회사의 ‘가장 값비싼 예술품’ 목록 상위권은 이미 현존하는 중국 작가 이름들로 채워진 지 오래다. 이런 숫자 이야기만 듣고 있다 보면, 예술계까지 손을 뻗친 차이나 파워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터.
일각에서는 중국인이 중국 작가의 작품을 모두 사재기하고 있다는 부러움 섞인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차이나 파워가 의미하는 바가 단지 ‘돈’만은 아닌 듯하다. 숫자로만 치부하기엔, 중국현대예술은 분명 매혹적이며, 심오하다. 그리고 새롭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우리는 중국의 예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할뿐더러, 접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모든 문화예술 활동이 통제되고, 창작이 곧 죽음을 의미했던 격동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이 기나긴 광기의 역사 끝에 마침내 태어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중국현대예술이다. 그런데도, 중국현대예술이란 말은 아무래도 낯설다. 중국 도자기는 알아도, 중국의 ‘살아있는’ 예술이 여전히 우리에게 생소하단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 낯선 거리감을 해소하기에 제격인 전시가 때마침 파리에서 진행 중이다.
Xu Qu <Currency Wars> 2015
(vue de l’installation a la galerie Almine Rech, Bruxelles, 2015)
OEuvre presentee lors de l’exposition “Bentu, des artistes
chinois dans la turbulence des mutations” du 27 janvier au 2 mai 2016,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Xu Qu - Courtesy de l’artiste et Almine Rech Gallery
루이비통 예술재단 미술관(이하 루이비통 재단,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마련한 <본토(Bentu)>전은 중국현대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중국예술의 정수와 현재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중국 본토 출신의 작가 12명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우선 규모부터 방대하다. 네 층에 이르는 재단의 모든 공간을 이번 전시에 할애했을 정도로, 건물 전체가 모두 중국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더욱이 이번 전시에는 루이비통 재단을 세운 LVMH 그룹의 총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이 최근 몇 년간 수집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공개되어 볼거리가 더욱더 풍성해졌다.
루이비통 재단이 특정 국가를 선정해 그 나라 출신 작가들과 작품만을 대거 소개하며, 근원의 땅, <본토(本土)>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전시 시작 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대놓고 중국 띄워주기 식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고, 자칫 내셔널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농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러한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작가들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작품들 사이에서 그 어떤 공통점이나 교차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번 전시의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먼저,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쉬 전(Xu Zhen)의 조각설치작품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양손을 중앙에 가지런히 모은 무지갯빛의 화려한 불상을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의 대표작인 <사모트라케의 니케(Victoire de Samothrace)>를 거꾸로 머리에 인 불상의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기이할 정도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불상이 결합한 이 하이브리드 조각은 기형적인 형태에도 불구하고, 실제 고대 조각 못지않은 절제미와 숭고미를 내뿜는다.
Liu Xiaodong <Jincheng Airport> 2010 Oil on canvas
300×400cm Liu Xiaodong, vue d’installation, exposition
“Bentu, des artistes chinois dans la turbulence des mutations”,
galerie d’exposition niveau -1,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27 janvier - 2 mai 2016 ⓒ Liu Xiaodong.
Photo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그것은 아마도 쉬 전 조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균형미 덕분이리라. 아슬아슬하게 무게를 버티며 평형을 유지하는 불상의 모습은 마치, 이질적인 동서양의 만남과 그로 인한 혼돈을 묵묵히 감내하는 듯하다. 중국의 레디메이드(Ready -made)라고 불릴법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모습을 한 병꽂이에 수십 개의 팔이 매달아진 <부처의 50개의 팔(Cinquante bras de Bouddha)>은 소변기, 자전거 바퀴와 같은 기성품을 설치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을 제작한 후앙 용 핑(Huang Yong Ping)은 실제로 뒤샹과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영향을 받아, 중국 샤먼을 중심으로 다다운동을 펼친 바 있다.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현대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력해온 작가는 50개의 팔에 전 세계 종교의 상징물을 함께 매달았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너무나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과 신뢰, 신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사방으로 흩어진 부처의 팔을 보며, 한번쯤 자문해보게 된다.
Yan Pei-Ming <Les Temps Modernes> 2015 Oil on canvas Diptych:
280×400cm each panel ⓒ Yan Pei-Ming / ADAGP, Paris, 2016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흐름에 당면한 중국의 현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들도 있다. 쉬 취(Xu Qu)는 세계에 유통되는 통화량과 통화유통속도에 기초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실제 화폐의 디자인이 조각조각 뒤섞여있는 그의 회화 연작은 ‘화폐 전쟁(Currency Wars)’이라는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듯, 매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강대국들의 파워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중국회화의 거장이자,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 류 샤오동(Liu Xiaodong)은 한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와 일상의 풍경들을 통해 중국인이 마주한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증언한다. 새로 지어지는 높은 건물들 뒤에는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들이 있고,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말 한 마리가 길을 헤맨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샤오동의 작품은 현대화란 급류에 휩싸여, 한 개인과 지방 소도시가 겪게 되는 변화와 혼란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변화의 과정 속에는 언제나 사라지는 것이 있고, 반대로 또 어떤 것들은 새로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마 작가가 바라본 중국 현대인들의 삶은 다가오는 생(生)을 앞에 둔 소멸의 과정이었으리라.
Zhou Tao <One Two Three Four> 2008 Video, couleur,
son 3’33” OEuvre de la Collection de la Fondation
Louis Vuitton exposee du 27 janvier au 5 septembre 2016,
Accrochage 4, espace interstitiel niveau 1
ⓒ Zhou Tao - Courtesy de l’artiste et Vitamin Creative Space
그렇기에 그의 캔버스는 짙은 향수가 배어있지만, 동시에 중국인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광활한 중국의 대륙처럼, <본토>전은 한 편의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국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기획전일 것이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급부상한 중국의 예술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참신한 시도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비평가들과 현지 언론 역시, ‘무국적’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중국현대예술의 독창성과 다양성에 손을 들어줬다. 꽤 성공적인 결과다. 루이비통 재단의 예술 감독, 수잔 파제(Suzanne Page)는 중국인들의 대규모 인파 뒤에 진정한 개인의 독자성이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당한 말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중국현대예술이란 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단어도 조만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중국 작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더 익숙한 날들이 도래할 것이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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