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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6, Mar 2017

양정욱
Yang Jung uk

나무로 쓰는 동화

피곤한 인생. 그러나 일상의 피곤 안에 아직은 꿈과 희망이 있으니 참고 견뎌본다는 말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온종일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장면 너머의 사연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종종 우리는 남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대를 찾곤 한다. 창작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나 삶이 남긴 흔적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양정욱 작업의 근원은 ‘스스로 들려주는 동화’다. 더욱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다. 일종의 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글에 상상을 가미하여 더 재밌게 극적인 내용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 입체 구조로 거듭나게 하는 일련의 작업 과정은 일반적인 예술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단언하는 그는 주제이자 메시지 그 자체인 텍스트를 나무로 만든 입체물로 변환시키고, 관람객들을 그 앞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한다.
● 이가진 기자 ● 사진 서지연br>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 2015 나무, 모터, 실, PVC, LED 3000×5000×5000×30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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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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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욱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필사적인 설명”이라고 말한다.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무언가를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 전달하려 노력한다는 의미다. 작품이 보여주는 움직임이나 속도, 방향, 표정은 곧 그가 사용하는 조형적 원리다. 거대한 나무 설치물의 잔잔한 움직임은 그 육중함과 가벼움이 대비되며, 미묘한 서정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실상 이런 기계적 작동은 작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앞서 언급한 필사적인 설명의 일환이자 작품 앞으로 관람객을 끌어당기기 위한, “매혹스러운 덫이고 미끼”일 뿐이다. 폭포가 떨어지고, 모닥불이 타는 모습에서 대단한 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신기하다’라고 반응하기보다는 ‘시간이 많이 들었겠다’고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양정욱. 그는 자신의 기량, 자질을 꽤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못하는 것을 억지로 해내려고 고민하기보단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편이다. 직관적인 모터의 활용도 사용 가능한 로우테크(low-tech) 기술 안에서 솜씨를 부린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문장을 쓰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도 하다. 





<고난은 희망이라고 속삭인다>

 2012 나무, 모터,  40×30×10cm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마음에 드는 글이 될 때까지 엮어내고 분해하고 다시 또 조립한다.  그가 글을 쓰고, 드로잉으로 표현하면서 문자 언어는 시각 언어로 1차 변신을 거친다. 그런데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입체가 되기 전 이차원의 평면에선 완벽한 변신이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서있을 리 만무할 형태는 글이 담고 있던 상상력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드로잉 속 조형을 보면 어림잡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만큼 정교한 설계도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종이 밖으로 나와 나무라는 재료를 만날 때 비로소 이 상상력은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다. 녹록지 않은 나무의 물성은 무엇보다 계획한 것이 100%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정확한 수치로 재단할 수 있는 금속과 달리 나무는 통제할 수 없는 온도, 성질을 내재하고 있기에 그것을 다듬으며 물러나야 할 때와 고집을 부려도 될 때를 깨닫는다. 


특히 나무는 그 자체로 회화적이다. 무늬를 예측할 수도 없고, 잘라놓은 모양도 다 다르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안료를 칠하고, 불로 굽고, 표면을 긁어내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되는 한 조각 한 조각은 공들여 채운 캔버스 하나와 같다. 화가에게 캔버스 자체보다 그 위에 표현되는 것이 중요하듯, 양정욱에겐 나무라는 재료 그 자체보다 나무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간’과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길을 걷다 주워오거나, 목공소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는 나무는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가 되고 싶은 것은 나무 전문가가 아니기에 직접 써보고, 만져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으로 충분하단다. 무게나 습도처럼 실행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곤, 그때그때 재료의 장단점을 배우고 있다.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2013 

나무, 모터,  3300×2500×2500mm  




그는 작업을 설명하며 ‘근사치’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모습의 근사치에 가까워지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 부수적인 것을 쳐내고 덜어내며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겨우 가 닿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해의 결정적 힌트가 바로 제목에 담겨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면 귀에서 어떤 소리가 난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를 안마기는 모른다’ 등 알 듯 말 듯 한 제목은 그가 감춰둔 길고 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흡사 텔레파시를 주고받듯 세 개의 구조물이 가느다란 나무로 연결된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2015), 빽빽하게 짜인 겹겹의 중심부에 걸린 전구가 은은하게 뿜어내는 빛과, 그 빛이 반사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보여주는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2013)처럼 제목은 입체물이 발산하는 소리, 조명 등 모든 효과와 어우러지며 궁극적으로는 감상자를 작품 앞에 바싹 다가서게 한다. 읽든, 듣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처럼 이 작품들은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실물을 만났을 때서야 자신이 갖고 태어난 스토리를 조금씩 알려준다. 반복, 확대, 비대칭 등 다양한 조형적 시도가 빚어내는 가장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 No 10 

2015 2000×600×800mm




작가는 2012년 이전 자신의 작업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한창 ‘움직임’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연구하던 시기이다 보니 우선 기술적인 실험을 하면서 무언가 만들어지면 그럴싸한 제목을 지어 붙였다고 한다. 그런 작업이 지속되면서 회의감이 몰려왔고, 결국 작업을 중단하고선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출퇴근길에 글을 계속 썼고, 점차 글 속의 세계가 명료해진다 싶을 때 즈음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린 2인전 <사이의 변칙>에 참여하게 된다. 글쓰기 훈련을 통해 이미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단단하게 만들어놓은 상태였기에 작업은 이전보다 진솔하고, 또 수월했다. 글을 쓰고, 그 안에서 찾은 요소를 시각화하는 작업방식이 자리를 잡은 것도 그때부터다. 양정욱은 여전히 ‘사람’에 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모습을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전달하려 한다. 대신 그의 말엔 비유가 많다. 하나를 설명할 때도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우화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의 작업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모두 우리의 삶에서 꺼내 든 이야기이기에.   




 

양정욱




작가 양정욱은 1982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갤러리 소소, OCI 미술관, 두산 갤러리 뉴욕에서 세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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