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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5, Feb 2017

이지연
Lee Jiyen

감각을 교란하는 이성의 형태

직관에, 린치를 가하는 작업이 있다.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 쉬이 믿었다간 작가 이지연과 그의 작품에 보기 좋게 KO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집중하면 지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 작품에 장치된 복선과 전치 그리고 위트를 발견한다면 말이다. 슬쩍 본 이지연의 작품은 정교하게 짜인 직물 같다. 그러나 촘촘하게 조직된 것은 다름 아닌 돈. 물건을 사고 팔 때 오가는 지갑 안 지폐 말이다. 한때 갖은 욕구와 욕망을 책임지던 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처참히 폐기된다. 도저히 복원될 수 없도록 조각난 돈은 마치 동물의 배설물처럼 둥그렇게 뭉쳐 쌓인다. 늘 갈구하던 존재인데 정작 파기돼 갈 곳 없는 돈 조각에 이지연은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들고 와 하나하나 붙이며 시각적 유희로 변환시켰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그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It’s in your mind)' 2015 피그먼트 프린트 80×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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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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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하다못해 맘 편히 즐기는 콩트조차 그저 생각한대로 진행되면 전혀 아무 매력도 느낄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사건이 펼쳐지고 전복과 모순이 등장할 때 비로소 흥미가 만발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공식은 미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작품 하나로 완벽한 얘깃거리를 갖추는 미술이야말로, 영리하고 세련된 장치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지연은 바로 이 부분을 캐치한 작가다. 그는 자신만의 신랄한 줄거리를 세우고 사실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연출하되 변형을 일삼는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다듬어진 조형 솜씨에 아이디어를 담아 눈으로 보여 지는 부분엔 세련된 공력을 머리로 인식되는 부분엔 남다른 개념을 투입, 작품으로 완성한다. 




<휴식을 위한 드로잉> 세부이미지 




이지연에게 한 장의 사진은 하나의 순간을 의미한다. 그가 분할하거나 겹쳐놓는 여러 레이어에 의해, 무수히 다른 순간들은 한 작품 안에 공존하고 그 순간들이 모여 전체를 알 수 없는 무한히 확장 가능한 ‘진행 중인 시간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장소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장소에 따라 작품 전체가 좌지우지되므로 작가는 스스로 가장 예민하게 집중하는 부분을 ‘장소’라 꼽기도 한다. 그러한 장소를 바탕으로 분할 가능한 화면을 완성함으로써 외적으로는 공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고, 내적으로는 작은 개체들이 모여 좀 더 큰 주체가 되는 유닛을 만들던 이지연이 돌연 버려진 화폐를 활용하여 자본의 물질적 순환을 작품화하고 있다. 




<휴식을 위한 드로잉> 2015-2016 지설물, 복합재료 각각 34×34cm  




한때 난지창작스튜디오를 떠나며 함께 있던 스물 세 명의 작가에게 “버려졌던 이 땅을 떠나며 당신이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다분히 회의적이며 윤회적인 질문을 던졌던 작가는 유독 ‘끝에서의 시작’에 애정을 갖는다. 마침 작업의 전환이 필요했던 그는 끝에서 시작될 수 있는 대상을 본격적으로 찾았다. 문득 폐기된 돈이 건축 자재 등으로 재활용된다는 기사를 떠올린 작가는 한국은행을 찾아갔고 법적효력을 내재한 각서를 작성한 후 돈 조각 덩어리, 지설물을 받아왔다. 사과박스에 두서없이 쌓인 지설물. 화폐라는 물질 자체로 비물질적인 순환을 한 이 오묘한 대상에 관한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상 자체의 강력하면서도 대중적인 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결코 원상태가 될 수 없도록 갈가리 찢어졌지만 그래도 그것은 분명 돈이다. 작가는 화폐의 순환성과 유동성, 그리고 화폐가 가지고 있는 원본 없는 정교한 복제성, 복제성으로 인한 무한한 확장가능성, 그리고 폐기된 상태여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쓰레기가 아닌 돈으로 인식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Its in your mind) 2015 피그먼트 프린트 80×60cm  




지설물을 접착하는 작업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어차피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돈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동원하자’라는 생각에 작가는 ‘맘마미아’라는 싱글맘 협회에 협조를 구했다. 실물 만 원 짜리 지폐 크기의 판을 만들어 “만 원 크기를 붙이면 만 원을 드립니다”라는 프로젝트를 그들과 진행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blues>라는 작업이 완성됐다. 싱글맘들은 지설물을 만원 크기로 붙여오고 작가는 그들에게 받은 작업과 자신의 현금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작업 과정 속에 재현 하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작업이 판매되면 실제 돈이 도는 순환 구조를 보다 완벽하게 재현하는 셈이다. 지설물 콜라주를 비롯 콜라주 원본을 정밀스캔, 확대 프린트하는 사진 작업으로 그는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고 있다. 




<  Natural>전 설치 전경 2013 대구 space K




이야기가 여럿 복합된 이지연의 화면은 사실 보는 이가 정확히 간파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는 말한다. “작품이란 속성자체가 모호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모호한 지점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이 나오는 것 아닌가. 10년 전 나의 작업을 지금 봤을 때 내 스스로도 다른 해석이 나오고 그때 알지 못했던 부분이 이제야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현재 진행하는 작업들은 결과를 알수없어 더 나를 집중시킨다. 지금껏 시간의 순환 구조 안에서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 집중했던 이지연은 지금 ‘시간의 시작과 끝이 될 수 있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비물질적 시간을 카메라를 통해 물질화시키며 순환구조를 가시화 시켰던 그가 이제 서서히 물질적 매체를 비물질화시키며 어떻게 순환구조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 중이다. 그의 고민은 물꼬를 텄고, 이제 가속을 내고 있다.  

 


 

이지연




작가 이지연은 1979년 서울 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 순수미술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지난 2011년 살롱 드 에이치의 <Private Public>를 시작으로 대구 스페이스K, 경기도 파주 Makeshop Art Space 등에서 세 차례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12년 런던 사치갤러리에 마련된 <코리안 아이>전을 비롯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on Mandos gallery의 <Korea Contemporary-Fusion>(2015), 중국 Shanghai Exhibition Center에서 열린 <Photo Shanghai 2016 Insight/New Approaches to Photography Since 2000>(2016) 등 여러 기획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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