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글쓰기와 말하기

올해로 벌써 5회째를 맞은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을 해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인데, 최근 전시들에서 현실 자체를 직접 언급하는 기획이 거듭되고 있다. 미술계 전반에서 작업 현실을 직접 언급하는 전시와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기 때문에, 이 주제가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피켓처럼 선택돼 적당한 선에서 갈무리되는 주제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도 기획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이 넓은 범위로 희석되어 무화된 인상이다. 전시 자체는 안정되고 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안전한 선택들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시를 설명하는 후반 작업이 계획 중에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으니, 지면을 빌어 세세한 코멘트를 전하고자 한다. 전시는 ‘현실활용가’라는 제목 아래 박보나, 유목연, 윤지영, 윤지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각 작가(작업)이 전시에 들어오게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맥락과 그 결과에 대해 간단히 일별해 볼 수 있다. 유목연의 <아티스트 보드게임>(2013-)은 전국의 레지던시를 일주한 후 작가 작업실을 오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드게임이다. 작가로서 취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레지던시 현실을 직접 다루는 작업이니만큼 본 전시에 들어온 맥락이 가장 분명해 보인다. 

재치 있는 어조로 현실에서 따온 상황을 게임 언어로 변환해 놓았는데, 가령 이벤트 카드 ‘로또당첨-이 게임 탈출’과 같은 부분에서 작업의 유머러스함이 자칫 패배적인 자조로 읽힐 위험이 보인다. 유희 뒤에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어 보이는데, 이는 작가뿐 아니라 기획진이 함께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다. 한편, 이전의작업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퍼포먼스로 전시장에 들여오곤 했던 박보나는 본 전시에서는 음향 작업가가 소리를 발생시키는 모습을 소리별로 담은10개의 영상을 병렬로 배치했다. 전작에 비했을 때 가상과 실재 사이를 교차 진동하는 현실의 개념적인 차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윤지영의 <적당한 선에서>(2015)는 작가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갈등의 순간을 오브제 설치로 선보인 작업이라고 한다. 물리적인 긴장 관계를 보는 즐거움이있었고 큐레이팅의 중요한 부분인 ‘작업 배치’의 측면에서 적절해 보이나, 이 설치 작업을 설명하는 ‘긴장’이라는 수사가 그 긴장 관계를 이루는 실제적인 항들에 대한 언급 없이 추상적으로 설명되고 있어 아쉽다. 

본 워크숍 기획전을 만나 이러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조율 과정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윤지원의 <무제(프로젝션)>(2015)은 새로운 이미지 생산의 저변에 자리하는 기억술과 인지의 과정에 대한 작가의 리서치를 간략하게 담아낸 영상 작업이다. 작가는 <랜덤액서스>(백남준아트센터)나 <다방다방프로젝트>(KT&G상상마당 갤러리)등 전시에서 주어진 상황(전시 공간 자체나 위치, 기획, 예산이나 혹은 일반적인 전시 진행의 관행들)에서 추출한 조건들로 작업을 진행했고, 이러한 작업이 본 전시에 섭외된 이유이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미지 생산의 저변’ 자체를 고민하는 이번 전시작의 넓은 주제 잡기는 현실이라는 기획과 맞물리기에는 너무 근원적이라는 인상인데, 열린 제안과 넓은 기획의 개념 속에서 취할것 없음에 처한 결과가 아니겠냐는 생각도 든다. 조건의 다른 이름은 ‘제약’이기 때문이다. 일면 작가 자신이 흥미를 지니고 현재 진행 중인 탐구의 산물로도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을 활용하는 나름의 방식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 전시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한 기획자의 설명이 아쉽다.

이 워크숍은 각자의 기획으로 선발된 이들에게 그 기획을 무화하고 공동으로 기획할 것을 요청하는데, 여기에는 이 기획이 애초부터 어떤 불가능에서 시작한다는 인상이 있다. 서로 알지 못했던 이들이 공동 기획을 선보이기까지의 1년의 내부 워크숍 과정에 있었을 토론과 선택의 순간들, 과열되거나 지난했을 시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결과전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함께 전시를 고민했던 워크숍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공유하는 큐레이터의 글쓰기와 말하기 과정이 전시의 수사를 촘촘하게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