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Review

윌리엄 켄트리지_주변적 고찰

0원
2015.12.1 – 2016.3.2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SHOPPING GUIDE

배송 안내

배송은 입금 확인 후 주말 공휴일 제외, 3~5 일 정도 소요됩니다. 제주도나 산간 벽지, 도서 지방은 별도 추가금액을 지불하셔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송비는 6만원 이상 무료배송, 6만원 이하일 경우 3,000원입니다.


교환 및 반품이 가능한 경우

- 주문된 상품 불량/파손 및 주문 내역과 다른 상품이 오배송 되었을 경우 교환 및 반품 비용은 당사 부담입니다.

- 시판이나 전화를 통한 교환 & 반품 승인 후 하자 부분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여 택배를 이용하여 착불로 보내주세요.


교환 및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 반품 기간(7일 이내) 경과 이후 단순 변심에 한 교환 및 반품은 불가합니다.

- 고객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포장을 개봉 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 가치가 상실된 경우,

  고객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하여 상품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 포장을 훼손한 경우 교환 및 반품 불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 상담 혹은 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 교환/반품 배송비 유사항 ※
- 동봉이나 입금 확인이 안될 시 교환/반품이 지연됩니다. 반드시 주문하신 분 성함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 반품 경우 배송비 미처리 시 예고 없이 차감 환불 될 수 있으며, 교환 경우 발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상품 반입 후 영업일 기준 3~4일 검수기간이 소요되며 검수가 종료된 상품은 순차적으로 환불이 진행 됩니다.

- 초기 결제된 방법으로만 환불이 가능하며, 본인 계좌가 아니면 환불은 불가합니다.(다른 명 계좌로 환불 불가)
- 포장 훼손, 사용 흔적이 있을 경우 기타 추가 비용 발생 및 재반송될 수 있습니다.


환 및 반품 주소

04554 서울시 중구 충무로 9 미르내빌딩 6 02-2274-9597 (내선1)

상품 정보
Maker Art in Post
Origin Made in Korea
정기결제
구매방법
배송주기

정기배송 할인 save

  • 결제 시 : 할인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선택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Review 수량증가 수량감소 a (  )
TOTAL0 (0개)

할인가가 적용된 최종 결제예정금액은 주문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

윌리엄 켄트리지, 쇠퇴한 매체들의 기억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윌리엄 켄트리지의 대규모 개인전에 대한 국내 수용의 양상은 켄트리지의 전기적 이력과 그의 다양한 작업들이 표현한 주제적 면모들에 초점을 맞춰 왔다. 전시 팸플릿과 여러 리뷰 및 기사들은 그의 작업들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지배 역사와 인종차별정책을 체험한 백인 지식인 남성의 트라우마와 반성적 의식, 주변인적 정체성에 대한 표현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의 좀 더 확장된 버전은 켄트리지가 서구 모더니티의 양가적인 국면을 성찰하고 체화한 예술가라는 것이다. 이 버전에 따르면 켄트리지는 20세기 초에 절정에 달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획을 여전히 신뢰하면서도, 모더니티가 역사적으로 배태한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폭력과 고통에 대한 표현을 갱신해 왔다. 『한겨레신문』(2015.12.31)에 실린 서경식 교수의 평이 이런 관점을 대변한다


계몽주의의 원래 뜻은 빛을 쬔다는 것이다. 후진적인 어둠의 세계에 사는 자들에게 지식과 이성의 빛을 쬐게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빛과 어둠을 둘러싼 플라톤적인 사상 자체에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양의성과 폭력성이 내포된 게 아닐까. 켄트리지는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히 요약한 이 전기적, 주제적 관점들은 정당하면서도 켄트리지의 다양한 작업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를 놓치고 있다. 그 키워드는 곧 매체. 켄트리지에게 있어서 매체는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드로잉의 물질적 한계와 장르적 경계를 넘어 영화, 조각, 연극, 오페라, 멀티미디어 설치작품 등으로 확장됐다.



영사를 위한 드로잉


켄트리지의 이름을 서구 미술계에 노출한 첫 번째 작업은 펠릭스 엑스타인(Felix Eckstein, 탐욕스러운 백인 기업가)과 소호 테이틀바움(Soho Teitlebaum, 시적이고 에로틱한 영혼을 상징하는 벌거벗은 백인 남성)을 등장시킨 일련의 목탄화 기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다. 정확히는 영사를 위한 9개의 드로잉들(9 Drawings for Projection)’이라는 제목의 연작에 속하는 이 작업들은 여러 회화적 전통들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강렬한 선적 형상화는 그가 자주 언급한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막스 베크만(Max Beckmann), 오토 딕스(Otto Dix), 게오르게 그로츠(George Grosz) -의 전통을 환기한다. 사전에 정해진 대본 없이 그려가면서 형상과 의미를 우연으로 만들어가는 켄트리지의 작업 방식(그는 여기에 포투나(fortuna)’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기계와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적 경관에 범람하는 악몽과 욕망의 형상들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법(automatism)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과다(그는 자신이 목탄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홀로 작업할 수 있고 작업의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미리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여기에 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와 같은 가장 오래된 회화의 양식을 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켄트리지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또 하나의 계보는 과거의 기술과 대중문화다(이 작품들에 전화기와 축음기를 비롯한 많은 기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작업에 근거한 드로잉은 16mm 카메라에 의해 프레임 단위로 촬영되면서 형상들의 형성과 유체적 변화의 지속적인 교환과 상호 긴장으로 이어진다. 2차원의 표면에 그려진 형상이 기계적 재생을 통해 3차원적 환영을 획득하는 메커니즘, 그것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오래된 기법이자 움직이는 이미지의 예술인 영화의 원시적 출발점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면 켄트리지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선보이는 형상들의 역동적인 조형성과 프레임에 대한 지각은 20세기 초 대중문화의 산물들인 만화책과 카툰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에는 기술적인 새로움을 선보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쇠퇴한 것으로 인식되는 바로 그런 매체들 말이다. 켄트리지의 드로잉-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바로 그런 매체들이 구현했던 집단적인 호소력을 부활시키면서도 자신만의 변주를 가한다. 대중적인 카툰 애니메이션이 형상의 나타남과 탄력적인 변화를 통해 운동의 환영을 부각시킨다면, 켄트리지의 기법은 지워짐과 덧그리기를 통해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이미지에 시간의 흐름을 새긴다. 


많은 평자가 말했던 대로 이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켄트리지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기억과 망각의 흔적이 새겨지고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중첩하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로 기능한다. 켄트리지는 자신이 목탄화와 스톱모션 기법을 탐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목탄과 종이에는 불완전한 지워짐이 있다. 디지털 매체에서 지워짐은 단지 수적으로 재현되는 디지털 효과의 하나일 따름이다 (…) 영화작업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기법의 쇠퇴는 작업할 수 있는 안전한 안식처를 제공한다.”(October, no. 100 Spring 2002, p.17) 켄트리지에게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지워짐과 나타남이라는 재현의 층위뿐 아니라 그가 선택하는 기술적 지지체의 양가적 특성 때문이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유행이 지난 것(또는 망각된 것)으로 인식되는 기술이 그에게는 기억의 회로로 진입하고 나타남과 지워짐을 가시화할 수 있는 기반이다.



-영화적인 것, 영화적인 것, 멀티미디어


쇠퇴한 매체들과 그것들의 문화적 함의들에 대한 켄트리지의 매혹은 영사를 위한 9개의 드로잉들 작업을 일단락한 2003년 이후의 작업들에도 다양하게 반영되어 왔다. 이 다양한 작업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매체는 영화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서 영화란 표준적인 영화장치를 넘어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한20세기 미술의 역사, 그리고 영화의 발명 이전에 존재하면서 영화의 전사를 이루는 환영적인 광학기구들을 포함한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에 대한 오마주를 예술가에 대한 켄트리지 자신의 초상과 병치한 <달세계 여행>(2003) 이외에도 2000년대 이후의 비디오 설치작품들은 목탄 드로잉을 넘어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실사 영상, 포토몽타주, 그림자극, 플립 북, 책 페이지의 빠른 스크롤을 포함한다. 이 모든 매체는 목탄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한 움직이는 형상의 표현적 가능성에 대한 켄트리지의 탐구를 연장하면서 영화적 운동의 환영을 다양한 모습으로 환기시킨다.


나미비아에서 20세기 초 일어난 대학살 사건의 기록을 극화한 <블랙박스/샹브르 느와>(2005)는 키네틱 조각과 드로잉을 다층적으로 영사하는 일종의 소규모 극장 설치물로, 18세기와 19세기 초에 환영적 대중문화로 유행하며 이후 영화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마술극장(magic theater)의 전통을 환기시킨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과정과 스탈린주의로의 이행을 풍자한 8채널 비디오 설치작품 <나는 내가 아니고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다>(2008)에는 러시아 구축주의 도상들과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영화 사이의 연관성, 그림자극과 컷-아웃 애니메이션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나무로 만들어진 자동기계들과 더불어 5개의 채널로 전개되는 <시간의 거부>(2012)의 영상에서는 초기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초현실적 내러티브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영화가 산업혁명 시대에 형성된 표준화된 시간성을 구현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는( 시간을 거부하는’) 시간성의 매혹을 제공한 매체였음을 일깨운다. 가장 최근의 영상 설치작업들은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에 영향을 주었던 포토몽타주의 이미지 병치, 움직임의 인상을 창조하는 원시적 매체인 플립 북, 그리고 구조영화에서 실험된 필름 스트립의 빠른 스크롤을 연상시키는 책 페이지의 활용 등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다. 이와 같은 켄트리지의 방대한 작업들은 영화사에 다채롭게 존재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것으로 여겨지는 영화적 기법들을 인접 예술과의 대화를 통해 탐구한다.


물론 영화적인 것에 대한 이 다채로운 최근의 탐구들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내장되어 있다. 21세기 초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인터미디어와 설치예술의 국제적 유행으로 인해 매체라는 관념이 무효화된 포스트-매체(post-medium)의 시대에 매체의 관념을 여전히 지탱하는 동시에 재창안하는 예술가로 켄트리지를 지목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켄트리지의 영사를 위한 드로잉 연작은 지금은 쇠퇴한 기술적 지지체인 목탄화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 매체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고 그 표현성을 갱신함으로써 뉴 미디어가 위풍당당하게 설파하는 진보와 수렴(모든 예술은 뉴 미디어로 수렴된다)의 신화에 대응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화질의 디지털 프로젝터와 멀티사운드 시스템을 수반한 켄트리지의 최근 작업들은 성찰적 환영보다는 휘황한 스펙터클로 보일 수도, 크라우스가 우려했던 인터미디어와 설치예술의 유행에 합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켄트리지의 최근 멀티미디어 작업이 쇠퇴한 매체들의 기억을 끌어내고자 애쓴다면 이는 이러한 종류의 작업에 내재한 본원적 긴장 때문일 것이다. 기술에 대한 예술적 실험과 탐구는 그 기술이 약속하는 진보에 대한 약속과 그것이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쇠퇴의 운명 모두와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전시전경

게시물이 없습니다

WRITE LIST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