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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에서 소생한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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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Art Project in Temple

성당과 교회 등 성지에서 열리는 예술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선 각 지방의 절을 중심으로 미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예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온 종교와 예술을 중심으로 단순히 종교예술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종교적 공간이라는 신성한 개념에 예술·건축·공동체 등에 대한 연구를 더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공간에서 발생하는 공공미술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보다 면밀히 현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이 종교, 성지 혹은 신성한 공간에서 진행한 국내외 여러 프로젝트와 작품을 열거하며 현상을 분석한다. ‘지리산 프로젝트’, ‘해인아트 프로젝트’,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 등과 시각예술단체 ‘예술과 신성한 장소들(Art and Sacred Places)’ 등을 훑어보며, 여러 사례를 통해 종교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술에 왜 예술가들이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는지 밝히고 이런 현상의 방향성과 징후를 탐색한다.
● 기획·진행 편집부 ● 글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안규철 '모래 위에 쓰는 글' 2013 알루미늄, 철, 마사토, 나무 70×500×5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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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샤먼(Art Shaman)들의 귀환

성소(聖所)로 향하는 미술

 


현상들


장구한 미술의 역사를 생각하면 숱하게 명멸한 작품들과 작가들이 떠오른다. 여러 미술사조가 저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져 갔고, 미처 개화하지 못하거나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져 버린 미술들이 부지기수다. 현재를 사는 우리로선 그 모든 미술을 알 수 없지만, 예술가들이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해 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현상 속에서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모종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 의미를 가늠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국내외의 몇몇 프로젝트들은 눈여겨볼 만하다. 


예를 들면 2014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리산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종교, 예술, 과학을 융합하는 담론을 형성 중이다. 불교 사찰 실상사(전북 남원)와 프란치스꼬수도회 작은 형제회가 설립한 한센인 복지시설 성심원(경북 산청)을 거점으로 주요 전시가 이루어졌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전시행사는 2011년과 2013년에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의 특별행사로 진행된 ‘해인아트 프로젝트’다. 


가야산의 천년고찰인 해인사 일대에서 열린 이 행사는 2011년에 공간, 만물, 정신의 ‘통(通)’을 주제로 삼았고, 2013년에는 ‘마음 maum 心’을 주제로 삼아 전통사찰 공간에 어울리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선보였다. 이 두 가지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종교와 관련된 공간이 미술을 선보이는 중요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과 종교적인 공간이 만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사례로는 런던의 ‘예술과 신성한 장소들(Art and Sacred Places)’이라는 시각예술단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1998년에 설립된 이 독립적인 자선단체의 목표는 현대미술과 종교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현되는 영성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 안의 신성한 장소에 기반을 둔 신진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데 성당과 학교 등 여러 종교 관련 시설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또한, 종교적인 공간을 이용하는 예술 프로젝트에는 미술과 건축이 협업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예술의 섬으로 잘 알려진 일본 나오시마의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 중에는 작가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가 에도시대에 지어진 고오진자(護王神社, Go’o Shrine)를 새롭게 디자인한<적절한 비율(Appropriate Proportion)>(2002)이라는 작품이 있다. 


씨족신을 모시는 이 신사는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인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듯 신사 본당과 지하 석실을 유리계단으로 연결한 모습이 상징적이다. 그리고 나오시마의 ‘미나미데라(南寺, Minamidera)’도 흥미로운데, 과거 불교 사찰이었던 자리에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공간을 만들고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내부에<달의 뒷면(Backside of the Moon)>(1999)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이곳은 어두운 실내에 들어간 방문객들에게 영적인 장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지리산 프로젝트 2014’ 설치전경

 


그 밖에 살펴볼 만한 프로젝트로는 2004년 베이징에 있는 천국의 사원(Temple of Heaven) 광장에 프랑스 작가 다니엘 뷰렌(Daniel Buren)이 설치한 <Some Azure in the Temple of Heaven>이라는 푸른 깃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재위하던 1420년에 만들어진 이 사원은 천자인 황제가 한 해에 두 번 머무르며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장소였다. 이처럼 사원 앞 광장이나 내부에 미술작품을 설치한 사례를 찾는다면 더 많을 것이다. 주로 성당이 도심 광장에 자리 잡은 유럽에선 낯설지 않은 편이다. 필자도 지난 2001년에 베를린의 찌온스 교회(Zions Kirche)에서 학교 동료들과 함께 전시회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 전시회 전후로 미술작품과 특정한 공간이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앞의 사례들처럼 종교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술에 대해 예술가들이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작가와 전시기획자의 본래 목적이나 의도를 넘어 이런 현상들이 보여주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방향성이다. 그 방향성의 의미를 탐색하려면 미술사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문제가 발생한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위에 열거한 여러 사례가 보이는 징후들은 예술의 자율성으로 인해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조소희 <...어디...> 

2013 , 나무의자 가변설치  

 


 

자유 혹은 표류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추구하며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게다가 사랑, 자살, 천재, 영혼과 같은 단어가 결합하면 대중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만 추구한다는 생각, 즉 ‘예술의 자율성’이란 관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미술의 영역에서는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와 인상주의를 거치면서 이런 관념이 강해졌다. 특히 이 시기부터 예술가들이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화풍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개성을 중시했다는 것은 예술가 스스로 독특한 사유와 감성을 의식하고 표현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자의식을 가진 예술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자다. 예술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예술가란 관념을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낯설지 않지만, 기나긴 예술의 역사로 보면 이런 관념이 유행한 시기가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온다. 샤먼(shaman)이 제의를 하던 아득한 옛날부터 근대 이전까지 미술은 주로 종교의 품 안에서 제작되고 소비되었다. 공동체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신전, 예배당, 사찰, 묘지 같은 성소들은 신화와 종교 이야기를 다룬 회화, 조각 등으로 풍부하게 장식되었다. 또한, 왕궁, 성곽, 관청 등 공공건물에도 미술 장식은 필수였으며, 귀족들의 저택과 정원을 치장하는 일도 예술가들의 몫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은 굳이 예술의 자율성을 떠올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임옥상 <허허금강>

 2008 코르틴 강 320×230×230cm 


 


미술이 종교와 지배계층의 욕망에 충실히 복무하던 세상은 18-19세기 산업화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합리적 효율성과 이윤을 기준으로 삼는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철, 콘크리트, 유리로 지어진 대부분의 건축물은 무미건조해졌다. 건물을 감싸고 있던 신화적, 종교적 서사는 제거되었고 공간들은 의미 없고 중성적이며 규격화된 형태로 재배치되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공공 건축물에서 회화와 조각에 기반을 둔 장식들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도심에 즐비한 회색 고층빌딩들이 그 결과물이다. 


교회와 귀족들의 주문이 사라진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모든 개인이 장사꾼처럼 무언가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의 운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가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착각할 만한 혼돈 상태였다. 예술의 자율성이란 어쩌면 불안한 세계를 표류하는 예술가들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자위적 영역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예술가 개인의 감성과 상상력의 표출을 자유롭게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근현대 미술의 흐름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예술의 자율성은 ‘표류와 자유’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예술의 자율성과 같은 현상은 예술의 영역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데카르트(Desca rtes)와 뉴턴(Newton)의 기계론적, 결정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서구의 근대가 시작되면서 모든 학문 분야들은 연관성을 잃고 파편화하였다. 특히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총체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과학을 위한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미술 역시 산업화로 인한 전통사회의 해체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잃어버리고 원자화된 예술가 개인의 상상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추세는 종교와 일상의 공간에서 멀어져 백색 공간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야만 미술을 볼 수 있는 상황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소수만 이해하는 미술에 염증을 느낀 예술가들은 미술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발산하길 원했다. 그래서 삶과 유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탈피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고 그 시도 중에 공공미술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안종연 <바이로차나

2013 스테인리스 강, 유리 캐스팅, 거울, 

반사유리, 프로그램된 LED 라이트120×100×100cm





일상성, 공공성을 넘어 영성으로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예술가들은 미술관 밖으로 나와 공공장소에 조각과 벽화들을 장식하였고, 특정 장소의 맥락을 중시한 미술작품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공공건물의 내외에 미술품이 설치되면서 산업화 이후 멀어졌던 건축과 미술의 관계도 다시 밀접해졌다. 또한, 간판, 벤치, 휴지통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들도 다양한 공공미술의 소재로 다루어졌다. 최근에는 도시계획, 건축, 조경, 공공미술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는 경관디자인도 발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가들이 도달한 지점은 결국 삶의 한복판이다. 예술의 일상성과 공공성의 회복이 화두가 된 것이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공공미술보다 더 확장된 개념의 새로운 공공미술, 즉 공동체 예술(Community art)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 지역민들의 참여 과정을 중요시하는 예술 행위들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삶의 중요한 매개체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동체 예술에서는 지역민과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행정가, 건축가, 사회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업체계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2000년 이후로 공공미술과 공동체 예술을 많이 실험했으나 이제는 대부분 관이 주도하는 사업이 되어버렸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예술적 상상력이 강력한 행정의 기획 속에 매몰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이 아니라 자칫 ‘관공(官共)미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현실이라면 예술가들은 또 다른 것을 꿈꿀 수밖에 없다. 


지난날 예술의 자율성을 얻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예술의 일상성과 공공성이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지리산 프로젝트’와 ‘해인아트 프로젝트’ 그리고 나오시마와 런던 등의 사례들도 이러한 일상성과 공공성을 담아내는 공공미술과 공동체 예술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들의 특별한 공통점은 종교적인 성소를 중심으로 미술을 통해 ‘영성(靈性)’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성은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지닌 신령한 기운이다. 소위 합리적인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 문명이 지구를 장악한 이후 자연과 인간성 파괴의 문제는 너무나 심각해서 영성과 같은 단어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영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은 매우 근본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영성이 충만했던 태고의 성소엔 예술, 신화, 종교, 정치, 과학 등이 미분화된 상태로 함께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샤먼은 영매(靈媒)이자 집단의 우두머리이며 의사이자 대장장이이고 예술가였다. 한마디로 샤먼은 종합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다. 


이러한 경험은 인류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리라. 그래서 예술가들은 미술의 일상성과 공공성의 회복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고 여전히 허기진 것이다. 그 허기는 물질과 정신을 넘어 영성을 향하고 있다. 영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과 표현은 단순히 낭만적인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예술의 자율성, 일상성, 공공성을 융합하고 넘어서려는 새로운 접근이다. 어쩌면 인류의 심층 무의식이 예술가들로 하여금 성스러운 공간으로 돌아가 미술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성소에서 행해지는 미술은 영성을 심미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할 만하다.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곳,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경계가 뒤섞이는 성소에서 미술이라는 일종의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예술 샤먼’들이 귀환하고 있다.  


 

글쓴이 백종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나와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광주비엔날레’ 관객참여 프로젝트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 아트인시티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 예술감독과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팀장(2012-2014)을 거쳐, ‘2015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과 미술생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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