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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조각전_나-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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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8 – 2017.2.26 동대문디자인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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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콤플렉스 장치의 정치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흠칫 놀란다. 누군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가갈수록 의아한 느낌이 강해졌다. 밖에서 보았던 앞뒤가 다른남자들 거의 차이 없이 반복적으로 만났기에 강도는 더욱 세졌다. 어떤 반복이든 그것은 개념 없는 차이이다. 왜냐하면, 반복하는 영혼 없이는 반복되는 것이 있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일상성 속에 살고 있는 세계 속의남들이다. 이렇게 동어반복적인 세계가 나의 세계다. 세상 사람들은 세계로부터 이해된 존재들이다. 평균적 일상성 속의 나와 타자인 그들은 조각가 김영원으로부터 이해된 나와 남을 일컫는 조각-작품들이다


혹시 기억하는가? 실존이라는 낱말을, 그냥 있는 아니라 있는데 여기 있으면서 벗어나서 존재하는말이다. 1960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너와 나라는 상호 존재는 차이성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존재 양식이 일상적 현재의 자신에게 눈에 띄지 않으면 않을수록 역설적으로 존재 양식은 더욱더 집요하고 근원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공동체에 속하는 차이성에서 보면, 현재의 존재는 일상에 속하는 상호 존재로서 타자들에게 예속되어 있다. 여기서 예속이란 끊임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라 타자들의 시선 속에서 산다


다시 말해서 타자들의 의향이 현재 인간의 일상적 존재 가능성을 좌우한다. 이때 타자들이란 특정한 타자들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타자가 사람들을 대표할 있다. 결정적인 것은, 눈에 띄지 않는 타자들의 지배를 공동체에서 스스로 이미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자신이 타자들에게 귀속되어, 타자들의 힘을 강화하는데 부지불식간에 협조하고 있다. ‘타자들이란, 자신을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굴복되어 있음을 위장하기 위해 자신들이 위로하는 명칭이지만, 타자들은 현실에서 상호 이해관계에서 우선적으로, 그리고 급하게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만난 누구 사람 사람이 아니고, 사람 자신이나 몇몇 사람도, 모든 사람의 총계도 아니다. 누구 중성적인 , 세상 사람이다. 1927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발간한 「현상학 현상학적 연구 연보」 8권에 처음 발표되고 같은 시기에 별쇄본으로 간행되었던 독일어로 쓰여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의 부분은 한국의 조각가가 보여주는 작품 세계를 해명하는데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2016 서울의 지정학적 풍경 속에서 김영원의 조각 작업은 어떤 의미를 창출하고 있을까. 그가 보여주는 군상들은 지구적 상황 속에 처한제국 다중(multitude)일까. 다중은 인민과 대조된다. 인민은 하나의 통일체로 주민의 대표성을 갖지만, 다중은 환원 불가하며 복수성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 다른 한편 다중은 민중과 군중 그리고 대중이라는 관념들과 대비된다. 그들은 복수성을 띠고 있지만, 수동적 주체들이라고 있다. 현실에서 그들은 수동적이고 그래서 아주 용이하게 조종 가능성에 노출되는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다중은 능동적인 복수성이고 따라서 자율적일 있고 결국 민주적일 있다. 노동과 정치라는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사항들이다. 서유럽과 북미 중심의미술 제국 떠받치는 다중의 창조적 힘은 다른 대항 제국을, 지구적 흐름과 교환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 조직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투쟁들뿐만 아니라 제국에 항의하고 제국을 전복하는 투쟁들이 제국적 지형 자체 위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새로운 투쟁들은 예술 이후의 예술, 혹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이름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이러한 투쟁들 속에서 이와 유사한 많은 투쟁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된다. 다중은 새로운 민주적 형태들과 언젠가는 우리로 하여금 제국을 관통하고 제국을 넘어서도록 새로운 구성 권력(constituent power) 발명해야 것이다. 거기가 예술 이후의 세계, 콤플렉스의 조각을 감당할 영역일 것이다. 2000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마이클 하트(Michael Hart) 미술이 현대미술로 이동하는 시기에 『제국』이라는 책을 통해 팽창하는예술 이후의 예술 이른바 컨템포러리 아트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전경




김영원의 조각을 대중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에 의한 인간 군상은 일상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모습을 띠고 있다. 추상 혹은 외계의 느낌. 미국에서 유행한 코믹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작가의 출생과 주장에 의하면 거리는 멀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까. 인간 형상이 갖는 ? 혹은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에 대한 지시일까. 혹은 막연한 은유? 사이에서 취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갈팡질팡하는 정체성이야말로 조각의 의미가 아닐까? 아마 조각은 다시 알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각의 지혜가 만약 있다면 다양한 친구들을 다시 만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각/작품을 설치하느냐고 물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대신 대답을 없다. 물론 대중 매체를 포함해서 모든 소셜네트워크는 그의 힘을 국가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우리의 근대화란 서양화이다. 당연히 법제도 뿐만 아니라 학문/예술 범주에 걸쳐있다. 그의 조각은 그래서 팝아트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맴돈다


전위적으로 보였던 모던의 시대에서 순수화한 조각은 이제 복합적이라는 의미의 콤플렉스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심의를 포함해서 최근의 미술과 건축의 관계를 기술할 때에는조우연결같은 용어를 사용할 있다. 이제 우리는 () 부정적 뉘앙스를 갖는콤플렉스(complex)’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김영원과 자하 하디드(Zaha Hadid)! 프랭크 게리(Frank Gehry) 함께 디지털 시대 최고의 건축가로 언급되는 건축가는 그러나 이런 위상에는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많고 바로 그것 때문에 그의 측근들은 현대 건축의 주요 목적에 관한 의심스러운 선언들때문에 심각한 지적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 논하는 프로젝트는 실제 과거의 산업적 장소가 문화, 오락, 서비스, 스포츠의 후기산업경제에 부합되도록 개조되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이러한 복합 과정에서 최근의 조각은 수동적 대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 때로 넓은 공간 규모만으로도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변모시키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이름이 감당하려는 뜻이다


과정에서 일부 침체된 노동자 계층 지역이 세련된 미술 관광 명소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러한 문화정치학에서 문화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과 분리된다는 주장은 끝이 난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은 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두고 조각 관련 사업이 부상하고문화 경제 뒷받침하는 기구로 변신한다. 이른바 동시대미술과 건축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경험 자체의 강렬함은 넓은 범주의 문화와는 상반되는가? 아니면 문화를 승화시키는가? 혹은 문화를 대신하는가? 이러한 질문들 역시 계속해서 반복된다. 다시 묻자. 경험적 강렬함을 중시하는 보다 폭넓은 범주의 문화와 그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지구적 양식에서 무엇보다 특화된 것은일상의 전지구화이다. 이를 대표하는 건물들은 지구적 유통을 목적으로 지역적인 것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지역적 여건과 지구적 요구에 모두 부합하도록 만들어졌다. 조각은 건축적 장치이다


장치는 구조로서의 예술과 건축이 특정 장소의 정치미학적 목적에 의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장치로서의 조각은 작가의 사회 변혁 의도의 /무와 무관하게 사회적 메커니즘과 매뉴얼에 의해 활용된다. 사회는 조각/건축이라는 장치를 통해 지역의 지배 담론을 옹호하기도 하고, 저항 담론을 응원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미술사의 조각은 개인적 치장이다. 조각은 개별적 존재가 자신의 외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행위이다. 치장으로서의 조각은 상대적으로 개인적 삶의 영역에 보다 중점을 둔다. 개인은 조각이란 치장을 통해 자신을 반성/성찰하기도 하고, 보다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한다. ‘장치치장으로서의 조각은 정합/부정합의 교차를 통해 다채롭고 조화롭게 변주한다. 이것이 김영원 작업이 처한 조각의 콤플렉스이다. 예술적 가치는 인간의 조건을 의미 있게 표현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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