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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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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alia

Jeffrey Smart
constructed world
2019.5.11-2019.9.29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호주 영화감독 브루스 베레스포드(Bruce Beresford)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예술적 스승인 제프리 스마트(Jeffrey Smart)를 찾아 나섰다. 1963년, 영국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은 런던과 이탈리아의 아트 갤러리를 함께 여행하며 우정을 쌓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수년 동안 연락을 유지하며 좋은 친구로 지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었던 베레스포드는 이 여행의 추억을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겼는데,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과정이나 장면의 구도를 잡는 방법 등 스마트에게 영화 제작에 필요한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스마트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정착했으며 토스카나의 아레초(Arezzo) 지방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세심하게 그린 작품들로 명성을 얻은 스마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상적인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의 방식에 감탄하던 베레스포드는 2009년, 말년의 스마트를 다시 만났다. 블록을 쌓아 올린 듯한 중세 건축물이 질서 정연하게 남아있는 아레초의 눈부신 풍경을 보는 순간 그는 스마트가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어떠한 조형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사진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제공

'Playground at Mondragone' 1998 Oil on canvas 76×111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Gift of Australian Galleries 1998 © Estate of Jeffrey Smart Photo: Felicity Jenkins, AG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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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스마트는 1940년대 호주 모더니즘의 영향을 흡수한 후 유럽을 여행하며 고전 작품들을 연구한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는 무엇보다 도시의 산업적인 풍경을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역동적일 것 같은 도시의 풍경을 고독한 분위기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성기를 비롯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삶을 마무리했지만, 자신의 역사적 명성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던 스마트는 대부분의 전시를 주로 호주에서만 열었다. 그의 작품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화이트 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등 해외 주요 미술관에 종종 소개되기는 했으나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는 수많은 사실주의 화가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호주에서의 작품에 대한 놀라운 수요와 유명세에 비해 국제적으로 그리 큰 명성을 누리지 못한 셈이다. 2013년 스마트가 세상을 떠난 후 호주의 미술관들은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Portrait of Clive James> 1991-1992 Oil on canvas 

109×120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he Art Gallery Society of New South Wales 

1992 © Estate of Jeffrey Smart Photo: Ray Woodbury, AGNSW


 



현재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이하 AGNSW)에서 진행 중인 <Jeffrey Smart: Constructed World>도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 전시로 소개된다. 스마트의 주요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AGNSW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여기는 것은 스마트의 오랜 파트너였던 에르메스 드 잔(Ermes De Zan)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드 잔이 기증한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작과 함께 전시되어 스마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19세기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AGNSW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 로위, 곤스키 갤러리(Lowy, Gonski Gallery)에서 70년에 걸친 스마트의 경력을 시기와 장소별로 구분하여 초창기 애들레이드, 1950-1960년대 시드니, 후반기 이탈리아에서의 작업을 살펴본다.





<Matisse at Ashford> 2004 Oil on canvas 86×138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Gift of the Art Gallery Society of 

New South Wales with assistance from the Collection Circle 2007 

© Estate of Jeffrey Smart Photo: Jenni Carter, AGNSW 

 



스마트의 초창기 작업은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전통적인 풍경화와 달리 급변하는 도시 풍경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같은 애들레이드 출신 예술가이자 선구적인 모더니스트였던 도리트 블랙(Dorrit Black)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후 화면 구성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 T.S.엘리엇(T.S. Eliot)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초기 풍경화 <The Wasteland II>(1945)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적인 조형에 대한 관심은 유럽 여행을 하기 전 이미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시작된 유럽 여행이 그의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당시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에게 미술을 배운 그는 폴 세잔(Paul Cézanne),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등의 작품을 조사하며 원근법 및 공간 구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갔다. 이후 그의 작업은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을 참조하여 고도로 정확하게 그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The stilt race> 1960 Oil on plywood 56.3×91.3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Purchased 1961 © AGNSW Photo: Diana Panuccio, AGNSW





스마트의 작업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소재는 도로와 아파트인데 이는 그가 이탈리아로 떠난 후 더욱 증가했다. 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었던 도시 개발이 국가의 시각적 풍경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Truck and trailer approaching a city>(1973)가 그 대표적인 예로, 스마트는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 균일한 형태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런 도시에 화물 트럭과 트레일러가 들어오는 모습을 표현했다. 트럭과 트레일러의 강렬한 색감과 대조를 이루며 지평선에 걸쳐 있는 아파트 단지는 새로운 환경, 즉 도시 생활의 익명성을 나타낸다. 스마트의 작업에 등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는 자화상을 비롯하여 특정 인물을 종종 그리기도 했다


호주 작가 클라이브 제임스(Clive James)를 그린 <Portrait of Clive James>(1991-1992) <David Malouf>(1980), <Germaine Greer>(1984)와 함께 희귀한 초상화 3부작에 속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스마트는 친구인 제임스를 육교 위에 고립된 듯한 모습으로 아주 작게 묘사하여 누구의 초상화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인물이 등장하는 모든 스마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그저 규모를 측정하는 척도 역할만을 할 뿐이다. 이 작품은 초상화라기보다는 도시 풍경을 그린 것에 가깝지만 동시에 굉장히 단순화된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보다 효과적이고 완벽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건물 높이를 조정하고 사물을 움직이거나 색상을 바꾸는 등 도시 경관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에서 그가 묘사한 도시는 언제나 변경되고 재구성된다.





 <Central Station II> 1974-1975 

Synthetic polymer paint on canvas 86×100cm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Purchased 1976 

© Estate of Jeffrey Smart Photo: Brenton McGeachie, AGNSW





말년에 완성한 중요한 작품 <Matisse at Ashford> (2004)는 애시포드 역 플랫폼에 걸린 마티스(Henry Matisse)의 전시 광고 포스터를 그린 것이다. 영감을 잃고 오랜 기간 작업을 하지 못하던 스마트가 회의차 런던에 방문했을 당시 열차를 기다리다 마주한 풍경에 이끌려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수직 및 수평의 단면 구조 속에 모더니즘의 표본인 마티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되며 생기는 시각적 효과를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AGNSW의 큐레이터 한나 허치슨(Hannah Hutchison)은 도시 풍경에 대한 스마트의 개념은 20세기 후반 호주 예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업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산업화된 세계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형이상학적인 방식으로 정밀한 그림을 추구하면서 스마트 특유의 현실주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건축물, 깔끔하게 뻗은 고속도로, 텅 빈 도시의 콘크리트 부지, 도로 표지판 등의 형상은 이제 스마트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 단순한 상징물 뒤에 훌륭한 그림은 좋은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는 스마트의 신념이 담겨있다.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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