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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술계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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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UATION OF ART JOBS IN KOREA

8월 고용지표가 나오고 ‘고용 절벽’, ‘고용 참사’, ‘외환위기 이후 최대’, ‘실업자 113만 명’ 등의 부정적 단어들이 쏟아지지만 실업률은 감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술계의 일자리는 언제나 없었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미술 시장에서 신규 일자리를 1,000개 이상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양질의 일감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미술 시장은 좁은데 공급되는 인력은 너무 많아 일자리를 잡으려면 치열한 경쟁까지 치러야 한다. 대학 생활 내내 작가가 되기를 선망하며 졸업하지만,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주(主)가 되어 버리는 현상을 겪는 예술인이 우리나라엔 너무도 많다. 유난히 변화무쌍하고 소식이 많은 지금, 과연 미술은 직업으로 산업으로 분류되는지, 정부 미술고용정책은 존재하는지 우리는 미술의 근간을 되짚는 주제를 살펴 정리했다. 지금껏 연구된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리된 학자들의 원고에 뒤따라 전문 매개자들의 고용형태를 알아보고, 끝으로 작가가 쓴 ‘먹고사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가’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가 한꺼번에 마련된다.
● 기획・진행 편집부

Installation view 'Constructing Identity' 2017 Photos: Ben Cort / Courtesy of the Portland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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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속사정: 이치에 맞지 않는 잣대_ 이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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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일자리,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_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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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예술가가 나타났다! : 

예술직업의 특수성을 넘어, 프리랜서 노동의 보편성으로_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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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서 Z까지 : 하이 퀄리티, 고강도 노동자의 위태로운 세계_ 심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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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_ 김동규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ruce Nauman and Robert Mangold>

 April-October 1989 Pictured: Bruce Nauman 

<Untitled (Model for Trench, Shaft and Tunnel)>, Robert Mangold

 <4 Colour Frame Painting No.3 (Pink, Yellow-Green, Red, Green)>, 

Bruce Nauman <Untitled (Trench, Shaft, Pit, Tunnel and Chamber)>

  The Saatchi Gallery, London, 1989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Special feature 

미술계 속사정: 이치에 맞지 않는 잣대

 이소민 수습기자

 


미술계 취업을 위해 여러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온통 자원봉사자 혹은 계약직 연수단원과 인턴 채용만이 가득하다. 채용 연계형 인턴이 아닌 경험형 인턴이기 때문에 계약 종료와 함께 또다시 취업현장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미술 전공 졸업생들에겐 불안감이 가득하다. 시장의 규모는 한정적인데 인력 공급은 과잉상태로, 치열하고 위태로운 경쟁 구도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미술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 또한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지만, 특히 미술 관련 전공 졸업자들이 전공을 살려 일하는 사례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미술계는 대체로 고용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비율보다 프로젝트성 일이 중심이 되어 단기로 일하는 비율이 더 높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예술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 활동 종사 형태로는 정규직이 6.4%, 임시직 혹은 계약직이 9.8%, 프리랜서가 72.5%의 비율을 보인다. 프리랜서의 비율이 높은 만큼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예술 활동을 겸업해서 하는 사람의 비율은 87.5%. 예술 활동 외 직업에 25.6시간을 할애하며, 실제 본인의 예술 활동에 투입되는 시간은14시간 정도다. 단편적인 통계로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예술 활동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표

 




 또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서면 계약을 진행했던 경험은 30.7%만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부적절부당한 계약 체결에는 12.2%가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부적절하고 부당한 계약 내용에는 낮은 임금이 29.9%, 불합리한 업무 규정이 26%, 임금 미지급 체납이 12.3% 정도가 된다. 가령 수습기간 등을 악용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 수습기간 중의 임금은 최저임금에 해당할 경우 최저임금의 90% 이상 지급해야하는 것이 원칙이나, 중소기업 혹은 소규모 회사에 종사하는 경우 90% 미만으로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2018 3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그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수습기간 중에도 최저임금의 100%를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통계를 살펴보면 부당하고 불합리한 업무 규정의 개선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예술인의 1년간 가구 총수입에 있어서는 문학이 3,501만 원, 미술이 4,000만 원, 건축이 8,000만 원, 대중음악이 3,030만 원, 사진이 3,589만 원, 방송이 4,500만 원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예술 활동을 통한 수입은 없음이 36.1%로 가장 많았고 500만 원 미만 부문에 18.9% 비율을 보인다. 여기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젊은 작가들의 수입이 0원이란 사실이다. 예술 활동을 영위하며 수입까지 거머쥐는 부류는 대체로 명성을 떨치는 원로작가 비율이 높다. 이렇게 소수에게만 경제적 이익이 집중되는 현상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갤러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몇몇 갤러리를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지다 보니, 많은 곳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종사하던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디자이너 등이 일자리를 잃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Il faut imperativement mettre le credit suivant en 

utilisant les photos de La Victoire sur le Soleil 

 Joseph Kiblitsky



 

이렇게 통계적 수치를 들이대며 우리나라 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미술계에서는 어떠한 수치로서 입증하거나 전달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한 예로, 우리나라는 취업률에 따라서 학과의 각종 재정적, 행정적 규모를 축소해 버리기도 하며, 존폐위기에 몰기도 하는 현상들을 많이 목도하곤 한다. 전업 작가로 사는 사람을 어떻게 취업률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가? 이는 미술계의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수많은 공공기관들이나 미술관, 갤러리에서 인턴 제도로 고용한 사람에게 아무런 고용보험도 들어주지도 않는 곳의 취업률 수치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 이치에 맞지 않는 잣대를 들이밀기보다 좀더 치밀한 행정적, 재정적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반대로 해외에서는 오히려 행정적, 재정적 지원팀을 대학 내에 신설하여 학생을 돕는다. 미국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는 졸업생들이 재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경력 & 직업 발달(Career & Professional Development) 같은 부서도 있어 학위 취득 후에 교육, 보조금, 기타 수단 등을 통하여 예술가로서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세미나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미술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Installation view <Constructing Identity> 2017 

Photos: Ben Cort / Courtesy of the Portland Art Museum   




프랑스의 정책은 예술가들이 끼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시에서 저렴한 가격에 창작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임대해주며, 공연영상 예술 분야 비정규직 예술가들을 위한 실업보험 제도도 탄탄하게 제공된다. 예술가들의 불규칙한 소득으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1960년대에 처음 제정되었다. 또 다른 복지 정책 중 하나로는, 시각예술 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예술가의 집이다. 이곳은 소득의 18%를 납부하게 되면, 의료, 육아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미술 재료 구입 할인, 저작권 관련 법률 상담 제공, 집세 걱정 없이 연금도 받는다. 파리의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권리와 예술적 가치를 따낸 사례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점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창작 공간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는 54.3%, 그 안에서도 집 안에 보유하고 있는 비율은 19.4%, 별도 공간을 마련한 작가는 34.9%에 그친다. 개인 창작 공간의 크기는 평균적으로 10평 정도이며,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40.7%, 월세는 34.6%, 무상임대는 7.6% 순이다. 




가브리엘 쿠리(Gabriel Kuri) 

<Untitled tsb mini statement details> 2014 

Handwoven wool Gobelin Two parts, each approximately: 

83 1/2×59in. (212.1×149.9cm) Collection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Anixter Art Acquisition Fund, 2015.11.a-b

 Photo: Nathan Keay  MCA Chicago  

 



이런 현상에 아예 작가의 삶을 포기하는 예술가들은 늘어만 간다. 포기한 후,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사례를 보면 절반은 미술계와 무관한 일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고 나머지 절반은 미술 속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한다. 전시기획자, 공연기획자, 미술관 행정직, 레지스트라, 아키비스트 같은 직업을 갖지만, 이 역시 처우는 다르지 않다. 적은 보수와 한 명에게 너무 많이 몰린 일감. 예술가뿐만 아니라 이들도 소위 투잡, 쓰리잡으로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해하며,  52시간 근무제 따위의 정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다. 더불어 복지정책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이제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뿐. 우리나라의 예술정책 및 지원 만족도 항목에서 전반적으로 부정적 평가가 79.6%로 그 수치가 매우 높다. 이 지원도 서울권에 몰려 있어, 그 밖의 지역 예술가가 얻는 혜택과 지원은 많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뿐만 아니다. 예술정책 결정 시에는 예술계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66.9%에 이른다.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 수준을 높이 끌어올려야하며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특정 직업을 고려한 접근이 매우 시급하다. 과연 우리 예술가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작업에 매진하는 날이 올까? 

 



Installation view of <Out of Office>

 MCA Chicago May 23 - September 6, 2015

 Photo: Nathan Keay MCA Chicago





Special feature Ⅱ

미술계의 일자리,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 김혜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경희사이버대학원 겸임교수



2018년 가을, 날씨는 쾌청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리 맑지는 않은 것 같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정부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리며 고용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2018년 8월 17일 발표된 7월 고용동향 지표는 매우 심각했다. 취업자수 증가 폭이 작년 7월 대비 5,000명으로 뚝 떨어졌고, 취업자 증가 폭이 지난해 20만 명대를 기록하다가 올해 2월 10만 여명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 쇼크’ 이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책임론, ‘경제 파탄 워스트 5’란 이야기까지 나오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일자리 청문회’까지 요구했고, 개각까지 단행되었다. 올해 8월 구직급여 지급액은 역대 최대치인 6,158억원으로 작년 대비 30.8%나 늘었고, 실업자의 상대적 규모를 보여주는 ‘체감실업률’(체감실업률이란 경제활동인구와 잠재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와 추가 취업가능자의 비중을 나타내는 것이다)도 11.5%로 작년보다 0.6% 올랐다. 


특히, 30-40대 취업자가 전 업종에서 전년 같은 달 대비 38만 6,514명이 감소했고, 올해 들어 매달 14만 명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경제활동인구와 구직 단념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충격은 젊은 층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 상황을 듣는 미술계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실업률? 실업급여? 그런 이야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고용통계 등에서 사실 예술관련업은 주요 산업분야로 취업률 및 실업률 증감 여부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살펴보면 2018년 6월 고용통계에서 산업별 취업자 전년 동월대비 증감 상, ‘예술・스포츠・여가관련 서비스업’ 또한 6,000명,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올 초부터 필자는 유사한 주제의 원고를 여러 번 청탁받고 있다. 


사실 예술계에서 일자리 수급의 불균형 문제, 예술계의 일자리를 통해 제대로 된 돈을 벌지 못하는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그 심각성은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한 번 씩 수면 위로 떠올랐고(최고은 작가의 죽음 같은),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예술인복지제도’의 시작, 미술계 아티스트피 제도의 연구와 토론회 등으로 이어져왔다. 그런데 유난히 올 해 들어 예술계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와 글 요구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아마도 사회 전반에는 일자리가 부족하다 얘기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외치고 있고,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에서 2022년까지 미술계에 신규 일자리를 1,000개 이상 창출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여기저기서 서로 방향이 안 맞는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표





미술계는 일자리가 여전히 부족한 것인가? 워라밸을 외쳐야하는 것인가? 문체부가 발표한 미술계 신규 일자리의 창출이란 것은 믿을 만한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며 앞으로 살아남을 직업은 예술인이라는 이야기들이 한동안 신문기사에 가십거리처럼 나왔었는데, 예술인이 그 ‘창의성’이란 것 때문에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과연 이것을 우리는 ‘직업’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것인가? 그리고 미래에는 예술인이 직업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인가? 이런 답을 찾기도 어려운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물론 필자도  그 답을 모른다. 다만, 미술계의 일자리의 현실이 과연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그 모습을 아주 조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고자한다. 미술계에서 ‘일자리’라고 말하려면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일자리란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자신의 일과시간 중 일정 시간 이상을 일하며 경제적 소득을 올리고, 그를 통해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미술계의 일자리란, 자신의 미술계라는 분야에서 일과시간 중 일정시간 이상을 일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체부가 3년 마다 하는 ‘예술인실태조사’는 예술인의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인용되지만, 그 결과치를 보면 그들 중 일자리의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늘 전업예술인(즉, 작가)들의 72.5%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예술활동에 따른 경제적 수입의 연 평균액이 1,255만 원인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예술활동 수입이 0원이라고 응답한 예술인이 전체 중 36.1%에 달한다는 등의 조사 결과들은 일자리라고 부를 수 없는 최악의 상태라는 것을 재입증해줄 뿐이다. 조사대상자 중 대부분은 자신의 미술계 활동 외에 다른 직업을 통해 수입을 벌고 있는 것인데, 그런 인력들은 엄격히 말해 미술계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직업이 자신의 ‘일자리’이고 ‘미술계의 자신의 직업’이라 여기는 위치는 ‘취미’ 인 것이다. 즉, 미술계의 전문인력들 상당수는 자신의 일을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일자리를 일자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계속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도표





미술계에서 대표적으로 떠올려지는 직업군을 생각해보자. 작가, 교사 및 교수, 큐레이터, 딜러 정도? 한국표준직업분류(KSCO)에 ‘예술’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총 50개의 직종이 뜨는데, 그 중 넓게 보면 18-19가지 정도가 미술과 연관되는 직종이다(회화예술가, 조형예술시간강사, 예술경영교수, 예술품판매원, 예술제본가, 예술품복원기술자, 그래픽예술가 등을 포함하여). ‘미술’로 검색해보면 다시 56개의 직종이 뜨는데 복수로 뜨는 직종을 제외하면 대략 30여종의 직종이 포함된다(미술관 관리자,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보존전문가, 미술감독, 미술교사, 미술치료사, 미술감정사 등을 포함한다). 


교사와 시간강사, 교사와 보조교사 등의 직급에 따른 분류를 제외하면 대략 미술과 관련하여 10-15가지 정도의 직종을 포함하고 있고 그 중 예술가는 회화예술가 및 설치미술가라는 큰 분류 안에 포함되고, 가장 많은 분류는 관련 교육기관(학교, 대학, 학원 등)에서 종사하는 인력, 그리고 관련 기관 및 시설(미술관, 갤러리, 연구소, 잡지, 회사 등) 에서 활동하는 인력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외에 ‘공예’, ‘디자인’ 등으로 검색해보면 관련 직종은 각각 60-100개 정도, ‘사진’으로 검색하면 건축 관련 기술자나 사진기 생산직 등을 제외하면(사진측량기술자, 사진인화지생산기운영원 등) 약 35개 정도의 직종이 포함된다(사진작가, 사진기자, 사진교사, 건축사진가, 패션사진가 등). 여기서 한국표준직업분류 상의 직종을 논하는 이유는 직종이 얼마나 많은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사실 한국표준직업분류는 현장에 존재하는 직종 중 일부만이 포함된다고 문제시된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논해야 하는 미술계의 일자리의 종류와 그 상황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떠올려보기 위함이다. 





도표





그런데 이 다양한 미술계 직종들의 일자리 상황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앞서 예로 들은 '예술인실태조사'의 상황은 대부분 일부 전업예술가들의 일자리 상황을 보여준다. 큐레이터들의 평균 임금실태? 미술평론가? 예술품복원기술자의 잠재적 활동인구 및 구직인구? 미술감독의 근로형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큐레이터 고용실태는 2009년 단 1번의 조사결과가 있었을 뿐이고, 문체부에서 지원하는 학예사자격증 지원제도에 의한 지원 금액이 반영된 평균 임금값 평균 150-160만 원선이 평균 임금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임금 수준 및 고용형태 등은 알 수 없다. 2017년 기준 국내 등록 미술관이 총 229개관이고 종사자수는 약 2,300여명으로 1개관 평균 1.86명이 재직 중이지만 많은 경우 문체부의 인력비 지원을 통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이고, 화랑 및 경매회사의 수는 약 500여 개이고 종사자수는 1,700여 명 정도이지만 그들의 인건비 수준 및 고용 형태 등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안공간이나 기타 미술관련 직업군들이 근무하는 곳들은 정확한 개소 및 인력수, 고용형태, 임금 수준, 근무경력 및 근무환경 등에 대한 사항은 거의 알 수 없다. 일자리를 일자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막연한 동질감 속에, 미술계 인력들은 열악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요구하기 위한 제대로 된 조사결과와 근거도 없는 상황에 놓여져 온 것이다. 이 상황은 최근 몇 년 사이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술인들이 자신의 예술창작을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토론회들이 있기도 했고, 10여 년 전 대두되었던 미술전시 참여 작가에 대한 아티스트피 지급의 문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에 대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필자가 2015년에 연구를 수행했던 『미술인 작가보수지급제도 도입방안 연구』를 시작으로 ‘아티스트피’는 미술인들의 생존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이자 예술창작행위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최소 지급장치로서의 대가지급방식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도적 논의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해당 연구 이후, 시범사업, 시뮬레이션, 제도 도입 등이 단계적으로 계속해 속도를 붙여나갔어야 했지만 문체부, 미술관, 작가, 중간기관들의 여러 의견들에 대해 정책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방향성 정립이 서지 않은 듯하다. 





테오도르 라이브시&제이 콥 스토러

(Theodore Livesey&Jacob Storer)

 <This Page Intentionally Left Blank> 

2016 ⓒ Iris Duvekot Courtesy of NEU NOW




올해 마련된 정책토론회 자료를 보면 초기 미술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통한 전시참여 대가기준을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로 대상을 넓힌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듯 하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과 방향성, 그리고 저작권사용료와 용역제공대가라는 지점에서 맞는 지점인 것인가, 그리고 일자리와 직업군이란 측면에서 바라볼 때 대상 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한 기준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이 외에도 2016년 8월 ‘공공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2018년에 직접인건비, 직접경비, 제경비, 창작료를 더해 산출하는 ‘공공디자인 용역대가 산정기준’ 및 ‘공공디자인 전문인력에 관한 기준’이라는 법적 보수제 기준이 고시되기도 하였다. 이 인건비 기준은 아티스트피 지급기준에서도 준용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학술연구용역 인건비 기준단가를 활용하고 있고, 등급별 기준금액의 1.8배에서 2.2배 사이에서 경력에 따라 책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인건비 지급액에 대한 제도적 기준 고시 등의 움직임 외에도, 올해 8월 고용노동부가 계약기간이 짧고 불안정한 일자리 특성으로 인해 사회보험에서 배제되던 예술인을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시키는 것을 의결하면서 내년 하반기부터 예술인들(‘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활동을 증명한 약 39만 명 가량)도 다른 임금노동자들처럼 실업급여, 출산전후휴가급여 등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BAVC(Bay Area Video Colalition)의 프로젝트





이렇듯 일자리로서의 최소안정성 확보, 직업으로서의 인정과 가치 상승을 위한 장치마련이 한발씩 나아가고 있지만, 미술계의 일자리들의 문제는 정책과 제도에 의해 그 기준이 고시된 후 미술계 인력의 노동에 대한 대가 지불, 일자리에 마땅히 따라와야 할 안전장치들을 미술계 기관 및 회사들이 적용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취미가 아닌 ‘일자리’로 말할 수 있으려면 사회 속에서 인정하는 일자리로서의 최소 조건이 제도가 아닌 현장에서 당연하게 갖춰진 상태여야 한다는 점, 제도적 개입과 고시는 그 출발점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 스스로 미술계의 일자리를 위해 해결해나가야 할 수많은 문제점 중 다음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를 계속해나가도록 하자.  



글쓴이 김혜인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예술교육 및 예술행정학 박사로, 국내외 미술관 큐레이터 및 에듀케이터로 일하였고, 주로 예술정책, 예술경영, 문화예술트렌드, 국제문화교류 분야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문체부 박물관 및 미술관평가인증위원, 행자부 지자체 평가위원, 각종 문화재단 경영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문체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이자, 경희사이버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예술문화단체의 비전 포럼’ 

현장 사진제공: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Special feature Ⅲ

“99%의 예술가가 나타났다!” : 

예술직업의 특수성을 넘어, 프리랜서 노동의 보편성으로

●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018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미술분야에서 ‘청년에게 희망이 되는 미술’을 목표로 2019년부터 일자리 1,000개를 신설할 것을 밝혔다. 신진작가에게 중소화랑 전속작가 지원을 하고(매년 100명), 미술평론의 정기연재 지원과 비평을 의무화하는 전시지원방식을 도입하며(매년 10명), 전시기획(기획자, 자료수집가 등), 전시제작(조명・음향・영상 전문가), 전시해설(도슨트) 등의 미술계 직업군을 세분화・전문화해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채용을 확대하는 것(매년 300명)이 중장기계획의 ‘미술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구체적 내용들이다. 국가 전체의 고용문제가 긴박한 위기감을 더할수록, 그 첫 번째 처방은 정부 주도로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관행화되었다. 


‘일자리 1,000개’란 목표치는 미술도 예외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이 관행화한 대응이 ‘일자리 상황판’을 호전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술계 ‘일자리 1,000개’의 실체는 단년도 목표치도 아니고 2019-22년까지 수년간에 걸친 정부지원 대상자의 합계다. 고로 일자리 수는 직업이나 직장의 수가 아니라 취업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등치된다. 그렇다면 더욱, 연간 최대 410명을 지원 대상으로 하는 미술진흥계획은 최근 정부가 추경으로 11조가 넘는 예산을 편성하며 일자리정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와도 온도차가 커 보인다. 미술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정부가 제시한 이 소박한 규모의 수치는 정부가 ‘숫자’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마저 무색하게 한다. 문제는 각종 통계에서 드러나는 미술인들의 삶이 위험신호를 보낸 지는 오래됐으되, 정책의 목표치로 설정되는 ‘숫자’가 과연 이 위험신호를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냐는 데 있을 것이다. 국가정책의 근간이 되는 통계상의 수치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정부의 미술진흥계획이 얼마나 이 통계화된 삶에 가 닿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도표





교육통계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국에 미술・조형 계열 학과만 162개, 이 중 순수미술 학과가 110개로 다수를 차지한다. 2018년도 통계로는 1년에 예체능 계열 중 시각예술 관련 전공학과 졸업자 수만 21,534명이고, 그 중에서 전국 162개 학과에서 배출되는 미술・조형 계열 졸업자는 3,619명에 달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자 중 취업자 수를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6년 현재, 개인창작자와 프리랜서를 포함한 미술대학 취업자 수는 1,827명으로 취업률 평균 57.3%, 진학자 수가 514명으로 13.7%, 그리고 기타 1,313명에 미상이 50명으로 기록된다. 미술 전공자들의 취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취약한 것인지는 경험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미술분야는 겸업예술인이 52.1%, 전업예술인이 47.9%로 나뉘며, 전업예술인의 경우 프리랜서가 93.1%를 차지한다. 겸업예술인의 경우도 예술활동 직업은 92.6%가 프리랜서이며, 예술활동 외 직업은 기간제・계약직・임시직 27.6%, 파트타임・시간제 12.7%, 프리랜서 12%, 일용직 1.2%, 파견・용역 0.2% 등으로 나타난다. 거칠게 말하면, 전업 프리랜서가 되거나 프리랜서와 온갖 형태의 불안정노동을 결합한 멀티노동자가 되는 것이 이른바 미술계 취업의 현주소다. 심지어 미술 분야는 여타의 다른 장르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프리랜서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프리랜서라고도 확정할 수 없는 ‘기타’와 ‘미상’으로 분류되는 삶이 거의 매년 취업자 수를 육박할 만큼 다수임을 교육・취업통계가 웅변해 왔다. 더욱 문제는 통계상 취업자가 이 ‘기타’ 및 ‘미상’의 삶과 명료하게 구별되기 어려울 만큼, 취업자와 비취업자의 경계란 임시적이고 넘나들기 쉽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전시, 비평, 미술교육 등과 관련된 전공자들을 포함하지 않은 이야기다.





Christian Boltanski <i archives de l annee> 

1987 Du journal el caso the newspaper el caso s archives

 for 1987 i 1989





문화예술계 일자리의 특수성이라는 관용어는 바로 상시적(상용) 임금근로자를 평균적인 국민의 삶으로 간주해온 국가통계나 고용노동정책으로 수습하기 곤란함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고(故) 구본주 작가의 희생이 이 문제를 경고한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나, 정책의 변화는 더디다. ‘예술가’를 하나의 직업단위로 본다면, 그 직업 종사자의 90% 이상이 프리랜서이고, 프리랜서의 불안정성을 또 다른 불안정노동으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지탱되고 있는 직업이 곧 예술가가 된다. 여전히 아방가르드 개념이 유효하다면, 평균적인 상용 임금근로자의 삶이 끊임없이 파편화되고 있는 상황을 선취했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의 고용・노동의 미래를 앞서 살아온 아방가르드인 셈이고, 프리랜서 비중에서 최고를 기록한 미술계는 그 첨단에 서 있는 형국이다. 굳이 아방가르드를 들먹이는 이유는 미술계의 프리랜서 노동이 사회의 보편적인 고용이나 노동방식과 질적으로 다른 특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 지구적으로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의 전환을 감지케 했던 서비스산업의 증가가 초래할 노동방식의 변화를 이미 체현하고 있던 ‘오래된 미래’로서,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보편적인 일의 방식 중 하나로서 예술가의 프리랜서 노동은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특수성이라면 역사적 시간 내지 역사적 미래를 선취했다는 점 이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문화예술계 일자리의 ‘특수성’이라는 해묵은 관성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노동방식, 일의 방식의 변화 차원에서 이 프리랜서 노동에 관한 보다 적극적인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가라는 ‘직업’을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자로서 인정하지 않은 소산이기도 하다. 근로자로서의 불인정은 보편적인 국민으로서의 직업권 내지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직업적 권리 내지 ‘일할 권리’가 보편적 차원에서 보장되지 못하는 것은 정책실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의 ‘일할 권리’를 다루는 것은 당연히 한계와 왜곡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를 보편적인 고용・노동・복지정책의 주변이나 외부에 설정하는 한, 미술계 일자리 문제는 근본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통계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얽히고 설킨 그물망처럼 다층적인 상호참조를 통해 작동하는 만큼, 제도적 특수성이나 예외성을 본령으로 삼는다는 것은 ‘제도적 난민’ 또는 ‘몫 없는 자’임을 자처하거나 부지불식간에 그런 존재상태로 내몰리는 위험한 접근이 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ruce Nauman and Robert Mangold> 

April-October 1989 Pictured: Bruce Nauman

 <Henry Moore Bound to Fail>, Robert Mangold

 <Distorted Square/Circle (Red)>, Bruce Nauman 

<Three Dead End Adjacent Tunnels, Not Connected> ⓒ 

The Saatchi Gallery, London, 1989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미투 운동으로 뒤늦게 사회적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문화예술계 성폭행・성희롱’ 문제도 같은 궤에서 초래되는 문제다. 보편적인 직업적 권리 보장의 사각지대로서 예술계는 일자리에 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규범들이 비껴가면서, 사인(私人)들 간의 인간관계가 더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며 직업적 관계와 구조까지를 규정하는 상황을 만들어왔다. 예술계가 신규 진입자에게 종종 실체를 감지하기 어려운 이너서클로 인식되고, 직업능력 개발만큼이나 더 열정적인 인간관계 개발에 힘을 쏟게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직업세계에서는 사적인 인간관계의 실패가 곧 직업생활의 종언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다수의 미투 당사자들이 힘겹게 고민했던 선택지는 매우 단순하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이나 불편함을 견디고 살아남거나, 아니면 그 세계로부터 퇴장하거나. 여기에서 잠깐 통계상 수치를 확인해 보자. 2016년 현재, 내국인 인구의 성별구성은 남자 24,882천 명, 여자 24,974천 명으로 여자의 수가 많아졌고, 2017년 현재, 남자의 경제활동인구 수는 15,975천 명(경제활동참가율 74.1%), 여자 경제활동인구 수는 11,773천 명(경제활동참가율 52.7%)을 기록했다. 2018년 발간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여성가족부・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예술대학 학생의 80% 이상이 여성이지만 교수의 80%는 남성이다. 그리고 2013년도 교육통계자료에 따르면, 여성취업률은 다른 전공계열과 비교해 가장 낮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2015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열악한 예술활동 수입이나 고용형태에서도 크진 않지만 성별 차이가 드러난다. 


대부분의 자료가 미술분야를 특정하고 있지 않아 예술분야 전체로 살펴보면, 1년 간 예술활동 수입이 2,000만 원 미만인 경우에는 구간별로 여성비율이 높고, 2,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모든 구간에서 남성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겸업 예술인의 경우, 겸업의 고용형태에서 남성은 정규직 비율이 31.7%로 가장 높고 고용주인 경우도 17.8%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기간제/계약직/임시직의 비율이 35.9%로 가장 높고 고용주인 경우는 10.1%에 머물렀다. 그 외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 비중은 여성이 더 높고(파트타임 남성 10.1%/여성 16.4%, 프리랜서 남성 10.8%/여성 14.3%), 일용직의 경우는 남성이 더 높다(일용직 남성 2.6%/여성 0.8%). 또한 정부・기업・개인의 지원금을 실제로 받은 경험에서도 성별 격차나 나타난다. 





Installation view of <Constructing Identity> 2017

 Photos: Ben Cort / Courtesy of the Portland Art Museum  




‘2015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원금을 받은 경험은 남성이 19.9%, 여성이 18.1%인데, 지원 금액에서는 전체 평균값에서뿐 아니라(남성 1,251만 원, 여성 916만 원), 공공기관 지원금(평균값 남성 1,063만 원, 여성 732만 원), 기업 지원금(평균값 남성 1,118만 원, 여성 595만 원), 개인 지원금(평균값 남성 818만 원, 여성 437만 원) 등 전체적으로 큰 격차를 보인다. 이러한 통계상 격차들은 보편적인 고용・노동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계의 프리랜서 노동이 탈산업사회의 여성 고용・노동문제 역시 첨예하게 체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보편적 고용・노동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엄존하는 성별격차는 그간에 꾸준히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특수한’ 성폭행・성희롱의 조건으로 체질화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예술가라는 직업적 권리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을 ‘특수성’으로 호명하지 않고 어떻게 보편적 차원에서 정립할 것인가이다. ‘근로기준법’이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면, ‘4차 산업혁명’을 슬로건으로 삼는 적극적인 탈산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이후의 보편적인 고용・노동정책의 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이다. 2011년, 월가 점령운동에 참여했던 미술가들은 ‘미술관을 점령하라(Occupy Museums)’는 슬로건 아래 미술가 자신을 99%로 규정했다. 





Installation view <Constructing Identity> 2017 

Photos: Ben Cort / Courtesy of the Portland Art Museum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예술가 역시 99%라는 ‘숫자’를 통해 예술가의 보편적인 사회적 지위를 주장했던 것이다. 이들은 “우리는 인류의 미래가 구성원들의 협력을 필요로 할 것임을, 우리 사회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함을, 타락한 사회에 대해서는 우리와 이웃의 권리를 보호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령운동의 선언문을 인용하면서, “우리, 99%의 예술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은 더 이상 타락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99%로서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은 프리랜서 노동자로서 예술가의 삶을 문제화하고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들이 구겐하임미술관이나 뉴욕현대미술관(MoMA)와 같은 기관을 ‘1% 미술관’이라 고발하며, 거기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등 여러 직군의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공언하고 행동에 옮겼던 점은 프리랜서 노동자로서의 존재방식이 더 이상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특수한’ 취급을 받을 수 없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예술가를 제도적으로 구분하여 부외자로 취급해온 관행에 머물지 않고 ‘프리랜서 노동’이라는 보편적 틀로 접근하려는 당사자들의 시도와 서울시의 정책적 접근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술진흥계획과 같은 국가정책이 행정적 관행 내에서 임의적으로 산출해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숫자’들에 냉소하기는 쉽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99%의 예술가가 나타났다!”고 외쳤던 이들의 목소리에서처럼, 우리가 보편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고용・노동의 조건을 문제화하고, 예술가들에게 덧씌워지는 제도적 ‘특수성’의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보편성의 ‘숫자’를 고심하고 정책화할 수 있는 실천이 시급한 때가 아닐까.    



글쓴이 박소현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 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다. 예술제도와 예술실천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화정치에 관심을 갖고 문화예술정책, 박물관/미술관학, 근현대미술사 등의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도표





Special feature Ⅳ

A에서 Z까지: 하이 퀄리티, 고강도 노동자의 위태로운 세계 

● 심지언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지원팀 팀장



# 학예사는 전시기획자다. 학예사는 연구자다. 학예사는 비평가다. 학예사는 번역가다. 학예사는 아키비스트다. 학예사는 디자이너다. 학예사는 홍보담당자다. 그리고 또 학예사는…

# 큐레이터는 한때 드라마 여주인공의 직업으로 자주 등장한 21세기 신여성으로, 세련미 넘치고 럭셔리한 언니들의 표상이었다. 


학예사와 큐레이터, 분명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다른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을까? 하나는 현실이고 또 하나는 착각이지 않을까? 시각예술 분야의 매개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 많은 학예 인력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대단한 능력자들로 전시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능하다. 학력은 기본이 석사, 보통은 석사 2개 이상 또는 박사수료, 조금 더하면 박사님까지 초고학력이다. 그러나 이 직군에 요구되는 전문적 역량과 고강도 업무 수준에 맞는 정당한 대우는 극히 일부에만 해당하며 대부분에겐 아직 요원한 일이다. 기관에 속해 있거나, 독립으로 고군분투하건 많은 이 전시기획과 강의, 집필 등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때론 여러 개의 전시를 동시에 준비하고, 지원사업을 위해 일주일에 2-3건의 제안서를 거뜬히 작성해가며 과로 사회의 표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 기관의 학예사 채용 공고를 살펴보았다. 


담당업무는 1.부속시설 등 리모델링, 2.복합문화 시설 운영・홍보, 3.미술관의 장단기 발전 전략 수립, 4.개관 전시 기획, 5.미술관 등록을 위한 관련 행정 업무 등이다. 업무기간은 채용부터 1년 이내. 근무실적에 따라 5년 범위에서 연장 가능. 공고문을 가만히 살펴보니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채용 기간은 차치하고 보더라도 담당업무의 범위는 한 명의 직원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인가? 제시된 업무는 학예사의 업무가 맞는가? 이런 업무를 감당할 담당자를 1년 계약에 최대 5년까지 연장이라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맞는가? 이 공고문은 특별한 케이스인가? 공립미술관 학예직의 경우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최대 5년간 근무할 수 있다. 만약 능력이 출중하고 운이 좋다면 말이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투-투-원, 2년-2년-1년 단위로 근무실적에 따라 계약을 갱신하거나, 계약 종료를 몇 주 또는 며칠 앞두고 연임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A미술관의 학예사는 몇 년 후, B미술관의 학예사가 되거나 수시로 취준생이 되곤 한다. 이 문제에서 관장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ruce Nauman and Robert Mangold> 

April-October 1989 Pictured: Bruce Nauman 

<Seven Virtues and Seven Vices> ⓒ The Saatchi Gallery, London,

 1989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한 미술관의 학예직 또는 관장직 채용 공고가 나면 수십 명이 면접을 봤다는 소식이 들린다. 누가 어디에 지원했는지 서로 탐색하고, 각 기관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면접대상자, 선정자 명단을 보며 김OO이 누구인지 내기를 하기도 하고, 누가 내정자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기도 한다. 취업의 전 과정에 많은 이의 시선이 따르고 또 회자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몇 년 단위로 반복된다. 경쟁이 치열하고 좁은 업계의 숙명과 같은 일이라고 단념하거나, 이러한 과정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거나 각자 선택의 몫이다. 이렇게 짧은 임기로 미술관들을 옮겨 다니다 보니 미술관의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몇몇 미술관에서는 새 관장을 맞이했거나, 채용 과정이 진행 중이다. 2-3년에 한 번씩 조급증을 내며 새로운 관장을 찾아 나서서는 미술관 본연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지속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 잘 알고 있듯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관장은 미술관을 27년간 이끌며 테이트의 정체성과 미술관의 역할을 제시해 왔다. 


우리도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또 그것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임기와 인력구조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피력되고 있다. 동시에 또 한편에서는 짧은 임기의 새로운 관장 찾기를 반복하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의 세계는 어떤가? 매해의 시작을 지원사업의 공고문을 살피고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과보고서 작성과 지원금 정산이라는 지옥으로 마무리한다는 독립 큐레이터 A씨, 1년 내내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다양한 기관, 지역과 일하며 전국을 홍길동처럼 다닌다는 B씨, 공간 운영을 위해 강의, 자문회의, 원고의뢰 등 제안이 들어오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한다는 C씨, 기관이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독립 큐레이터로 살아가는데, 프로젝트를 의뢰한 이들이 요구하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자조하는 D씨처럼 독립의 세계는 임기나 활동에서는 자유로우나 수많은 고객과 불안정한 현실이 함께 한다. ‘2017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미술관 수는 223개관(국・공립 60개, 대학・사립 163개), 종사자 수는 2,316명(전시기획 인력 89.7%)이며, 고용형태별 현황은 정규직이 66.6%, 비정규직이 33.4%이다. 국내 미술시장 주요 유통영역은 업체 수 496개, 종사자 수 1,731명이다. 


이 중 화랑은 437개, 종사자는 1,731명, 경매회사는 12개, 종사자 수는 199명, 아트페어는 47개, 종사자 수는 356명이다. 고용 형태로 살펴보면 화랑 종사자의 83.9%, 경매회사는 81.4%, 아트페어의 경우 39.7%가 정규직이라고 한다. 수치로 정리해 놓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종사자 수와 정규직 비율이 놀랍다. 그런데 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각예술 매개자에는 기획자 외에 갤러리스트, 아트페어 운영자, 옥셔니어 등 미술시장, 즉 유통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직군이 포함된다. 





송호준 <OSSI-1 인공위성 제작 기술들> 2015





올해 사업을 진행하며 아트페어 운영자들을 위한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접점이 부족했던 아트페어 업계를 살펴보니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였다. 부재한 사무국과 조직, 전문 인력의 부족, 불안정한 고용, 영역과 경계가 불분명한 업무 환경 등. 어디에서나 일당백은 해야 하는 곳이 미술계다. 유통영역 중에서 정규직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아트페어 쪽이다.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일하고 해체하거나, 페어가 끝나면 갤러리나 협회 업무를 보다가 다시 시즌이 되면 페어 운영자로 돌아오곤 한다. 이러한 짧은 준비 기간과 근무 환경은 전문성이나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려운 구조이며, 매해 바뀌는 담당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아트페어 운영에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미술시장에서 아트페어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고 해외 대형 아트페어들이 개최 도시를 늘려가는 현실에서 이름뿐 아니라 실제 운영도 국제적이고 경쟁력 있는 아트페어 운영을 위해서는 페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가 육성과 조직의 안정화가 시급하다. 공공기관, 문화예술지원기관 종사자들의 사정은 좀 나은가? 비교적 내부 사정에 밝지만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센터에서 처음 업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각 분야 담당자는 2, 3명 정도였으나 현재 2개 팀에 전체 인원 18명으로 우리는 그동안 많은 동료를 얻었다. 


종사가가 대략 6배 정도 증가했다. 그만큼 역할과 업무가 많아졌다는 얘기기도 하다. 정책과 현장 사이, 그 중간이 우리의 자리이자 역할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양쪽을 모두를 충분히 이해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식견이 요구된다. 공공기관은 나인 투 식스가 칼같이 지켜지고 고유의 업무만 하면 정해진 때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적인 곳이라 오해라는 분들이 간혹 있다. 비교적 안정적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안정이라는 선을 넘지 않으며, 이제껏 경험한 그 어느 곳보다 업무 강도는 세고 범위도 넓다. 공공기관이기에 챙겨야 할 절차와 행정 서류들, 그리고 민원과 야근은 우리의 동반자다. 이전 직장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공정한 업무처리, 그리고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고 친절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니까. 스페셜 리스트를 꿈꿨지만, 다양한 내용을 커버하는 제너럴 리스트를 요구하는 조직, 공정성을 침해하는 친분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항상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인간관계,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정체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 등 애로야 많지만 생략하겠다. 대신 우리는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은근한 사명의식으로 일하며 또 그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공공기관 재직자이니까. 원고를 의뢰받은 내용이 미술계 인력들의 현실, 생업의 스트레스, 업계의 속사정(?) 등과 관련된 것들이다 보니 어두운 면만이 부각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이곳은 가장 흥미진진한 동네가 아닌가. 여기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요즘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이거 너무 흥미롭지 않아요?”, “XX 알아? 끝내주는 작가를 발견했잖아요” 등이다. 피로에 찌들었으나 눈빛은 반짝이고 얼굴은 생기로 넘친다. 내가 아는 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군이 아닌가 싶다. 옆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모아 작성한 이 글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글쓴이 심지언은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전쟁기 미술인들의 이동과 그 영향에 대한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등에서 전시기획자로 근무했다. 현재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지원팀에서 시각예술분야 지원사업과 기획사업을 운영하며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ruce Nauman and Robert Mangold> 

April-October 1989 pictured: Bruce Nauman 

<South America Triangle> ⓒ The Saatchi Gallery, London, 

1989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Special feature Ⅴ

좁은 문

● 김동규 작가



부재중 전화 목록에 ‘퍼블릭아트’가 찍혀있다.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미술계 기관으로부터의 연락은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얼른 되걸어 용건을 들어보니 ‘미술계 일자리’를 다루는 기획에 들어갈 원고를 요청한단다. 주제는 ‘작가의 속사정’. 좋은 일이다. 안 그래도 요즘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생각할 것도 없이 넙죽 청탁을 받아들였다. 사실 전에는 일을 좀 가려서 받았다. 특히 ‘글 쓰는 일’은 고료의 크기와 관계없이 전부 고사해왔다. 왜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글쓰기’라는 게, 미술 동네로 들어오기 전에 몸에 익힌 기술인데……. 아무튼 미술 동네에서는 돈 받고 글을 쓰기가 싫었다. 내 안에서 뭔가 뒤죽박죽 섞여버릴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부정확하고 추상적인 설명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니까 정확히는 2018년 5월 이후로는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쓰기도 한다. 생활이 전에 없이 궁핍하기 때문이다. 막상 돈을 받고 글을 써도 뭔가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고통스러워지는 식의 감정은 발생하지 않았다. ‘궁핍함’의 미덕은, 생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확하고 불확실한 이런저런 관념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데에 있다. 통장잔고가 나의 행동의 준거가 되어주는 것이다.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수치(數値? 羞恥?)로서의 준거. 그리하여 청탁받은 원고 작성을 위해 나는 지금 컴퓨터를 켜고 ‘아르바이트 기록들’이라는 폴더를 뒤져보고 있다. 한숨과 감탄사의 중간 톤쯤 되는 음색의 날숨이 뿜어져 나온다. 이 폴더를 뒤지는 감정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새록새록 재미난 얘기들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그간 경험해 본 아르바이트들을 꼽아가며 썰을 풀어보겠다.






The Robert H. N. Ho Family Foundation and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1. 전시 철거 아르바이트


처음으로 경험해 본 미술계의 일감이었다. 별다른 기술 없어도 할 수 있고, 크게 머리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난이도는 낮다. 낮은 난이도에 낮은 일당이므로 합리적이다. ……는 뻥이고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몸으로 하는 일이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좀 덜할 수 있지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 편이 좋다. 문화네 예술입네 꽃단장하고 정성스레 연출되었던 공간이 노루발과 오함마로 분해되는 장면은 충격적인 데가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예술 창작자들이 하는 일의 본질이 무언지 되짚어보게끔 하는, 실존적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학부 1학년 때, 그러니까 2006년 당시 일당은 10만 원이었고, 2018년에 했을 땐 15만 원이었다. 이게 임금 인상 폭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헷갈린다. 어쩌면 내가 그때보다 12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준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학부 1학년생들은 얼마를 받고 철거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궁금하다.



2. 전시 설치 아르바이트


전시 철거와 쌍을 이루는 일감이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적절한 감각과 경험, 기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역시나 철거 작업과 마찬가지로 사고위험이 있다. 처음 경험한 설치 일은 금호동의 모 교회 예배당 벽에 거대한 추상조형물을 부착하는 작업이었는데, 발판이 무너져 3층 높이의 아시바에서 추락했다. 몇 군데 타박상이 있었지만 당시엔 아픈 것도 몰랐고 억울한 것도 몰랐고 그냥 창피했다. 팀장은 아까징끼 발라준다고 약국이라도 가자고 했지만 점잖게 고사. 하지만 약간 트라우마가 생겨서 아시바에 올라가는 일은 피하곤 했는데 작년 모 현장에서 설치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극복했다.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밑에서 아시바를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당은 케바케다. 1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 현장의 위험함이나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일당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어떤 인연으로 어떤 팀에 속해서 일하느냐에 따라 좀 다르다. 팀장 마음이라는 얘기.



3. 벽화


야외작업이냐 실내작업이냐에 따라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실내작업의 경우 환경에 따라서는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고 즐겁게 일할 수도 있지만, 규모의 한계로 인해 큰돈을 벌기는 힘들다. 야외작업은 딱 한 번 해봤고 어휴 너무 힘들어서 그 이후에는 쳐다도 안 봤다. 모 선배 작가의 소개로 용인의 아파트 공사현장에 설치된 200미터 가량 되는 펜스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이 펜스가 남향이라는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작업 시기가 8월 달이었다는 것이었고, 더욱더 큰 문제는 조명이 지원되지 않은 관계로 낮에만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타는 냄새를 맡으며 펜스에 붙어 ‘나비’와 ‘사슴’을 그렸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미난 에피소드는 있다. 당시 아파트 공사현장의 소음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거셌는데, 한 번은 현장 옆의 다른 아파트의 7층쯤에 거주하던 주민이 벽화를 그리는 우리를 향해 무슨 공사 반대 구호 같은 걸 두어 번 외치고는 귤껍질을 던졌다. 벽돌도 화분도 아니고 귤껍질. 팔월이었으니 아마 하우스 귤이겠지. 아무튼 여름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며 7층에서 팔랑팔랑 낙하하는 귤껍질에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시적인 여운이 있었다. 그 펜스 벽화 작업은 다섯 명이 진행했고 페이는 1인당 20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벽화 업체들의 견적표를 보니 미터 당 5만 원, 이 정도면 그럭저럭한 것 같다. 근데 사실 잘 모르겠다. 견적이라는 것이 결국 노동의 가치를 환산하는 건데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가 아닌 시장이 결정한다. 요는 시장에 대한 신뢰 문제인 것이다.



4. 작가 어시스턴트


몇몇 작가의 작업 보조 일을 한 경험이 있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 희한하게도 전시설치나 벽화제작 등의 현장에서보다 창작자로서의 나의 자아가 크게 상처받는다. 아마도 나의 노동의 결과에 다른 누군가의 도장이 찍힌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성격이 좋지 않은 작가의 어시 일을 하게 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그런 경험은 없었다만 주변의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끔찍한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 세부를 이 지면에 옮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작가가 작가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경험은 현장을 혐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장을 혐오하게 되면 더 근본적인 창작 욕구마저 와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 끝이다. 페이는 안정적인 편이다. 한 달에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 장점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의 어시를 할 경우 월급개념으로 지속적인 수입이 생긴다는 것이다. 단점은 내 작업을 할 시간과 정력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중견작가의 어시 일을 하다 보면 미술계의 이런저런 속사정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썩 유쾌한 정보들은 아니다. 가능하면 귀를 닫고 머리를 멈추고 손발에 집중하자.



5. 전시기록 영상


매끄러운 영상 기술과 더불어 전시나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나 동선 등에 대한 이해를 요하는 다소 전문적인 일감. 나는 영상으로 작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연유로 어찌어찌 모 기관에 엮여 영상 기록 일을 한 이력이 좀 있다. 처음 전시장 기록 일을 할 때는, “김동규 씨 영상작품이 좋아서 외주를 드립니다, 본인 작품 하듯이 찍어주세요”라는 디렉터의 인사치레를 미련하게 말 그대로 받아서 정말 내 작업하듯 전시장을 기록해버렸었다. 결과는 빠꾸. 엄청난 양의 촬영 분을 죄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다. 아직도 난감해하던 실무자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죄송합니다만…… 이건 너무 괴팍하잖아요…….” 당시에 깨달은 것은, 세상이 내게 기대하는 전문성과 작가가 매체를 다루는 부분에서의 전문성이 좀 다르다는 점이다. 작가의 경우, 고유의 정서나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특수한 형식을 탐구하고 이를 매체로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의 전문가이다. 작가에게 매체는 어디까지나 ‘창작’의 도구라는 말. 반면 외주로 받아서 일한다는 것은 오너의 필요에 부합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가깝다. ‘고유의 정서’라든지 ‘특수한 형식’ 따위를 골몰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작가가 언제 어디서나 작가이려고 하면 바보가 된다. 페이는 전시 규모에 따라 다른데,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단순히 몸 쓰는 일보다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 돈을 벌고 싶다면 작가정신은 잠시 넣어둬라.





Installation view <Constructing Identity> 2017 

Photos: Ben Cort / Courtesy of the Portland Art Museum




6. 어머니반 그림교실


지방의 어머니반 그림교실의 강사 일을 4년 째 하고 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랄 풍경을 마주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닌, 우리 어머니뻘의 중년 여성 5-6분이 앵포르멜 부류의 추상회화 작품을 그리며 색채와 질감과 면의 분할 등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전임은 홍대 회화과 출신의 60대 남성이었다. 어머님들은 그분 밑에서 8년을 배우셨다 한다. 나는 꽃 그림 나비 그림이 그리고 싶어 찾아오신 분들을 8년의 시간을 들여 꾸역꾸역 색면 추상의 세계로 이끌어온 전임 선생님의 노고와 열정에 감탄하였다. 요즘 말로 치면 ‘리스펙트’. 하지만 존중이 긍정은 아니므로, 나는 다시 4년의 시간을 들여 어머님들에게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는 명제를 설득해오고 있다. 그리하여 두 분은 꽃을, 한 분은 정원을, 한 분은 여행 가서 찍은 풍경들을, 한 분은 가로수를 연작으로 그리고 계신다. 산이 바다가 되고 세월이 흘러 바다가 다시 산이 되는 식인 거다. 


내 속내로는 이분들이 당신들의 생활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사물이나 정경, 사건들을 조금 더 다루었으면 하지만 그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가 호되게 면박을 당한 일이 있다. ‘지겹다’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만날 마주하는 거 미술 수업에서까지 와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서 또 뭔가를 배운다. 이게 세상을 배우는 건지, 미술을 배우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뭔가 배운다. 그래도 포기는 안한다. 언젠가는 장바구니와, 깨진 화분과 꼴 보기 싫은 남편 얼굴을 당신들의 캔버스 너머로 마주하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사실 수업 자체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어려운 것은 이 분들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이게… 말로 하기엔 좀 미묘하긴 한데, 말하자면 너무 한 분을 칭찬하면 안 된다. 그리고 비교하는 듯한 조금의 뉘앙스만 보여도 큰일이 난다. 말 한마디, 눈길 한 번을 조심스레 해야 한다. 모두 소녀들이시다. 월급으로 25만 원을 받는다. 시급으로 치면 2만 5천 원이다. 


특히나 어머니반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 시간과 정력, 진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 아찔해진다. 절벽이 바로 눈앞이다. 이 외에도 입시학원, 뮤직비디오 제작, 부분모델, 시간강사, 홍보자료 디자인 등의 일을 해왔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쓰려고 했으나 글을 쓰면 쓸수록 안 좋은 감정에 빠져드는 게 느껴지므로 이번엔 여기서 접기로 하자. 마침 맞게도 잡지사에서 요청받은 원고 분량 30매가 다 채워져 간다. 글쓰기는 나쁘지 않은 일감이다. 기술하고자 하는 사건이나 관념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게 뭔가 남는다는 감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을 경우, 독자 몇몇의 마음에도 무언가 남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덤이다. 미술지 「퍼블릭아트」에서 요청한 이번 원고의 경우 200자 원고지 한 매당 6,000원의 고료로 30매. 계산하면 18만 원이다. 적당한가? 글쓰기 일을 많이 안 해봐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데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정력을 쏟았는지 기술하면 원고료가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에이…… 농담이겠지. 아주 질 나쁜 농담이겠지…….



글쓴이 김동규는 예술 창작자이자 애호가이자 기호 수집가, 혹은 미술 탐정, 혹은 감상 중계자, 사이비 방송인이다. 활동 초기에는 버려지거나 방치된 (유사)미술 작품들에 대하여 탐구하였으며 현재는 실존의 재활용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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