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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예술이라는 게임과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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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Art and a Game called Participatory Art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예술은 모든 시대를 가로지르는, 모든 사람 간의 게임과도 같다고. 모든 게임은 일종의 규칙을 지닌다. 그리고 모든 게임에는 선수 혹은 참가자가 있기 마련이다. 상황과 시기에 따라 게임의 규칙은 깨지거나 수정되기도 하고, 상금이 바뀌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변경사항에 선수, 관중, 심판 그 누구도 이의제기 하지 않는다. 원칙과 대가가 달라지더라도 그 순간에는 최선의 결정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뒤샹이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게임에서는 그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 심지어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런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현대미술에서는 말이다. 장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작가의 활동영역조차 모호해지는 가운데 예술이라는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 혹은 행위주체와 수용주체는 쉽게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화이트 큐브 내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대 공공미술의 풍경 속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양상이다. 공공장소에서 창조자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참여형 예술이라는 게임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 기획·진행 편집부 ● 글 이슬기 미술경영학 박사

다니엘 J.마티네즈(Daniel J. Martinez) '100 Vistories-10000 Tears' from Culture in Action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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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미술제도권과 공공미술, 두 영역에서 ‘참여’라는 개념이 서로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선 통용되고 있는 참여 예술의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장르를 묘사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 ‘participation’, ‘engagement’, ‘dialogic art’, ‘interactive art’, ‘intervention’, ‘social practice’ 등이 그러한데 이 모두 국내에서는 참여라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열거된 장르의 양상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 중 하나인 감상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두기가 해체되면서 두드러졌다. 미적 실천에 있어 예술가의 역할 만큼 감상자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예술의 가치변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예술의 가치변화는 예술가의 의식변화와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는데 참여형 예술은 사회, 환경, 정치 등에 대한 예술가의 의식이 고조되면서, 그리고 재현 방식과 통로가 다각화되면서 보다 확장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의 문화 운동이자 미술 장르로 대표적 사례는 메리 제인 제이콥(Mary Jane Jacob)이 기획한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이다. <행동하는 문화>는 1991년부터 2년 동안 시카고 조각 프로젝트(Sculpture Chicago)의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제이콥은 1980년대 후반 공공영역 내 예술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도시환경의 맥락에서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와 지역공동체가 바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감상자는 수용자의 위치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즉, 예술을 통해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행동하는 문화>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은 바로 ‘새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주창한 수잔 레이시(Suzanne Lacy)다. 새 장르 공공미술은 공공영역의 예술을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임시 작업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범주에서 모든 예술적 행위를 공공장소로 확장해야 함을 역설한다.




천경우 <Versus> 2007

 performance at Institut del Teatre Barcelona 

사진제공 가인갤러리



<행동하는 문화>의 이념적 배경은 시 정부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다. 제이콥은 공공미술 사업의 과정 전반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예를 들면, 작품 선정에 소요되는 준비시간이 너무 짧고 선정위원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미흡하다는 점, 기존 건물이나 정치적 방향에 작품이 타협된다는 점, 전반적인 과정에서 작가에게 발언권이 부족하다는 점, 예술적 참신성보다 소재에 있어 영구성이 우선시 된다는 점, 그리고 시공간적 요소와 작품의 맥락이 괴리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것을 뒤바꾸어 해석하면 <행동하는 문화>의 참여형 공공미술은 작품 선정과 관련하여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주어진 환경에 타협하기보다는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하고, 작품이 구현되는 과정에 작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참여형 공공미술은 오브제로서 영구적 가치보다 발언으로서 개념이 우선시 될 수 있어야 하며 이와 더불어 주어진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려는 새로운 문화 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래 국내 지자체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참여예술 프로젝트들은 해당 지역을 소재로 한 문화복지 사업의 성격을 지니는 경향이 있다. 일부 소외계층에게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기회를 부여한다거나 낙후된 동네와 시장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와 연계되면서 지역에 긍정적인 효과를 야기한다는 평가와 함께 반대로 전반적인 사회변화나 예술에 대한 인식변화를 꾀하기보다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위한 목적이 강해 오히려 한정된 주제에 갇혀 있거나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편 <행동하는 문화>는 예술과 일상, 나아가 사회와의 분리를 거부하고 두 영역 간의 유기적 연속성을 꾀한 실용주의 철학, 『경험으로서의 예술』(1934)을 저술한 존 듀이(John Dewy)의 이론에 비추어 살펴볼 수 있다. 듀이는 문화와 예술, 경험과 지식, 일상과 교양을 분리하려는 시도들을 반성적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궁극적으로 경험을 통해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따라서 환경을 하나의 문화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은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모이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오히려 순수하게 미적인 것은 실천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지적인 것이 될 수 없고 그리하여 오히려 진부하고 뚜렷한 방향 없이 느슨한 상태로 존속하는 것이며 인습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화랑을 방문한 사람은 거리두기의 감상을 통해 작품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작품을 지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유발된 흥미는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이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지각에 의해 형성되는 경험은 갤러리 밖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발판을 마련하다. 듀이는 이러한 행위를 재창조라고 보았는데, 참여형 예술은 작품 경험이 테두리 안에서 시작되어 또 다른 공간으로 확장해나가야 하며, 그래서 더 큰 사회적 범주에서 재연되고 연속성을 지녀야 된다는 점에서 듀이의 ‘경험으로서 예술’과 유사하다. 

 



천경우 <Versus#1> 2007

 Chromogenic print 66×90cm 

사진제공 가인갤러리


 


실용주의 논의와 제이콥의 <행동하는 문화>는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다 융합적인 사회적 가치 내지 문화적 자본을 형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의도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후 등장한 참여형 예술의 양상은 어떤 특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진행되기보다는 경험적 측면에서 다양한 차원의 참여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 하다. 보편적 가치, 일상, 소비 특히 개인 저마다에게 더욱 직접적인 이슈와 더 긴밀한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참여예술이라는 게임의 범위와 규칙이 변화하고 있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모두 저마다 다양한 이유와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제도권의 참여예술과 공공영역의 참여예술은 구분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세르비아 태생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2010년 작품, <작가는 출석 중(The Artist is Present)>은 뉴욕의 대형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전시 기간 3개월, 총 700시간 동안 작가는 매일 정해진 시간, 같은 장소에 앉아 있었다. 제목이 말하듯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공간에 출석한 작가다. 작가와 마주 볼 수 있게 탁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전시 기간 동안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작가와 마주했지만, 의자가 비어있어도 작품은 유효하다. 


작품이 아닌 작가가 스스로 출석해 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 간에 게임이 형성되기도 한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말이다. 천경우에게도 마주 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천경우는 2004년 <Pseudonym#1-1,#1-2> 그리고 2007년  ‘Versus’ 연작에 이르기까지 사진 작업을 통해 나와 타자의 물리적 거리, 연결성, 긴장 그리고 버팀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 작업들은 공공영역으로 확장되었는데 2007년 <Burden of Support>에서부터 2007년과 2011년의 <Versus> 퍼포먼스, 2017년 <Ordinary Unknown> 등에서 작가는 동등한 맥락을 바탕으로 시민 참여 형식을 재연했다. 


제도권에서 선보인 아브라모비치의 작업이 작가 혼자만으로도 충족될 수 있는 작업이었다면, 평면작업에서 퍼포먼스로 전환되는 천경우의 공공작업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전자의 참여자가 이미 예술적 경험을 기대하는 미술관 방문객이라면 후자의 참여자는 우연한 조우 혹은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품에 흡수된 경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주 봄이라는 작가의 의도대로 앞의 두 작업이 진행되었다면 폴 라미레즈 요나스(Paul Ramírez Jonas)의 2010년 작업 <도시를 여는 열쇠(Key to the City)>는 참여방식에 규칙이 없다. 





 라미레즈 요나스(Paul Ramírez Jonas) 

<Key to the City> 2010 

 Paul Ramirez Jonas Photo Paul Ramirez Jonas


 

뉴욕에서 진행된 이 작업은 누구에게나 열쇠를 증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쇠를 받은 사람들은 작가가 준비한 지도를 들고, 열쇠구멍을 찾아 도시 곳곳을 탐험하게 된다. 여행의 순서나 경로, 문을 열었을 때의 지시사항, 그 무엇도 정해진 것은 없다. 작가는 단지 열린 공간과 잠긴 공간을 열쇠라는 물리적 도구를 통해 상기시키며 공공영역과 사유영역에 대해 모두 사유(思惟)하게 하는 것이다. 열쇠는 일종의 소유권이다. 소속된 집단, 허용된 공간에 입장을 허락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열쇠를 모두와 함께 공유함으로써 다시 공공영역과 사유영역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현대사회에서 공공성이 지니는 의미를 복제와 공유를 통해 재차 몸으로 경험하게 하고 공공과 사유라는 보편적인 개념들을 일상의 맥락에서 체험하게 함으로써 저마다의 내러티브를 허락하는 것이다. 행위 주체가 전복되는 경우는 비단 예술계만이 아니다. 2005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한 기사의 제목은 “참여시대로의 진입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Participation Age)”였다. 


이듬해 『타임스(The Times)』는 올해의 인물로 ‘You(당신)’을 선정했다. 현재를 주도하는 경험경제의 논리에서 참여는 또 다른 통화고 참여자는 시장을 주도하는 행위주체다. 초연결사회에서 가장 값진 통화는 금화가 아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업의 브랜딩 전략에 종종 수반되는 팝업스토어를 살펴보자. 팝업스토어는 상품을 팔아 이익을 창출하려는 의도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소비자가 브랜드의 철학을 물리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경험자로 하여금 브랜드에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강하다. 즉 경험 내지 참여가 곧 소비가 되는 것이다. 팝업스토어 디자인에 예술가가 참여하는 현상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미 예술 감상자가 작품에 있어 주요 행위 주체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접목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팝업스토어, 나아가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SNS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최근 두드러지는 문화현상 중 하나다. 일종의 신-시각문화이다. 참여와 공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작품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향유되는데, 이러한 현상까지도 참여 예술의 행위로 간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앞에 제시된 요나스의 작업과 같이 잠긴 문 뒤에 작가가 마련한 공간에 불쑥 들어가 공간을 경험하는 것과 팝업스토어를 방문하는 행위 혹은 소비자·감상자의 태도가 확연하게 구분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퍼플렉스(Superflex) <Superchannel.Org> 

Superchannel Studio Berlin




현대 공공미술의 풍경 속에서 참여예술이 차별화되는 것은 경험 후 반응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견된다. 제이콥은 <행동하는 문화>가 전개되는 가운데 인상 깊은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설치되는 과정에 개입된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 엔지니어, 공무원, 공사현장 인부들은 초반에는 생활의 불편과 작품에 들어가는 정부 기금과 관련하여 불만이 가득했지만, 완성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작품에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작품을 통해 벌어지는 변화에 기여했다는 보람과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공영역에서 참여예술은 관심보다는 실천이며, 전과 후를 지각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는 능력,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책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예술적 플랫폼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사회적 의제를 두고 대가를 바라는 선전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제에 있어서도 단지 사회·정치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에 비중을 두지 않고 모두의 목소리가 경청 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참여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예술이라는 게임이 한 종목에 제한될 수 없듯이 예측 가능한 게임, 승자독식의 게임은 재미없다. 플레이어가 많아질수록 그리하여 변수가 많아질수록 게임은 정교해진다. 


 

글쓴이 이슬기는 뉴욕대학교 시각예술행정학 석사와 서울대학교 미술경영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IEC에 출강 중이다. 논문으로 「여행하는 공공미술: <러버덕 프로젝트>의 키치와 창조적 소비 문화를 중심으로」와 「공공미술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변화 및 도시공간 속 장르의 변화양상 고찰」, 「시공간 영역의 공공미술 연구」가 있으며 저서는 『리더는 디자인을 말한다』와 번역서 『TABULA 현대미술의 여섯 가지 키워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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