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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7, Aug 2015

민성홍_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

2015.6.18 – 2015.7.18 갤러리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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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림 독립기획자·크리틱-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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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작품이 상품과 포개질 때



민성홍의 이번 개인전은 백색 회전목마 구조물과 다양한 종의 새 머리가 인상적인 <Overlapped Sensibility:Birds>(이하 Birds)가 어우러진<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이하 Carousel) 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누구든지 <Carousel>을 처음 보면 이 작품이 크게 회전목마 구조물과 <Birds>로 구분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Carousel>을 크게 회전목마 구조물과 <Birds>로 구분하고 두 요소를 수시로 따로 또 같이 보았다. 먼저 <Carousel>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중에 백색 회전목마 구조물의 외관부터 되뇌어보자. 전시장에 있던 회전목마 구조물은 몇 가지 규칙적인 문양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인터넷  상의 작품사진에서 보이는 회전목마 구조물과 색만 같을 뿐 문양이 달랐다. 그리고 내가 전시장에서 보았던 회전목마 구조물의 문양은 작품사진 상의 회전목마 구조물에 비해서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었다. 작품사진 상의 회전목마 구조물은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회전목마 구조물 내부에 위치한 <Birds>와 묘하게 대비되며 나름 효과적으로 어우러져 보였다. 


한편 전시장에 있는 회전목마 구조물은 문양이 단순하고 듬성듬성 배치된 탓에 적당히 만들다가 말아버린 느낌도 들었지만, <Birds>의 수가 작품사진에서 본 것 보다 증가한 점과 회전목마 내부의 화려한 샹들리에 그리고 빌딩 로비 바닥에 있을 법한 기하학적 별 모양의 회전판 탓인지 회전목마 구조물 내외로 이어지는 균형이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다음으로 회전목마 구조물 내부에 있는 <Birds>의 외관을 살펴보자. 회전목마 구조물 내부의 회전판 위에 위치한 <Birds>는 도자기로 만든 머리 부분과 주로 목재로 구성된 몸통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새의 종류는 백조, 독수리, 부엉이처럼 비행이 가능한 새부터 닭, 펭귄처럼 비행이 불가능한 새까지 다양했다. 이 새들은 공통적으로 눈알이 묘사되지 않았고 이곳저곳 깨진 후에 접합된 흔적이 보였다. 형태나 색감이 세밀하게 묘사된 새 머리들은 비록 눈알이 없고 깨졌다가 접합된 자국이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만 덩그러니 남겨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생물로서 감정을 머금은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새 머리 아래에는 여지없이 다양한 색이 규칙적으로 칠해진 구조물들이 접합되어 있었다.

 

그런데 <Carousel>의 앞선 두 가지 요소는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을까. 민성홍의 <Birds>는 회전목마 구조물 내부의 회전판 위에서 조악한 오르골 음악과 함께 수직 운동도 없이 한 방향으로 느리게 회전했다. 그래서 나는 이 회전을 통해서 발생하는 힘이 (+)가 아닌 (-)를 향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Carousel>의 회전운동이 (-)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회전이 거듭될수록 무기력함이 작품 안에 계속 누적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Carousel>의 회전운동에서 느낀 (-)회전운동의 정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회전운동의 정체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Birds>와 회전목마 구조물이 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회전목마 구조물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놀이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회전목마는 대 관람차와 더불어 놀이공원이라면 꼭 있어야 할 전형적인 놀이기구다. 실제로 각종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놀이공원을 다룰 때 회전목마 부근은 놀이공원을 상징하는 배경으로서 자주 이용된다. 그래서 회전목마는 우리에게 놀이공원이라는 상상적 공간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도 <Carousel>의 회전목마 구조물을 보고 쉽게 놀이동산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놀이동산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인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Carousel>의 회전목마 구조물을 보고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놀이공원이 무차별한 생존전쟁으로 점철된 사회의 대척점에서 사람들의 과열된 정신과 육체를 냉각시켜 다시 사회로 뱉어내는 역할을 하는 곳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회전목마가 놀이공원 안에서 생성되는 극적인 흥분들이 방전되지 않도록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놀이공원과 회전목마는 무의미한 의미 속에서 단지 자신의 대척점에 있는 것들에 대한 항상성 유지만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놀이공원과 회전목마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덧없는 킬 타임(kill time) 외엔 없다. 이러한 덧없음 때문에 우리는 놀이공원과 회전목마에 몸과 마음 그리고 지갑을 내맡길수록 무의미한 의미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비추어봤을 때 내가 <Carousel>의 회전목마 구조물에서 느낀 (-)회전운동의 정체는 놀이공원과 회전목마가 내포하는 무의미, 무기력함과 많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Overlapped Sensibility; Birds(부분)> 

2014 세라믹, 백시멘트, 나무에 아크릴릭

 




그렇다면 무의미와 무기력함을 내포하는 회전목마 구조물 안에 배치된 <Birds>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사실 <Birds>는 회전목마가 내포한 무의미와 무기력함에 관련된 지점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전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무기력해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Birds>는 회전목마를 전복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외부에 가득한 무기력함을 결코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Birds>는 자신들의 외부에 가득한 무의미와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회전목마 구조물 안에 배치된 <Birds>는 애초에 온전한 새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Birds>의 다양한 새 머리들은 작가에 의해서 깨진 후에 접합되어야 했고. 새들의 머리 바로 아래에는 마치 전쟁터에서 효수된 적장의 목을 달아놓았던 긴 창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구조물이 붙어있다. 사실 새 머리와 새 머리를 세운 구조물이 조합된 모습은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민성홍은 이 구조물들을 단순하면서도 변칙적으로 구성하는 동시에 경쾌한 느낌을 자아내는 조합의 색들로 채색함으로써 폭력성이 부각될 수 있는 조형성에 여백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새 머리와 구조물 사이에 역설적인 연결성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여백과 연결성은 결국 사건 현장을 에워싼 장막에 불과하고 이 장막을 걷어내면 여지없이 폭력적인 장면이 드러난다. 이처럼 <Birds>는 처음부터 새의 온전한 고유함이 도려내진 상태다. <Birds>는 내적으로 온전한 고유함이 도려내져 있기에 외부로부터 들이닥치는 상황들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다만 <Birds>는 그저 각자의 습성과 시간의 결과물인 부리를 내보이며 자신들에게 결여된 온전한 고유함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전시장에서 <Birds>의 비극적 상황이 뜻밖의 상황을 통해서 전환되는 것을 목격했다. 왜냐하면, 내가 전시장에서 작품 수집가와 갤러리 관계자가 작가의 <Birds> 구매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작가의 <Carousel>는 나에게 먼저 비극적인 예술작품으로서 다가왔지만, 작품 수집가와 갤러리 관계자가 작품에 개입하고 나니 회전목마 구조물이 진열대로 보였고 <Birds>가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Birds>가 판매되기 위한 상품으로 호출되는 순간 <Birds>가 회전목마 구조물과 얽히며 뱉어내던 비극은 마치 가벼운 농담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맥락 안에서 자신의 내외로 가득한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Birds>는 역설적으로 가격이 부여된 상품으로 호출되는 순간 적어도 회전목마 구조물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얻었다. 만약 <Birds> 중 몇 점이 작품 수집가의 소유가 될 수 있다면 그 <Birds>는 회전목마 구조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Birds> 중 일부가 수집가의 집 안이나 혹은 수장고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회전목마 구조물이 아닐까.

 

민성홍은 'Brilliant 30' 인터뷰에서 <Birds>를 통해 은유적으로 사회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갤러리가 제공한 전시소개 글에는 <Birds>가 환경적 영향에 따라 변화를 경험하는 작가 자신 또는 사회구성체들을 대변하며 회전목마 구조물은 개별존재들이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큰 틀을 비유하기 위해 차용된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전시소개 글은 변화와 종속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말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죽음과 같은 막연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비록 작가의 말이나 갤러리의 전시소개 내용이 회전목마 구조물과 <Birds>가 내포한 구체적인 의미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나는 <Carousel>을 되뇔수록 작가가 나의 해석과 비슷한 맥락에서 <Carousel>을 창작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어쩌면 <Carousel>에 대한 나의 해석은 과잉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Carousel>에 대한 나의 해석이 과잉된 것이 아니라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질문은 왜 <Carousel>이 예술작품이자 동시에 상품이어야 하는 것인가이다. 물론, 나의 해석이 상당 부분 작가의 창작의도와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Birds>는 상품이 될 수 있고 작가와 갤러리는 <Birds>에 얼마든지 가격을 부여할 수 있다. 게다가 민성홍의 진술처럼 <Birds>가 단지 사회의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더욱 상품이 되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함 속에서도 <Birds>가 전시장에서 상품으로 호출되는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황망한 상황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러한 상황 앞에서 황망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내가 <Carousel>을 과잉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Carousel>은 생명의 공통 조건인 죽음이나 사회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 같은 막연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외부 조건들로부터 우리의 삶이 수시로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미적인 방식을 통해서 강도 높게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나는 고리타분하게도 이 같은 작품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불가항력적인 조건 중의 하나인 시장가치와 대등한 게임을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무방비 상태로 시장가치에 포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모든 가치가 시장가치 하나로 무차별 통분되는 상황 속에서 예술장과 예술가가 시장가치 앞에서 내보일 카드는 거의 없다. 


역시나 무차별한 시장가치와 맞서야 할 방법은 예술 바깥에서 찾아야 할까.     

 


*  <Overlappled Sensibility; Carousel(작업스케치)> 2015 세라믹, 나무에 아크릴릭, 스틸, FRP, 나무, 거울, 패브릭,  340×340×2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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