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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6, Jul 2015

빈우혁
Bin Woo Hyuk

현실로부터의 탈주

PUBLIC ART NEW HERO
2015 퍼블릭아트 뉴히어로Ⅰ

빈우혁은 목탄으로 자신의 거주지 주변 숲을 그린다. 때로는 호수와 하늘을 함께 담아내기도 하는 그의 풍경은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자연임에도, 현실과는 사뭇 다른 낯설음을 지닌다. 이는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들이 예리하고 날카롭게 묘사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며, 우울이나 불안, 분노 등 작가의 감정적 동요가 역설적이게도 고요한 숲에서 발현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에게 숲은 고통의 순간마다 위로를 주는 공간이며,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처 받은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온전히 보듬고자 건네는 위로의 손길이다.
● 김유영 수습기자 ● 사진 작가 제공

'우울한 날' 2013 캔버스에 목탄 148×1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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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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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우혁은 단색조 풍경이 주가 되는 화면을 그린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목탄은 그의 섬세한 감수성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재료다. 잔잔한 색채로 다양한 대상을 다루며 마치 특정 내러티브가 담겨있을 법한 작업을 주로 했던 그이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작업에 큰 변화를 보인다. 변화의 직접적 계기는 졸업이었는데, 작업실을 구하고 재료를 구매하는 간단한 문제가 실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그에게 졸업은 곧 작업 공간 부재와 재료 고갈을 의미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학교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독일로 떠난다. 물리적인 환경과 작업은 밀접하고 즉각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작업환경이 변하면 작업의 결과물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독일로의 이주는 빈우혁의 작업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빈우혁에게 작업공간과 재료가 그나마 갖춰졌던 2013년 이전에는, ‘좋다’ 혹은 ‘나쁘다’ 등의 감정적 평가나 비판의식을 투영시킨 유화를 주로 선보였다. 2010년 작 <Untitled>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당시 자신의 상황에서 기인한 절망적 감정을 작품에 대입한 것이다. 미소 짓고 있는 해골과 함께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역설적 문구가 적혀있는 이 작품은, 슬프고 힘들수록 오히려 더 즐거운 상태인 것처럼 보이려 노력한다는 작가의 독특한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는 <Audio>(2012)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후 여의치 않은 작업조건과  가족 해체, 생계 문제 등으로 스스로의 삶을 구휼하기 벅차게 되자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애정이나 비판적인 견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에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느낀다. 독일의 맑은 공기 가득한 숲을 걷거나 그 안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즐겼던 작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서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 누군가 감상한다 해도 각자의 감상법에 따라 조금 더 유연하게 환류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숲을 그리기 시작한다.





<Spreepark 31> 2014 

캔버스에 목탄, 과슈 86×96cm




빈우혁의 작품 속 숲은 인간에게 익숙한 숲의 모습과는 다른 거리감이 느껴진다. 작가가 의도적 변형을 가한 듯 보이지만 사실 실존하는 풍경 그대로를 담아낸 것이다. 그는 보통 전체적인 구도를 잡지 않고 캔버스 왼쪽이나 위에서부터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부분 끝까지 한 번에 그려내기 때문에, 중간에 실제 숲과 다른 부분이 생기거나 또는 목탄을 쓰면서 의도하지 않게 묻어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굳이 수정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이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편 그는 숲 외에도 가끔 하늘과 호수를 등장시킨다. 2013년 작 <우울한 날>이나 <Triestpark 3> 등의 그림들에선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드러난 하늘을 볼 수 있고 울창한 숲이 호수 위에 비친 형상도 거울처럼 섬세하게 묘사돼있다. 단색조로 몽환적이고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풍경화는 마치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작가의 평온한 모습까지 투영해낸 듯하다.





<Untitled> 2010 

펄프에 혼합매체 33×28.5cm  




지난해 개인전 <아르카디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그를 구성하는 복잡한 내면과 불안한 심리 그리고 억눌린 기억 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아르카디아’는 무릉도원이나 이상향 정도로 해석하면 이해하기 쉽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르카디아는 실제 지명이지만 무릉도원은 실재하는 곳이 아니다. 작가에 따르면 목탄으로 그린 풍경이 아르카디아의 실제 지명과는 상관없지만 자신이 독일에서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데 의미를 부여해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작가는 “한국 어디를 가도 숲이나 나무를 볼 수 있는데 굳이 독일까지 가서 이것들을 그리는 것이 과연 이상향에 부합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한국에선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으로 온전히 그림에 몰두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아르카디아란 작품에 그려낸 대상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떠나 있는 것 자체에 대한 표현의 일부인 것이다. 





<Audio> 2012 

캔버스에 유채 130×97cm  




한편 이 시리즈에선 기존의 목탄작업과는 달리 작품 표면 곳곳에 무작위로 찍힌 형형색색의 점 또는 점과 관련된 드로잉을 볼 수 있다. 파스텔 톤의 점들은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색다른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 점들은 그림에서 작가 스스로 어색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가리기 위한 용도이면서 다음 그림에 대한 막연한 암시로 등장시킨 것들이다. 당시 바로 그 색깔의 물감을 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고도 한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정할 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가장 잘 부합하는 단어를 선택하거나 때론 그저 단순한 것으로 정한다고 한다. 한 예로 그뤼네발트(Grunewald), 티어가르텐(Tiergar ten) 등 그 풍경이 속한 곳의 지명을 따서 감정의 소요를 없애고 궁극적으로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상황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우울한 날> 2013 

캔버스에 목탄 148×180cm





언젠가부터 고통스럽고 힘들수록 더 즐거운 척하도록 자신을 개조한 것 같다는 빈우혁은 보통 좋은 일이 생기거나 반대로 나쁜 일이 있을 때 더 맹렬히 대상을 그린다. 이로써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치유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나 행위는 허무, 궁핍 등의 복합적 상태에 있는 자신의 아픔과 고독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순간으로, 결국 내면의 상처로 인한 무의식적 긴장을 푸는 의식적 이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곧 삶의 종착점일 것이라고. 그림이 곧 자신의 인생이자 존재 이유인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빈우혁




작가 빈우혁은 1981년에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과 예술사 학위를, 동대학 동과 전문사 학위를 취득했다. 갤러리 바톤, OCI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일본과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2014년 독일 베를린 예술가 거주프로그램 글로가우에어(GlogauAIR)에 참여했다. 2014년 OCI YOUNG CREATIVES에 선정되었으며, 2015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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