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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6, Jul 2015

최태훈
Choi Tae Hoon

불의 조각가, 최태훈

로스엔젤레스에 기반을 둔 백아트(Baik Art)가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하고 ‘바다를 건넌 손(Hands Across the Water)’이란 제목으로 제주도에 있는 갤러리 노리와 함께 2014년 7월에 개최한 전시에 최태훈은 '중력'을 출품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작업실에 사제 압착기까지 제작, 설치했다. 육중한 중량의 쇳덩어리가 떨어지면 철판 위에 놓인 금속기성품들이 그 무게에 의해 납작하게 압착되는 이 장치는 보기에도 조야하고 위험한 프레스였다. 그는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조된 주전자, 숟가락, 포크, 나이프, 쟁반 등을 프레스로 압착한 후 그것들을 용접하여 거대한 배를 만들었다. 침몰한 배가 오랫동안 바다 속에 침수된 것을 인양했을 때의 흉측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배의 선미가 올라간 형태로 갤러리 노리에 매달았다. 압착된 식기류들의 거의 너덜너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엉겨붙어있는 배의 형상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월호’를 연상했을 것이다.
● 최태만 미술평론가 ● 사진 작가 제공

'Galaxy' 2006 스테인리스스틸 3,800×600×4,0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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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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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잔인한 달


2014년 4월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잔인한 달’이었다. 엘리어트(T. S. Eliot)가 <황무지>란 시에서 노래했던 ‘가장 잔인한 달’을 우리는 팽목항 앞바다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방송을 통해 목격했다. 그것은 ‘죽은 자의 매장’이 아니라 ‘산 자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최태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구조선들이 침몰하는 배를 에워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집힌 채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월호와 배에 갇힌 학생들의 모습을 봐야하는 충격 속에서 그는 이 작품을 제작했다.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배를 그는 공중에 매달아놓음으로써 비록 상상 속에서나마 세월호를 인양했다. 고열에 달궈졌기 때문에 검은 덩어리로 매달려있는 배를 구성하는 무수하게 많은 식기류의 뒤틀린 형상은 어쩌면 어이없이 죽음과 직면한 어린 학생들이 긴 시간 동안 느껴야했던 고통과 작가의 절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과 함께 그는 2014년 한해를 ‘장벽(Barrier)’ 연작의 제작에 투입했다. 철사처럼 가는 스테인리스스틸 선을 짧게 잘라 이어붙여 만든 형태는 사방으로 튀어나온 선들로 다소 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얽혀 만든 군집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2014년 김복진미술이론상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트로피로서 그가 ‘재능기부’(재능기부란 말은 순전히 나의 위장에 불과하다. 그는 근대조각가 김복진을 기리는 미술이론상의 취지를 설명하며 재능기부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기꺼이 작품을 기증했다)한 작품은 가운데가 파열된 배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중력>부터 ‘장벽’ 연작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사월은 잔인하게도 그해가 끝날 때까지 연장되고 있었다.




<Skin of Time 1> 2007 

, 조명 3,500×3,500×3,000mm  




최태훈이 본 최태훈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최태훈


최태훈은 시끄럽다. 이 말은 그가 활달한 성격을 지녔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하여튼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다.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은 것일 게다. 그런데 이런 어수선한 와중에서도 그는 짐짓 심각하다. 그래서 최태훈이 평소에 하는 말이 생각난다. 그는 가끔 ‘열등감’이란 말을 꺼낼 때가 있다. 열등감이 자신이 작업에 매진하도록 재촉하는 동력이라고. 그가 특별히 열등감을 느껴야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다. 죽어라고 작업에 전념하다 강호로 나서면 그는 무모한 검객이거나 또는 저잣거리의 건달마냥 돌출하는가 하면 특유의 재치로 좌중을 휘어잡기도 한다. 그래서 그 또래의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과 애꿎은 충돌도 잦고 자존심을 앞세운 대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왜 열등감을 느껴야 할까.


그는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 나에게 자만에 빠진 오만불손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자신의 성취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조마조마하게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기조차 한다. 새로운 작업을 할 때면 꼭 나를 부른다. 대개 나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켜봤지만 칭찬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인내심이 많은 관찰자이거나 방관자처럼 거리를 유지한 채 그의 말을 듣는 편이다. 내가 최태훈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니지 않은 이상 그가 왜 열등감에 대해 말하는지 속 시원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것은 열등감이 아니라 조급성이다. 이 조급성이 그의 작품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조급성 혹은 자기고백적 조울증이 꼭 나쁠 것은 없지만 그의 작품에서 별로 유익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Skin of Time 2> 2007

 , 조명 7,300×2,600×2,800mm  




그는 2012년 헤이리에 있는 갤러리 이레에서 ‘투명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전시제목 자체도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었다. 벽에 상영된 바다풍경의 영상을 배경으로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벤치에 앉아있거나 롤러를 든 채 벽의 낙서를 지우고 있는 <투명인간>, 액세서리 진열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얼굴 없는 사나이를 세워놓은 이 전시는 말 그대로 최태훈의 ‘신파’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사실 이 작품들은 개체 하나하나만 보면 최태훈 특유의 기술적 숙련도가 높은, 그래서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작품을 감싸는 전체 분위기는 청춘의 열병을 앓고 있는 젊은이가 괜히 심야에 책상에 앉아 노트가 다 헤지도록 끄적거려놓은, 그래서 종이의 표면이 새까맣도록 겹쳐 쓴 낭만적이면서 애잔한 독백이었다. 따라서 보는 사람도 마음이 불편하도록? 내가 왜 이 작가의 눈물 짜는 패시미즘과 센티멘탈리즘의 독백을 들어야 하지?-투명인간의 중얼거림 속에 스스로 방치된 느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파가 비등하여 거의 폭발지경에 이른 작품으로 투명인간보다 먼저 발표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를 들 수 있다. 서정주의 시 <국화>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한 미술잡지가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가를 위한 전시를 통해 발표됐다. 침대 위에서 온 몸에 모포를 뒤집어쓴 채 뒤척거리고 있는 인물을 표현한 이 작품은 심지어 조명이 점멸하며 조각을 연극적인 연출 혹은 영화의 미장센과도 같은 상황으로 숨 가쁘게 내몬다. 상투형(cliché)의 내용을 압도하는 기술적 완결성은 작품을 텅 빈 감상(感傷)으로 이끌어가는 역할까지 톡톡히 도맡고 있기 때문에 얼굴이 빠져나간 투명인간의 머리처럼 뚫린 혹은 제거된 구멍 사이로 우리의 의식도 사라져버린다. 


얇은 금속판을 구부리고 접어 마치 섬유처럼 섬세하게 이어붙여 만들어낸 이 구성이 설마 의식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궁이고 중력이 아니라 생각을 잡아먹는 블랙홀이라니. 그런데 최태훈은 이미 그 전에 이런 종류의 껍질로서의 인체 혹은 인간이 빠져나가버린 의복을 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플라즈마 기법을 이용해 시도한 바 있다. 그것에 비장하면서 자전적이지만 결국 허망한 독백의 허울을 덧씌워놓은 것이다. 이러한 비극에의 자기도취, 감정의 과잉은 그가 말하는 열등감,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대체로 그의 작품 중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면서 내러티브를 삽입한 작품을 보면 이야기가 형태를 추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인격적이고 중성적인 금속판을 자르고 불로 지지거나 표면을 무수하게 긁어 표피가 터지도록 상처를 내는 작업을 하면서도 이런 감성적인 주제를 고집하는 배경에는 무엇이 작용하고 있을까. 나는 그 뿌리를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찾고 싶다. 고목의 형태를 다듬고 철을 녹여 관절처럼 감싸놓은 작품들로 이루어진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을 관통하는 정서가 바로 ‘존재의 고통’이자 파토스의 자기동화였다. 그때의 자기학대에 가까운 처절한 고백이 서정적인 은유 속으로 녹아들며 만들어낸 최태훈의 이야기, <투명인간>과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는 바로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최태훈이 본 최태훈의 자화상인 것이다. 은유가 본질을 추월해버린 그 지점에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의 놀라운 기술적 숙련성이다.




<Sofa> 2009 

스테인리스스틸 LED 110×90×95cm  

 

 


거울을 깨고 다시 세상을 향하여


그러고 보니 이 글이 그에게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지만 나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성실성과 재료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믿고 있다. 이제 오십을 넘긴 그는 참으로 많은 수난과 성취의 시간을 보내왔다.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맨 다음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씨알로 표현했고 다리에 보철물을 장착하고 있지만 늘 금속과 함께 하며 대장장이의 근면성을 지니고 불의 사제(Priest)와도 같은 자세를 견지해 왔다. 2006년 김종영미술관에서 발표한 <갤럭시>와 2007년에 발표한 역피라미드 작업을 보면 그의 장점은 문학적 내러티브에 조각을 끼워 맞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스스로 내용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연극무대의 세트와도 같은 상황을 연출한 <이중피부(Dual Skin)>도 역작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또한 드라마가 실제 내용을 압도한다. 호탕함 뒤의 소심함 속으로 숨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제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는 거울을 깨야 한다. 자전적인 내용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함몰하지 말라는 말이다. 





<The Wall to A Point> 2004 

 175×120×1,200cm




그동안 최태훈이 발표한 작품은 많은 시간을 투여한 노동의 산물이었다. 초기부터 다른 어떤 재료보다 금속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용접기법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불과 쇠를 다루는 야금술사의 후예라 할만하다. 작은 조각의 금속을 이어 붙이거나 플라즈마 기법으로 금속의 표면을 갉아내는 과정 또한 숭고한 노동이 숭고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굳히도록 만든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상상력은 드디어 우주공간을 조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재료와 기법의 일관성은 유지하고 있으나 표현의 폭이 넓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만의 고유한 장점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열등감으로 위장한 조급성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기복제, 이미 성취한 것의 되새김질일 것이지만 그것이야 작가 자신이 더 깊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므로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도 배화교도는 아니지만 불의 가능성에 대한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불을 사용할 경우 재앙이지만 불을 매개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축복이다. 어제처럼, 오늘처럼 그는 내일에도 불의 조각가로 남을 것이다.  

 



최태훈




작가 최태훈은 경희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쳤다. 철, 구리, 빛을 주로 이용하는 작가는 일상 생활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인간 군상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다. 그는 김종영 미술관의 ‘오늘의 작가상’과 ‘2012 미술세계 올해의 작가상’ 등을 다수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후로도 꾸준히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금호 창작 스튜디오, 양주시립 아카데미와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베이징 힐튼호텔, 싱가폴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건물 등에서 최태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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