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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5, Jun 2015

공공미술의 공간성과 시간성: ‘2015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Spatiality and Temporality of Public Art

도시의 공공공간에서 구현되는 미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도 상당한 기간이 흘렀다. 그동안 공공미술은 순수미술이라는 용어와 구분하여 미술학적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미술이 도시의 공간문제를 해결할 만능 치료제 마냥 취급되기도 했다. 도시 프로그램의 기획력이 부족하고 자금의 뒷받침이 미약한 곳을 미술 프로젝트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아트라는 형식에 정치적 욕망이 더해지면서 공공자금이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뿌려지고 낙후된 마을은 알록달록 원치 않는 옷을 입고 느닷없는 탐방객들의 방문에 일상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도시공간에 개입된 미술이 공간의 질을 높이고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발상은 좋았으나, 기획력이나 실행방식의 부족함은 프로젝트 시작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기 일쑤다.
● 기획 편집부 ● 글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SPACE』편집위원

젯사다 땅뜨라쿤웡(Jedsada Tangtrakulwong)'Hill' 2014 철, 고무, 나무 110×664×29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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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SPACE』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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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우에 대한 처방으로 도시계획과의 통합적 연계를 조언한다. 이러한 방법은 도시환경정비라는 관점에서 어느 정도 무난한 결과는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공공미술이 단순히 도시계획이나 건축법규에만 오롯이 기댈 수는 없다. 도시계획법과 건축법규가 공공미술 오브제의 성격이나 모양까지 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시환경에 대한 상위법과 도시계획안에 근거하여 프로젝트 별로 특정화된 도시공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 


육체와 같은 물리적 지형은 도시화의 정도에 따라 넓혀지거나 좁아질 수도 있고, 정신은 물리적 지형의 점유방식에 성격을 부여하여 특정지역이 활기로 피어나거나 어둠으로 멍들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도시계획자들이나 행정가들은 물리적 장치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근래에 들어 이러한 경향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도시의 공간성과 시간성의 맥락을 파악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올해로 9번째를 맞이하고 있는 ‘2015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도시 공공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술 프로젝트로서 남다른 의미를 가지며, 도시의 공간과 시간의 관점에서 주목해 볼 점이 있다. 


첫째, ‘2015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의 의미는 도시의 지형학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태화강이라는 도시 생성의 지형학적 근원으로부터 출발하여 도시의 공간적 맥락 안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세계 곳곳의 도시마다 유명한 강이 가로지른다. 자연지형가운데 인간의 정주지 형성이 큰 영향을 준 것은 강이나 시내와 같은 하천이다. 태곳적 사람들이 터전을 형성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전쟁을 할 때도 산업을 일으킬 때에도 강은 도시방어의 전략적 지형으로써 공업용수의 원천으로써 도시 흥망성쇠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송진수 <버스> 2014 철사 가변설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의 산업사회가 정착될 무렵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도시가 무분별하게 팽창하고 밀도가 높아져 대다수 도시민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시기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도 각종 폐수와 무관심으로 썩어갔다. 당시 도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강에 투영된다. 울산의 태화강도 비슷한 흐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도시민의 삶의 질에 대한 인식론이 확산되고 이에 대한 개선의 노력과 의지가 시작될 무렵, 강의 환경상태에 대한 복원의 노력도 함께 이루어졌다. 


도시와 접해 있는 강을 지칭해 대게는 젖줄이라고 칭하지만, 역사적으로 정주지 가까이에서 인간의 현재 삶을 투사하는 도시의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한다. 현대에 들어, 강은 도시계획의 중요한 물리적 축으로 작용한다. 강을 따라 기념비적인 건축들이 들어서고, 고급 주거건물이 자리한다. 강은 도시의 모습을 생산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기도 한다. 세계 각 도시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의 얼굴로 여겨 강변의 경관 정비에 신경을 쓴다. 서울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가 바로 가까운 예다. 강변에 다양한 시설물을 배치하고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대규모 문화시설이 계획되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축으로서의 한강은 정치와 행정의 업적을 전시하기에 매력적인 공간이다. 도시민이 이러한 시설과 계획을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강은 도시의 무형적인 현재 모습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강은 도시의 경관을 소비하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는 인접한 주거단지의 다른 아파트와 거래가격이 다르다. 강 조망권을 둘러싼 분쟁이 첨예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런던의 템즈 강이나 파리의 세느 강에서부터 서울의 한강까지 강은 동시에 도시민에게 삶의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일부이지만 도시와 괴리된 장소성으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만든다. 


강의 수변 부지는 도심지의 일상공간과 다르게 간주된다. 물은 심리적 환경요인으로 작용하여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공간경험을 제공한다. 밀도 높은 도심의 환경과 차별화되어 실재와 공존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안식처의 느낌을 준다. 런던시가 다리 디자인과 조명으로 강변의 경관을 정비하고 파리시가 세느강변에 바캉스 못간 시민들을 위해 인공모래사장을 만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여름 서울 한강변의 돗자리는 개인화된 유토피아 공간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울산이 태화강변을 생태적으로 정비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가운데 국제 설치미술전을 진행하는 것도 도시민에게 실재와 인접한 유토피아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를 선사하는 것과 같다. 




유미코 오노(Yumiko Ono) <Home> 

2010-2013 판자 850×850cm




건축역사학자인 스피로 코스토프(Spiro Kostof)는 그의 명저 『건축의 역사: 의식과 장치』를 통해 자연환경으로서의 지형학과 인간의 지세학 사이의 관계를 언급한 일이 있다. 대지의 요철과 형상으로 만들어진 지형으로부터 건축이 시작되며 인간이 인지하여 자리하는 그 순간부터 지형은 건축이 된다고 한다. 스피로 코스토프의 언급대로라면 태화강을 중심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사이트가 정해지고 해마다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지는 것은 이미 인간의 지세학으로 태화강변을 매년 새롭게 건축하는 작업이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도시와 자연지형의 맥락 안에서 기획이라는 호흡을 통해 공간성을 소통시키고 있다. 


둘째, ‘2015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공공미술의 시간성 문제를 설치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의미가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설치미술은 특정 공간에서 시간성과 장소성에 대한 예술적 해석이 구현되는 것이다. ‘2015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사방이 위요된 백색의 갤러리 공간에 설치미술이 작업되는 것을 너머 도시공간으로 나옴으로써 동시대의 도시변화리듬을 따라 시간성을 반영하여 익명의 도시를 지표화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백색 큐브의 무균실과 같은 갤러리 공간에서 나와 강하고 힘찬 언어로 스케일을 압도하는 건축이 줄지어 있고 다양하고 복잡한 시각언어가 난무하는 도시공간에 미술이 설치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는 작가가 지표화하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작가본인의 세계에 대해 관객과 소통하면 된다. 반면에, 도시공간에서는 작가성으로 지표화 된 오브제가 늘 유효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도시공간과 작가세계의 화학작용을 기대한다. 그 작용으로 탄생한 오브제를 통해 일상공간이 장소화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영감을 얻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이러한 작용들이 유효하기를 바란다. 갤러리 내부에서의 작업과 공공공간에서의 프로젝트는 비슷한 듯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다. 도시공간 안에서의 다른 시각언어와의 경쟁을 뚫고 오브제의 아우라 만으로 특정 공간의 장소성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강소 <풍경셋> 2012  240×560×120cm  




도시공학과 행정학의 논리에 따라 정비된 그리드 안에 정해진 법과 규칙에 따라 세워진 기반시설과 건물과 비교할 때, 공공미술이 도시공간에 입지하는 여건과 방식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미 조성된 공공공간이나 시설물의 전면에 주로 입지한다. 공공기관을 통해 전문가의 심의를 거치기는 하지만, 작품성과 입지의 적절성에 대해 항상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정비되어온 도시계획법과 건축법규에 의거해 세워진 여타 도시구조물과는 달리 형식과 내용이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 공공미술이 특정 공간에 영구히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공공성과 미술의 예술성 사이에 균형 맞추기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다양한 분야의 발전 속도가 충돌하는 동시대성을 고려할 때, 공공미술의 작품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도시맥락과의 관계나 유지보수관리와 같은 운영 측면에서 공공장소에 영구 설치된 예술품과 도시의 변화하는 장소성 사이에서 괴리를 목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동시대 도시 생활 패턴 안에서 영구 설치된 조형물은 우리 일상과 공간점유에 대해 시간성이라는 문제를 대두시킨다. 따라서 작금의 공공미술을 둘러싼 논의는 빠른 도시일상공간의 리듬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하는 관점은 비판과 재조명의 화두로 자주 언급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유럽의 유명 도시에 곳곳마다 세워진 동상들이 백 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며 현재까지도 건재 한 것을 예로 들어 백 년 공공미술을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 세워진 동상들은 작가성에 기반을 두었다기 보다는 특정장소에서 일어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관련인물의 동상이나 그 사건의 신화적 의미와 결부된 오브제를 세운다. 작가의 이름보다는 그 오브제를 가능케 한 스토리가 회자된다. 에로스 동상으로 유명한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교통을 위한 요충지다. 19세기 초 피카딜리 서커스는 리젠트 스트리트와 연결된 교차로로 만들어 졌고, 몇 십 년 뒤 분수가 만들어 졌다.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러 샤프테스버리 경의 박애사업을 기리기 위해 에로스 동상이 세워졌다고 하니 분명 한 번에 이러한 풍광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더불어 현재는 피카딜리 서커스를 둘러싼 네온사인 광고판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곳에 네온사인 광고 입성 여부가 기업의 세계적 이미지와 직결된다. 고전건축의 풍광과 네온사인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각 언어는 어느 하나의 치우침 없이 100년 넘게 누적된 도시장치의 층위가 여전히 공존하며 현재의 시간성을 잘 소화하고 있다. 이것은 피카딜리 서커스의 공간적 우수성이나 에로스 동상의 빼어남이나 네온사인의 스펙타클과 같은 몇몇 특정요소로만 얘기 할 수 없다. 




차진엽 <KIM WOLF> 퍼포먼스




에로스상이 백 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 피카딜리 서커스의 장소성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공간의 시간적 변화를 고려해 팝 아트와 같은 네온사인 광고판을 들어서게 한 행정적 결정도 있다. 우리는 이 사례에서 도시공간 변화의 시간성을 고려하는 것이 백 년이라는 지속성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공간적 지표화만큼이나, 시간적 지표화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공간의 시간성을 다루어 진행되는 모습은 도시를 보다 창조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기존의 파편화된 도시공간에 미술을 장식품처럼 설치하는 데에서 도시 맥락을 바탕으로 매년 다른 시공간성을 이야기를 전개하듯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도시와 공공미술의 실험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동시에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도시 이벤트로서 태화강과 울산 도심을 이어주는 가교가 될 것이다. 도시맥락상 개발계획에서 동떨어질 수 있는 지역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소통되는 것이다. 매해 작품이 설치되는 위치를 선정하는 작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태화강 이라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자연 지형을 도시맥락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커다란 도시 갤러리를 형성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는 시간의 축을 고려하여 도시를 장소화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는 점을 뛰어 넘어 개최장소를 강과 인접한 곳으로 정함으로써 강과 도시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도시발생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자연지형인 강을 바탕으로 도시 이벤트가 이뤄진다는 것은 도시정주에 대한 사유의 관점을 다시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한 도시의 공공미술 연례행사를 뛰어 넘어 도시가 시공간적으로 소통되어 도시민에게 보다 영감을 주는 장소를 만들기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영감의 장소가 누적된 도시는 창의성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며, 이는 도시민의 삶의 질에 기여할 것이다.   



글쓴이 한은주는 공간건축에서 실무 후 영국왕립예술대학원에서 도시공간에서의 위치기반 인터렉션 디자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iggraph 2009에서 건축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작품을 발표를 했으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초대작가이다. 『SPACE』 편집장, 공간건축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소프트아키텍쳐랩의 대표, 한양대 겸임교수, 『SPACE』 편집위원으로 예술작업, 글쓰기, 디자인공학 등의 작업을 통해 혁신적 도시디자인과 건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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